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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3화 (13/212)
  • 제13화

    그는 린벨의 모친을 찾은 후에, 곧바로 키메라 술사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도시에 도착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놈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이상하지.’

    율리우스, 놈은 가문의 비전이니 감이니 하는 걸로 과거 벨론 남작을 속였을지 몰라도, 알렌은 그런 수가 지금의 남작에게 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만약, 알렌이 생각한 것과 같이.

    무능하다는 것을 이용해 율리우스의 변명에 넘어간 척 연기했던 것뿐이라면?

    ‘차라리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운이 좋게 발견했다는 변명이 더 나아.’

    알렌은 다른 곳으로 새려는 생각을 되돌리며, 그녀가 따라왔을 때 얻을 가치를 생각했다.

    ‘그녀가 쓸모가 있는가?’

    있다.

    확실히 병사를 대동하는 것보다 그녀의 쓸모가 더 크다.

    마법사의 감지력은 위계가 높아질 때마다 다섯 배씩 늘어나니까.

    알렌이 이질적으로 큰 원의 고리를 갖고 있어도 자신을 중심으로 감지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범위가 겨우 3m인 반면, 프란시스카는 4위계의 마법사로서 375m의 감지 범위를 가진다.

    그녀 존재 자체만으로 추적기로 활용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만약, 인가.’

    알렌이 고민하는 사이, 프란시스카는 어느새 린벨에게 접근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참 피부가 깨끗하구나. 따로 관리하는 방법이 있니?”

    “어, 으…. 잘, 모르겠어요.”

    “유전이라는 말이구나. 좋은 부모를 뒀어. 어머니는 어떠니?”

    “네. 가, 감사합…. 그, 저랑은 다르게 엄청 예뻐요. 그런데 유전이 뭐죠…?”

    “음…. 유전은 그러니까….”

    어쩌면.

    ‘동질감일 수도.’

    알렌은 잡생각을 털고 그녀에게 답했다.

    “그럼 따라오시죠. 그 대신 저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조금 서두르겠습니다.”

    * * *

    서문에 위치한 성벽에는 많은 병사가 아침부터 마을로 나갔는지, 병사가 몇 명 없어 한산했다.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한 전 인원이 움직인 상황.

    그런 곳에서 알렌은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알렌 공자님, 찾으시던 여성이 이분이 맞으십니까?”

    알렌의 걱정은 기우였던 것으로 끝났다.

    프란시스카를 데려갈 필요도 없었다. 서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병사들은 여성을 찾아 데리고 있었다.

    “어, 엄마! 흐잉….”

    린벨은 병사들이 데리고 있던 여성을 보자마자 곧바로 뛰어들었다.

    “린벨…?”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퍽 얼떨떨한지 품 안에 뛰어든 린벨을 쓰다듬었다.

    병사들은 알렌이 다가오자 곧장 물러났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이 알렌에게 향했다.

    겉보기에는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성이었다. 린벨과 같은 자색 눈에 검은 흑발이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사냥꾼이라는 린벨의 말처럼 탄탄한 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 병사들의 행동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귀인께서는…?”

    “라인하르트 가의 장남, 알렌 라인하르트다.”

    알렌이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3m의 감지 범위까지 들어가자 심장 어림의 고리가 작게 진동하며, 범위 안의 모든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군, 왜? 허벅지에도 힘이 들어가고, 눈은 탈출로를 살피나?’

    알렌 그녀의 존재가 꽤 흥미로웠다.

    홀로 사냥꾼 노릇을 하며 딸을 키운 것이나, 전과 달리 살아 있다는 것이나.

    그러나 그녀는 흥미로운 기색의 알렌과 달리 그가 등장한 이후부터, 왜인지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영지민이 귀족을 보며 느끼는, 그런 것이 아닌 무언가를 숨긴다는 느낌.

    ‘궁금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뿐.

    그걸 캐내기 위해 더욱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비밀을 캐내려는 게 아니라 지키려는 목적이었으니.

    “엄마, 공자님이 엄마 찾는 걸 도와주셨어.”

    그때 한동안 품에 안겨 있던 린벨이 작게 말했다.

    “그래…?”

    “또, 병사들이 건드리려 하는 것도 막아 주고…. 아, 맞다. 저택에서 밥도 먹었는데….”

    그러나 린벨이 아무리 떠들어도 엄마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자, 그녀도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닫았다.

    알렌은 긴장한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긴장은…. 풀지 말라고 하더라도, 소용없겠군.”

    알렌은 웃었으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무엇을 원하시는가요?”

    “엄마!”

    “넌 가만히 있어.”

    중간에 린벨이 소리쳤으나, 그녀는 부모를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린벨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공자님께서 그저 동정심으로 저희를 도와주셨으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실 그녀의 생각이 당연했다.

    백작가의 장자가 병사들에게 시켜도 되는 일을 친히 왕림까지 해 가며 도와준다? 그것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촌마을의 소녀를 상대로?

    딸은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넘어갔을지 모르나, 그녀는 아니었다.

    “공자님이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가진 게 없습니다.”

    “무엇이라….”

    “혹시 몸을 원하신다면, 딸 대신 제가….”

    “엄마!”

    이번에는 참지 못했는지 린벨이 다시 소리쳤다.

    “공자님은 그럴 분이 아니야. 그냥 도와준….”

    “조용히 해, 린벨.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어. 아닌 척해도 모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얻었을 뿐.”

    린벨은 그녀의 대답이 불만인 듯했지만, 그녀는 린벨을 보지 않았다.

    “무례하다!”

    병사가 크게 소리쳤다.

    “공자님께 언행을 주의하라! 어느 분과 대화하고 있는지….”

    “됐다.”

    “하지만….”

    알렌이 손을 한 번 휘젓자, 병사는 눈치를 보더니 슬쩍 입을 다물었다.

    “하, 그래. 네 말이 옳다.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지.”

    알렌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과거로 돌아온 것도 마찬가지.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알렌도 언젠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대가를 치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언제일지 알 수 없을 뿐.

    ‘놈을 죽이기 전까지 미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좋을 대로 흘러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아니, 그래. 정확히는 목적이 있지.”

    그녀는 역시 그랬을 거라 생각했는지 수긍했고, 린벨은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멍한 눈을 했다.

    의외로 프란시스카는 조용히 상황을 관망했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내가 시녀를….”

    “역시 저희 모녀의 몸을 원하셨…. 네?”

    알렌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변했다.

    프란시스카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았지만, 입꼬리가 미친 듯이 움찔거리다 결국에는 폭소를 터트렸다

    ‘역시 같은 핏줄인가….’

    린벨도 어제 일이 떠오른 듯 피부가 붉게 변했다. 그러고는 슬쩍 두 발자국 떨어졌다.

    그녀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아, 저, 그게, 어….”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며 어버버- 말을 잇지 못했다.

    알렌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표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으흠, 내 목적은 너희를 시녀로 삼고 싶다.”

    알렌은 히벨로 오면서부터 했던 고민의 답을 내렸다.

    “네?”

    “너희 모녀를 모두, 시녀로 삼겠다고 했다.”

    알렌이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음에도 역사는 비틀린다.

    율리우스와 아무런 충돌이 없었음에도, 린벨은 험한 일을 당할 뻔했다.

    만약, 그가 그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회귀 전과 결과는 다를지언정 비참한 꼴을 당했으리란 건 명백했다.

    그렇다면.

    ‘끌어들인다.’

    물론 전투나 전장에 개입하는 것에는 선택권을 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회귀 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으니, 끌어들인다.

    그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미래에 벌어진 수많은 재앙.

    만약 그 재앙 때문에 가만히 놔두었던 그녀들이 죽는다면? 그럼, 그건 누구 탓인가.

    개입하지 않은 자신? 벌어진 재앙?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신?

    ‘결국 고민은 무용지물이구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냥 율리우스처럼 무작정 행동하는 건데.

    그러나 이런 고민 덕분에 앞으로의 행동에 어떻게 행동할지 기준이 세워졌다.

    행동하든 하지 않든 시간은 흐르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알 수 없다.

    자신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찾아오리라는 확신이 있나.

    ‘없지.’

    결국 그는 신이 아닌 미래를 조금 알 뿐인 인간이었으니.

    검은 책도 결국 다르게 흘러간 미래의 단편일 뿐,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그의 눈이 맑게 반짝였다.

    이 순간. 위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의 이해가 더해진다면 새로운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미래에 대한 이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지금은 대화 먼저.

    “저희를…?”

    알렌은 빠르게 명상을 할 필요를 느끼고는 그녀에게 강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린벨만을 데리고 간다고 하면 허락해 주겠나?”

    “그건….”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걱정될 게 뻔하니, 두 명 모두 시녀로 삼겠다고 한 것일 뿐. 다른 생각은 없다.”

    “…저, 저는,”

    “할게요!”

    린벨은 시녀로 삼는다는 말에 곧바로 동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반대했다.

    “…안 돼!”

    “엄마 또, 왜 그래! 공자님 진짜 좋은 사람이라니까? 심지어 어제….”

    린벨은 슬쩍 엄마에게 귓속말했다. 알렌은 예의상 감지력을 흩트리고 기다리자,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딸을 한 대 때렸다.

    “악! 왜 그래!”

    “…너, 나중에 보자.”

    그녀는 딸을 째려보고는, 알렌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가 시녀로 삼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게 권유가 아닌 선포임을 알았다.

    귀족의 권유를, 그것도 장차 이 땅의 지배자가 될 그의 말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가 명목상이나마 부탁의 성질을 띤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성격이 꽤 괜찮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

    다만… 딸에게 들었던 그의 모든 행동이 그의 본성이기를 바랬다.

    그녀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저, 이넬리아와 저의 딸 린벨은…. 공자님의 시녀가 되겠습니다. 대신….”

    그녀가 다가와서 작게 속삭였다.

    “저는 건드리더라도, 딸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그럴 생각이 없다니까.

    알렌은 귀찮은 마음에 정정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대로 답했다.

    “그래, 그러지.”

    아직 동생을 되찾을 방법을 찾지도 못했는데, 멍청하게 여색에 빠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라면 잠시나마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예,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련의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던 프란시스카는 애매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귓속말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알렌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녀들에게 말했다.

    “이넬리아, 린벨. 우선 방을 내어줄 테니 거기서 회포를 풀도록 하지. 시녀 교육은…. 영지로 돌아가면 시작할 테니 그렇게 알고.”

    평민을 시녀로 들인다니, 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미래에 어쩌면 대륙 8강에 이를지 모를 전력을 휘하에 들이게 될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그가 누구라도 시녀를 들이기를 바랬으니 지지해 주리라.

    알렌은 곧바로 프란시스카, 그녀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했다.

    “프란시스카 양, 따라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뇨, 별 도움은 되지 않았는데요.”

    “만약을 위한 보험의 역할을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알렌은 작게 목례를 하고 몸을 돌렸다.

    방금 떠오른 영감과 생각을 정리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저기 공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병사를 붙여 린벨과 이넬리아를 저택의 방으로 보낸 후, 곧바로 가까운 여관의 방으로 몸을 옮겼다.

    “어서 옵 히익…!”

    “1인실 아무거나, 당장.”

    “예, 옙! 여기 있습니다.”

    중간에 여관 주인이 손을 덜덜 떨며 열쇠를 한 번 떨어뜨렸으나, 알렌은 상관하지 않고 곧바로 열쇠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여관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프란시스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가 사라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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