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이쪽은, 이번 사건에 도움을 주실 마법사 프란시스카 입니다. 벌써 4 위계를 달성한 출중한 마법사지요.”
“프린달 님의 손녀 프란시스카입니다.”
“프린달 님이라면…? 전속 마법사이신….”
“예, 그분의 손녀가 맞습니다.”
“정말, 미래가 두려워질 지경입니다. 거기에 이렇게 아름다우시니….”
벨론 남작은 체면도 없다는 듯 일행을 칭송하기에 바빴다.
알렌에게는 지배자의 위엄과 카리스마에 눈이 부신다느니, 프란시스카에게는 아름다운 외모와 충만한 재능과 재치가 돋보인다느니.
알렌은 그의 아첨에 적당히 겸양을 떨었다.
벨론 남작.
사건이 이렇게 커질 때까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무능한 남작. 알렌이 전형적으로 혐오하는 귀족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의 모습을 보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던 자신이 겹쳐 보였다.
“…그런데.”
벨론 남작은 다급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몇 번이나 아첨을 더 하더니, 알렌의 주위를 티 나지 않게 살폈다.
“…원래 이곳에 율리우스 공자님이 오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 남작은 제가 미덥지 못한 모양입니다.”
알렌이 뼈 있는 말을 건네자, 그는 급히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어 댔다.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공자님. 그저, 율리우스 공자님이 달라졌다는 소문에 궁금한 마음이 들어….”
궁금한 마음이라… 하.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전에는 얼굴을 한 번 비춘 게 다였나? 알렌은 전에는 느끼지 못했을, 그의 주위에 너울거리는 위화감의 낌새를 눈치챘다.
“아쉽게도, 동생은 서북쪽의 도시 가비아로 향한 지 오래입니다.”
“…안타깝군요. 아차, 제가 손님들께 배려가 없었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히벨의 특산물로 만든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응접실로 도착하고 잡담을 조금 나누고 나서야 그들은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은 건 2주일 전이었습니다.”
알렌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폈다.
‘분위기가 달라졌군.’
영지의 피해가 크기 때문인가? 아니면, 적어도 영주에 오를 만큼의 무언가는 있다는 건가? 그게 어떤 것이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리라.
“마을을 오가는 상인들이나, 산을 올라타는 약초꾼들이 실종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슬프다는 듯 표정을 흐렸지만, 그게 진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진정 그리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백작가에 구원을 요청했겠지.
“처음에는 몬스터의 습격이거나, 도적 떼가 습격한 줄 알았습니다. 사람 몇이 죽어 나가는 것쯤이야, 흔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알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확인할 겸 질문을 던졌다.
“예, 아니었죠. 처음에 병사를 몇 보내 조사를 시켰을 땐, 생각대로 몬스터의 흔적이 보여 몬스터의 습격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지요. 보고는 계속 올라왔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그제야 저는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병사들을 출진했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이었습니다. 괴물들이 마을까지 습격해 사람을 납치하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한 후, 습격한 괴물의 정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괴물은…. 솔직히 훈련된 병사라면 홀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병사들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도망치는데…. 그게 참.”
말을 타지 않으면 붙잡는 건 불가능할 정도라며 푸념을 내뱉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유도해서 붙잡는 건….”
프란시스카가 함정을 파 두는 건 어떻겠냐고 묻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프란시스카 님. 여기가 어디인지 잊으셨습니까?”
“네? 그거야, 백작령 북부 도시 히벨…. 아.”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여기는 백작령 북부, 미켈란트 산맥 접경 지역에 위치한 도시지요.”
도시 히벨은 미켈란트 산맥을 개척하면서 만들어진 도시였다.
산맥에서 나오는 진귀한 약초와 광석 그리고 가죽을 거래하면서 물류가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
그렇기에 도시 바깥쪽에는 울창한 숲이 가득했다.
숲이 있다는 건, 그곳에 사는 생물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이동하는 것에 여러 불편함이 따랐다.
“이 사태를 주도하는 장본인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 공격대를 소집해 볼 수 있겠지만….”
“그게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평야라면 수월하게 물리칠 수 있겠지만, 장애물이 많고 시야도 제한되는 울창한 숲속에서 도망치는 괴물들을 추적하기란 어려웠다.
설사 시도한다고 해도, 숲속에는 다른 괴물들도 넘쳐났으니 병력만 내버릴 게 뻔한 상황.
벨론 남작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알렌은 조용히 프란시스카와 그의 대화를 경청하다, 순간적으로 스친 위화감을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만약 이 질문에 답이 그의 생각과 다르다면.
“일이 그렇게 진행될 때까지 남작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전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 원인은, 무엇에 있을까.’
그를 바라보는 알렌의 시선이 경멸로 물들었다. 명백하게 책임을 묻는 상황. 프란시스카는 알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히벨 주변에 있는 주민을 대피시킬 시간은 충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험한 지역에 마을이 몇 개나 있다고,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느냐.
그가 알고 있는, 한 번 ‘겪었던’ 그였으면 이 상황에서 뻔뻔한 얼굴을 했을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고, 모든 짐을 떠맡기고.’
사건을 일으킨 흑막, 키메라 술사를 죽이기 전까지 저택에 숨어 있었던 그였으니.
그러나….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 실책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아니었다.
남작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이곳으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수용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괜히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알렌은 그의 변명 아닌 변명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속은 겉과 다르게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알던, 알았던 벨론 남작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겁이나 숨었다는 말을 돌려 말하며, 두꺼운 낯짝을 들이밀고.
끝에는 세금을 빼돌리다 율리우스에게 덜미를 붙잡히지 않았는가.
지금 보면 마치 일부러 무능한 척 연기한 듯한….
알렌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든 말든, 벨론 남작은 아까의 소인배 같은 모습을 지우고는 제법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더는 발을 빼고 있을 수 없겠지요. 말만 하십시오. 최대한의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도시 하나를 다스리는 귀족다운 모습.
‘그렇다면.’
알렌은 마지막으로 그의 의중을 알아보고자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곧바로 맹약의 갱신을 이행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에 답으로 벨론 남작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당연합니다. 저희 히벨은 앞으로도 라인하르트 가문에 맹세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 *
몇 시간에 걸친 회의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벨론 남작은 휘하의 기사와 이야기하라며 내팽개쳤던 회귀 전의 상황과 다르게, 그와 건설적인 계획을 이야기하며 협력을 받아 냈다.
주민을 대피시킬 방안, 도시를 효율적으로 방어할 전략, 사건을 일으킨 원흉의 추적 등.
어차피 키메라 술사의 공방 위치를 알고 있는 알렌에게는 시간 낭비에 가까운 대화였으나, 벨론 남작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무능한 남작을 대신해서 도시를 구한 것은 율리우스였다.’
움직이지 않는 그를 대신해 키메라 술사를 해치운 것도 그였으며.
도시의 세금을 빼돌리려던 그를 징벌한 것도 율리우스였다.
‘만약, 그 모든 것이.’
그의 무능을 변명 삼아 율리우스가 공을 세울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공작이었다면.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나.”
고개를 저었다.
이건 율리우스, 놈이 가비아에서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에 따라 확실히 알 수 있을 터.
어차피 그것을 알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지 않나.
알렌은 최소한의 인원만을 대동한 채 저택을 나섰다.
굳이 히벨에 온 목적도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과거를 매듭짓고, 도움이 될 만한 이를 데려가기 위해서니. 굳이 지금 알아낼 수 없는 것에 목멜 필요는 없었다.
프란시스카는 열흘간의 이동과 잇따른 회의로 인해 쌓은 여독을 푸느라 개인실에서 쉬기를 원했고, 그 때문에 밖으로 나온 것은 그밖에 없었다.
도시는 혼란스러웠다. 아니, 최소한의 질서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병사들로 인해 도시를 통제하고 있다고 해도, 이미 주민 모두가 불안에 떠는 상황.
통제가 쉬울 리 없었다.
주요 상가를 비롯한 주요 구역은 병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외 빈민가에서 가까운 구역은 사건·사고가 가득했다.
벌써 그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확인한 범죄가 다섯 건이 넘었고, 그중 방화나 살인과 같은 중범죄는 두 번이나 있었다.
혼란스러운 알렌이 이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하나의 고민 때문이었다.
‘상대가 어떠한 재능이 있다고 해서, 그 상대의 미래를 마음대로 결정해도 옳은가.’
알렌은 이곳에 오기를 계획했을 때부터 이것 하나만을 생각했다.
그는 미래에 누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전투로 누가 이름을 날릴지 알았다.
그 때문에 그는 그 씨앗이 재능을 미처 드러내기 전에 그가 거두는 것도 가능하며, 피어나기 전에 처리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가?
‘옳지 않다면, 뭐가 더 달라질까.’
이미 놈을 죽이기로 마음먹지 않았나. 뭘 더 주저하며 성인군자처럼 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달랐다.
자신이 앞으로 영입할 이들은 회귀 전 율리우스에게 직접적인 원한을 가진 이들이다. 놈의 무지한 선택으로 피해를 받은 자, 힘의 원리에 따라 외면받은 자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예를 들어…. 그래, 어미를 잃고 여인의 몸으로 재능을 개화시킨 소녀는?
‘이제 와서 망설이는 것도 우습지.’
놈에게 원한을 가진 이를 영입하는 건 좋다.
그들은 복수심, 그 하나로 그와 끝까지 함께할 테니까.
마찬가지로 돈에 따라 움직이는 놈들도 쓰기 좋았다. 그들도 좋은 조건이라면 쓰임 받는 것에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평범하게 살 이들이라면.
알렌이 빠르게 움직여 키메라 술사를 죽여서. 사건이 순조롭게 해결되어, 그렇게 회귀 전과 달리 평화롭게 도시에서 살아갈 이들이라면.
그리하여 전투, 전쟁과 관련 없이 살아갈 사람들이라면.
‘재능이 있다고 끌어들이는 게 정말 옳은가.’
그가 앞으로 걸어갈 일은 다른 이의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렌은 놈의 가까이서 많은 일을 처리할 것이다.
놈을 도와 각지에서 벌어지는 재앙을 처리하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큰 위협이 됐을 음모를 파헤치기도 하겠지. 또, 많은 사람을 구하면서 명성을 쌓게 될 것이다.
놈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자신도 그에 못지않게 높은 위치에 서겠지.
그러나 그게 그 끝은 좋지 않을 수도… 아니 반드시 좋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 그는 놈을 칠 것이기에.
동생을 구하는 방법을 찾든, 찾지 못하든 결국 놈을 죽일 것이기에.
놈의 약점을 노리는 시도가 무의미하게 끝날 수도 있으며, 놈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함정이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는 놈이 자신이 잡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전까지.
그 시기가 빠르다면, 놈의 뒤를 치고도 충분히 무마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10년, 20년이 지나서…. 놈이 세계를 구했다고도 모자를 업적을 쌓은 이후라면.’
그게 어떠한 이유든 알렌은 놈에게 도움을 받은 모든 세력에게 적대를 받을 것이다.
동생을 구하는 방법을 찾더라도, 그게 상관없는 이들에게 무슨 상관이던가.
그들이 보기에 알렌은 동생의 뒤를 찌른 더러운 배신자에 불과할 텐데.
그것도 기적 같은 확률로 동생을 구했다고 해도 마찬가지. 육체는 동생의 것이었지만, 행한 것은 놈이니 적대 받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런 길에, 그의 개입이 없다면 평안히 살아갈 이들을 끌어들이는 게 옳은 일인지 알렌은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죄책감이 없었다면 편했을 것을.’
전투를 본직으로 삼던 이들에게는 부와 명예가 뒤따르겠지만, 가만히 놔둔다면 누군가와 결혼하며 평범한 가정을 꾸리게 될 이라면?
그들은 겪지 않아도 될 피를 뒤집어쓰며 나아가는 게 아닌가.
율리우스, 놈이라면 이런 것 따위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끌어들일 텐데.
자신이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대로를 걷던 중에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저희 엄마가 밖에 있다고요! 그렇게 처 받아먹어 놓고!”
“아니, 꼬마야. 조금 있으면 우리들이 데리고 온다니까?”
“그래그래, 우리도 오늘 높으신 분이 온다는 걸 알았겠냐? 그러니까 좀 닥치고 있어라.”
고개를 돌리니 선술집에서 소녀, 아니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어난 듯한 여인이 앉아 있던 병사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