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알렌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정면의 아버지를 응시했다.
“동생이 이상하단 걸 아시지 않습니까!”
쾅!
그러나 그의 행동은, 눈에 담긴 감정과 다르게 반대로 뜨거웠다.
“가문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전을 사용하고! 어린아이라도 알 법한 예법을 잊어버리고! 기억을 잃었다는 주제에 행동은 편향되어 있고!”
그는 전의 행동을 연기하며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누구보다 아버지가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같은 날짜, 같은 행동.
“알렌, 너는 알렌 라인하르트냐, 나의 아들 알렌이냐?”
또, 같은 질문.
이 질문을 하는 아버지는 여전히 이질적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아들 알렌도 저이며, 알렌 라인하르트도 접니다.”
“그렇지.”
아버지는 그 말에 냉소를 지었다.
지금의 아버지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과 다른 모습.
군데군데 모습을 보이던 흰머리도 없었고,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날의 아버지와 같았다.
냉정했던 표정도, 가라앉은 눈도, 그리고….
“그렇다면 말이다. 둘 모두를 구분할 수 없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않느냐?”
같은 대답도.
“그게 무슨….”
알렌은 그가 뻔히 그렇게 답하리라는 것을 앎에도, 전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죽기 전까지 아버지는 바뀌지 않았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말이다.”
그의 목소리가 짙게 깔리며 옅은 웃음기를 띄었다.
뭐가 우스운 것일까.
아들이 바뀌었음에도 침묵하는 자신이? 누군지 모를 이를 통해 권력을 얻을 것이라는 미래가?
그가 아니기에 알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문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설령 그게….”
가문의 부흥? 하하. 알렌의 음영진 얼굴에 냉소가 지어졌다.
“…악마가 아들의 몸을 빼앗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의 아버지는 진실로 웃고 있는 걸까.
굳이 보려 한다면 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것이….”
단지, 쥐어 짜내듯 한 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도 말입니까.”
아버지는 어딘가, 어디서부터 비틀린 것일지 모른 채 짧게 답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처음 신념과 달리, 하는 행동은 반대가 아니냐고.
가족을 위해 가문을 부흥시키려던 것이, 가문을 부흥시키기 위해 가족을 희생하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동생은, 진짜 가족이 아니었냐고.
그러나,
“…알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야기해 봤자, 평행선에 불과할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럼, 제 행동에도 간섭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당신에겐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니, 보여 줄 것이다.
“….”
아버지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철컥
알렌은 거친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난폭한 몸짓과 다르게 그의 눈을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과거로 돌아온 지도 벌써 2주일가량 되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이 현상을 믿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까.
그렇기에 처음에는 조금씩 기억하던 과거의 행동과 살짝 다르게 행동하며, 과거와 현재의 다른 점을 분석했다. 그 결과….
“회귀라….”
자신이 느끼기에도 아직 어색한, 약간 높고 미성숙한 목소리.
알렌은 그 자신도 믿을 수 없었지만,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과거의 행동을 재연하더라도 기억하던 결과와 조금씩 달라진다.
말투, 행동, 표정, 시간 그 모든 것이 본래와 비틀리는데, 언제까지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짓도 이제는, 끝이었다.
“아버지는 그대로구나.”
아버지란 단어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가슴을 맴돌았다.
혹시나 싶어 오늘의 날짜를 기다렸고, 그때와 같이 행동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그가 알던 아버지였다.
찬란했던 가문의 부흥을 원하던, 가족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던, 끝까지 자식을 저버렸던,
아버지.
“뭘 기대한 건지….”
그는 짧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돌렸다.
언제나 시간은 부족했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다.
거기에 이제 거리낄 것도 사라졌으니, 행동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 * *
라인하르트 가문에는 하나의 소문이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었다.
“얘, 들었니? 망나니 도련님이 달라지셨다는데…?”
“지금까지 망나니 연기를 하셨던….”
하녀들 사이에도.
“도련님이 드디어 제정신을….”
“듣자니 술도 끊었….”
하인들 사이에도.
“참으로 다행…, 가주님과 마님께서도 걱정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신 것….”
몇 없는 시종과 시녀 사이에도.
저택을 거닐며 들려오는 소리에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저택의 사람들은 도련님이 달라졌노라, 옛날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노라 기뻐한다.
그것이 진짜 그가 아님에도.
‘한 번 느꼈던 감정이지만….’
언제나 느껴도 짜증 나는구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오히려 몇 년간 폭언을 들으며, 나날이 심해지는 동생의 망나니짓을 견디던 그들에게는 충분히 기뻐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동생은 가족에게만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
어렸을 적부터 커 가던 그를 돌보던 게 그들인데, 정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조금도?
“그 도련님이….”
-멈칫
복도를 걷던 중 하인들이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들은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그를 보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알렌은 곧바로 모퉁이를 돌고, 인기척을 줄였다.
그의 심장 어림에서 하나의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웅웅-
자신에게만 들릴 작은 진동음이 가시자, 감지력이 활성화되며 자신으로부터 3m 내의 사물이 정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범위 안에서는 작은 소리마저 코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들을 수 있었다.
“공자님 가셨지?”
“발소리 안 들리는 것 보니까 가신 것 같은데?”
조용히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래서 아까 한 이야기 다시 해 봐, 도련님이 뭐?”
“…그, 도련님이 조금, 다른 사람 같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옆에 있던 다른 하인의 재촉에, 말을 꺼낸 하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갑자기 기억을 잃으셨다 해도, 사람의 느낌이란 게 있잖아. 그, 뭐라고 해야 되지? 기질?”
“어려운 말은 됐으니까, 그래서.”
“너도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일했으니 알잖아. 옛날 도련님 모습이 어땠는지. 우리끼리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참 좋은 분이셨지. 착하고, 예의 바르고….”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그 모습을 연기하는 것 같은? 진짜 도련님이 아니라 뭔가에 씐 것 같….”
“야, 야. 너 미쳤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하인이 식겁하며, 말을 막았다.
“아니, 그래도….”
말하던 하인이 항변했지만, 듣고 있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원래 욕먹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심심하면 맞고, 항상 긴장하면서 지나가고. 어?”
“그건… 아니지.”
“그러면 조용히 입 다물고, 이제야 원래 모습을 되찾으셨다 생각해. 사실 뭔가 이상하다는 것도 네 생각이고, 가주님께서 아들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겼는데 모르시겠냐.”
“그것도 그렇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하인은, 너무 오래 이야기했다 생각했는지 곧장 자리를 떠났다.
알렌은 하인들이 흩어져 사라진 후에도 조용히 벽에 기대고 있었다.
“달라졌다, 라….”
하하.
입에서 작은 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들은 그저 믿고 싶을 뿐이다.
지금까지 망나니짓하던 도련님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본래의 성격을 되찾은 것이라고. 달라진 이유는 그뿐이라고.
전으로 돌아가기 싫으니, 다른 가능성을 외면해 버린 것이다.
알렌은 저런 이들에게 벌을 주거나, 따로 처벌을 가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조금.
“….”
입 안이 씁쓸했다.
* * *
멍하게 발걸음을 옮기다 닿은 곳은 저택 내부, 기사들 전용의 연무장으로 사용되는 장소였다.
주위에는 입구에서부터 하인, 하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는 하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이렇게… 힉!”
그가 다가가자 이야기하고 있던 그들의 표정이 변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일하는 시간 도중에 모여 있으니, 노닥거리는 모습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알렌은 안심하라는 듯 옅게 웃으며 말했다.
“벌을 줄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거라.”
그러나 그렇게 말했음에도 그녀의 표정은 조금 나아졌을 뿐 완전히 안심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윗사람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중에 벌을 줄지 어떻게 아는가.
그렇기에 그는 그들의 행동을 굳이 바로잡지 않고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이기에 다들 이렇게 모여 있는 거지?”
“그… 율리우스 도련님께서 수습 기사님과 대련을 하신다고 해서….”
“율리우스가? 기사와?”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
그녀의 대답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한 그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에게 답했다.
“갑자기 동생이 기사와 대련을 한다는데 궁금할 수도 있겠지. 대련을 보는 것까진 허가할 테니, 그 후에는 다들 자신의 업무로 돌아가도록. 알겠나?”
“예, 예. 알겠습니다.”
알렌은 그녀의 대답을 반쯤 흘리며,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에서는 아직 대련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후끈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도련님이 달라졌다느니, 힘을 숨기고 있었다느니, 소문만 무성하던 차. 그런데 그걸 직접 확인해 볼 기회가 생겼으니 관심을 가질 만했다.
연무장 위에는 단 두 명만이 거리를 두고 소리쳤다.
“도련님. 만약 제가 승리한다면, 기사를 모욕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십시오.”
“그러지 뭐, 그럼 내가 이기면 너는 내 수하다?”
한쪽은 밝은 청발의 통통한 소년, 다른 한쪽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한 수습 기사.
수습 기사는 진지한 기색으로 소리쳤지만, 통통한 소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은 율리우스의 겉으로 흐르는 마력에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새삼스럽지만….’
성장 속도가 빠르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을 격차를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단시간에 저 정도의 성장을 이뤄 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성장.
마치 혼자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수습 기사 쪽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렇기에 겁도 없이 율리우스에게 대련을 걸었겠지.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
기사단장을 포함한 다른 기사들은 팔짱을 낀 채, 굳은 안색으로 연무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결과가 어떨지 예상이 갔으니까.
몸을 돌렸다.
어떻게 진행될지 아는데 굳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 수습 기사는 나중에 동생의 추종자가 되던가?’
기사 대부분이 율리우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따르는 것에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저 수습 기사는 아직 말단이라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율리우스는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대련에서 이길 테고….’
승리했음에도 그에게 사과를 할 것이다.
하인과 하녀는 도련님이 진짜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칭송하고, 기사들은 새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수습 기사는 억지로 따르다 점차 감화될 테지.
아버지는 시험이란 명목으로 무언가를 시키고.
놈은 그걸 해결하고, 명성을 높이고. 다시 그것이 반복되고.
“조금 있으면 그 날이던가.”
놈이 이름을 날리게 되는 첫 번째 사건.
어떻게 행동할지는 이미 정했다.
남은 건 목적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뿐.
-와아아!
알렌은 뒤늦게 들려오는 환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이건 모두가 동의하는 연극이었다.
절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