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7화 (17/212)

제17화

알렌과 린벨은 빠른 속도로 커다란 진동이 울리는 곳으로 달렸다.

쿠구궁-

곳곳에 자리한 기이한 장식과 비틀어진 시체, 키메라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 더욱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는….”

그의 뒤를 따르던 린벨은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드는 기시감에 혼란스러웠다.

분명 모르는 장소다.

엄마가 여기 있기 때문에 왔을 뿐인데, 분명 처음 오는 곳이 맞을 텐데.

깊은 장소로 향할수록 뭔지 모르는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에 그녀의 머리가 복잡하게 변했다.

‘이게 도대체….’

알렌은 알렌 대로 혼란스러웠다.

입구에서부터 천연 동굴에 가까웠던 동굴은 중반을 지날 때쯤, 인공물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 나타났다.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그가 겪어 본 적 없는 함정이 나타난다.

기껏해야 창살로 떨어지는 함정이나, 바닥이 꺼지는 함정이 다였을 텐데.

“공자님 조심…. 꺄악!”

알렌은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얼음 송곳을 막아 내며, 린벨이 어디론가 전이되기 직전 몸을 잡아당겼다.

-콰드득

알렌은 급히 흩뿌린 충격파에 얼음송곳이 깨져 나갔다.

린벨은 다행히 전이가 완료되기 직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

화염구가 날아오거나 얼음 송곳이 떨어져 내리는 건 기본이었고, 특정 장소를 밟는다면 어디론가 갑작스럽게 전이되거나 갑작스럽게 발밑에서 튀어나오는 독충들까지.

그가 전에는 겪어 본 적 없었던 까다로운 함정들이 연이어 그들을 괴롭혔다.

“공자님 발밑에 또 독충이…!”

“고맙다.”

알렌은 그의 피부에 달라붙으려는 독충을 터트렸다.

이렇듯 많은 함정이 그들을 가로막았음에도, 키메라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진동음이 들린 이후부터, 인가.’

그들이 동굴에 침입했을 때만 해도 몰려오던 키메라들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수가 줄어들더니, 어느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쿠구궁

또 한 번 공간이 울린다.

알렌은 앞으로 다가갈수록 명확히 들리는 폭발음에 그녀의 얼굴을 힐끔 살폈다.

“누군가 전투를 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 누군가는….”

이넬리아겠지.

“…엄마.”

알렌은 말끝을 흐렸지만, 린벨은 누가 전투를 하고 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레그놀.

그 키메라를 제외하고 이 동굴에 있을 이라고 해 봤자 이넬리아와 키메라 술사.

그 두 명밖에 더 있겠는가.

남은 건 놈이 지배하는 괴물뿐이겠지.

그녀도 예상이 되는지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알렌은 묵묵하게 함정을 돌파하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소리의 진원지까지는 지척이었다.

* * *

이넬리아는 신체가 점점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본체는 애초에 인간이다. 그런 몸에 유적에서 발견한 각기 다른 요정족의 신체를 이식했다.

본래 신체가 없던 종족이 신체를 얻게 된 탓일까, 그 덕분에 갖게 된 기이한 적응력 탓에 기적적으로 실험을 버텼다.

그러나.

‘이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저 괴물에게 닿는 게 가능할까.’

그녀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눈앞의 노인을 응시했다.

노인은 마치 흥미진진한 것이라도 보는 듯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해.’

린벨을 위해서라면.

막무가내로 섞인 신체 각 부위가 그녀의 적응력이 극대화되며 하나의 신체로 이어진다.

이넬리아가 작은 바늘을 찔렀다. 이름 모를 요정의 왼손을 이식한 손에서 들고 있던 바늘이 거대하게 변하며 다가오던 키메라들을 꿰뚫었다.

-푸슉

전방위에 있는 키메라들의 신체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오오. 그건 스프리건의 왼손인가? 기록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그녀의 두 번째 동공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반대쪽 팔이 곰의 것처럼 변해 휘둘러졌다.

“실험할 때만 해도 원형도 알아보기 힘들었던 것들이 저렇게 변할 줄이야….”

그 휘두름에 뒤로 접근하던 키메라의 머리가 박살 난다.

“저건…. 푸카의 변신 능력인가? 저것 덕분에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나 보군. 한계는 어디까지지? 기한은? 제한은?”

이넬리아는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녀를 관찰하는 그의 눈빛에 진저리를 쳤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이넬리아는 줄어들지 않는 거리에 조급함을 느끼며 폭발적인 괴력을 뿜어냈다.

머리를 내려찍는 도끼를 그대로 붙잡아 뺏은 후, 멍청한 표정을 짓는 괴물의 머리를 쪼갠다. 자잘한 공격은 옛적에 회복된 지 오래였다.

또, 다시 한번 가까이 접근하는 키메라의 머리를 부쉈다.

“피는 누구의 것이지? 무엇을 넣었는지 정체를 모르니… 추측하기 영 힘들구먼. 괴력은 닉시? 그렇다면 회복력은…. 트롤인가?”

드베르는 간단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느긋이 그녀를 관찰했다.

그런 그의 움직임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가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탄성을 발하며 감탄이나 할 뿐, 그녀의 공격에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넬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억지로 신체를 하나로 이었다.

키메라로 기워 내거나, 이식한 것을 다룬다는 것이 아닌, 정말로 하나.

태어났을 때부터 하나의 온전한 신체를 가지듯이. 그녀의 적응력은 모든 신체 부위를 하나로 만들었다.

거부 반응이나 부작용,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런데도 부족하다.

키메라의 수는 줄어든다. 하지만, 그게 그에게 위협이 되나? 저 표정을 보라. 흥미롭다는 듯 관찰하는 시선.

수 없이 키메라를 죽였다. 그런데도 왜 다가갈 수 없지? 키메라는 왜 줄어들지 않는 건가.

이런 다툼으로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나? 이래서 달라지는 건?

린벨은.

‘린벨을 지킬 수 있을까.’

이미 키메라의 시체로 산을 쌓았다.

선택해야 했다. 한 번에 목숨을 바치느냐. 장기전을 지속하느냐.

‘당연히.’

그녀의 잿빛 피부에 색색의 요정어로 이루어진 주문(呪文)이 나타나 그녀의 피부 위로 떠올랐다.

“저건….”

이넬리아의 12쌍의 날개가 무지갯빛으로 끝없이 빛난다.

비록 잔재에 불과한 요정 여왕의 날개이지만.

자신의 특성을 이용한다면.

그녀의 주위로 마력이 끝없이 요동치며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눈동자의 형상이 떠올랐다.

다 스러진 잿빛의, 희미한 형상에 불과한 눈동자.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능력이 다하기 전까지. 그녀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진짜 요정 여왕에 준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반신의 격을 가진. 실체 하는 권능을 가진. 많은 요정의 우러름을 받았던.

실제 영성의 격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몸에 수없이 이식된 요정족의 신체와 그걸 억지로 하나로 이은 적응력.

그리고….

‘원혼.’

그의 영혼에 끝없이 들러붙은 수 없이 많은 원혼의 염(念)이 합쳐져 기적 같은 확률을 뚫고 드러낸 권능.

비록 한순간의, 꿈결 같은 능력이었지만 이것이면.

‘가능해.’

가능했다.

이걸 사용하고도 실패한다면 아니, 성공한다고 해도 그녀는 이미 소모한 생명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녀를 휘감은 족쇄를 풀 수 있다면. 노리는 적을 죽일 수 있다면.

그녀는 아직 감겨 있는 눈동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거대한 위압감에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이런, 미친!”

드베르는 이넬리아의 등 뒤로 거대한 눈동자의 형상이 나타난 순간, 안색이 변했다.

그는 급히 모든 키메라를 그녀에게 돌격시키고, 품에서 기이한 돌칼을 꺼내 들었다.

돌칼 겉면에는 붉은 핏줄이 요동치듯 맥박을 뛰었고, 중간에는 눈알 하나가 박혀 있어 기괴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는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네가 권능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확실히 예상외군.”

그는 다급한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게 당황하지 않았다는 듯 노쇠한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물어볼게. 나를 풀어 줄 생각이…. 없지?”

“자네라면 그걸 보고도 그러겠나?”

그는 광기에 짙게 물든 눈으로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난 눈동자를 보았다.

“어느 요정 왕의 것도 아니군. 그건, 그건 자네만의 것이야.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의 눈에는 탐욕과 욕망, 의문 그리고 광기가 들어차 있었다.

“눈의 권능. 어떻게 가지게 되었나. 역대 각 요정족의 왕들만이 가지던 능력인 것을!”

“역시 그렇겠지?”

“이넬리아. 자네를 보니 오랜만에 탐구욕을 들끓게 만드는군. 전과 같이 평범하게 협조를 해 줄 수 없겠나? 제발, 이렇게 부탁하겠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넬리아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녀의 뒤에 있던 눈동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참아야 했다.

-끼에에에

-끄으으윽

효과가 엄청났으니까.

눈이 완전히 뜨인 것도 아니다.

단지 조그마한 틈, 그 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만으로 근처에 있던 생물들이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것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상관없이.

이 생명과 맞바꿔서 그를 죽일 수 있다면 이 정도의 값은 마땅히 지불할 수 있다.

그녀는 생명이 실시간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멀리서 린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보고 싶다.’

그녀가 결심을 확고히 한 그때, 드베르는 망설임 없이 돌칼을 자신의 심장에 꽂았다.

푸슉-

그의 심장 주위로 피부가 울긋불긋 부풀어 오르며, 그의 겉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검게 변하며,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손톱과 머리카락 그 모든 게 빠져나가며, 주름진 피부마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아직…. 사용하기에 일렀는데….”

그의 목소리는 여러 잡음이 섞여 있어 굉장히 기괴했다.

그와 동시에 그와 밭 밑에서 핏줄이 뻗어 나가며, 주변의 키메라를 덮쳤다. 그 과정에서 살점과 핏물은 그에게로 흡수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이넬리아가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분해하며 소멸시키는 게 더 빨랐다.

그쯤 되자 그는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소리쳤다.

“자네, 자네, 자네! 이넬리아 제발 협상하는 게 어떤가. 단 한 번! 한 번만 해부할 수 있게 해 준다면 풀어 주겠네. 제발…. 제발!”

그는 광기와 간절함이 가득한 눈으로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핏줄이 늘어나며, 더욱 빠른 속도로 키메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넬리아는 애처로이 웃었다.

“역시…. 이 선택이 옳았어.”

죽음이 코앞에 다가옴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 저런 이가 내뱉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미련은 남는다.

‘하지만.’

남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렇게 거대한 눈동자가 완전히 뜨이려는 순간.

“아니, 별로 좋은 선택 같아 보이지는 않는군.”

목소리가 울렸다.

* * *

알렌은 지금 눈앞의 상황이 현실인지 잠깐 고민했다.

한쪽은 전설 속에나 나올법한 요정, 한쪽은 수십의 키메라를 집어삼키는 키메라 술사.

평생을 골방에서 마법을 연구해 온 그에게 어느 쪽이든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일이겠지.’

회귀 전의, 예전의 율리우스는. 놈은.

늘 이런 광경을 보았던 건가, 이런 적을 상대한 것인가.

고대의 비밀을 풀고, 잠들어 있던 괴수를 물리치며, 등장하는 재앙을 잠재운다.

소문에서는 영웅담 같이 들리던 이야기도, 현실로 마주하니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알렌은 우선 이넬리아를 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때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잿빛 피부도, 열두 쌍의 날개도, 뾰족한 귀도.

그러나 알렌은 그보다 다른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등 뒤로 나타난 거대한 눈동자 형상.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는 그것은 그녀와 연결된 상태로 실시간으로 그녀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지금도 위험한데. 하지만 눈동자가 완전히 뜨인다면….’

그녀는 죽는다.

그건 확실했다.

저런 무식하게 생명을 때려 붓는 방식.

“고, 공자님…? 여기에는 어떻게….”

그건 자신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으니.

알렌이 다가가자, 그녀의 놀란 얼굴로 물어보았다. 알렌은 그 모습을 느긋이 감상하며 다가갔다.

“내 것을 되찾으러 왔지.”

“아니, 그게 무슨….”

“내 시녀가 아닌가.”

그녀는 무슨 소리 하냐는 눈빛으로 묻다,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입을 벌렸다.

“레그놀을 벌써 해치우셨나요…?”

“아니, 그건 아니야. 그 키메라가 레그놀인가?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듣지. 일단 그건 멈춰.”

알렌의 가라앉은 눈빛이 눈동자를 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생명은 타오르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