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94)
비전이 없어서 매각하는 거란 걸 돌려 말할 뿐, 언제 주식을 매각하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눈치 줬으면 됐지. 내가 거기까지 참견할 필요는 없어. 내가 언질을 준 시점보다 주가가 더 높게 가면 그건 그것대로 원망을 받게 될 거야.’
JHJ Capital이 투자를 했다고 유명세를 타 1회차 때보다 더 큰 명성을 얻게 된 클럽폰이다. 내려갈 회사는 내려간다는 말처럼 언젠가는 내려갈 주식이지만 주가가 정호준이 기억하고 있던 주가보다 더 높은 곳까지 찍고 내려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괜히 지금 팔라고 이야기했다가 정호준이 기억하던 것 이상으로 주가가 상승한다면 C&L인베스트먼트나 리처드 캐피탈의 경영자들은 정호준이 괜한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돈을 더 벌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은 불행이나 실수를 범하기 전까지 자신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 동물이니 말이다. 원망을 받지 않기 위해 개입했는데, 똑같이 원망을 받으면 끼어든 의미가 없었다.
‘언제 매각할지 본인이 선택하고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자신을 붙잡고 이야기를 더 나누고자 하는 이삭 리처드를 보며 속으로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떠나는 정호준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이삭 리처드는 자신과 함께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은 타사의 트레이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드워드 클락 트레이더,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정호준의 JHJ Capital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긴 하지만 이삭 리처드도 미국 금융가에서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시간을 내달라는 데 단호하게 뿌리친다는 건 금융밥 먹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에드워드 클락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비행기 시간이 오후 5시쯤이니 그전까지는 시간 널널합니다.”
* * *
에드워드 클락이 동행을 수락하자 리처드는 현재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박스를 찾아 이동했다. 스타박스는 미국에서도 국민 커피집으로 스트리트 한 블록당 한 곳 이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오래 걷거나 하는 일 없이, 빠르게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동했다. 각자 마실 커피를 구매한 뒤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이삭 리처드는 질문을 던졌다.
“정호준 대표의 이야기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거짓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유는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묻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클락은 순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거짓을 이야기한 거라 보기엔 JHJ Capital은 정말 주식을 던지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뭐, 이건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사안이긴 하지만요.”
“그렇군요.”
“그리고 JHJ Capital의 자금은 모두 정호준 대표의 개인 자금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아무렇지 않게 감수하는 이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갔을 리 없습니다. 정호준 대표가 감정이 정말 상했을 수는 있지만, 감정 다툼 자체는 그저 엑시트를 의심받지 않기 위한 구실 같습니다.”
오너나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한다는 건 회사에 악재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매각을 하는 다른 이유를 만드는 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JHJ Capital이 설립한 유령회사들이 주식을 매수하는지를 확인하려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시장을 주시하며 확인해 봐야겠지만, 다른 수를 쓰는 게 아닌 진실로 엑시트를 진행 중이라면 따라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호오, 완벽합니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에드워드 클락이라고 했나요?”
“예, 그렇습니다!”
“혹시 우리 회사로 이직할 생각 있나요?”
클락의 능력이 꽤 준수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린 이삭 리처드는 에드워드 클락을 꼬셨다.
“지금 받는 연봉보다 30%는 더 지급해 주겠습니다. 여기저기 눈치 보면서 줄 서느라 힘들지 않아요? 사내에 정치가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C&L만큼 스트레스를 줄 정도는 아닐 겁니다. 어떤가요?”
갑작스러운 스카우트 제안에 에드워드 클락은 잠깐 멍을 때렸다.
기본적으로 리처드 캐피털이 C&L인베스트먼트보다 덩치가 더 컸고, 이삭 리처드의 말대로 C&L인베스트먼트는 꽤 큰 문제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머리가 두 개라는 것.
외부 투자를 받긴 했지만 마지막 컨펌의 권한은 이삭 리처드에게 있는 리처드 캐피털과 달리 C&L인베스트먼트는 공동창업자인 두 대표가 종종 의견차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내 정치는 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거였고, 머리가 두 개다 보니 C&L인베스트먼트의 내부 상황은 실로 복잡했다. 일 외적인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 * *
정호준은 실리콘밸리나 언론에 클럽폰 CEO인 조던 메이슨과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JHJ Capital은 정호준이 공언한 대로 상장하자마자 매수량을 고려해 가며 기술적으로 주식을 던졌다.
-JHJ Capital이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는 건 그만큼 클럽폰에 비전이 있다는 소리다.
-클럽폰의 성장은 이제 막 시작한 상태다. 아이가 완전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
정호준의 이탈이 회사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조던 메이슨은 언론을 활용했다. 더 정확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론사(신문, 잡지, 매체)를 활용해 지분 매각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조던 메이슨을 도왔다.
정호준의 도움이 헛되지 않았는지 JHJ Capital의 꾸준한 매도에도 불구하고 클럽폰이 나스닥 시장에 진입한 첫날 클럽폰의 주가는 33.97달러까지 상승했고, 상장 후 둘째 날인 10월 14일 금요일에도 상승세는 둔화됐지만 36.41달러까지 꾸준하게 상승했다.
정호준의 사전 작업과 조던 메이슨의 발버둥 덕인지 주가 바뀐 17일 월요일에도 큰폭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향 그래프를 이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클럽폰 엑시트를 담당한 팀은 순조롭게 주식 매각을 이어 갔고, 어느덧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가 열리는 10월 26일이 다가왔다.
* * *
본래 서울시장에 당선될 무소속 출신 인권변호사 정선준은 강현태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출현했음에도 자신의 소신대로 출마를 선언했다.
강현태라는 변수의 출현으로 김철수는 정호준의 1회차 때만큼 전국민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론 조사에서 30% 정도 되는 지지율을 보이긴 했다. 권좌에 오르기보단 뭔가 킹메이커 이미지가 강한 김철수는 이번에도 선거의 키로 작용하게 되었다.
민주당에 적을 둔 이부터 야권으로 분류되는 정선준과 강현태를 한 명씩 만나 본 김철수는 1회차 때처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강현태를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약자에 편에 서서 싸워 왔다는 이미지를 가진 정선준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강현태는 이미 여러 결과물을 보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선준을 민다고 강현태나 여권에서 내놓은 후보를 이길 것 같진 않았기에 이기는 쪽에 힘들 실어 주었다.
김철수의 지지 선언에 힘입어 열심히 유세 활동을 다녔고, 지지율 반등에 실패한 정원순은 중도에 하차했다. 이후 강현태 선거 캠프는 잡음이 몇 가지 발생하긴 했으나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하며 선거운동을 마쳤다.
2011년 10월 26일.
지금까지의 노력을 평가받는 자리가 도래했다.
보수쪽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선거는 한쪽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강현태: 2,912,576(66.34%)
윤경혜: 1,313,789(29.92%)
관심이 가는 후보가 많아서일까? 투표수가 4,066,557표에 그쳤던 1회차 때와 달리 투표율은 50%를 넘기며 4,389,892명이나 표를 선사했고, 김철수의 지지 때문인지 강현태의 지지율을 무려 65%를 넘겼다.
-강현태 압승! 강남권에서조차 지지를 이끌어내다.
동네 똥개가 선거에 나와도 보수당을 등에 업으면 찍어 주는 경향이 강하단 우스갯소리가 존재하는 강남에서조차 많은 시민들이 강현태에게 표를 던져 주었다.
강현태의 압승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들과 강현태의 영향력에 놀란 보수, 진보 진영을 뒤로한 채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를 받은 강현태는 언론 관계자들과 만나 당선 인터뷰를 진행했다. 10월 31일 인수인계 이뤄질 인수인계를 기다리며 덕담을 주고받고 있을 무렵, 기다리던 연락이 당도했다.
10월 27일 목요일 아침 9시 30분, 시카고 시각으로는 26일 오후 7시 30분쯤 정호준은 강현태에게 연락을 넣었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강현태 서울시장님!”
“감사합니다. 다 정 대표님 덕분입니다. 정 대표님이 계획하신 대로 제가 선거에서 승리했네요.”
“아무리 좋은 칼도 어린아이에게 들리면 쓸모가 없듯, 시장님께서 저를 의심하지 않고 믿어 준 덕분에 지금의 커리어를 얻어 낸 거고, 선거에도 승리한 겁니다.”
정호준은 강현태가 자조에 빠지지 않도록 말을 잘 듣는 것도 능력임을 어필했다.
“이전처럼 부정이 보이면 고발하는 정도지, 의원님이 서울시장직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제가 따로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의원님을 꼭두각시로 세워 둘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
침묵을 유지하는 강현태를 뒤로하고 정호준은 자기 할 말을 이어 갔다.
“미국 정부에서 돈을 푸는 양적완하라는 정책에 힘입어 다른 힘 있는 국가들도 양적완하 정책을 실시할 겁니다. 그에 맞춰서 시장 임기를 진행하시면 좋을 겁니다. 다시 한번 당선 축하드립니다.”
* * *
기대만 못 했던 평가를 받았던 회귀 전과 달리 클럽폰의 IPO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20달러 초중반에 안착한 회귀 전과 달리 종종 40달러를 넘기는 30달러 후반에 연착륙하는 듯한 보였다.
12월 초.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정호준은 클럽폰 엑시트 보고서를 전해 받았다. 보고서를 전달하는 건 정호준이 가장 편한 조나단이었다.
공모로 내놓은 주식을 제하면 JHJ Capital은 총 1억 900만 주를 보유했었다.
“39억 1,200만 달러라. 평균 매도가 35.89달러네요.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공모에 내놓은 주식은 3,000만 주. 공모가는 25달러였으니 매각금은 7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이를 합산하면 JHJ Capital은 클럽폰 엑시트로 총 46억 6,2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한 셈이다.
“460배를 먹은 건가요?”
“대표님이 클럽폰에 투자한 게 1천만 달러 정도니. 얼추 그럴 겁니다.”
대박보다 쪽박을 치는 일이 많은 벤처 투자가 2020년에도 존재하는 이유는 이처럼 성공만 하면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4분기 영업이익에 대한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정리를 마쳐서 다행이네요.”
“예, 이번에도 대표님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클럽폰은 IT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있고 인력을 갈아 넣긴 해야겠지만, 하고자만 한다면 유니톡과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JHJ Capital 내에선 클럽폰의 지분을 매각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목소리는 정호준의 결정에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클럽폰 회계팀에 심어 둔 정보원을 통해 들려온 소식은 주식을 빠르게 뺀 게 현명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세금 처리 깔끔하게 마치고, 주식 투자팀에 넘겨주세요.”
이번에도 정호준이 맞았다는 펙트만 확인한 채 JHJ Capital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열심히 근무를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