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07)
민재민이 추가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것에 대해 한국에서도 추측들이 난무했는데, 가장 많이 다뤄지는 것은 원전의 리스크를 겁내며 친환경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랐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보복에 입각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원전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한 시기는 다름 아닌 김명호 정부 시절이다. 노민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김명호 정부의 업적이라 뭉개 버렸다는 썰이 있다.
‘전자는 몰라도, 아마 후자는 아니겠지만.’
유치하게 개인감정 때문에 국가의 사업을 말아먹겠느냐마는 박정혜 정부 때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비선(秘線)도 실존했던 걸 떠올리면 가능성이 아주 전무한 건 아니었다.
법조계와 정치를 묶어 만든 모 영화에서도 그랬잖은가? 공격당했으면 되갚아 주는 게 정치의 메커니즘이라고.
그런 이유로, 카더라의 썰로 돌아다니곤 했다.
국가가 주도해서 키웠던 원자력 발전 사업을 하락세를 타게 만든 것 외에도 민재민에게는 비판할 거리가 몇 개 더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호준이 욕먹을 만하다고 느끼는 건 민재민 정부에서 시작한 ‘여성 할당제’였다. 여성할당제는 여성의 정치적인 참여를 촉진하고, 선거에서 선출되는 여성 의원의 수나 고위직 관료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 외에도 노르웨이, 스페인,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여성 할당제가 도입됐을 뿐 기업에게까지 강요하진 않았다고들 말하고, 실제로 법으로 강제하진 않았다.
하지만 말이다. 세상사가 법대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잖은가? 정부 관료들이나 정치권 인사들은 종종 기업과 협업하곤 한다.
그런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가 ‘박 상무, 정부에서 여성할당제 시행 중인 거 모르나? 대통령께서 추진하시는 일인데, 대기업이 모범을 보여 줘야지!’와 같은 말을 넌지시 던지면, 그 말을 들은 기업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을 품겠는가?
압박감을 받고 알아서 기게 되는 거다. 괜히 심기 잘못 건드려서 세무조사 나오면 골치 아파지는 건 본인들이란 걸, 기업인들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지역갈등만으로도 이래저래 골치 아픈 상황에서, 남녀 갈등을 유발시킨 꼴이지.’
보수 진영에서 항상 이야기하곤 하는, 진보 진영 정치인은 언제나 갈등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떠오르는 행보였다. 그도 그럴 게, 가뜩이나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 생각해서 달라붙은 이들과 표가 된다 생각해 달려든 정치인들 때문에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의 수가 폭증했는데, 정부의 이런 정책은 기업에까지 그런 기준을 강요했다.
‘어쩌면 세대 간의 갈등도 민재민 정권 때 시작된 걸 수도 있지.’
그런 이유로 김명호만큼이나 민재민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정호준이었지만, 개인감정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함께하는 자리에서 물어본 화제에 대해선 거짓 없이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주었다.
박정혜 후보에게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해 주었다.
‘강현태 서울시장이 민재민을 지지하는 게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니까.’
강현태 본인이 나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지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정도가 죽은 노민현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휘광만큼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거라 판단하진 않았지만.
[야권 경선 후보와도 자리를 가진 정호준 대표!]
[JHJ Capital, 킹메이커로 작용하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만남은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 * *
2010년도 중후반 이슈로 떠오른 건 ‘가상화폐’와 ‘COVID-19(코로나)’, 그리고 ‘코로나 백신’이다.
코로나는 전파력이 매우 강력해 팬데믹 사태를 유발했고, 단기간에 백신을 제조하는 바람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리고 백신이 인간의 몸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표본 또한 부족했다.
본인도 코로나에 걸려 사망한 만큼 안전하고 유용한 백신을 개발하고 싶었다.
제약회사 인수. 그것이 정호준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물론 지금부터 준비한다고 안전한 백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돈을 쏟아부어 노력해 볼 생각이다.
“지시하신 대로 코아 제약 주식 14% 매입 완료했습니다.”
2012년 6월 15일 현재 코아 제약이 발행한 주식은 총 7,887,276주.
4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 동안 JHJ Capital 한국법인은 평균 매입가 45,000원에 100만 주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약 450억 원을 지출한 셈이고, JHJ Capital이 확보한 주식을 지분율로 환산하면 12.67% 정도 됐다.
“대주주 명단을 확보했습니까?”
“예, 코아 제약은 예상보다 기관이 가진 주식이 적었습니다.”
대주주 명단을 눈으로 훑은 정호준은 이내 추가로 오더를 내렸다.
“제가 따로 연락을 돌려서 말해 놓을 테니, 미래 증권과 오성 증권, 중우 에셋이 쥐고 있는 코아 제약 주식을 인수해 주세요.”
산업은행이나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가져오려면 또다시 김명호와 만남을 가져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주고받는 게 뚜렷한 김명호인 만큼 정부 관계자와의 만남을 뒤로 미뤘다.
* * *
정호준은 오성증권과 미래증권, 중우에셋 오너에게 연락해 본인에게 코아 제약 주식을 매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성과 미래는 정호준에게 빚진 것도 많고, 캥기는 것도 많은 입장인지라 최소한의 프리미엄만 받고 주식을 넘겼다. 그리고 중우에셋 또한 JHJ Capital의 자산 규모 때문에 겁먹어 알아서 기었다.
덕분에 JHJ Capital은 평균 매입가 50,800원에 80만 주를 추가로 매입할 수 있었다. 80만 주는 지분율로 환산하면 약 10.15% 정도 됐다.
JHJ Capital은 대주주와 접촉하면서 주식시장에서의 지분 매입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JHJ Capital의 품에 넘어간 지분이 25%에 달하는 순간, 정호준은 코아 제약에 인수 제안을 건넸다.
-강영숙 회장님 일가가 보유한 주식 500만 주를 5,000억에 인수하겠습니다.
2012년 12월쯤에는 주가가 10만 원을 돌파하고 이후에는 더 큰 성장을 이룩하게 될 코아제약이었으나 회사의 미래 가치는 미래를 보고 온 사람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법. 주당 10만 원에 주식을 인수하겠다는 JHJ Capital의 통 큰(?) 제안에 코아 제약의 강영숙 회장은 흔들렸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매각하자. 우리 코아 제약이 아니더라도 제약회사를 인수할 기세인데, JHJ Capital의 자금력을 뒷배로 둔 기업과 경쟁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강영숙 회장은 JHJ Capital의 자금력을 고려해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줄다리기를 위해 정호준이 부른 것보다 더 큰 금액을 불렀다.
“7,000억을 주시면 지분 매각하겠습니다.”
본인이 제시한 것보다 2,000억을 더 높게 부른 강영숙 회장의 역제안에도 정호준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하죠. 7천억 드리겠습니다.”
강영숙 회장이 말을 바꿀까 두려웠던 정호준은 계약서를 들이밀며 사인을 요구했다.
* * *
코아제약이 JHJ Capital에 인수된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코아제약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소액 주주 중에 물량을 쥐고 있는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연기금과 산업은행에 주식을 매각할 의사가 있는 물어보라는 지시를 끝으로 정호준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약 3개월간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정호준은 그가 구단주로 있는 시카고 컵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리글리 필드에 나와 있었다.
시카고 컵스의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본래의 역사였다면 휴스턴과 치른 경기 모두를 승리로 장식하며 스윕을 가져갔을 테지만, 정호준의 오더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탱킹 시즌을 치른 시카고 컵스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패배했다.
“죄……죄송합니다.”
본래였다면 4:0으로 승리했어야 할 경기였지만, 고품격 투수전이 6회까지 이어지다가 7회와 8회에 투런 홈런과 솔로 홈런을 얻어맞고 3:2로 패배했다. 8회에 브라이언 하퍼와 마이콜 트라웃이 각각 솔로 홈런과 백투백 홈런을 때려 무실점을 면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9:2의 스코어로 참패한 것을 고려하면 오늘은 훌륭한 경기를 치른 셈이지만, 9:2로 지나 1:0으로 지나 패배는 패배였다,
연패, 그것도 구단주가 관람하는 시리즈에서 연패를 했기에 시카고 컵스 사장은 줄곧 저자세였다.
“재작년까지 탱킹 시즌을 치렀는걸요. 다 이해하니까 그렇게 죄인처럼 서 있지 않아도 됩니다.”
탱킹을 마치고 이제 다시금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곧바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리 없다. 기세란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잖은가?
게다가.
“제가 픽한 선수들이 아직 다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요.”
하퍼나 트라웃은 작년 확장 로스터에서 콜업된 후로 쏠쏠한 활약을 해 주고 있지만 정호준이 뽑은 투수들이나 가장 최근 라운드에 픽한 유격수 프란체스카 랜돌프, 무츠 바키는 아직 마이너리그를 헤매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계약상의 문제로 당장 올리지는 못하지만 올해 확장 로스터에서 2010년대를 빛낸 3루수라 평가받는 넬슨 아레나도와 좌익수 크리스 브린트를 데뷔시키고, 내년 가을 확장 로스터에 프란체스카 랜돌프와 무츠 바키를 데뷔시킬 계획이다.
‘정말 각 잡고 우승 경쟁을 노리는 시기는 2014년부터다.’
정호준이 돈을 들여 본인의 픽이 성적을 내 우승이란 결실을 맺은 리버풀 FC라는 케이스를 온라인상으로 홍보해서일까? 정호준을 원수 보듯 하던 시카고 컵스 팬덤은 하퍼와 트라웃이 성적을 내기 시작한 뒤로는 기대감을 품었다.
“다행히 일본에서 영입한 아흐메다 유는 잘 던지네요.”
2011년, 일본 NPB 시즌이 끝났을 무렵, 메이저리그 구단 다수가 달려들어 영입 경쟁을 벌였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끼리 경쟁이 붙은 선수의 이름은 아흐메다 유. 이란 국적의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고시엔에서 활약하며 야구선수로 데뷔한 이였다.
회귀 전 아흐메다 유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걸 기억하고 있던 정호준은 5,250만 달러(한화 630억 원)를 지불해 권리를 획득했다. 에이전트와의 협상이 조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쨌든 계약금을 포함해 6년간 6,6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아흐메다 유가 일본에서 벌어다 주는 수익을 생각하면 마케팅 측면에서도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호준이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월급 받아먹는 처지에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은 법, 시카고 컵스의 사장 데이비드는 혀에 꿀을 바른 것처럼 정호준을 올려 쳤다.
데이비드의 연이은 아부 공세를 한 귀로 흘린 정호준은 팀을 찾은 진짜 이유를 이야기했다.
“내년에 대한민국에서도 선수를 하나 데려올 생각입니다.”
“보스의 고국에서요?”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대화 피닉스란 팀에서 뛰는 임현진이라는 투수가 포스팅을 신청할 겁니다. 그 선수도 영입해 주십시오.”
내년도 영입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정호준의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드시 데려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