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32)
대만 반도체 회사들의 덩어리가 워낙 큰 탓에, 이번 투자에 729억 5,372만 달러라는 거금을 사용했다. 미국 내 반도체 회사에 자금을 쏟아부었을 당시 JHJ Capital의 계좌에 남은 돈은 약 903억 달러.
이번 투자로 729억 5,372만 달러를 사용했으니 173억 4,628만 달러가 남은 상태였는데, 정호준은 여기서 투자를 멈췄다.
‘나머지는 세금 내는 데 보태야지.’
원금을 포함하긴 하지만 선물로 1,249억 달러라는 경이적인 수익을 기록한 만큼 정호준이 감내해야 할 세금의 단위도 무지막지했다. 현재 계좌에 남은 173억 4,628만 달러에 이번 분기에 들어올 배당금과 월세를 추가로 보태야 세금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유니버셜 뱅크 쪽에 대출을 받아 오성전자 주식을 추가로 매수할까도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출을 받더라도 오성전자 매입은 여기서 그치는 게 맞는 거 같다.’
오성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현재 100만 원대 중반을 오가는 주가가 최소 2배는 오를 것을 정호준은 모르지 않았다. 50 대 1로 주식분할을 하고 7~8만 원까지 상승하니, 고점일 때는 2.5배까지도 오른다.
게다가 외국인 주주 지분이 많아서 그런지 배당금도 다른 대한민국 기업과 비교하면 잘 지급하는 편이었다.
여러모로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기업이긴 했으나, 정호준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오성전자는 가장 마지막에 랭크인했다.
‘다른 주식은 더 많이 오르니까.’
오성전자가 저평가되어 있다는 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거다. 정호준이 판단하기에 그 말은 정확한 평가였다. 모르긴 몰라도 오성이 일본이나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이었다면 아마 본래 오를 주가보다 배 이상은 더 올랐으리라.
코스피란 울타리에 속한 오성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저평가된 코스피 태생 효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저쪽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잖아?’
오성전자 지분을 8% 넘게 보유 중인 JHJ Capital이다. 사돈을 맺은 만큼 백기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지분율이 10%를 넘기고 15%를 넘기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성이 1회차만큼 성장할지도 장담할 수 없고.’
하이스트 반도체를 1년 일찍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대만 등 세계 각지의 반도체 관련 기업에 돈을 뿌린 정호준이다. 대놓고 나서서 하이스트 반도체에 물량을 발주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압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굳이 정호준이 모션을 취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이들은 분명 있을 거다.
이 말은 즉 ‘오성전자’나 ‘TWSMC’에 가야 했을 반도체 발주 물량이 하이스트 반도체로 온다는 말이었다.
‘오성전자의 핸드폰 점유율이 한국에서조차 1회차만큼 절대적이지 않지.’
수백억이란 거금을 투척하여 멍청한 소리를 충고랍시고 받았던 은성그룹은 1회차와 달리 정호준에게 컨설팅을 받고 일찍부터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분호 회장이 직접 나서서 챙긴 만큼 은성그룹은 현재 오성과 한국 시장을 놓고 팽팽한 경쟁을 이어 가는 중이었다.
스마트폰 판매 기업의 현재 한국 시장 점유율은 엔플 19%, 오성 48% 은성 33%로 나뉜 상태였다. 세계로 놓고 보면 엔플이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었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국산을 애용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이었기에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국내에서의 경쟁은 품질을 상승시켰고, 북미 시장에서도 오성과 은성이 39% 점유율을 놓고 나눠 먹을 정도가 되었다. 은성전자가 꽤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됐다는 말이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주가에 반영이 될 테고, 오성전자의 주가가 과거만 못할 거란 추측의 이유로 충분했다.
한국 최고 기업이자 이제는 사돈 될 집안의 잠재력을 깎아 먹은 것 같아 찜찜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이거늘.
사돈이 되며 양심의 가책이 생긴 정호준은 저 나름대로 보상안을 마련했다.
‘작게나마 보상안을 가져다줬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
현재 정호준이 지분 30%를 보유한 미래자동차, 지아자동차가 엔플과 오성의 손을 잡고 스마트폰으로 차량의 문을 열고 시동을 켤 수 있는 스마트키 기술을 도입 중이다.
드라마틱한 점유율 변화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2~5% 정도는 더 빼앗아 올 수 있으리라.
* * *
주식 매입과 관련한 보고서를 받아 본 날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조나단이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조나단이 정호준의 사무실을 방문한 이유는 퇴사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조나단을 소파로 앉힌 정호준은 미리 준비해 둔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혹시 다과도 필요해요? 필요하면 드리고.”
“또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수작질이십니까?”
과자나 빵 부스러기가 튀는 것을 싫어해 커피는 마셔도 다과는 일절 제공하지 않는 정호준이다. 안 하던 친절을 베푼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였기에 조나단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수작이라뇨? 그런 말 들으면 섭섭한데요.”
“과민하게 반응한 거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재계약은 안 할 겁니다.”
은퇴 은사를 밝힌 뒤부터 종종 정호준이 좀 더 회사에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기에 정호준이 계약 연장을 이야기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조나단의 후임으로 자넷을 올릴 생각이에요.”
“자넷씨라. 나쁘지 않은 인선이네요.”
자넷은 조나단과 마찬가지로 JHJ Capital의 창업공신이다. 아니 정확히는 조나단보다도 먼저 합류한 여성이었고, 법무팀에서 근무하면서 회계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인재였다. 선임자가 있음에도 조나단이 CEO 자리를 역임한 건 어디까지나 자넷이 정호준과 일하기 전까지 월가에서 일한 경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자넷 씨라면 잘할 겁니다. ”
자잘한 돈으로(?) 직원들이 투자 업무(단타)를 진행하곤 하지만, JHJ Capital은 정호준이 방향을 정하면 그대로 움직이는 회사다.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능력보다는 믿음이 중요했고, 밑에 사람을 관리하고 총괄하는 것만 잘하면 문제가 없었다.
“이전에 이야기했었죠. 올해 있을 큰 투자건만 무사히 마치면 앞으로는 일거리가 많지 않을 거라고. 조나단에게 휴식이 필요한 건 압니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한미일 삼국에 개설한 펀드 관련 업무까지만 조나단이 마무리해 줬으면 해요.”
조나단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은 2013년 8월 말이다. 그런데, 한미일 삼국에 개설한 펀드가 자금 모집을 마감하는 날짜는 9월 말이었고, 최소 한화로 30조는 모일 것으로 예상 중인 만큼 중국 시장에 돈을 투자하는 작업은 3개월은 족히 소요될 것이다.
“새롭게 부임하면 신경 쓰고 적응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건데, 큰일을 맡기는 건 불안합니다. CEO가 큰일을 진행하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밑에 사람들 보기에도 좋지 않잖아요?”
“으으으음!”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조나단은 침음성을 흘렸다.
“자넷을 위해, 회사를 위해, 4개월만 더 일해 줬으면 좋겠어요.”
혹시나 반감을 살까 싶어 ‘나를 위해’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빼먹었지만 회사를 위한다는 게 곧 그를 위한다는 거였다.
조나단은 자리에 앉아 10분이 넘도록 고민을 이어 갔고,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크리스마스 연휴 전에 사퇴할 겁니다.”
정직, 성실 등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생을 살아온 조나단이다. 자넷이 걱정되기도 했고 자신이 주관하던 일을 남기고 간다는 것을 찝찝하게 여긴 조나단은 결국 4개월만 은퇴를 미뤄 달라는 정호준의 요청을 수락했다.
“고마워요. 월급 많이 쳐 줄게요.”
JHJ Capital이 월가에 자기 영역을 확고하게 굳힌 2010년부터 연봉을 천억 넘게 받은 조나단이다. 돈이 아쉬울 리 없지만, 정호준이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월급보다도 약속이 먼저입니다. 정말 12월에는 은퇴할 겁니다!”
* * *
2013년 6월 말. 어제와 같은 오늘이란 일상을 이어 가며 퇴근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사건이 발생했다.
[시대를 움직였던 거물의 죽음!]
[암 투병을 이어 가던 스티븐 잡스 사망!]
[혁신의 아이콘 스티븐 잡스, 58세의 나이로 사망!]
1회차 때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던 스티븐 잡스는 정호준이 변화를 만들어 낸 2회차의 세상에선 삶을 더 이어 갔다. 1년은 일찍 일을 내려놓고 일개 야인(野人)으로 돌아가 정양을 하니 스트레스를 덜 받은 덕(?)이다.
‘뭐 그래 봐야 근본적인 치료를 거부하니 죽을 날의 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말이지.’
몸에 칼 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잡스의 성향은 2회차라고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 가수술을 진행하기보단 식단, 침술, 수행(참선)과 같은 비의학적인 대체 의료에 의존하다 심각한 중증으로 발전했다.
남편이 죽는 걸 원치 않던 아내의 거듭된 설득이 이어진 뒤에야 몸에 칼을 댔지만, 이미 나빠질 때로 나빠진 몸은 쉽사리 회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췌장 절제 후 단백질 섭취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는데, 채식주의자란 원칙이 단백질 섭취도 막았지.’
콩 같은 단백질이 많이 내포된 야채 위주로 먹기는 했겠지만 그래 봐야 고기에 포함된 단백질을 넘어설 수 없다. 몸에 좋으라고 하는 유기농 채식주의가 오히려 몸을 망치다니, 참 아이러니했다.
[잡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세계로 번지다!]
“우리도 서둘러 잡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죠.”
공적으로 존경할 만한 인간이지만 사적으로는 참 맘에 안 드는 게 많았던 인간이다. 하지만 잡스는 죽은 사람이 되었다. 죽은 사람에게 케케묵은 감정을 계속 이어 가기보단 털어 내고 담대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계속 이승에서 삶을 이어 나갈 정호준에게 도움이 되었다.
‘죽은 사람은 우상화가 되니까.’
능력도 뛰어나고 성격도 좋은 위즈니악과 달리 잡스는 항상 성격이 문제가 되어 왔다. 잡스의 업적을 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점을 콕 집어 이야기하곤 했는데, 죽은 뒤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죽은 사람에게 관대해지는 건 동서를 막론하고 똑같기 때문이다.
다만 따로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장례 절차는 하루 안에 끝나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지만, 살아 있을 적부터 비밀주의를 좋아하던 잡스답게 장례식도 조용히 가족끼리 진행했기 때문이다.
[JHJ Capital 정호준, “스티븐 잡스는 시대를 바꾼 역사적인 인물. 삼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시카고 트리뷴과 같은 언론사를 통해 정호준과 JHJ Capital은 잡스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