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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8화 (8/212)

제8화

괴물들의 시체와 썩은 시체 냄새가 가득한 술사의 공방.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흐흑, 흐으윽.”

부글부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약, 널브러진 장기 더미. 묶여 있는 사체들. 그 모든 게 신경을 자극한다.

“왜, 왜 엄마가! 엄마가! 흐으….”

“이게 모두…. 주민들이라고…?”

“알렌 님! 더 이상 살아 있는 영지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알렌 님. 알렌 님?”

우욱.

누구에게서 난 소리지?

구출된 영지민? 아니면 병사들인가? 병사란 놈들이 비위가 이렇게 약하다니….

“우욱….”

아. 나였군.

깨닫자마자 구역질이 치솟는다.

끔찍한 냄새.

흐느끼는 소리와 처참한 현장.

엄마, 엄마를 외치는 누군가의 비명.

이번에는 누구야.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사방을 뒤덮었다.

세상이 빙글거린다.

“알렌 님? 괜찮으시다면….”

닥쳐.

잠시 숨을 고르면 될 것이다.

눈을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그러자.

“…어?”

누군가가 보였다.

“죽여 버릴 거야. 괴물들. 나쁜 새끼들. 개 같은 놈들.”

귀기 어린 섬뜩한 표정과 독기가 가득한 눈.

그녀가 다가왔다. 핏발이 선 눈이 섬뜩하게 나를 응시했다.

“공자님. 괴물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오지 말란 말이다.

놈을 방해하겠다고 저택을 나서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받아 주십시오. 이 세상의 괴물을 모두 죽이겠습니다.”

왜 나섰을까.

그냥 마법 연구나 했어야 했다.

그래. 마법, 그래 마법으로 동생을 구해야 하는데.

삐걱삐걱-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제야 인식한 문을 향해 달렸다.

저택으로 돌아가야 해.

뛰쳐나가는 와중,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스 님. 저를 받아 주십….”

“오, 빨간색….”

더 빠르게 달리자,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놈은 숨겨진 괴상한 능력이 많다.

그러니 정면 승부는 힘들어.

마법, 마법밖에 답이 없었다.

“빨리 저택으…. 어?”

“공자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녀가 보였다.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오래된 책과 잉크 냄새가 가득한 나의 방.

나만의 연구실.

나의 성역.

여긴 안전하다. 술사의 공방과 달리 위험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방을 나서면 저택일 텐데 위험한 것이 있나?

안도감도 잠시,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방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발을 끌고 입구로 향하자, 풍겨 오는, 시체 냄새.

“어?”

짓뭉개진 몸뚱어리가 보였다.

짙은 흑발에, 반짝이는 자색 눈이 꿰매어진, 귀기 어렸던 얼굴.

세상이 흘러내렸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미안하…. 우웁.

구역질이 나왔다.

끔찍한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엄마. 엄마.

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서진 거울 파편 사이로 그녀가 보였다.

꺼져. 나는 살아남아야 해.

으흐흑.

“동생, 동생을 구해야지.”

피투성이 팔을 동여매고, 귓가에 흐느끼는 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

나는 다시 마법서를 펼쳤다.

언제나 그랬듯.

* * *

저택을 나선 지 3일이 지났다.

가는 길은 고대 제국에서부터 쓰인 잘 닦인 도로로 인해 불편함은 없었다.

거기에 백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와 병사 100명이 호위하는 무리를 건드릴 정신 나간 도적들도 없었으니 전반적으로 쾌적하게 이동했다.

새벽녘 시간대의 고요함과 미리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하인들의 부산스러움이 공존하는 시간.

알렌은 경계를 하는 병사의 인사를 받아 주고, 검을 챙겼다.

검을 들고 그가 향한 곳은 근처에 있는 강기슭이었다.

회귀를 했다고 해도, 새삼스럽게 그에게 검의 소질은 없었다. 호신용으로 배운 간단한 동작만 할 수 있을 뿐.

아니, 그것도 익숙지 않으니 돌아다니는 병사를 아무나 붙잡아도 자신보다 실력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검을 든 이유는 간단했다.

‘부족하니까.’

자신은 부족하다.

물론 마법에 입문한 것만으로도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과 비교하면?

‘언제나 그랬지.’

동생이 아닌 김우진, 놈과 비교해도 다를 건 없다.

재능은 모르겠다.

그러나 항상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를 능력과 마법, 거기에 가문의 재산을 끌어모아도 구하지 못하는 비약을 넙죽 먹어 댄다.

소문에 듣기로 위험에 빠져도 기적같이 살아나며, 그 기회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고 했다.

벽에 막힌다면 어디선가 나타난 은거한 늙은이들이 도와주고, 적들이 계략을 세워도 어느 순간 빠져나온다.

‘몰락한 신들의 가호라도 있나?’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이야기 속 영웅과도 같은 행보.

자신도 미래의 정보가 있으니 그의 행적을 얼추 따라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따라 해 봤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모른다.

그러나 놈을 따라잡기 위한 얕은 발버둥은 쳐 봐야 하지 않나.

‘…마침 검과 관련된 그것을 얻어야 되니.’

후웅!

검을 휘둘렀다.

올곧게 내리긋고, 가로로 베었다. 대각선으로 벤 후 몸을 틀며, 다시 반대쪽 대각선으로.

기본기만으로도 충분할까.

검에 힘이 실렸다.

아니,

-부웅!

감정이 실렸다. 검 끝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전날 꾸었던 한낱 악몽 때문에?

알렌은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 히벨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아버지께 보고된 것보다 심각했다.

날마다 사람이 납치당했다.

영지민은 짐을 챙겨 마을에서 벗어나 그나마 안전한 외성 안 도시로 이동했고, 히벨의 영주는 무능력함을 뽐내며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도시로 들어온 영지민 때문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병사들도 악화된 치안 때문에 도시를 나서지 못했다.

알렌은 그곳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동생을 구한다는 미명 아래, 나는….’

-부웅!

팔이 떨렸다.

비틀린 일격. 흐트러진 검격은 공기를 가르지 못한 채 둔중한 파공음을 울렸다. 다시 검을 치켜든다.

‘율리우스가 하던 모든 행동을 방해했다.’

그가 비상식적인 방법을 세우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막아 세웠다.

지금에서야 검은 책을 통해 알게 된 [퀘스트창]을 비롯한 능력으로 작전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

그때 놈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르게 행동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만은 다를 게 없겠지.

많은 주민이 죽었다.

키메라들은 수많은 주민을 죽이고 납치할 테고, 며칠이 지나면 수백의 키메라가 몰려들 것이다.

놈의 말대로.

대비를 하지 못한 도시는 큰 피해를 볼 것이고, 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율리우스는 완벽하게 해결하며 도시의 영웅이 될 것이다.

그게 책 속 나열된 내용의 전부가 될 테지.

‘그래서.’

왜, 잊고 싶은 과거를 보니 기분이 나빠졌나? 멍청하게 저지른 과오 때문에? 후회라도 하고 있나?

“그래.”

모두 맞았다.

감정에 휩쓸려 행동한 자신은 멍청했다. 그 때문에 죽은 인영을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후회한다는 증거겠지.

결국 키메라 공방에서 본 건 무엇이었나.

부모를 잃은 소녀?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 연인을 납치당한 청년?

나는 무엇을 위해서, 왜. 어떤 이유로, 그렇게.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였다지만.’

결국은 원점이다.

그 이유를 방패 삼아 많은 짓을 했다.

‘이번에도 같은 짓을 할 건가?’

검을 휘둘렀다.

마력은 사용하지 않고, 순수 근력으로.

검이 무거웠다. 원래 이렇게 무거웠나? 비트는 관절에 억지로 힘을 싣는다.

‘아니.’

회귀하여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되어 버렸더라도, 그의 잘못이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함에, 라인하르트 백작가의 대공자이자 또,

‘율리우스의 형으로서.’

동생을 구한다는 대의명분 뒤에서 숨고 싶지 않았다.

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동생을 만나게 된다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미 없었던 일이 되었다 한들, 구차하게 회귀 전의 일을 외면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번에 굳이 이곳으로 향한 것도 그런 이유 탓이 아니던가.

스스로 매듭짓기 위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책임지기 위해.

‘동생은, 구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회귀했다고 해도, 놈을 상대할 수 있을지. 아니, 동생을 되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놈을 죽인다고 해서 동생이 돌아올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

‘이제 인정해야지.’

동생은 죽었다.

정확하게는, 동생의 영혼은 율리우스의 몸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 계통 중 하나가 영혼인데, 처음부터 찾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면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당연히 회귀를 자각한 뒤 곧바로 찾아봤었다.

그러나.

‘동생의 영혼은 사라졌다.’

정말 소멸이라도 했다는 듯.

동생의 영혼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몸을 구할 방법을 찾았을 텐데.

마치 이제 그만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라는 듯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

확신은 있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들었던 그 말이.

누군가를 죽이라고 아스라이 울리던 목소리가.

내 동생의 절절한 그 외침이.

동생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러니 동생을 되찾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나.

‘하지만….’

놈이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오르려 한다면.

어떻게 발버둥 치든 놈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더는.’

-타닥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내디딘 걸음은 박자에 맞춘 듯 표홀히 움직였고, 정돈된 마음가짐에 칼끝은 올곧게 나아갔다.

‘더는 망설이지 않겠다.’

동생의 영혼을 찾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희미해 저 천상의 별처럼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면.

놈의 성장이 내가 상정하고 싶지 않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면.

‘놈을 죽여 동생의 넋을 기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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