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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4화 (14/212)

제14화

“알렌 공자님, 무운을 빕니다.”

“공자님, 지금이라도 따라가고 싶….”

딱!

“조용히 해.”

“아얏…. 이마가….”

린벨은 붉게 변한 이마를 잡고 울상을 지었다.

알렌은 싱겁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모녀의 다툼을 보는 것도 꽤 즐거운 구경거리겠지만….

‘할 일이 있으니.’

오늘 안으로.

키메라 술사를 죽일 것이다.

고개를 들었다.

튼튼한 성벽과 두꺼운 성문이 눈앞에 있었고, 그의 주위로 저택에서 데려온 병사 100명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대기했다.

-웅성웅성

그들 주위로 주민들이 모여 병사들을 구경했다.

“며칠 안으로 해결하고 돌아올 테니, 출발할 준비나 해 두도록.”

“네에….”

끝까지 아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린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넬리아를 쳐다보니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 입을 자꾸 열었다 닫으며 망설였다.

“할 말이 있나?”

“공자님, 저기, 그….”

그녀는 주위의 병력과 알렌을 끊임없이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작게 답했다.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싱겁기는.”

그녀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 굳이 알아낼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의 사람이 된 것과 모든 비밀을 공개하는 건 엄연히 다른 것이니. 그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파헤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가만히 배웅을 지켜보던 프란시스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가 없는 사이 두 사람을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공자님.”

프란시스카는 단아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만약을 위해 도시에 남았다.

그가 예상 못 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도시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4 위계 마법사라면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전력이겠지.

“그럼….”

걸음을 옮긴다.

끼이익-

성문이 열리며, 열린 틈새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북문 앞의 넓적한 평원과 그 뒤로 이어진 숲. 알렌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다짐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출발한다!”

앞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알렌을 비롯한 병사들이 도시를 나간 지 30분, 린벨과 이넬리아는 저택의 방으로 돌아와 대기하고 있었다.

“엄마…. 나, 지금이라도 따라가면 괜찮지 않을까?”

린벨은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 게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안 돼.”

“멀리서, 그냥 성벽에서 구경만 할게. 그래도 안 돼? 응? 엄마아!”

“절대 안 돼. 공자님은 이미 숲으로 들어갔을 거야.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게?”

“씨….”

그녀는 괜히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이넬리아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린벨, 전투가 장난은 아니잖니.”

“그래도….”

그녀가 자꾸 졸라 대자, 이넬리아는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는 약하잖아. 따라가 봤자 짐밖에 되지 않을 거야.”

“그런가…. 힝. 공자님 싸우는 거 보고 싶었는데….”

그녀의 말에 린벨은 침울하게 대답했다. 며칠 전에도 병사 때문에 큰일을 당할 뻔했으니까.

이야기 속 한 장면처럼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방해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알았어. 고집 그만 부릴게.”

그녀는 엄마의 말에 곧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린벨의 얼굴이 시무룩하게 변했지만, 이넬리아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싸우는 상대가 그놈이라면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됐다.

‘나는 죽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린벨은… 안 돼.’

이제 그녀가 편히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기려 하는데.

이넬리아가 순순히 알렌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이곳에서 그의 시선을 피해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컸다.

자신 혼자서는 절대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꽤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고.’

처음에는 진짜 몸이 목적인 줄 알았으나,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지내며 지켜본 결과 그는 아무런 흑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딸아이가 아닌 자신에게라도 몰래 손을 대볼 만할 텐데, 그는 정말로 손끝 하나 건들지 않았다.

‘정말, 고자일지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떠올린 그녀는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린벨을 달랬다.

“린벨. 백작가로 돌아간다면 공자님에게 부탁해 보자.”

“…뭘,”

이제 열다섯, 성인이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음에도 딸아이는 여전히 어렸다.

“무력을 기르는 것을 도와달라고, 응? 그러면, 다음에는 함께 할 수 있잖아?”

“진짜…? 그런데 공자님이 허락해 줄까?”

“당연하지. 명색이 개인 시녀인데.”

이넬리아는 알렌이 그렇게 행동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켜본 그의 성향이라면 아마 허락해 주지 않을까.

“음, 그러면…. 다음부터는 꼭 따라갈 거야.”

“그러렴.”

이넬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떠올렸다.

쾅!

저택의 한쪽 벽면이 박살 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하, 정말 찾느라 힘들었지 않았습니까. 이넬리아.”

이넬리아의 미소가 급격하게 굳었다.

느끼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귀를 핥는 듯한 그 끔찍한 감각에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귀족의 저택이라니… 이러니 찾기가 힘들었지요.”

저택의 벽면을 부수고 등장한 것은, 거대한 크기의 괴물이었다.

3m 크기의 신체와 둥글게 휘어진 두 뿔. 두 손에는 뾰족한 손톱이 날카로운 빛을 드러냈고, 붉은 눈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온몸 가득히 들어찬 근육이 압도적인 위험을 내비치는 괴물은 생김새와는 달리 고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을 데려가기 위해, 이목을 돌리고, 시간을 끄느라 얼마나 많은 형제가 죽어 가는지 아십니까?”

굳은 표정으로 변해 있던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프란시스카 님은?’

이넬리아는 급히 주위를 살폈지만, 프란시스카는 격한 소란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았다. 레그놀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 마법사를 찾으십니까? 아쉽지만….”

-쾅!

그의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그의 뒤쪽에서 굉음이 울렸다. 뒤따르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겁에 질린 목소리.

-꺄아악, 괴물이다!

-가, 갑자기 왜 괴물이…!

레그놀은 그 소리를 잠시 음미하듯 눈을 감더니 말을 이었다.

“짧은 시간 내로 오지는 못할 겁니다. 한 마리라면 시간을 끄는 것도 못 하겠지만…. 열 마리라면, 백 마리라면 어떻습니까.”

“설마….”

“그것도 도시 안으로 숨어들었으니, 다 처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변수’만 아니었어도 3일은 있다 공격했을 텐데… 뭐 그건 말할 필요 없겠지요.”

레그놀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흘리자, 이넬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넌 미쳤어.”

“당신만 하겠습니까.”

놈이 풍기는 기세 때문인지, 그 주변으로 접근하는 이는 없었다. 이넬리아는 입술을 깨물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차라리 모든 걸 밝히고 알렌 공자를 따라갔다면….’

그러나 이미 후회는 늦은 법.

레그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인형 놀이에 빠져 있다니… 이래서야 이면의 주민이라고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주인의 손발이 되는 영광을 걷어차고 하는 짓이 고작….”

“입 다물어, 레그놀. 인형 놀이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해.”

“그럼….”

키메라의 입이 귀까지 길게 찢어졌다. 레그놀은 그 상태에서 킬킬 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저것이 없어진다면 어떻습니까?”

“뭐?”

“그때는 실패했지만… 지금의 저를 당신이 저 작은 짐 덩이를 챙긴 채 막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그가 가리키는 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린벨이었다.

“어, 엄마…? 저 괴물을 알아?”

린벨의 부름을 듣고 이넬리아는 정신을 차렸다.

“건드리지 마! 한 번만 더 린벨을 건드리려고 한다면….”

이넬리아의 둥근 귀가 뾰족하게 변하고, 눈 안쪽에 하나의 동공이 더 생겨났다. 온몸의 피부가 탁한 잿빛으로 변함과 동시에 등에서 12쌍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나도 가만히 안 있어.”

지금의 그녀는 인간이라 부르기에 이질적으로 달라진 상태였다.

굳이 찾아보자면, 대륙에서 사라졌다는 요정족을 닮아 있을까.

“어, 엄마? 이 모습은 뭐야, 저 괴물은 뭐고….”

“린벨, 나중에 다 알려 줄게. 그러니 잠깐, 잠깐만 기다리렴.”

키메라는 그녀들의 대화가 끝나자, 웃음을 터트리고 말했다.

“제가 그래도 건드리겠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레그놀의 붉은 동공이 초승달을 그렸다.

이넬리아는 입술을 깨물고 레그놀에게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하하. 역시, 이넬리아는 눈치가 빠르군요.”

그녀의 대답에 레그놀은 기세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이넬리아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더라면 주저 없이 린벨을 노렸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제 그만 돌아오십시오.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 꼬마는 건들지 않겠습니다.”

“…정말이야?”

“엄마!”

“당신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발판이 되어 주신다면…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린벨이 크게 소리쳤지만, 이넬리아는 그녀를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린벨….”

자유롭게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다. 백작가 장남의 시녀로, 새 인생을 살며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너무 안일했어….’

조용히 놈이 토벌될 때까지 기다리다니,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니던가. 차라리 놈들의 본진으로 직접 길잡이를 자처했다면….

“시간 끌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제법 실력이 괜찮은 마법사가 서두르는 것 같지만….”

그는 이넬리아의 생각을 끊으며 린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 전에 제가 어떻게 행동할지 잘 모르겠군요.”

레그놀의 재촉에 표정을 일그러뜨린 그녀는, 린벨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섰다.

“…가겠어.”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넬리아. 제 몸을 붙잡으십시오.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그가 뾰족한 이빨을 내보이며 웃자, 이넬리아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는 린벨을 돌아보았다.

“…엄마?”

그녀의 부름에 흐릿한 미소를 지은 이넬리아는 레그놀의 등에 올라탔다.

“엄마, 엄마! 엄마!”

뒤늦게 정신을 차린 린벨이 이넬리아를 불렀지만….

“….”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점으로 변해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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