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12)
서구권에서 돈 좀 있다 싶으면 부리는 사치 중 하나가 요트 구매다. 그리고 가진 부의 크기가 조 단위에 이르는 이들은 작은 요트에서 만족하지 않고 큰 요트, 일명 메가요트라 불리는 초호화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
주문 제작을 마치고 나오는 길. 정호준이 사치를 부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아리아는 의외라는 듯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의외네요. 호준이 이런 사치도 부리고.”
질문의 형식을 띠진 않았지만 정호준에게 답을 요구하는 아리아의 말에 정호준은 조용히 되물었다.
“나 정도 되면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되잖아요?”
미국 재벌들은 물론이고 중동 왕가의 일원들이나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은 메가요트를 한 대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 정호준이 쌓은 부를 생각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정호준의 대답에 자신이 정호준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봤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 아리아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호준에게 사치한다고 뭐라 하려 한 게 아니에요. 내 맘 알죠?”
“글쎄요. 말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아이참! 그냥 호준답지 않길래 궁금해서 한 말이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견적서로만 3억 달러가 나왔다. 제조를 시작하고 난 뒤에 살이 얼마나 더 붙을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아는 법. 게다가 메가요트는 구매(제작) 비용 외에도 유지비로 매년 십수억 이상을 소요해야 한다. 시계나 슈퍼카 수집 같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취미를 즐기지 않던 정호준이 갑자기 메가요트라는 엄청난 사치를 부리니 이유가 궁금해졌을 뿐이다.
다급한 아리아의 변명에 정호준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하나쯤 갖고 싶어서요. 아리아나 아이들 데리고 바다에 나가 보고 싶기도 하고요. 가족 여행에 쓰는 것 외에도, 축구팀이나 야구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선물 삼아 빌려주겠다고 미끼로 걸 수도 있고요. 선수들의 동기 부여로 이만한 게 없을 것 같지 않아요?”
요트를 구매해서 가족 여행을 나가는 데 사용하겠다는 말에 아리아는 뭔가 찜찜한 느낌을 받았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긴 한데, 다 말해 준 것도 아닌 것 같네.’
정호준이 자주 사용하는 진실 속에 진실을 숨긴 느낌이었다. 아리아 로슬러가 정호준을 알게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결혼해 살을 부대끼며 살고 아이까지 낳았다.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정호준의 화법을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그래서 살짝 가자미눈을 뜬 채 정호준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압박했으나, 정호준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목적을 이야기해 주지 못해 미안해요.’
속으로는 사과를 할지언정 겉으로는 철판을 깔고 아리아의 시선을 견뎌 냈다.
* * *
정호준이 메가요트를 주문한 진짜 이유는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할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나온 대한민국 안산시 고등학교 학생들이 2014년 4월 15일 탑승한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침몰하는 여객선의 이름은 시대호.
인천에서 여객선 사업과 해운 사업으로 명맥을 이어 가는 청해 해운 소유의 배였다.
시대호는 일본에서 중고로 사들인 배를 개조한 거라 연식이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불법 개조를 통해 화물과 인력을 기존 권장량보다 많이 싣게 설계됐다. 해운사의 욕심 때문에 아슬아슬한 운항을 이어 가고 있던 찰나에 나쁜 날씨와 겹쳐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위와 같은 이유를 고려하면 ‘시대호 침몰’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아닌 인재(人災)였다.
“안타까운 목숨들이 많이 죽었지.”
시대호 침몰로 여객선에 탑승하고 있던 탑승자 476명(잠정) 중 304명이 사망·실종됐고, 172명이 구조되었다.
생존율은 36.1%. 인명의 무거움을 고려하면 매우 저조한 생존률이었는데, 이조차 해경과 구급대원들이 잠수병까지 걸려 가며 노력한 덕에 얻은 성과였다.
‘구조 작업을 진행하다가 오히려 잠수병이나 저체온증으로 죽기도 했다지?’
회귀해서 큰돈을 만지게 된 순간부터 정호준은 시대호 침몰로 사망할,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할 귀중한 생명들을 구하겠다고 결심했다.
다만 방법론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한 번씩 수정되곤 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만큼 정호준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꽤 많았다. 그리고 개중에는 사건이 터지기 전에 예방할 방법도 있었다.
청해 해운에서 법으로 정해 둔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고 과하게 배를 굴리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 법조계를 움직여 영업 정지를 때려도 되고, 아예 문을 닫게 만들어도 된다.
‘배를 굴리는 것부터 권고 사항과 법을 어기는데, 다른 먼지라고 안 묻었겠어?’
장담하건대 검찰이나 국세청에서 맘먹고 털면 먼지가 무더기로 적발되리라.
법이나 권력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돈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시대호를 구매하거나, 혹은 청해 해운이란 회사 자체를 사들여서 사건이 일어나게 막는 것도 가능하다.
메가요트를 구매하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싸게 먹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 입장에서도 사실 사고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러자니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알아주길 바라며 하는 선행이라는 이중적인 행태지만 정호준은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좋은 일을 하는 건 좋지만, 이미지는 챙겨가자.’
정호준은 죽을 뻔했던 꽃다운 목숨 수백을 구함으로써 본인의 이미지를 국적 팔아먹은 놈에서 명예 한국인 정도로 개선하고 싶었다.
‘하이스트 반도체와 JHJ 진웨이가 승승장구를 이어 가려면, 한국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을 필요가 있어.’
밖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느니 어쩌느니 말이 많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보수적인 경향과 배타적 기질이 강한 나라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이란 말과 함께 한국인을 수식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단일민족(單一民族)’인 게 괜히 그렇겠는가?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또한 외국인을 꺼리는 국민 정서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었고, 애국심이 강해 자국에 해를 끼쳤거나 자국의 국적을 포기한 이들 비난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람들의 이런 성향은 인수한 회사들을 성장시키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확률이 커.’
정호준 본인이 이미 세계 제일(?)의 부자고 미국을 등에 업고 있는지라 정부가 나서서 하이스트 반도체나 진웨이를 차별하고 불이익을 줄 리는 없다. 정권을 잡은 정부나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회까닥 미치지 않는 이상 그럴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러나 하이스트 반도체나 진웨이와 경쟁하는 기업들은 정호준이 한국 국적을 버린 외국인이란 펙트를 가져다 활용할 가능성이 꽤 높았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뭔들 못 하겠는가?
어차피 반도체 사업의 주요 타겟은 유럽이나 미국 시장이다. 한국인이 정호준과 정호준에게 인수한 하이스트 반도체를 어떻게 여기든 이러한 큰 틀에서 벗어날 리 없었다.
문제는 진웨이였다.
정수기, 비데의 대여 및 제조‧판매에 힘쓰는 JHJ 진웨이는 내수시장을 주 고객층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미지나 평판에 따라 매출이 하락할 리스크가 존재했다.
“한국 국적을 버렸다는 명분이 결코 약한 건 아니지만, 우연(?)이라곤 하나 수백 명의 목숨, 그것도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학생들의 생명을 구한 것과 비교되진 않겠지?”
정호준이 메가요트를 주문 제작하는 데는 본인의 이미지 개선 외에도 새로운 변수 차단이라는 이유가 존재했다.
‘괜히 사건이 안 터졌다가 다른 데서 터질 수도 있어.’
대한민국 정부나 정치인들은 소를 잃고 나야 외양간을 고치는 타입이다. 사고가 터지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 그제야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와 법을 손보고 감찰을 시작한다. 시대호가 침몰하는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면 국회의원이나 정부에서 해운사에 관심을 두고 점검할 리 없고, 이는 곧 새로운 변수 창출이란 결과물을 도출하게 된다.
‘규정과 법을 어긴 채로 운영 중인 게 청해 해운뿐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니까.’
국민들이 국회의원에게 그놈이 그놈이란 말을 하듯, 이쪽 업계 사람들도 그 나물에 그 밥이기는 마찬가지이리라. 그렇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써서 감시하고 관리하려 해도 정호준에겐 명분이 없었다.
동일본 대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괜히 말했다가 미친놈 소리나 듣게 되리라.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정호준은 메가보트를 주문 제작하는 결정을 내렸다.
* * *
2011년 진웨이를 인수한 뒤 회계팀에게 임직원들의 내사를 명령했던 정호준은, 세무팀과 회계팀이 가져온 결과물을 토대로 임원 중 5분의 1을 잘라냈다.
정호준이 100% 고용 승계하길 바랐던 정부로서는 정호준의 결정에 아쉬움과 섭섭한 감정을 품었지만 그런 한가함도 잠시뿐이었다.
“요즘 한국에서 폐 질환 환자가 자주 발생한다고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저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부 승격과 스카우트를 활용해 내쫓아낸 이들의 빈자리를 메꾼 뒤 정호준이 내린 지시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근거가 있는 말씀이십니까?”
가습제를 판매하는 회사들로부터 허위 사실 유포나 명예 훼손 등을 이유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임원들은 깜짝 놀라 정호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살균제를 판매하는 기업 중에는 은성생활건강이나 오성 그룹의 하우스 플러스도 존재했기에 부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따로 연구를 부탁드린 적이 있는데, 일단 그렇다더군요.”
정호준은 존 홉킨스 의과대학 연구팀에게 받아 온 연구 자료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제 의뢰를 받고 연구한 주제가 작년 랑셋에 실렸습니다.”
‘랑셋’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의학 저널로 의학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다. ‘랑셋’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걸로 유명한데, 임상 의학과 공중보건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다.
임원들이 대충이나마 자료를 훑어봤을 때쯤 정호준은 기습적으로 선포했다.
“우리 제품을 구입하거나 렌탈하는 고객들에게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려 주시죠. 그리고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소송을 제기한 환자들에게는 증거 자료로 이 연구를 사용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대표님, 굳이 적을 만드실 필요가 있을까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말에 임원들은 또다시 정호준은 만류했다. 대기업을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기겁하는 임원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람들이 가습기를 사는 이유가 뭡니까? 건강을 생각해서잖습니까? 건강을 생각해서 산 물건을 소독하는 살균제가 오히려 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합니다. 진웨이는 이미 JHJ의 이름을 단 회사입니다. JHJ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소송에 한 손 보태 줄 증거물을 제시해 준 덕분에 정호준은 한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