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01)
시계 태엽을 좀 더 거꾸로 감아 조나단으로부터 JHJ Capital이 기존에 보유 중인 주식도 추가로 매수하겠다는 보고를 들었을 무렵 JHJ Capital은 거의 처음으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행보를 보였었다.
정호준이 권리를 행사한 건 정확히 2012년 2월 말쯤 개최된 코X콜라 주주총회에서였다. 지금껏 주식만 매입했을 뿐 별다른 권리를 행사해 본 적 없는 정호준은 처음으로 경영진들의 판단에 반하는 선택을 내렸다.
경영진이 무슨 판단을 내렸길래 반대 의사를 표시했냐고?
JHJ Capital이 반대표를 던진 건 주식분할과 관련한 안건이었다.
코X콜라 주식 가격이 많이 올라왔다 생각한 코X콜라 경영진들은 주식분할(Stock Split)을 진행해 주식 유동성을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아직 주식분할을 단행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코X콜라 지분을 무려 10%나 보유 중인 대주주의 반대에 경영진은 주주총회의 진행을 멈추고자 휴식을 선포했다.
“JHJ Capital은 뜻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 JHJ Capital이 배당금이 적다고 불평을 부리거나 의미 없는 반대를 한 적은 없잖습니까? 그저 지금은 때가 이르다는 게 저희 대표님의 판단입니다.”
코X콜라 경영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JHJ Capital은 주식분할에 반대한다는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JHJ Capital의 입장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휴식 시간을 틈타 정호준이 내린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버크셔에서 나오신 것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주주총회에 참석한 버크셔 관계자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왜 그러냐는 듯한 뉘앙스로 대답하자 질문을 던졌던 직원은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 호의적인 미소를 띠며 자신을 소개했다.
“JHJ Capital의 레온이라 합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버크셔가 우리 JHJ의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판에 무리를 무릅쓰며 편을 들어준다는 건 그에 맞는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 법. 대가를 제시하라는 노골적인 반문에 레온이 답했다.
“JHJ Rail Road가 1분기에 시행할 배당에서 버크셔의 몫을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버크셔는 미국 철도 랭킹 1위에 랭크인한 JHJ Rail Road의 지분 10%를 보유 중인 회사다. 12%의 지분을 받겠다고 버티는 것을 정호준이 찍어눌렀었다. 부동산 디폴트 사태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느라 배당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어쨌든 버크셔는 분기마다 시행하는 배당의 10%를 가져갈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자투리 하나 잘라먹지 않고 배당을 해 주었다.
“제 선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윗분들의 의사를 물어봐야겠네요. 연락을 하기 전에 JHJ Capital에서 제시할 정확한 조건을 알고 싶습니다.”
“올해 1분기에 지급될 배당금에서 버크셔의 몫으로 10%를 떼어드리겠습니다. 이 제안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입니다. 휴식 시간이 길지 않은 관계로 줄다리기를 이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레온은 요구하는 입장임에도 더는 양보하지 않을 거란 의지를 표명했다. 버크셔 관계자는 레온의 뻔뻔한 태도를 책잡기보단 주주총회장 가까이에 있는 빈 사무실로 이동해 에릭 버펫과 전화 통화를 나눈 뒤 돌아왔다.
“JHJ Capital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JHJ Capital의 편을 드는 것으로 끝날 문제입니까? 아니면 앞으로 줄곧 JHJ Capital의 편에 서 달라는 제의입니까?”
버크셔가 JHJ Capital의 손을 들어주어 코X콜라 경영진이 이번 주총에서 그들의 뜻을 관철하지 못한다 해도, 주주총회란 건 원래 지분을 가진 주주가 원하면 언제든 열릴 수 있는 거다.
버크셔 관계자의 지적에 레온은 썩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3월 말까지만 저희 편에 서 주십시오.”
“예, 우리 버크셔는 JHJ Capital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JHJ Capital만큼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큰 자금을 코X콜라에 투자한 버크셔는 무시할 수 없는 대주주 중 하나였고, JHJ Capital와 버크셔가 손잡자 JHJ의 의도대로 주식분할은 부결로 끝났다.
* * *
정호준이 천억 단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코X콜라의 주식분할(Stock Split)을 막은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분할은 우리 JHJ의 코X콜라 주식 추가 매입이 끝난 뒤에 이뤄져야 해.’
주식분할은 주식을 쪼개 주식의 수를 늘릴 뿐 시가총액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기법이다. 그런데,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가격이 떨어져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건 유동성이 증가했다는 말이다. 주식분할 후 주가가 상승하는 건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주식분할 후 주식을 사들이는 것과 주식분할 전에 주식을 사들이는 것. 정호준은 똑같은 지분율을 확보한다 가정했을 때 후자보다는 전자가 돈이 덜 들어가리라 판단했다. 정호준이 코X콜라 주식분할에 반대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대주주에게 접근해 프리미엄도 제공하고, 버크셔에 따로 떡값을 쥐여 줬음에도 정호준의 계산한 저울추는 생각했던 대로 기울었다.
* * *
정호준이 취미로 가지고 있는 영국 연고의 축구 구단 리버풀 FC는 1112시즌 결승전에서 첼시 FC를 만나 연장전 혈투 끝에 승리했고, FA컵 우승을 기록하며 더블이란 좋은 성적을 냈다.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무대와 함께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선망하고 꿈꾸는 무대다. 하물며 결승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루카스 수아레즈와 즐라탄 이브리히. 리버풀 FC는 어느 팀을 가든 팀의 주축이 될 게 분명한 선수들을 스트라이커로 데려다 놓고 포지션 경쟁을 시켰다. 결승전에 선발 멤버로 선택받지 못한 이의 원망을 받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버풀에 한 가지 기적이 잇따랐다.
준결승 1차전, 리버풀이 뮌헨의 홈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일찌감치 승리를 거둬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래서일까? 홈경기에서 패배한 뮌헨 선수들은 얀필드 원정경기인 2차전에서 거친 움직임을 자주 보였다.
인내심이 깊은 선수가 세계에 망나니라고 소문이 날 리 없잖은가?
결승전 무대에 뛰고 싶은 욕망에 루카스 수아레즈는 답지 않게 분노가 차오르는 걸 참고 참았지만 결국 터지고 말았다.
후반 83분.
거친 볼 경합 때문에 자리에 넘어진 루카스 수아레즈는 감정에 몸을 맡겼다.
끄아아아악!!
빠르게 달려가 자신을 거칠게 넘어트린 센터백 아나톨리를 팔뚝을 강하게 깨물었다. 수아레즈의 공격에 아나톨리는 팔을 붙잡고 쓰러졌고, 당연히 루카스 수아레즈는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구단 차원에서 루카스 수아레즈를 보호하긴 했지만 수아레즈의 기행 덕에 누구도 기분 상하는 일 없이 결승전을 치렀고,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리버풀 FC, 8번째 빅이어를 들어 올리다! 레알 마드리드 FC와의 빅이어 격차는 이제 1개.]
정호준이 영입해 온 뛰어난 선수들 덕에 리버풀은 밀란에게 보복당하지 않았고, 스페셜원의 팀도 물리쳤다. 그리고 이번에 첼시를 상대로 승리해 얻게 된 빅이어로 레알 마드리드 FC의 기록을 바짝 따라붙었다.
챔피언스리그 10회 우승.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덤 마드리스타는 언젠가 레알 마드리드가 이 기록을 깨 줄 거라 믿었으나,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기록을 리버풀이 턱밑까지 따라오자 위기감에 휩싸였다.
[발롱도르 위너 크리스티아니 로메로는 세계 최고의 이적료로 이적해 비싼 연봉을 받으면서 대체 뭘 하는 건가?]
[로메로의 이기심을 마드리드를 망치고 있다. 공을 몰아주는데 골을 못 넣는 게 이상한 것!]
챔피언스리그에서 날아다니긴 하나 팀이 받쳐 주지 못해 항상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로메로를 욕하는 황색 언론들이 등장했고, 레알 마드리드 팬 중 성격 급한 이들은 이런 황색 언론에 금방 현혹되었다.
세간에 로메로의 라이벌이란 인식이 강한 리오넬 메사 또한 비난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로메로만큼은 아니었다. 리오넬 메사는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유망주 팜 ‘라 마시아’에서 배출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작년에 그랬듯 이적시장이 시작되자마자 바르셀로나 FC와 레알 마드리드 FC는 리버풀 FC 선수들에게 이적 제의를 날렸고, 반복되는 역사에 분노한 정호준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빅클럽이라는 명성, 챔피언스리그 티켓, 그리고 돈이 전부인 2020년대와 달리 2010년대는 로망이 조금이나마 살아 있는 시기다.
구단주가 직접 협상에 나서거나 설득하기 위해 찾아오는 건 해당 구단이 선수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어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그에 정호준은 영국으로 날아가 재계약이 시급한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며 공을 치하했다.
계약 조건과 관련해서는 에이전트와 단장의 설전이 이어졌지만 어쨌든 전력의 누수 없이 재계약을 끝마친 후 트리오플의 경호를 받으며 브라질의 축구팀을 방문했다.
정호준의 목적지는 딱 두 팀. 상파울루주를 연고로 한 축구팀 상파울루 FC와 상파울루주에 위치한 도시 산투스를 연고로 한 산투스 FC. 이렇게 단 두 곳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함께 하며 월드 클래스 수비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는 키세마루를 1,300만 유로를 주고 영입했다. 러시아 기름부자의 첼시 인수, 정호준의 리버풀 인수, 왕자의 맨체스터 시티 인수가 겹쳐 선수의 몸값이 이전보다 더한 거품이 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아직 공격수가 아닌 이들에게는 조금 짠 경향이 있었다. 유럽 무대에서 제대로 증명한 게 없는 키세마루를 1,300만 유로나 주고 영입한다는 건 그만큼 리버풀이 키세마루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뭐 1,300만 유로는 언제든 지불할 수 있지.’
리버풀의 재정은 역대 최고로 충만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저조했던 클럽이 부활하며 성적을 거두면서 리버풀에게 실망했던 팬들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리버풀의 활약에 새로운 팬이 유입됐다. 성적과 팬에서 비롯된 프리미어리그 중계료, 챔피언스리그 수익, 광고비, 경기장 수익, 유니폼 판매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다 주었다. 정호준은 그 수익을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구단 스태프들과 보드진, 선수들에게 연봉을 지급하고 남은 돈은 모조리 킵했다.
바르셀로나가 감당했다고 알려진 네이에르의 천문학적인 이적료도 정호준의 호주머니에서 투입될 지원 없이도 감당이 가능했다.
세계 최고 부자라 알려진 정호준이 직접 찾아와 팀에 높은 이적료까지 안겨주자 키세마루와 키세마루의 에이전트는 계약서에 순순히 싸인했다.
문제는 팀과 의리를 지키고,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리오넬 메사와 함께 뛰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네이에르였다.
정호준이 네이에르를 설득하기 위해 시작한 첫마디는 바로 인정이었다.
“사실 우리 리버풀로 오는 것보다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게 네이에르 선수가 적응하는 데도 더 유리할 겁니다.”
한국이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던 것처럼 브라질은 포르투갈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다. 아니 식민 지배를 정한 기간은 일본보다 브라질이 더 길었다. 그래서일까? 독립 후 자국의 언어와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브라질인들은 지금도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스페인은 포르투갈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이베리아반도 내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와서인지, 두 언어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얼마나 공통분모가 많은가 하니,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배우지 않아도 천천히 이야기한다면 의미의 전달이 가능할 정도였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는 먹고 자는 문제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그게 해결된다는 건 이전과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있어 확실한 메리트였다.
“하지만 말이죠. 나는 네이에르 선수에게도 그들과 필적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 가다 보면 4~5년 내로 그들의 차지하고 있는 지휘가 탐이 날 겁니다. 그런데, 네이에르 선수가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에 소속되어 있다면 평생 그들을 넘을 수 없을 겁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이미 리오넬 메사의 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니 로메로의 레알 마드리드니까요.”
바르셀로나가 이전부터 네이에르에게 침을 발라 뒀다는 사실쯤은 이미 파악한 지 오래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네이에르의 재능을 칭찬하면서도 야망을 부추겼다.
“우리 리버풀은 최근 7년 동안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네 번이나 들어 올린 클럽입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임을 증명하는 상, 발롱도르를 타고 싶다면 우리 리버풀로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