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26화 (326/335)

32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26)

딸 가진 당사자이자 오성 그룹의 후계자인 김재호 부회장과 약혼과 관련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 갔다. 김재호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한 정호준은 결단을 내렸다.

“부모 되시는 부회장님께서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 약혼 받아들이겠습니다.”

정호준은 김건희 회장이 제안했던 약혼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미국을 우선시하겠다, 미련을 버리겠다. 몇 번이고 곱씹으며 다짐했지만, 결국 회귀 전의 삶에서 비롯된 미련이 남아 있나 보네.’

JHJ Capital은 팬데믹 사태가 벌어진 2020년의 오성 그룹 시총보다도 많은 자산을 보유 중이었다. 2013년 현재에도 2020년의 오성그룹 시총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 중인 JHJ Capital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거금(현금)이 생길 때마다 정호준이 매입해 두었던 주식들은 2020년대에 높은 명성을 구가하는 회사들이거나 성장을 거듭할 업종(반도체)의 회사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즉 정호준에게 있어 오성 그룹은 매력적인 정략의 대상이 아니란 말과 같았다.

‘정략결혼이란 건 본디 비슷한 수준끼리 하는 거니까.’

정략의 대상이 조금 쳐지거나 조금 우위일 수는 있어도 양자 간에 격의 차가 크다면 정략결혼을 진행하는 의미가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회귀 후 월가에 구르면서 여러 유명 인사를 만난 정호준은 과거와 비교해 확실하게 성장했고, 손익을 따지는 계산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성그룹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줄 선택지가 많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회귀 전 35년 넘게 살아온 생에서 비롯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오성’이란 이름을 본래의 가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긴 모양이다.

“단! 부회장님의 따님께서 제 저택에 머물렀으면 합니다.”

약혼을 받아들이는 걸로 한 가지 요구를 걸었다.

“벌써부터 시집살이를 시키시려고요?”

얼핏 기분 나쁜 요구일 수도 있지만 김재호 부회장은 위트 있게 돌려 물었고, 설명을 요구하는 김재호 부회장의 질문에 정호준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제 아들도 그렇지만 부회장님의 따님인 혜주 양도 나이가 많이 어리죠.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처럼 같이 지내면서 인연을 쌓아 두면 약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따님께선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호준의 입에서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튀어나오자 김재호 부회장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중심은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이었다. 후진국, 개발도상국, 선진국 구분할 것 없이 최상류층의 자식은 미국으로 유학을 오는 게 세계의 추세였고, 미국 덕에 독립하고 반쪽이나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국체를 이어 갈 수 있었던 한국은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좀 죄송스럽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요. 대표님께만 너무 의지하면 면목이 상하니, 혜주를 보살펴 줄 사람을 하나 붙였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시죠.”

감시역을 붙이겠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김재호 부회장의 발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재호 부회장의 부탁을 수락했다.

김혜주도 아직 너무 어려 시댁이란 말이 붙이는 게 어색하지만. 어쨌든 한국인의 정서에 어린 딸을 시댁에 홀로 두긴 불안하잖은가? 정호준도 딸 가진 입장이었기에 김재호 부회장의 심정을 이해했다.

가장 중요한 주제인 약혼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다른 주제를 가지고 대화가 이어졌다.

“박정혜 대통령이 부친을 잃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박정혜 대통령을 보필해 온 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성가와 혈연으로 묶인다는 결정을 내린 만큼, 정호준은 오성이 즉면한 위기를 알리기로 했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의 최상류층에서조차 알고 있는 이가 많지 않은 박정혜의 조력자에 관해 정확하게 파악 중인 정호준의 정보력에 김재호 부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질렀다.

“정호준 대표님의 정보력은 정말 무섭군요!”

부친에 이어 영원교의 교주가 된 정순자는 대를 이어 박정혜를 보필(?)했다.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박정혜에게 자금을 인맥과 자금을 대줬고, 그녀의 조력과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당당히 대통령이 되었다.

“대가 없는 선의는 없다는 말 아시죠? 저는 그 말을 신봉하는 편입니다.”

“정순자가 본전을 찾기 위해 움직일 거다?”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 대한민국의 최고 권좌에 자기 사람을 올렸습니다. 들인 기회비용만큼 뽑아먹어야 하잖습니까?”

합리적인 물음에 김재호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오성에도 무언가를 요구하겠군요.”

“오성이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만큼 많은 것을 요구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렇군요. 대표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과한 요구를 할까 봐 머리가 복잡해지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대표님께서 충고까지 하실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돈 달라고 달라붙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습니까? 사는 곳은 다르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정 대표님도 경험하고 계실 텐데요?”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친인척, 권력자의 심복 등에게 정치자금을 꽂아 주는 건 유신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해 왔던 일이다.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던 대통령의 아들도 재벌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먹었고, 삼청교육대를 만들었던 대통령의 측근인 ‘3허’도 재벌 총수들을 불러다 뇌물을 걷곤 했다.

정호준이 이 자리에서 언급하며 충고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기업하면서 정권의 말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기업에 세무 조사를 때릴 권능을 가지고 있었고, 경영권을 지키는 데도 협조가 필수였다. 그도 그럴 게 국민연금은 대기업들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주체는 바로 정부였다.

경영권 방어나 원할한 기업활동을 위해서 국민연금의 도움은 필수였다.

김재호 부회장의 말에 정호준은 고개를 저으며 펙트를 이야기했다.

“정순자는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가족이 아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정치인이나 정치인의 가족에게 정치자금(뇌물)을 제공하는 건, 명확한 물증이 없을 뿐 대한민국에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증이 나오면 이슈가 돼고, 욕을 억수로 처먹으며 정치경력이 끝난다.

하지만 그뿐인 일이었다.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받아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역시 해 처먹었네.’와 같은 생각을 가질 뿐 크게 죄악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국민들이 익숙한 건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받아먹은 사실이지,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가족이 아님에도 돈이나 혜택을 챙기는 게 아니다. 전자는 익숙해서 잠깐 욕하고 말겠지만, 후자는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그렇잖은가? 나는 하루하루 정직하게 먹고살고, 하루하루 힘들어 죽겠는데, 정치인이랑 친하다는 이유로 수백억을 해 처먹고, 온갖 혜택을 다 받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없다.

“게다가 직업도 인식이 나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직업을 가졌죠.”

직업에 귀천은 없고 편견을 가져선 안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일을 하는 경우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란 말이 부정적으로 들리는 건 정상적인 사회라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뇌물과 온갖 혜택을 받아먹는다. 역풍을 맞기 충분한 소재였다. 실제로도 역풍을 맞았고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이 사실이 국민에게 밝혀지면 여당은 역풍을 맞을 겁니다. 경영권은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JHJ Capital이 보유 중인 지분은 사돈이신 김재호 부회장님의 편에 설 테니까요.”

정순자가 비선실세인 것을 세간에 이슈화해 정권을 잡은 진보 진영은 정권을 잡자마자 정순자를 탈탈 털었다. 정순자를 털면서 그녀에게 정치자금을 줬던 재벌들이 하나둘 청문회나 법정으로 불려 가게 되었고, 김재호 부회장의 경우 아예 구속까지 된다.

‘물론 김재호 부회장이 억울할 건 없지만.’

그도 그럴 게, 김재호 부회장은 정순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대가로 정권의 협조를 받아 승계 문제를 해결했다. 수조는 지불해야 할 걸 백억만 주고 끝낸 셈이니 남는 장사라면 남는 장사였다.

문제는 김재호 부회장이 구속되어 법정 공방을 벌이는 동안 리더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호준의 사돈 될 사람이기도 했기에 정호준은 문제 될 여지를 줄이고자 했다.

여기서 정호준이 충고했다 할지라도 김재호 부회장은 똑같은 일을 반복할 확률이 높다. 한국의 상속세는 실로 살인적이었고, 그 돈을 다 내기는 너무 아까울 테니 말이다.

‘강현태에게 부탁해야 할 삘인데?’

정호준이 한국을 위해 깔아 둔 포석의 덕을 김재호 부회장도 보는 꼴이지만, 어쩌겠는가? 다 정호준이 선택한 일이었다.

* * *

정호준이 아들인 줄리우의 정략결혼을 결정하고 김재호 부회장에게 충고를 하고 있을 무렵, 아리아는 아리아대로 신사업을 위한 사전 조사를 위해 강남에 나와 있었다.

“인테리어가 참 예쁘네요.”

아리아가 준비한 새로운 사업은 바로 산후조리원이었다.

재단을 경영하는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일거리가 줄어든 아리아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여유가 생겼는데 왜 일을 사서 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사업은 사업만의 재미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임산부들을 회복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이 꽤 핫해요. 미국에는 없는 거 같은데, 사업 아이템으로 한번 밀어 보는 건 어때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던 아리아에게 정호준이 충고를 한 것.

백인과 흑인의 골격이 황인종과 비교해 아이를 낳기 편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병원비가 부담돼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나, 미국에서는 산후조리원이 없다. 아니 산후조리원이 없는 걸 떠나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병원에 오래 있지도 않는다.

아이나 산모에게 문제가 없으면 당일 퇴원했고, 아이에게 검사가 필요한 경우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렀다.

“출산이라는 거사를 겪었는데, 대접받으면서 회복하고 싶지 않을까요? 장인어른의 도움을 받으면 병원과 커넥션을 갖기도 어렵지 않을 거 같고, 나는 충분히 해 볼 만한 사업 같은데. 아리아 생각은 어때요?”

2010년대 후반쯤부터 캘리포니아와 같은 고소득 지역에서 산후조리원이 인기를 끌었단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나서 해 준 충고였다.

미국에 괜한 독을 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긴 했지만, 정호준은 아리아가 실패의 쓴맛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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