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33)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은 낳고, 편리함을 느낀 인간의 십 중 구 할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호텔 예약 기능이 추가된 ‘유니버셜 트립’을 시작으로, 온라인에서 ‘유니버셜 톡’과 ‘유니버셜 뱅크’의 연계하여 핸드폰으로 간단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은행 계좌와 연동하기 위해선 유니버셜 뱅크의 계좌가 꼭 필요한 구조로 시스템을 구성했고, 스마트폰 안에서 결제까지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리함이 입소문이 나 미국, 일본, 한국 등에서 유니버셜 뱅크 계좌를 새롭게 개설하는 고객이 급증했다.
그렇잖아도 상승기류를 타는 중이었는데, ‘아마조네’가 여기에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역시 대기업은 대기업이야. 파장이 다르네.’
미국 온라인 쇼핑몰의 절대강자 ‘아마조네’가 유니버셜 히치에서 내놓은 결제 시스템을 활용하니, 그 밑에 난립하던 온라인 쇼핑몰들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유니버셜 뱅크가 가파른 속도로 신규 계좌 개설을 이어 가자 미국의 거대 은행들은 빠르게 대응했다. 정확히는 처조부인 찰스를 통해 압박이 들어왔다.
-JB 로건 체스트 은행, BA(Bank America), 다운타운 뱅크, 골드만식스, 로건 스탠리……가 유니버셜 히치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게.
개발자를 갈아 넣는다 쳐도 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유니버셜 뱅크는 더욱더 성장하리라. 게다가 개발을 완료해도 문제다. 급하게 개발한 것에 버그가 없을 리 만무했고,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힘든 건 금융권이라고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있는 걸 가져다 사용하는 거였고, 정호준의 처조부인 찰스는 그렇게 정호준에게 협조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로슬러, 로건, 로쉴드 가문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기관들이 정호준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찰스의 요청은 사뭇 정중했으나.
‘말만 요청이지, 이건 그냥 통보인데?’
통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요청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찰스의 요청에 거절의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아니, 않았다는 말보다는 못 했다는 말이 더 어울리리라.
정호준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금 이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건, 지금껏 누려 왔던 비호를 내려놓는다는 말과 다름없지.’
정호준이 오리하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도움을 주고,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하며, 대통령이 된 후에도 도움을 줬다지만, 백악관의 주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게 확실한 거래를 한다는 게 사실 말아 안 되는 소리다.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더군다나 정호준은 미국에서 흑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황인종이다. 오리하가 그냥 모른 척 손절했어도 당시 정호준이 할 수 있는 건 원망이 전부였다.
오리하나 오리하 정부 구성원으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고, 가진 것이 많아짐에도 견제를 당하지 않는 건 모두 로슬러의 휘광 덕택이었다. 정호준에게 적이 없는 것 또한 로슬러 가문 덕이었다.
이에 대해 정호준이 처신을 잘한 거지, 무슨 로슬러 가문의 덕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뭔가 이유가 필요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데는 큰 이유가 필요치 않다. 2007년 모기지론 디폴트로 미국 경기가 힘들 때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득권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인간이란 남 잘되는 꼴을 보고 배 아파하는(질투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잃는 제로섬의 성향을 띤 금융업계에서 줄곧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건 누군가의 것을 빼앗았다는 의미고, 누군가가 얻었을 파이(이득)를 앗아간 거다. 그럼에도 적의를 갖고 덤벼드는 이가 없었다.
20세기에 얻은 교훈으로 가면을 쓰고 수면 밑에서 움직이긴 하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이어 온 로슬러의 이름값과 영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정호준이 지금껏 써 온 성공 신화와 연이은 성공으로 축적한 막대한 자산부터가 경각심의 대상이 되어 적의를 드러내지 않지만 말이다.
‘지분을 10% 이상 모은 것을 두고 별말 없는 것도 미국이나 처가를 뒷배로 둔 덕이 크지.’
주식을 가진 이를 주주라 칭한다. 주주를 분류하는 기준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정호준은 ‘수동적인 주주’와 ‘행동주의 주주’ 이렇게 둘로 나눴다.
‘수동적인 주주’는 주식을 전체 발행 주식 중 1% 이상을 매입해, 원한다면 언제든 경영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도 조용히 지켜보는 것에 주주를 일컫는 말이었다. ‘행동주의 주주’는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부류를 일컫는 말이었다.
행동주의 주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엘리슨 펀드 등이 존재했고, 수동주의를 대표하는 기업은 에릭 버펫의 버크셔와 정호준의 JHJ Capital이 있었다.
2007년 발생한 경제 위기를 틈타 미국 주요 기업의 지분을 15~20% 확보한 JHJ Capital은 그 이후 경영에 끼어들지 않고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기회 삼아 일본 기업들의 지분을 10% 이상 확보한 뒤에도 JHJ Capital의 행보는 변하지 않았다.
경영권을 욕심내지 않는 모습에 안심이 들기는 했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펙트다. 기업 입장에서도 정부 입장에서도 JHJ Capital이 기업의 지분을 15% 이상 확보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두고만 지켜보는 건 모두 로슬러 가문의 보호 덕분이었다.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건 정호준과 JHJ Capital을 휘감고 있는 로슬러의 휘광에서 벗어나겠다는 소리였고, 앞으로 굉장한 불편과 번거로움이 찾아오리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찰스의 통보에 따랐다.
그래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이득은 챙겨 가고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처조부님! 제가 알기로 윌스&피고 쪽은 로슬러 가문과 로건 가문의 영향력이 미약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JB 로건 체스트 은행, BA(Bank America), 다운타운 뱅크, 골드만식스, 로건 스탠리, 윌스&피고, 듣기만 해도 ‘아, 거기’ 하는 반응이 나오는 이 빅 네임 중 유일하게 로건, 로슬러, 로쉴드 가문의 영향력이 미약한 은행이 존재했는데, 그게 바로 ‘윌스&파고’였다.
윌스&파고 은행은 윌스와 파고라는 성을 가진 이들이 손을 잡고 세운 은행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금광 경기를 계기로 설립된 금융회사다. 윌스&파고의 창업자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메리카 익스프레드 카드를 서비스하는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찰스 로슬러는 차를 마시는 것을 멈추고 정호준을 바라봤다. 정호준은 찰스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뒤 입을 열었다.
“처조부님께서 윌스 파고에도 시스템을 공유하라 말씀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찰스 로슬러는 더 말해 보라는 듯 말없이 정호준을 쳐다봤고, 무엇을 노리고 있냐는 듯한 시선에 정호준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로 풀었다.
“미국 메이저 4대 상업은행의 말석 자리. 차지하고 싶습니다.”
정호준은 5대 은행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호준의 정신승리일 뿐, 미국인들은 5대 은행이 아닌 4대 은행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미국의 4대 상업은행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JB 로건 체스트 은행’, ‘뱅크 아메리카’, ‘다운타운 뱅크’, ‘윌스&파고’였다.
“윌스&파고와 유니버셜 뱅크의 격차가 꽤 크지 않던가?”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들 다 하는데 따라 하지 않는 건 스스로 뒤처짐을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 엄마들이 괜히 좋다는 걸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윌스파고는 따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정상 따라 하지 못하는 거겠지만. 하지 않는 거든 못 하는 거든 동반되는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하나? 그것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들다는 말이란 걸 알잖나?”
시스템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으면 결국에는 해결될 문제다. 당연히 정치 쪽에도 로비를 벌일 거고 말이다. 성공할 일이라면 적을 만들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면 굳이 반감을 사게 두고 싶지 않았다.
로슬러가 세계 경제의 흑막 중 하나지만 윌스&파고는 가볍게 넘어갈 상대가 아니었다.
“윌스&파고 쪽에 또 하나의 악재가 있습니다. 그걸 오픈하려 합니다.”
“악재?”
“예…….”
정호준은 찰스를 보며 자신이 파악 중인 악재를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들은 찰스는 ‘요놈 보게’란 표정을 지었다.
“한 번만 확인하겠네. 자네의 머릿속에서 나온 소설이 아니라 펙트라는 거지?”
“예, 이미 교차 확인 끝났습니다. 서비스 면에서도 뒤처지는데 신뢰를 깨트릴 악재까지 겹치면, 과연 예금주들이 가만있을까요?”
소비자는 냉정하다. 흠이 생기면 언제든 떠나는 게 소비자란 존재였다. 대체재가 없으면 또 모르겠는데, 윌스&파고가 아니더라도 대체재는 많았다.
“허락하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게.”
찰스 로슬러는 2007년과 2008년. 그리고 그리스 경제 위기를 예측했을 때 느낀 감정을 다시금 느꼈다.
증손자와 증손녀는 로슬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유니버셜 뱅크와 JHJ Capital은 종국에 로슬러의 또 하나의 자산이 될 터.
‘내가 제일 잘한 것 중 하나가 네놈을 아리아의 남편으로 삼은 거다.’
* * *
처조부의 허락을 받은 정호준은 자신만 아는 오리하의 직통 번호로 연락을 넣었다.
-오랜만입니다. 호준이 먼저 전화하다니 무섭네요.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겁니다. 보안을 확인해 주십시오.”
다짜고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는 정호준의 말에 잠깐 침묵하더니 오리하는 본인이 다시 전화를 걸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보안 검사 완료했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은행의 모럴해저드를 신고하고자 연락했습니다.”
은행들의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된 모기지론 디폴트. 그리고 그 모기지론 디폴트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를 이제 막 극복하고 상승세를 탔다. 그런 모기지론 디폴트로부터 이제 겨우 5년 지났는데, 벌써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에 오리하는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말했다.
-모럴해저드라고요? 이놈의 금융권 인사들은 달라지질 않는군요.
“제때 제대로 된 처벌을 못 받았으니 달라질 이유가 없죠.”
-그래서 어디입니까?
“윌스&파고입니다. 윌스&파고에서 고객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도용해 유령 계좌를 개설해 운영 중입니다.”
윌스&파고의 직원들은 2011년부터 할당량을 채우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고객들의 개인 정보를 도용해 유령 계좌를 만들었다. 범죄라는 게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량이었지만, 걸리지 않자 점차 간덩이가 커졌다.
2회차 때는 2016년 10월이 돼서야 부정이 적발됐지만, 정호준은 부정이 적발되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움직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오리하는 통화를 유지하면서 5분 정도 말없이 침묵했다. 5분 동안 생각을 정리한 오리하는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호준의 욕심 때문에 거짓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죠?
정호준의 유니버셜 뱅크가 윌스&파고의 뒤를 쫓고 있다는 걸 오리하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욕심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미진 않습니다. 특히 이런 거짓말은 금방 들통나는 거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