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정신을 차린 첫날, 그는 회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무려 과거로 돌아왔는데.
그렇기에 처음에는 주마등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노라고.
하지만 주마등이라기에 너무 생생했다.
뒤이어 떠오른 가설은 악마가 개입했다고 생각했다는 것.
가까운 곳에 악마가 있었으니, 놈이 어떠한 행동을 취했다는 게 더 그럴듯했다.
이것이 동화 속에 나오는 악마의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악마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대륙을 지배하는 건 신이 아닌 악마였을 것이다.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이 불안정했기에 폭주를 일으켰다는 가설도 떠올랐으나….
‘이건 너무 현실성이 없나.’
이 가설은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다고 배제할 수는 없었다.
‘배제할 수 없어도,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현시대로 고정된 시간축을 반대로 되돌리는 것.
학계에서는 행성, 아니 우주 전체를 뒤로 되돌리는 것이 아닌 이상 시간을 뒤로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지 오래였다.
앞으로 향하게 만드는 거라면 모를까.
마지막으로 생각한 가설은 간단했다.
죽음.
자신의 죽음이 어떤 트리거를 발동 시켜 이런 상황을 촉진시켰다는 것.
사실 어느 것도 정답이라 할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던 어느 초월자가 시간을 되돌려 준 것일 줄 누가 알겠는가.
결국 마법사의 이성적인 사고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때, 결정적으로 회귀를 인정하게 만든 건 이것이었다.
눈동자가 허공을 향한다.
“책이라….”
그곳에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책 세 권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가 과거로 돌아왔음을, 그가 기억하던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시키는 불가해한 무언가.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 보이게 된 세 권의 책은 기이했다.
어떤 마법, 주술적인 방법으로도 감지하지 못한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인식하지 못한다.
생각만으로 책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세 권의 책 중, 유일하게 새하얀 표지의 책을 향한다.
책은 그의 손으로 날아와 느릿하게 펼쳐졌다.
촤르르-
“──알렌 라인하르트, 향년 27세 사망.”
책의 맨 앞장에서 시작된 첫 문장이었다.
시선을 내리자 이어진 다음 문단은, 짧게 적힌 내용과 달리 조금 길었다.
『알렌 레인하르트,
17살의 과거로 회귀.
회귀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
그다음도 마찬가지.
『…수십 번의 과거 회상과 그를 바탕으로 주변 인물에게 다양한 행위 실험을 통해, 과거로 회귀했다는 결론을 납득.』
그 뒤로도 책은 마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것처럼, 회귀한 직후 그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를 관찰하는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회귀의 원인으로 꼽히는 수십 가지의 가설 중, 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들을 분석하기 시작.
그 후에는 ■■■■과(와) 이어진 책을….』
‘…■■■■라.’ 누구일까, 신? 악마? 아니면 초월적인 무언가? 그것도 아니라면 세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상상의 한계는 무한했고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었으니.
그러나.
-탁
‘상관없지.’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그를 과거로 회귀시켜 준 존재다.
이 모든 결과가 단순히 선의로 베풀었다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것을.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르면 그만.’
새하얀 책을 덮자, 책은 저절로 공중에 떠올라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알렌의 시선이 다른 두 권의 책으로 향했다. 두 권의 책은 앞서 읽었던 새하얀 표지와 다르게 거뭇한 흑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중 한 권은 쇠사슬에 감싸여 책을 펼칠 수조차 없었지만, 나머지 한 권은 아니었다.
“하나는 나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촤르르
책을 펼친다.
책의 첫 장 도입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독자 김우진, 21세.
소설 [환생한 마왕의 독식] 속 엑스트라 ‘율리우스 라인하르트’에 빙의.』
* * *
방에서 나온 알렌은 곧장 놈을 찾았다.
율리우스는 병사들이 쓰는 훈련장에 있었다.
그를 알아보는 건 쉬웠다. 가문 특유의 밝은 청발은 멀리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알렌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훈련장에 들어갈수록 병사들의 기합 소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가 끝내 동생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하는 중이냐.”
훈련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알렌은 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여전히 동생과 같은 얼굴, 그러나 내용물은 누군지 모를 무언가.
“…하하, 형님이 아니십니까. 저는 병사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병사들과 같은 복장으로 그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생각 같아서는 웃는 얼굴을 뭉개 버리며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내가 왜 네 형님이냐고.
너는 누구냐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그러나.
“율리우스.”
하지 않았다.
그는 속에 든 말을 꺼내지 않은 채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놈의 이름,
동생의 이름,
그러나 빼앗긴 이름.
그것을 불렀다.
놈은 분위기가 어색해졌다는 것을 아는지, 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형님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 품위 없는 모습에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간단히 대답했다.
“율리우스, 조금 걷자꾸나.”
“…예?”
욕이라도 실컷 먹을까 예상했던 걸까.
그래, 예전이었으면. 아무것도 모를 때였으면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원래 하던 행동대로 해 봤자 같은 결말을 맞이할 뿐이라는 것을.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를 죽여.』
죽음을 목전에 뒀을 때 들었던 목소리.
‘진짜 동생일지, 환청일지는 몰라도….’
한 번 시도해 보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동생의 몸에서 놈의 의식 혹은 영혼을 지운다고 해서 동생이 되돌아올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현재 나의 능력으로 놈을 상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그렇기에 알렌은 건조했던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다시 물었다.
“전의 모욕에 관해 사과하고 싶군. 잠시 걷지 않겠나?”
동생의 영혼 혹은 의식을 완전히 보호 혹은 되찾을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 일부러 적대감을 형상할 필요는 없으니까.
* * *
율리우스와 그가 훈련장을 빠져나와 향한 곳은 저택의 정원이었다.
훈련장에서 그대로 이야기했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생이었다면….’
이렇게 행동했을 테니까.
동생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기리고 싶었다. 그게 아무 의미 없을지라도.
알렌은 율리우스와 나란히 걸었다.
놈의 발걸음은 짧게 수련한 것 치곤 안정적이었다.
몸 주위로 흘러나온 마력은 그의 몸을 휘감았고, 언제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근육이 긴장하고 있었다.
호흡은?
‘일정하다.’
승산이 있나?
마력의 양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3m 안쪽은 자신의 영역.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충격파로 뇌를 흔든다면? 그 뒤에 곧바로 기습한다면….
“…그, 저기 형님?”
“아.”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까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주위를 둘러봤다.
인적 하나 없는 고요함. 충분히 정원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자 입을 열었다.
“그래, 이쯤이면 괜찮겠지.”
아직 근처에 정원을 가꾸던 하녀들이 몇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대화는 숨길 게 아니라, 퍼져 나가야 할 이야기였으니까.
“그 말 그대로다.”
그는 몇 발자국 더 앞서 걷다, 뒤를 돌아 율리우스와 마주했다.
“너에게 사과하고 싶다.”
“…네?”
놈은 있을 수 없는, 무언가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은 괴상한 표정으로 변한다.
“형님이? 저에게? 그… 사과를?”
“그래.”
담담히 대답하면서도, 당황한 듯 발걸음마저 꼬인 모습에 한 방 먹였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사과?
회귀 전에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놈의 방심을 끌어낼 수 있다면, 한 번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면.
“그러나 말로만 하는 사과는 진실성이 없겠지. 그러니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겉으로 보기에 진실해 보이는 마음으로.
“망나니라 불리던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 믿지 못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과장되지도 않고, 담담하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네가 ‘가족’이라면 믿어 줘야 할 텐데, 평소의 행실만 보고 믿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니, 나를 용서해 주겠느냐.”
놈은 약혼녀가 바람이라도 핀 것을 본 것처럼 입을 벌리며, 있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겠지, 본래 지금의 자신은 이런 말을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서글픈 얼굴을 연기했다.
“역시, 믿기지 않겠지. 지금껏 냉대하던 내가 이렇게 나오는데. 무슨 뜻이 있나, 사실 연기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다 이해한다. 나라도 그럴 테니.”
놈은 정곡이라도 찔렸는지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아직은 미숙하구나.’
어리숙한 반응을 숨기지도 못할 만큼.
지금의 그는 미래의 놈과 달리 아무것도 없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21살의 나이와 무관하게 놈은, 김우진은 미숙했다.
“지금 당장 믿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것만큼 진실하지 못한 것도 없으니. 그저, 지켜봐다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지금 놈의 속이 얼마나 복잡할지, 어떤 생각을 할지 상관없었다.
목적은 사과를 하는 것으로 달성했다.
앞으로의 관계는 천천히 정립하면 될 테니.
“이만 가 보겠다.”
율리우스는 그가 옆으로 스쳐 지나갈 때까지 굳어 있었다.
* * *
굳었던 율리우스가 움직인 것은 알렌이 정원을 떠나고도 5분이 더 지나서였다.
“뭐가 잘못된 거지?”
자신의 행동에 나비 효과가 일어나서 원작의 악역이었던 알렌이 변한 건가?
그런데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알렌은 원작에서 비중이 그렇게 큰 악역은 아니었다.
초반에 아카데미에 살짝 등장했다가 그대로 주인공한테 퇴치당하는 전형적인 삼류 악역.
동생을 회복시키기 위해 악마와 계약했다는 것을 빼…. 아.
“그것 때문인가? 알렌이 변하게 된 계기가? 내가 스스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니까? 아니, 그렇더라도….”
알렌이 악마와 계약한 이유가 동생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형제의 사이는 좋다고 보는 게 옳았다.
두터운 형제애가 아니라면, 발각당하면 바로 척살령이 붙는 악마 계약자가 될 리가 없으니까.
망나니라도 가족에게는 잘했으려나?
율리우스는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럼, 아카데미에 있었던 이유는 뭐지?”
치료법이라도 찾으려고 아카데미에 왔는데, 막상 치료법을 못 찾으니 흑화한 건가?
‘아니, 그래도 좀….’
무언가 강제로 끼워 맞춘 느낌과 위화감에 기분이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원작 주인공이랑 포인트 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 아픈데…. 아, 진짜.”
[가문에서 망나니로 낙인찍힌 당신! 제한 시간 내로 평판을 회복하세요! 제한 시간 : 102 : 33 : 47]
[보상 : 랜덤 영약 뽑기권 10장]
자신에게만 보이는 [상태창]과 [퀘스트 창]을 둘러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내용만을 여전히 보여 줄 뿐.
그렇게 그가 열심히 궁리하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시녀 한 명이 걸어왔다.
그가 망나니가 되었음에도 끝까지 곁을 지켜 주었다는 충직한 시녀인 레이나였다.
덤으로 그의 취향에 맞게 매우 아름답기도 했고.
“공자님. 여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아. 레이나구나.”
“주변 하인들에게 듣기로 도련님이 알렌 공자님과 정원으로 가셨다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율리우스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
“음, 그게…. 형님이 나에게 사과를 했거든?”
“네? 알렌 님이요?”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율리우스는 안도했다.
자신만 이상하게 느낀 게 아니구나.
“그래, 형님이 여기로 데려와서 사과를 하셨어. 고개까지 숙여서 믿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음….”
그의 말에 레이나는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했다.
“알렌 님이 그렇게까지 하셨으면…. 정말 사과하신 것이겠네요.”
“정말? 왜?”
“알렌 공자님께서는 자존심이 강하셔서, 정말 필요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절대 고개를 숙이시지 않으시거든요. 그런데 고개를 숙이셨다는 건….”
“진심이란 말이구나.”
율리우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벌써부터 원작이 이렇게 틀어지나?
“그리고, 그….”
그녀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눈치를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억나시지 않겠지만. 도련님이랑 알렌 공자님은 어렸을 적에 사이가 좋았거든요. 그걸 생각해 보면 도련님의 행동에 생각이 바뀌신 게 아닐까 하고….”
“그런가…?”
그녀의 말에 율리우스는 애매모호한 미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원작과 관련된 주연도 아닌 한낱 엑스트라 악역의 과거를 다 알지는 못했으니.
“어쨌거나 사과하셨다면 다행인 일이네요. 도련님도 기억을 잃어 안타깝지만… 좋은 쪽으로 바뀌셨고, 공자님도 도련님께 먼저 사과하셨으니.”
그녀는 다행스럽다는 듯 미소 짓더니, 자연스럽게 율리우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저녁 전까지는 돌아올 거지?”
“예.”
레이나가 떠나가자 찜찜한 마음을 가졌던 율리우스도 복잡해지는 생각에 이제 다 포기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조연도 못 되는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한데 뭐.”
율리우스는 이내 홀가분한 미소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퀘스트를 무사히 끝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