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27)
강남에 위치한 럭셔리 산후조리원부터 시설이나 서비스가 낙후된 산후조리원까지, 아리아는 열흘 동안 서울과 경기도 곳곳을 누비며 산후조리원을 방문했다.
‘강남의 럭셔리 산후조리원처럼 산부인과와 연계해 사업을 벌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싼 게 비지떡이고 비싼 것은 비싼 값을 한다는 말처럼 값싼 곳 중에는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은 곳도 존재했고, 4~500만 원 이상의 요금을 내야 하는 곳들에선 산부인과 의사가 종종 회진을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가 회진을 돌며 케어하는 게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산모들에게 믿음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아리아는 단번에 파악했다.
아리아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설득력을 가진 방법이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벤치마킹하기엔 한국과 미국의 사정은 달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어.’
의사의 인건비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비싼 게 그녀의 조국인 미국이었다.
아리아는 머릿속에 떠오른 고민을 김재호 부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정호준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했고, 그 탓에 오성가의 약혼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이야기보다 조언을 먼저 해 주게 되었다.
“당장 초기 인력은 미국 대학 출신 산부인과 의사를 고용해야겠지만, 사업이 궤도에 올라 인력 충원이 필요할 때는 한국의 의사들을 데려다 쓰는 게 어때요?”
* * *
대한민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후진국으로 분류됐다가 개발도상국으로 랭크인한, 그리고 종국에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역사를 쓴 최초의 나라다.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카테고리가 바뀐 유일한 국가였다. 선진국으로 카테고리가 바뀐 것까지는 정호준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선진국으로 분류된 나라답게 한국은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중공업, 원자력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은 서비스업에 분류되는 업종보다는 산업으로 분류되는 쪽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나라지만.
그렇다고 모든 서비스업이 세계와 비교해서 뒤떨어지는 건 아니다.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긴 하나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의료 영역에 관해선, 대한민국은 의료강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세계의 인정을 받는 나라였다.
그런데 의료강국으로 인정받는다고 내부 속사정이 반듯하고 희망적인 건 아니었다.
저출산, 워라벨, 소송의 위협, 생명의 무게와 같은 이유로 생명에 직결된 과들은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과로 전락했고, 언젠가부터 항상 인력이 부족한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개선되지 않는 환경은 지방 의료 인력 부족이란 현상을 초래했다.
‘하지만 그걸 탓할 수는 없지.’
의료업계 종사자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말한다. 처우가 열악해서 기피하는 과가 됐다면 처우를 개선하고 돈을 더 주면 되는 문제 아니냐고.
‘그렇게 쉽게 개선된다면 사회 문제가 왜 있겠어.’
환경을 개선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기존의 기득권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환경을 개선하는 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책임지는 상황을 줄여 부담을 줄이거나, 적당한 휴식을 부여해 워라벨을 지켜 주거나, 그도 아니면 고생의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거나.
외과와 흉부외과처럼 생명과 직결된 기피 과들은 수술이 잘못되어서 혹은 수술을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해도 소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유가족들은 종종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소송을 걸곤 한다.
병원에서는 수술 전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 행위로 최대한 의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유가족들로 하여금 동의서에 사인해 놓고도 법정 공방을 펼치게 만들곤 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재단들은 걸핏하면 소송당하는 기피 과 의사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했다. 물론 소송을 당하면 환자의 사망이 의사 쪽 과실이어도 의사는 의사 편을 들고 병원에서도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도움을 주긴 했지만 말이다.
워라벨을 보장해 주자니, 매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만성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기피 과라 가능할 리 없었다.
결국 가능성이 있는 건 연봉을 올려주는 방법인데, 이 또한 결격 사유가 존재했다.
‘다른 과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의사들이 기피 과의 연봉 상승률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진 않겠지.’
어느 특정 과만 따로 연봉을 높여준다면 다른 의사들이 반발을 불러일으킬 게 불 보듯 뻔했다. 물론 특정 과(외과, 흉부외과, 신경과, 산부인과)가 고생하고 있다는 것쯤은 특정 과가 아닌 다른 과에 종사하는 의사들도 종종 들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생하는 것은 안타깝게 여겨도 처우를 개선해 타인이 이득을 보는 건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 봐야 ‘남’이잖은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하면 더했지, 욕심을 내려놓는 이는 드물지. 자기보다 못한 대우를 받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걸 가만히 지켜볼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의대생들이 과를 고를 때 선택권이 성적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기피과에 지원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의사도 사람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 지망생들은 힘든 과보다는 일하기 편하고 많은 돈을 버는 과를 선호했다.
그렇다 보니 인기 과(성형외과, 피부과, 정신과 등)에는 사람이 몰렸고, 기피 과(외과, 흉부외과, 신경과, 산부인과)에는 지원자가 부족했다. 정원(TO, Table of Organization)이 정해져 있는데, 지원자는 넘친다. 결국 실습 성적과 지금까지 노력해 거둔 필기 성적으로 번호표를 뽑게 되는 셈이다.
과를 선택하는 것 자체도 노력의 결과물이란 말.
마지막으로 의사들의 반대를 염두에 두어 다 같이 월급을 올려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그래서는 처우 개선이란 말을 붙일 수가 없게 된다.
처우란 언제나 상대적인 법이었으니까.
외과, 흉부외과, 신경과가 잦은 소송에 휘말릴까 귀찮아 기피 과가 됐다면 산부인과는 저출산 현상의 지속으로 비전이 보이지 않아 기피 과가 되었다.
정호준은 아리아에게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설명해 주었다. 정호준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리아는 이내 궁금한 점을 물었다.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과연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국까지 올까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성립되는 말이 아니니까요. 캐나다든 미국이든 전문직의 이민은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는 편인 거, 아리아도 잘 알잖아요?”
미국은 세계 각지에 거주 중인 능력 있는 젊은 인재를 미국 땅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했고, 실제로 매년 수많은 경력직, 전문직 인사들이 가족을 대동한 채로 미국에 정착한다. 정호준은 개인적으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게 해 주는 힘 중 하나가 바로 이 이민자 행렬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밖에 없는 이들을 선별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출산율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80년대나 90년대에는 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경우에 따라선 밖에 나와 개업하는 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보다도 많은 돈을 벌곤 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IMF 외환위기에도 의사 수는 매년 늘어나는 데 반해 PC의 도입과 개인주의의 발달, 경기 악화 등으로 신생아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이어졌다. 즉 파이는 매년 작아지는데, 파이를 두고 경쟁해야 할 경쟁자는 매년 늘어났다는 말이었다.
병원이라 부르긴 하지만 병원도 사업의 일종이었다. 경쟁자가 늘어나고 파이가 작아지면서 경쟁에서 도태돼 문을 닫는 병원들이 하나둘 생겼고.
빚 독촉은 의사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망해서 빚더미에 앉은 산부인과 의사나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꼬시라는 말이네요?”
척하면 척이라는 듯 은연중에 돌려 말했음에도 아리아는 정호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캐치했다.
“어차피 ECFMG의 인증이 필요하고, USMLE 시험도 치러야 하잖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 두면 딱 좋을 거 같아요.”
한국에서 전문의로 활동한 경우 USMLE의 일부 단계를 면제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시험을 보기는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은 의학 용어를 아예 영어로 배우는 만큼 자격을 얻는 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
“여기가 미국이 아니라서 조건에 맞는 의사를 찾는 것도 일이겠네요.”
“그것도 제가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잖아도 방금 오성그룹의 김재호 회장과 만나서 약혼을 결정하고 오는 길이거든요. 원래 오자마자 이 이야기부터 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샜네요.”
뜬금포로 약혼을 결정했다고 밝힌 정호준은 김재호와 합의한 사항을 알렸다.
“정략에 대해 거부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우리 줄리우나 김혜주 양 중 하나라도 정략결혼에 반발하면 약혼을 없던 일로 하자고도 합의를 마친 상황입니다. 그리고 오성 그룹에서 병원을 하나 운영 중이니, 도움이 될 거예요.”
오성 그룹은 오성서울병원이라는 거대 병원을 운영 중이다. 김재호에게 부탁하면 오성서울병원 원장이 알아서 알맞은 사람을 수배해 줄 것이다.
“이번에는 내 힘으로 해 보고 싶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호준의 도움을 받네요.”
고마움이 가득 담긴 감사 인사에 정호준은 속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오성 그룹의 덕을 보게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부끼리 도울 게 있으면 돕고 사는 게 당연한 거죠.”
* * *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시카고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을 무렵, 영화 촬영을 마치고 기자들과 VIP들을 초대한 시사회 개최한 박남정은 마이크를 잡고 깜짝 발표를 입에 담았다.
“지혜 역을 맡게 된 김은주 양과 제 부족한 아들놈이 올 가을에 결혼식 올릴 예정입니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결혼을 했음에도 활동을 이어 가는 연예인들이 하나둘 늘어 가고 있긴 했으나 어쨌든 연예인에게 결혼은 리스크였다. 여배우에게는 특히나 더 그랬다. 남자 아이돌보다 여자 아이돌의 열애설이 더 치명적이듯이 말이다.
‘만인의 여자였던 이가 내가 아닌 한 남자의 여자가 되는 거니까.’
스크린에서 영화가 내려가고 1~2개월 후 결혼하는 거라 미리 밝히지 않으면 관객을 동원하려고 결혼 사실을 숨겼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김은주와 김은주의 부모, 그리고 박남정과 박기태는 이 사안을 가지고 꽤 오랜 시간 상의했고, 시사회 날 결혼 사실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다.
작년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왔었기에 영화는 박남정이 자본 100%를 대고 만든 영화라 업계의 평판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시사회 자리에서 결혼을 밝히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김은주와 본인의 아들을 축복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했다.
[시사회장에서 벌어진 충격 발표!]
[감독과 여배우에서 이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또 한 명의 남자들의 원수 탄생하다!]
영화는 재미있게 잘 나왔지만 시사회에 초대받은 기자들은 영화의 내용을 다루기보단 김은주의 결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