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65화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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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하하. 반가워요.”
에리카는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으음~ 기억을 건들긴 했는데 역시 완전히 잠그는 건 무리인가…….”
“역시 에리카. 네 짓이었군.”
설마 했지만 정말이었던가.
나는 언제나 듣던 환청인 줄 알았다.
내 환청은 전부 내가 증오하는 것, 공포라고 인식하는 것들로 나오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환경상 그녀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몇 가지 질문을 하지. 너는 왜 내 기억을 잠근 거지?”
“하하. 말투가 귀여운 말투랑 굉장히 상반되네요~. 뭐, 이것도 나름 매력이려나…….”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대답해라.”
나는 다시 강하게 그녀를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매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영혼이 더럽혀졌으니까.”
“더럽혀져?”
나는 ‘그 계기’ 이후로 에리카와는 최대한 대화를 피했기에 자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에리카가 항상 나와 대화할 때 언급하던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영혼’.
‘더럽혀졌다라…….’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언제나 고고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등 찬양하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나를 질타하듯 말한다니.
“현우 씨는 지구로 오자마자 평화에 찌들어버렸어요.”
“지구? 여기가 지구라는 말인가?”
“으음? 아직 여기까지 기억이 해방된 건 아닌 모양이네요. 네 맞아요. 여기는 당신의 고향인 지구에요.”
나는 에리카의 말을 듣고 나서야 현재 내가 있는 이곳이 지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지구로 돌아왔다니.
‘하지만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다.’
영문 모를 인간관계, 갑자기 변한 몸, 게다가 이 미친년까지 지구로 따라왔다.
전자의 2개의 문제는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후자는 문제다.
‘힘도 전부 잃은 상황에서 저년이 따라오다니. 최악이다.’
저 미친년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예측이 불가하다.
아니, 내 기억을 건들었으니 이미 일을 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지구의 기억을 잠그고 판타즈마의 기억을 되살리니…… 다시 이리도 아름다운 영혼으로 돌아왔네요…….”
언제나 영문 모를 소리.
판타즈마에서 에리카는 꼭꼭 숨겨오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에리카는 영혼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영혼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녀 말대로라면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는 어째서인지 나에게만 그것을 털어내었고 다른 존재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했다.
“제가 현우 씨를 멀리서 보고 있는데…… 이 얼마나 나약한 모습인지.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알던 현우 씨가 사라지니…….”
에리카는 자신을 손가락을 천천히 입술에 대며 혀로 한 번 손가락을 훑으며 말했다.
“죽여서 저와 하나로 만들어버리고 싶어지더라고요…….”
“…….”
저 모습으로 판타즈마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충격적인 모습이다.
결국 내가 죽기 전까지도 성녀라 불린 여자의 모습의 실체다.
“하지만, 황금을 낳는 닭의 배를 갈라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잠깐의 행복을 위해 현우 씨를 죽여버린다니……. 저는 언제나 곁에서 살아 숨 쉬는 현우 씨를 보고 싶단 말이죠.”
나는 잠시 침묵하고는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지구까지 따라왔지?”
“하하. 신의 시련을 이겨내고 현우 씨를 보러 왔죠. 물론 신의 시련을 이겨낸 만큼 힘도 가지고 올 수 있었고…….”
에리카는 그리 말하며 손에서 빛을 약하게 발산시켰다.
그냥 보기에는 빛이지만 나는 저 빛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신성력인가? 아니, 신력도 약간 섞여 있군.”
“와! 역시 현우 씨. 신력까지 간파하다니! 지구의 현우 씨는 절대 보일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이게 뭐라고 그리 호들갑인지.
“뭐, 물론 이 지구에 개입하고 있는 신 때문에 힘이 대부분 봉인 당했지만요. 설마 개념(?)을 주관하는 신이 지구를 보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개념(?)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흐름을 보아하니 신 중에서도 강한 힘을 지닌 신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 결국 시간이 되어버릴 것 같아요…….”
“시간? 혹시 지구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있는 건가?”
내심 기대하며 묻자 그녀는 밝은 얼굴을 웃으며 말했다.
“아뇨! 애초에 저는 이제 어엿한 지구의 인간이니까요.”
“……그런가.”
“제가 말한 시간이라는 건…… 당신의 기억을 제한 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파칭───!
자물쇠가 열리는 듯한 청량한 쇠의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모든 갖갖의 기억들이 몰려왔다.
“끄으으윽! 허억……. 허억…….”
갑작스레 뇌 속으로 쏠리는 기억들이 강렬한 두통을 주었지만 간신히 버텨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품고 있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 시발.”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눈앞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리카를 보았다.
“장난하냐?”
“어머.”
내 한 마디에 에리카는 놀랐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말투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네요.”
내 말투가 갑작스레 바뀌었던 탓이다.
“나도 판타즈마의 기억이 이렇게까지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
그 원인은 바로 ‘기억’에 있었다.
“지구의 기억이 아니라요?”
“말은 똑바로 해. 내 말투는 원래 평범했어. 딱히 무뚝뚝하지도 않았고.”
확실히 기억한다.
게다가 판타즈마 초기에도 말투가 지금의 나와 비슷했다.
말수가 적어지고 무뚝뚝하며, 남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는 지금의 말투는 판타즈마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역시 지금의 현우 씨는 귀엽지 않아요.”
“보통은 이전의 내 말투를 귀엽지 않다고 하지 않나?”
에리카는 내 말에 볼을 조금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영혼이 귀엽지 않아요…….”
그러면서 얘기해도 전혀 귀엽지 않단다.
나는 오히려 이런 모습의 그녀를 볼 때마다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
“것보다. 내 기억을 건든 이유는?”
아마 내가 예상하기로는 내 마음의 틈을 이용한 세뇌의 일종이겠지.
그건 그녀의 특기니까.
‘전혀 성녀 같지 않은 년.’
온 국민과 여신교 조차도 인정한 최고의 성녀.
하지만 그녀는 결코 성녀가 아니다.
판타즈마에서 나만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녀의 비밀은 바로.
세뇌를 통해서 자신을 떠받들게 하고 여신교의 신도조차 자신을 성녀로 인정하도록 호감도를 극도로 높였다.
‘여신도 간파하지 못한…… 아니, 간파했는지 못 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여신은 해주하지 못하는 세뇌.’
애초에 다른 세계의 능력이니까.
마력이나 그와 비슷한 기(?)가 아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른 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영혼(??)’이라고 칭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틈새를 이용해서 머릿속을 건드는 능력. 그 더러운 능력을 나한테 쓴 이유를 대라고.”
에리카는 빵빵하게 부풀렸던 볼을 풀고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현우 씨의 영혼이……. 너무 나약해졌으니까요. 그러니까 저한테 ‘영혼의 간섭’을 당한거에요. 예전에는 제 능력에 당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였는데…….”
“참네. 지금 칼을 던졌는데 칼을 피하지 못하고 맞은 사람이 잘못이다?”
에리카는 내 비유에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네? 당연히 칼을 던진 사람이 잘못이죠.”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내가 방금 한 말이라고!”
내가 노려보았지만, 에리카는 진짜로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또라이년.”
“하하. 그 말버릇은 변함이 없네요.”
“말버릇이 아니라 너 말하는 거다. 이 또라이년아.”
에리카는 내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무튼 이제 건들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
“후후. 그거 알아요? 현우 씨가 용서하고 저를 놓아주려는 건 처음이에요.”
“그게 뭐.”
에리카는 뭐가 그리 재밌는데 후후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는 건. 현우 씨는 지금 저를 놓아주려는 게 아니라…… 놓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나는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검도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몸도 허약하고. 마력도 쓰지 못하는 몸이네요? 뭐 쓸 수 있는 몸이라고 해도 이 세계에는 마나가 없으니…….”
전부 하나같이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는 팩트에 가슴을 움켜 쥐었다.
“뭐. 상관없겠죠. 지금은 저도 건들기 힘든 상태고.”
“뭐?”
나는 의외의 반응에 반문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지금 현우 씨한테 무슨 짓을 하면 곧 범인을 수색하겠죠. 게다가 평범한 일반인도 아니고, 얼굴이 알려진 유명 스트리머라면 행방불명도 금방 밝혀지겠죠.”
“…….”
“이 세계는 판타즈마와는 다르게 제가 살던 세상과 비슷하니까요. CCTV에다가 과학수사 기술이 뛰어나기까지……. 저도 이 세계에서 21년을 살았으니까 잘 알고 있어요.”
나는 순간 그녀의 마지막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21년이라고……?”
“으음……. 현우 씨 반응을 보니까 알겠네요. 역시 환생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나?”
“자, 잠깐! 환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나를 환생시켜준 건 판타즈마의 여신이 아니었나?”
나는 분명히 ‘그녀’가 나를 환생시켜주었을 그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일에 에리카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글쎄요. 어떨 것 같나요?”
“너! 말을 똑바로──”
말을 모호하게 하는 에리카의 말에 짜증을 내며 말을 하려는 순간.
“──현아야?”
“……?”
뒤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현우 오빠?”
“어머. 현우 씨의 오빠분인가요?”
현우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