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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6화 (6/212)

제6화

알렌은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예. 괘씸하게도 율리우스가 아랫것들에게 숙이고 다니니, 자신도 한몫 챙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필시, 누군가 충동질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군요.”

알렌은 짐짓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지만, 속에 든 말은 확실했다.

[네가 무언가 시킨 것이 아니냐.]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동요 없이 미처 몰랐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저런. 요즘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기강이 해이해진 모양이구나. 내 따로 살펴보도록 하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찾는 시늉은 해 보겠다.]

“괜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어머니께 보냈으니, 어머니께서 잘 처리하실 겁니다.”

[네가 행동하기 전에, 이미 어머니께 보내 놨다.]

“그래. 엘리자라면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현명하게 잘 처리하겠지.”

[그래? 하지만 상관없다.]

“아버지께서는 하녀가 그런 짓을 하게 충동질할 만한 불순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곁에 있는 수상한 자들이 관여한 게 아니냐.]

“글쎄, 아마 개인의 일탈이 아닐까 싶구나. 그런 불순한 무리라면, 이미 보고가 올라왔을 테니.”

[그런 불순한 무리는 없다. 모두 그녀 혼자서 한 일이니.]

그렇게 알렌과 아버지가 서로를 떠보며 겉으로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할 때, 마침 시종이 차의 준비가 끝났는지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달칵-

“향기가 꽤 좋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이번에 상단에서 구한 것으로 엘프들이 직접 재배한 잎으로 말린 홍차다.”

아버지가 화제를 돌리자, 더는 추궁할 수 없게 된 알렌은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받았다.

“예, 지금껏 먹어 본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콧속으로 들어오는 진한 향기에 차를 한 모금 음미한 그는, 회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의문을 가졌다. 회귀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도 못했을 종류의 그런 의문을.

‘이 정도 사치를 할 정도로 가문이 부유했던가?’

기사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영지를 지키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요한 법이니. 병사와 기사를 양성하는데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차는?

식사도 단촐하게 하는 마당에, 고급 차를 따로 구입할 정도로 돈이 넘치던가?

‘…그럴 리가 없지.’

생각해 보면 가문이 기울어진다, 돈이 부족하다는 말이 여러 번 나돌았어도 실제로 사용인들의 주급이 밀리거나,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의 수가 줄어든 적은 없었다.

소문만 퍼져 나갔을 뿐.

막상 가문에 살면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껴 본 적이 있나?

‘없다.’

알렌은 이것에 무언가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나중에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

그는 차를 음미하는 척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자세를 고쳤다.

“그래서….”

그리고는 곧바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음?”

“저희에게 시키실 일이 무엇입니까.”

“모처럼의 티타임인데, 조금 더 차를 즐기지 않고.”

“앞으로 할 일이 걱정이라 차 맛을 즐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구나.”

달칵-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아직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율리우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율리우스.”

“….”

“율리우스?”

알렌이 툭툭- 치자 화들짝 놀란 듯 율리우스가 고개를 들었다.

“예, 예!”

“쯧, 제대로 차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니.”

그는 율리우스의 태도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율리우스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대화 도중, 혼자 생각에 빠져 말을 무시한 꼴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너희들에게 시킬 일은 별 게 아니다.”

그는 제대로 말을 해 주겠다는 듯, 이전의 태도와 다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표정을 굳히고, 눈빛에는 서늘한 냉기가 묻어나니, 내뱉는 목소리에는 가주의 위엄이 실려 있었다.

“먼저, 율리우스. 네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강하게 눈을 번뜩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묵직한 압박과도 같은 시선에 놈은 물러나지 않고 시선을 마주쳤다.

“이제 와서 망나니였던 네가 정신을 차렸다, 라….”

머리를 부딪친 것으로 바뀌었다기에는, 너무 어설프고 급진적인 변화가 아니냐? 그러나 가이엘은 그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가주의 면모만을 보일 뿐.

“그래, 라인하르트의 핏줄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아버지는 웃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울까?

알렌은 그가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웃던 가이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러니 너에게 시험을 내리겠다.”

시험이라…. 시험.

알렌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는 시험의 이면에 있을, 불분명한 무언가가 늘 의아했다.

어째서 아버지는.

“며칠 전, 백작령 북부 도시 히벨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다. 근처에 본 적도 없는 괴물이 나타나 영지민을 납치한다고 하더군.”

어떻게 백작령에 닥칠 위험을 미리 알고서 그를 그곳으로 보내는 걸까.

“상황이 꽤 혼란스럽다고 하니,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사건을 해결하거라. 그리고 그곳을 다스리는 벨론 남작에게서 효력이 다해가는 맹약을 갱신받고.”

작은 시험인 줄 알았던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위협이 될 뻔한 사고로 변한다.

그런 사건을 망나니로 소문난 율리우스는 당연하다는 듯 해결한다.

이다음도, 그다음의 일도.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병사는 100명. 기사는 따로 내어주지 않겠다. 너는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고된 일이 될 수도,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떠냐.”

작은 사건을 시원하게 해결하며, 점점 커다란 사건으로 발을 들이는 행보.

“한 번 해 보겠느냐. 율리우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걸까. 따로 정보를 주고받지도 못할 텐데.

알렌은 그게 의문이었다.

그러나 회귀 전에도, 지금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의 기이한 능력처럼 지독히 운이 좋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러니 이번에는.

“저는….”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던 율리우스가 입을 여는 순간.

“해 보도….”

“제가 하겠습니다.”

알렌이 그의 말을 가로채듯이 먼저 내뱉었다.

“…록 하겠, 어?”

“뭐?”

율리우스는 고개를 빠르게 돌리며 당황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가이엘은 순식간에 표정을 가라앉히고는 깊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형님, 그게 무슨….”

알렌은 놈의 표정에 떠오른 여러 감정을 보았다. 당황, 분노, 실망, 의문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

만약 그가 행동한 이유가 고작 놈이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추한 이유라면, 저 감정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지.

전에도 그랬으니.

“알렌, 그렇게 말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겠지?”

아버지는 담담하지만, 무게가 담긴 질문을 건넸다.

알렌은 전생을 떠올렸다.

아무런 대책 없이 놈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막기 위해 저질렀던 행동을.

‘결국, 억지를 부려서 겨우 놈을 따라가는 것을 허락받았지.’

공을 세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방해하고 축소시키기 위해서.

“만약, 같잖은 이유로 그렇게 말한 거라면….”

그럼에도 그는 실패했다.

후회만을 가득 쌓은 채. 율리우스는 알렌의 방해 따위는 가볍게 물리치고 이름을 드높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결국 무엇을 얻었던가.

율리우스를 되돌렸나? 백작가에 도움이 되었나? 혹은 내 자신이 강해지기라도 했나?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관련 없는 수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던가. 귀족으로서 결국 의무를 저버렸는데.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다를 것이다.’ 동생을 구하는 것에 관계없는 이들을 끌어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예, 우선….”

알렌은 그의 말에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우스, 놈이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전에는 이다음의 한 마디로 인해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지만….

“이건 너무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불공정하다?”

“예. 율리우스가 머리를 다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예법을 잊어버리기도 했으며, 아직 말을 타는 방법도 모릅니다.”

정말 이건 아니라는 듯, 형제를 위한다는 얼굴로.

“…형님, 그건.”

“그만.”

중간에 율리우스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잠시 끼어들었으나, 아버지는 그의 말을 멈추고 알렌이 말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물론 그 덕분에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율리우스가 바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가득한 얼굴과 감정을 담았다.

“그렇다고 해서 율리우스를 격전지로 보내는 건 옳지 못합니다.”

“…격전지?”

율리우스가 무의식적으로 말을 따라 했다. 알렌은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격전지. 이 정보는 내가 아는 소식통에게서 받은 것이다. 본 적 없는 괴물 몇 마리? 그게 아니더군. 수십 마리 이상의 괴물 떼가 히벨 부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던데.”

그의 말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어찌, 그런 곳에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아직 제대로 회복하지도 않은 율리우스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

아버지는 짧게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율리우스는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는 듯 알렌을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그에게 떠올랐던 부정적인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가이엘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여유로운 어조로 순순히 그의 지적을 인정했다.

“…보고된 정보에 오차가 있었나 보군. 그래, 네 말이 옳다고 치자꾸나. 그렇다면, 알렌. 너는 저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느냐?”

정보의 출처를 물을 것이라 생각한 알렌은 그런 그의 모습에 미심쩍은 의심이 들었으나, 지금 그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예.”

알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과거로 돌아왔으니 반드시 과거에 지키지 못했던 의무를 다할 것이다.

“예. 다른 지원도 필요 없습니다. 처음 말씀하신 100명, 거기에 맹약의 갱신을 위한 마법사 한 명만 지원해 주신다면 확실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겠습니다.”

귀족으로서 책임과 형으로서 맺은 다짐을 모두.

“그래, 그런 이유에서라면…. 허락하지. 단,”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짧게 고민한 뒤 답했다.

“…맹약의 갱신을 위해 전속 마법사 프린달 님께서 동행할 것이다. 너는 프린달 님께 예의를 잊지 말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는 율리우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율리우스, 그럼 너는 서쪽에 있는 가비아로 가거라.”

“…네?”

“원래 알렌에게 맡기려던 일이었다. 서북쪽에서부터 주민들이 정체불명의 이유로 죽는 일이 많아졌다. 이미 한 마을에만 다섯 넘게 죽는 경우도 있다지.”

‘서쪽이라… 서쪽.’ 무슨 일이었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알렌은 율리우스를 사사건건 방해하기에 급급했으니.

‘…검은 책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군.’

현재 시간보다 미래의 기록은 읽을 수 없었지만, 과거 기록에 그와 관련된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말에 대답한 율리우스는 무언가 있는 듯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병력은 율리우스랑 똑같이 100명. 마법사에 대한 건…. 확답은 못 하겠지만, 알아보도록 하지.”

아버지는 생각이 많은 듯 짧게 이야기하고는 두 명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다들 각자 준비하도록 해라. 출발은 3일 후. 중간까지는 길이 같으니 함께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다.”

“알겠습니다.”

“율리우스, 너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박자 늦은 대답.

‘저기에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는 건가….’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아버지는 남은 업무를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렌과 율리우스도 각자 3일 후에 출발을 준비하기 위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헤어지기 직전, 율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생할 뻔했네요.”

“형제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진짜 형제라면.

“형제라… 네, 그렇지요. 형님. 저희는 형제니.”

형제를 몇 번 중얼거리던 그는, 알렌에게 환하게 웃었다. 알렌은 마주 미소를 지어 주고는 한 걸음 앞서 집무실을 나섰다.

“그럼, 먼저 가겠다.”

“예, 3일 후에 뵙지요. 형님.”

뒤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밝은 목소리와 쾌활한 표정. 그에 대답하는 알렌의 어조도 밝았지만.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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