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13)
워싱턴주에 위치한 ‘웨스트포트 요트’ 본사에 방문해 요트 주문 제작을 마친 정호준은 실리콘밸리에 방문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정호준이 실리콘밸리까지 직접 방문한 건 최근 페이스노트의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는 기업의 CEO를 만나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전용기에서 내린 뒤 준비된 차량을 타고 미팅을 약속한 회사가 위치한 실리콘밸리로 진입했다. 정호준은 건물에 도착하기 전 차 안에서 비서에게 마지막으로 보고를 전해 받았다.
“다운로드 수가 얼마나 된다고 했죠?”
“2012년 4월부터 구골 앱스토어에서도 캠스타그램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골 앱스토어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애플폰의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된 횟수를 합치면 7천만 명이 넘었습니다.”
기계처럼 곧장 대답하는 비서의 대답을 들은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운로드 수가 1억을 돌파까지 얼마 안 남은 것 같은 이 상황은, 다르게 표현하면 캠스타그램이 그만큼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말이었다.
한숨이 안 나올 래야 안 나올 수 없었다.
“하~. 내가 조금 늦었네요.”
세상 모든 일에는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존재한다. 견제와 압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구단 일과 한국에 밀린 일거리들, 그리고 곡물 선물 정리 등 때문에 정신이 없어 정호준은 가장 적절한 시기를 놓쳐 버렸다.
“늦은 만큼 손해를 보게 생겼네요.”
“죄송합니다.”
정호준의 자조 섞인 말투에 비서와 전략팀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청했다.
“전략팀이나 비서실이 왜 미안합니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건 내 실수입니다. 그나저나 도착한 것 같은데, 들어가죠.”
* * *
캠스타그램은 어플리케이션의 이름으로 캠스타그램의 창업자들은 ‘Camera’와 ‘Star’, ‘Telegram’을 합성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정호준은 1회차 때 페이스노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직접 방문했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사전의 교감 없이 불쑥 미팅을 요청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저도 월가의 전설이라 불리는 정 대표님을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아! 전 케빈 에이커입니다. 이 친구는 마이크입니다.”
“마이크 트리거입니다.”
케빈 에이커는 나름 사교성이 있는 것 같았고 공동창업자로 알려진 마이크 트리거는 전형적인 너드 공돌이 같은 외관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성격만 놓고 보면 케빈 에이커보다는 마이크 트리거가 상대하기 껄끄러웠겠으나 그들을 압박해야 할 입장에 놓인 정호준은 친근하게 구는 케빈 에이커보단 내성적이고 벽을 친 마이크 트리거가 편했다.
“JHJ나 페이스노트 편으로 몇 번이고 인수 제안서를 보냈는데, 일관되게 거절로 응하셔서요.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때문일까? 정호준이 그들에게 좋지 못한 일로 왔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케빈 에이커는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페이스노트나 유니 톡과 비교하면 아직 작은 구멍가게일 뿐입니다.”
미국인답지 않게 겸손까지 입에 올리면서 자신을 낮췄다. 다운로드 수가 10억을 넘긴 ‘페이스노트’나 ‘유니버셜 톡’을 비교 대상으로 두면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말이다.
물론 케빈 에이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교 대상이 페이스노트와 유니버셜 톡이 됐다는 것부터 이미 캠스타그램의 위협성이 증명된 거 아니겠습니까?”
케빈 에이커가 미소를 띠고 있기에 정호준 또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화답했다. 정호준의 말마따나 비교 대상이 페이스노트와 유니버셜 톡이란 것부터가 캠스타그램이 가진 저력과 잠재력을 증명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
케빈 에이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정호준은 그 모습을 바로 정면에서 확인했으나 눈치를 보는 게 아닌 추가타를 날렸다.
“나는 캠스타그램이 우리 페이스노트와 유니버셜 톡의 아성에 도전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건 캠스타그램에 최후통첩을 날리기 위해서입니다.”
“최후통첩이라면?”
사교성이 없어서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마이크 트리거가 자기소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고, 정호준은 그의 반문에 뻔뻔하게 의사를 밝혔다.
“JHJ Capital은 캠스타그램을 경쟁사로 규정하고, 캠스타그램을 밟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정호준의 1회차 삶에서 마이클 저커버그가 그랬듯 정호준은 비슷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경쟁할 거란 협박을 입에 담았다. JHJ Capital이 투자를 받지 않고 개인 자산만 굴림에도 굴리는 자산의 규모가 월가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것쯤은 미국에서 대학 나온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케빈 에이커와 마이크 트리거는 1회차 때 마이클 저커버그가 협박했을 때보다 더한 부담을 갖게 되었다.
무거운 정적이 회의실을 점거했다.
“페이스노트와 캠스타그램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페이스노트가 우리 캠스타그램을 인수한다면 독점법에 걸릴 겁니다.”
케빈 에이커가 아무런 대꾸도 못 한 채 표정만 구기고 있을 때 내성적이긴 하나 냉철한 성격의 마이크 트리거는 아무 말 못 하는 동지를 대신해 꿈틀거렸다.
실제로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페이스노트가 캠스타그램을 인수하는 사안을 놓고 영국의 공정거래청과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가 수사를 벌이며 압박을 가했었다.
“캠스타그램에서 그런 걱정까지 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캠스타그램을 인수하는 주체는 페이스노트가 아닌 JHJ Capital일 거고, JHJ Capital이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합병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운영될 테니까요.”
정호준은 마이클 저커버그가 사용했던 수단을 그대로 이용했다.
“이게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마이크 트리거는 얼굴까지 붉힌 채 목소리를 높였지만, 누군가의 피눈물을 먹고 사는 월가에서 밥 벌어 먹고사는 이답게 정호준은 뻔뻔한 가면을 쓴 채로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따라 주는 척이라도 하면 된 거 아닐까요? 다들 이렇게 삽니다.”
“우리가 그냥 두고만 볼 것 같습니까?”
“과연 귀하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인수 제안을 건네면서 독점법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내가 멍청해 보입니까? 그건 저를 너무 과소평가한 건데요? 이미 필요한 곳에 기름칠은 다 해 뒀습니다.”
오리하가 일라노이주를 방문해 선거운동을 벌일 당시 가진 미팅에서 정호준은 JHJ Capital의 캠스타그램을 인수를 눈감아 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렇잖은가? 아무리 오리하가 백악관의 주인이고 재선이 유력시된다지만, 최소 수조 원의 자금을 투입해 달라는 요구를 아무런 대가 없이 들어줄 리 없었다.
‘조금 머뭇거리긴 했지만 최소한의 가면은 쓰고, 조사하는 시늉을 한다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어쨌든 수락했지.’
백악관의 주인일지라도 최소한의 반대급부는 지급하는 게 당연했다. 정호준이 그정도 급은 되었다. 나중에 괜히 트집잡히지 않도록 공화당 쪽에도 이미 기름칠을 한 지 오래다.
그리고 이 말은 즉 정치권의 그 누구도 캠스타그램 창업자들의 편에 서지 않을 거란 이야기다.
“이익!!”
잔인한 현실에 이를 악물기만 할 뿐 마이크 트리거의 입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JHJ Capital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동업자의 반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정호준의 대처에 케빈 에이커는 항복을 선언했다.
“케빈!!”
케빈 에이커의 항복 선언에 마이크 트리거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지만, 케빈 에이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이크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우리가 JHJ Capital의 공세를 버텨 낼 확률은 소수점도 아니고 제로야.”
“치이익!!”
케빈 에이커의 설득에 마이크 트리거는 분을 삼켰고, 동업자를 다독인 케빈 에이커는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JHJ Capital의 인수 제안은 받아들이겠지만! 회사를 헐값에 넘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겠다는 각오가 선 얼굴을 확인한 정호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케빈 에이커와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10억 달러 어떻습니까?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일시불로 지급하겠습니다.”
1조 원이 넘는 돈을 단번에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음에도 케빈 에이커는 터무니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캠스타그램의 다운로드 수는 7천만 명이 넘었습니다. 회원의 증가세도 가파르고요. 10억 달러는 너무 헐값 아닙니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너무 단호해서 당황스럽네요. 원하는 금액이라도 있습니까?”
정호준의 물음에 케빈 에이지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30억 달러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1회차 때 페이스노트는 2012년 4월에 현금 3억 달러와 페이스노트 주식 2,300만 주를 지급하는 걸로 인수절차를 밟았다. 당시 가치로 약 10억 달러쯤 됐다. 겨우 4개월에서 5개월 늦었을 뿐인데, 인수가가 3배는 늘어난 상황에 정호준은 다시 한번 한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30억 달러는 제가 생각했던 가격과 너무 차이가 나네요. 욕심이 과하면 탈 납니다.”
“저희를 밟기 위해 자금을 동원해도 이 정도는 쓰실 겁니다. 번거로운 과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각을 결정한 만큼, 조금은 양보해 주십시오.”
선물과 현물을 모두 정리해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쥔 JHJ Capital이다. 캠스타그램 창업자들이 얼마를 부르던 지불할 능력이 있었으나 정호준은 흥정을 시작했다.
‘호구를 잡히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15억 달러 드리겠습니다. 많이 양보한 겁니다.”
그렇게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정호준은 페이스노트가 캠스타그램을 10억 달러 언저리에 인수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관계로 17억 달러는 지불해야겠다고 판단했지만 30억 달러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때마다 정호준은 한 단계씩 가격을 올려 불렸고, 반대로 캠스타그램 창업자들은 처음 정한 30억 달러에서 조금씩 가격을 낮췄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줄다리기를 이어 갔고 결국 도출된 합의점은 22억 5천만 달러에 합의점이 도출되었다.
“오늘 제가 큰 손해를 봤네요.”
정호준의 엄살에 케빈 에이커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격협상을 마친 까닭인지 입장을 확실하게 피력했다.
“그럴 리가요. 계약서에 사인까지 한 마당에 엄살은 그만 부리셨으면 합니다. 손해는 저희가 봤습니다.”
정호준이 많이 양보한 상태로 협상을 마쳤다.
‘조금 비싸게 인수하긴 했지만 그래도 SNS 패권을 손에 쥐기 위한 거니까.’
정호준이 가진 부의 크기나 야망(비전)을 고려하면 아주 손해를 본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