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29화그녀는 환생한다.
* * *
#29화
“그러면 오늘은 스크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
나는 정삼의 말에 그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삼 오빠. 그거 진심이에요?”
“응.”
지은이 정삼에게 물었으나 정삼은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 처럼.
“저…. 아직 제대로 연습도 안 했는데 저도 해도 되는 건가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이들은 이전부터 착실히 연계를 연습해 온 팀이다.
‘누가 빠져서 내가 낄 틈이 생겼던 거니까….’
사정은 이미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이미 착실히 준비 중이었던 팀이라는 것도.
“안 그래도 갑자기 끼어든 사람인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서….”
“성아야…. 으이구 귀여운 것!”
나는 나를 껴안으려는 지은의 팔을 피해내고는 정삼을 바라보았다.
“뭐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는 생각했어.”
“정삼형. 스크림을 할거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연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블렛형은…. 표정을 보니까 이미 들은 것 같긴 한데 저는 이해가 안 되거든요.”
감튀가 정삼에게 말했다.
감튀의 말에 블렛의 표정을 슬쩍 보았는데 확실히 딱히 당황스럽지도 않은 듯 담담했다.
“하하. 일단 내말 좀 끝까지 들어봐.”
“…….”
정삼이 말하자 다른 이들은 정삼을 향해 주목했다.
“비록 몇판 뿐이지만 내가 검성이랑 이미 게임을 한 건 알고 있을거야.”
“그렇죠?”
“그런데 형. 그것 같고 판단이 되는 거야?
정삼은 씨익 웃으면서 홀로그램을 띄워서 보여주었다.
“이건 전에 나랑 검성이 한 게임 전적들이야.”
처음에는 몰랐는데 듣고 보니 전부 다 나와 정삼이 했던 게임들 뿐 이었다.
“이. 이건….”
“형. 이거 진짜에요?”
“그리고 이건 검성의 이틀간 솔랭 전적.”
감튀와 지은은 뭔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전적을 계속 확인했다.
“왜, 왜 그러는 거에요?”
뭔데 나만 빼고 그리 놀라는 건데.
“아니 이걸 보고 안 놀랄 수가 있어?”
“이건 만 보면 성아의 티어는 이곳보다 훨씬 높다고 봐야겠네.”
나는 그들의 말에 전적들을 확인해보았다.
[검성(방랑무사)21/0/4]
[검성(트렌)13/0/5]
[검성(방랑무사)19/0/1]
[검성(방랑무사)25/0/3]
대충 전부다 이런 식의 전적들 뿐이었다.
“지금 배치를 본 결과가 골드2인거야?”
감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네에……. 뭐.”
“이걸 골드를 준다니 진짜 게임 상태 미쳐 돌아가네.”
정삼은 다른 이들의 반응을 전부 확인한 다음 말했다.
“검성아. 너 실력은 지금 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뛰어나.”
“…네.”
내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아무래도 진짜 전장에서 십여 년은 굴러다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일단 전투센스 그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뛰어나.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인정할만하고.”
“내가 게임하는 걸 전부 봤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블렛이 정삼의 말에 동의와 공감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 오빠 말대로라면. 팀플레이가 없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은 가졌으니 나머지는 실전에서 기르자?”
“고거쥐!”
진심인가?
그런 표정으로 정삼을 바라보았으나 정삼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믿고 있었지?”
믿고 있었지는 개뿔,
갑작스러운 전개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10분 후에 스크림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준비하자.”
“형. 그러면 어느 팀이랑 하는 거에요?”
감튀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스크림이라고는 했는데. 그냥 일반인 팀이랑 게임하자는 뜻이야.”
“그래요?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지은이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정삼은 웃으며 말했다.
“일반인 팀들이라고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건 직접 보면 알거야.”
지은은 ‘일반인들끼리 잠깐 모인 것 같고 얼마나 강하겠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정삼의 말을 듣고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이곳은 차원 어딘가에 있는 시련의 신전.
“허억…. 허억….”
금발의 여성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거친 돌로 되어있는 벽에 몸을 기대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현…. 현…우 씨….”
그녀는 몸 곳곳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 그녀를 도울 사람은 없었다.
“히, 힐링….”
그녀는 자그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능을 발동시켰으나 이능은 그녀의 목소리에 답해주지 않았다.
“결국 힘을 다한 것인가요. 이미 무리를 하고 있긴 했습니다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그저 상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시련의 여신이여! 모든 시련을 마쳤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자 그녀 앞에 수많은 빛의 구가 몰리더니 한 사람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설마 시련을 정말로 해낼 줄이야…. 놀랍군요.
그 사람의 형상을 갖춘 빛이 입을 열자 고운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미성의 주인이 바로 시련의 여신이었다.
“설마 이능만 가지고 연약한 몸뚱이를 가진 저로서는 시련을 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네. 당신은 그저 우연과 기적의 산물로 태어나게 된 인간일 뿐입니다. 직접 이룬 건 무엇 하나 없습니다.
금발의 여성은 여신의 말에 분노하며 소리쳤다.
“제가 스스로 이룬 것이 없다고요? 헛소리는 작작하세요! 이 능력은 대단하지만 결국 제 다른 것을 갉아먹는 기생충일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공생관계죠.
“공생 관계? 공생 관계는 서로가 좋다고 느낄 때만 공생 관계죠. 아무리 이 능력이 뛰어나도. 제 육체를 갉아먹는데…. 아무리 힘들게 수련해도 제 몸은 약할 뿐입니다.”
기적의 대가입니다.
“대가? 그렇다면 그것도 결국에는 제가 이 이능의 힘의 대가도 결국에는 제가 이룬 것이죠.”
…….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잠시 침묵이 흐르자 금발의 여성이 먼저 말했다.
“그럼 시련을 넘은 보상을 받겠습니다.”
그렇겠습니까? 무엇을 원하죠? 이능의 힘을 쓰는 대가를 없애는 것? 아니면 새로운 이능을 원하시는 건가요? 혹은 죽은 자의 부활?
“쿨럭!…. 커헉!”
금발의 여성은 결국 몸의 힘이 다하기 시작했는지 피를 토해냈다.
육체의 한계가 다했군요. 서두르십시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제 소원은….”
소원은?
“그가 있는 곳으로 환생이라도 시켜주세요.”
금발의 여성이 말하자 여신은 놀란 듯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지, 진심으로 말하시는 겁니까? 시련을 끝낸 소원이 겨우 환생이라고요?
“겨우가 아닙니다. 제가 그토록 원했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못한 것이지요.”
당신 정도의 업보라면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을겁니다. 침묵의 맹세만 지킨 다면요.
“제가 원하는 조건은 제가 찾는 사람의 차원 및 행성으로 환생시켜주는 것. 그것 뿐입니다.”
결국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초월자가 될 수 있는 힘을 버리겠다는 뜻입니까?
“예.”
확실히 환생할 곳을 특정 짓는 것은 꽤나 힘든 것이죠.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만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영혼과 관계가 없었던 곳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금발의 여성은 여신을 계속 쳐다보았다.
하지만 시련을 통과한 자에게 한해서라면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는 일이죠. 시련을 통과한 보상으로 겨우 환생을 시켜주는 건 이례 없는 일입니다만…. 못해드릴 건 없죠.
금발의 여성은 여신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니까 빨리 해달라고요….”
금발의 여성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 기대던 그녀의 몸은 점점 벽을 타며 내려가더니 결국 쓰러졌다.
“빠, 빨리….”
만약에 소원을 이루기 전에 죽는다면 그녀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서 시련의 여신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련을 통과한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선언하자 주위에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빛은 모이고 모여서 마법진을 만들어내고 성을 이루고 첨탐을 세웠다.
판타즈마의 마왕을 쓰러트리고 수억명의 사람을 구원하고 여러 차원을 건너며 저에게 온 도전자여.
시련의 여신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바닥이 진동했다.
특수한 이능과 경험, 지식으로 시련을 이겨냈으니 저 시련의 여신의 이름으로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바닥의 진동이 멈추었다.
도전자 ‘에리카 럭스’.
“……예.”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진을 만들고 성을 이루고 첨탑을 세웠던 빛들이 에리카를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 잠깐 강하게 반짝거리더니 빛은 물론이고 에리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계의 성녀여 부디 당신에게 빛의 인도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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