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92화 (292/335)

29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92)

정호준의 응원(?)을 받는 강현태 의원을 포함해 서울시장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10월에 있을 보궐선거를 위해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강현태 의원의 소속은 거대 정당에 입당하지 않은 무소속 상태였으나 선거 유세는 당을 등에 업은 이들 못지않았다.

돈은 강현태 의원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라 불리는 곳에서 전관예우를 써먹기 위해 부장판사로 은퇴한 그에게 고액 연봉을 지급했고, 그렇게 벌어들인 자산을 정호준이 3배 이상 불려 줬다. 모르긴 몰라도 정호준이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어 정말 대선 후보가 된다면 대선 후보의 자산을 공개하는 코너가 진행될 때 시끄러워질 거다.

기업가도 아닌 개인이 가지기엔 워낙 막대한 자산일 테니 말이다.

‘김명호 대통령이 강현태를 부러워할 수도 있겠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란 직위조차 세를 불리고 자산을 키울 기회로 생각했던 이였으니 자신이 발버둥을 치며 겨우 얻어 낸 것을 아무렇지 않게 얻는 강현태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정호준이 말했던 대로 강현태가 중견기업 회장이 아니고선 가질 수 없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 돈을 쏟아붓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개 지역구 대표를 뽑는 총선 때도 선거 비용으로만 수십억이 사용된다. 일개 지역구도 그렇거늘, 하물며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시장이다. 십수 개의 지역구에서 동시에 유세 활동을 이어 나가는 데 들어갈 비용은 최소로 잡아도 100억은 넘길 게 뻔했다.

1조를 가진 사람에게도 1천억을 가진 사람에게도 100억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돈이다. 돈이 나간 주머니가 내 주머니였다면 더더욱.

강현태가 정당을 등에 업은 후보들처럼 선거운동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건 당장에는 유세 비용이 강현태의 주머니에서 나갈지 몰라도, 결국은 국가가 내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즉 ‘선거 비용 보전 제도’라는 법을 믿은 것.

선거 비용 보전 제도는 앞에 붙은 말마따나 공직선거 때 후보가 사용한 선거 비용을 국가가 대신 지불해 주는 제도다. 물론 국가가 호구도 아니고 모든 후보에게 돈을 대줄 수는 없기에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 놓긴 했지만 말이다. 유효 득표수의 10% 이상을 얻었으면 선거에 사용한 비용의 절반을 유효 득표수 15% 이상을 획득한 후보에게는 선거 비용 제한선 안에서 전액을 보전받는다.

얼핏 들으면 돈 없는 유력자나 군소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것 같지만 사람을 보고 찍는 게 아닌 당을 보고 찍는 경향이 강한 게 대한민국이다. 경쟁할 깜냥이 되지 않으면 아예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국은 두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조항이었다.

어쨌든 강현태는 돈을 쏟아부으며 정호준이 깔아 놓은(?) 레일을 따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다만 정호준은 그런 강현태의 노력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정호준이 살아가고 살아갈 나라 미국의 정치판에 엮였기 때문이다.

* * *

정치 10단, 정치력의 화신이라 불린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 중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4선을 한 대통령이다. 4선 대통령이 가지는 엄청난 파워를 체감한 미국 정치인들은 1951년 헌법을 수정해(제22차 수정 헌법) 3선을 법으로 금지해 버렸다.

2011년 첫 번째 임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릭 오리하에게는 3선 금지가 상관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만약 법으로 용납된다면 과연 오리하가 3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

미국인에게 사랑받는 대통령 탑 4에 꼽히는 만큼 만약 3선이 가능하다면 됐을 확률이 컸다.

2011년 4월. 오리하는 일찌감치 재선에 나갈 것을 천명했고, 오리하가 재선에 나가겠다고 천명한 뒤부터 민주당에서는 분기마다 한 번 이상 오리하의 자선 파티를 개최했다.

민주당에서 자선 파티를 개최하는 목적은 명확했다. 첫째는 재선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그리고 둘째는 자선 파티를 통해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지지자들의 민심을 다독이고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금융 세력의 확실한 한 축이 되어 가고 있고, 주고받았다곤 하지만 오리하의 덕을 많이 본 정호준으로서는 파티에 참석해야만 했다.

‘이렇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로 낙인찍혀서 좋을 건 없는데.’

1회차의 삶에서 한국에서조차 보수, 진보 구분하지 않고 잘못한 게 있으면 욕했던 게 바로 정호준이었다. 40년 가까이 살았던 한국에서조차 정치색이 어디로 치우치지 않았거늘 아직 거주한 지 10년도 채 안 된 나라에서 어느 당을 지지한다는 생각을 가질 리 없었다.

미국에서 자신의 정치색을 이야기하는 건 한국에서 자신의 정치 색깔을 드러내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논란거리가 안 될 리 없었다.

리스크가 있는 만큼 챙겨 갈 게 있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비서진과 전략팀, 그리고 아리아의 도움을 받아 참석자 명단을 하나하나 공부했다. 민주당의 자선 파티에는 IPO를 앞두거나 IPO를 할만한 잠재력을 지닌 회사의 창업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눈앞의 남자는 한국인인 정호준은 잘 모르지만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결코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정호준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인연도 있었고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링크온의 CEO 레논 호프먼입니다.”

JHJ Capital 레이나 팀장이 엑시트를 마친 회사의 창업자이자 링크온 외에도 실리콘밸리에서 다수의 회사를 창업하며 창업왕으로 불리곤 하는 거물이다. 정호준은 잘 모르지만 훗날 세계를 크게 놀라게 할 AI를 출시할 회사에 자금을 투자하며 창업 초창기부터 함께하는 남자였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이번에 링크온 IPO 성공적으로 끝났다죠? IPO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100달러를 돌파한 뒤 피크를 찍고 꾸준하게 주가가 떨어지며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링크온의 주가는 80달러 선에서 머무르고 있다. 하락세는 조금씩 완만해지고 있었고, 전문가들은 주가가 60달러쯤에서 안착할 거로 평가하고 있었다.

정호준은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JHJ Capital의 개입 때문에 본래보다 적은 주식을 팔았고 수익 실현을 훨씬 적게 하여 바뀐 미래의 상황을 고려하면 정호준의 말은 상대를 메긴다고 오해하기 충분한 상황이었으나 레논 호프먼은 의외로 쾌활했다.

“실리콘밸리에 나도는 소문과 달리 깔끔하게 엑시트를 하셨더군요. 당했다면 당했네요.”

레논 호프먼은 정호준을 비아냥대기보단 정말 그럴 줄 몰랐다는 투로 말했다.

정호준이 미국 IT 역사의 큰 발자국을 남긴 엔플의 주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주식을 대량 매입해 대주주로 등극하고, 창업한 회사를 인수하고 창업자들을 쫓아냈다는 소문은 실리콘밸리에선 유명했다.

“이번 엑시트는 제가 아닌 저희 직원들의 주도하에 이뤄진 거라서요. 링크온은 가치가 높은 회사니 조정이 끝나면 다시 가치가 오를 거라 믿습니다.”

정호준은 레이나 팀장의 분석을 그대로 읊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호프먼은 정호준의 칭찬에 반색하는 기색을 보였다. 거물 중의 거물로 부상한 정호준과 적대하길 원치 않는 모습에 정호준도 예의로 화답하며 대화를 이어 갔고, 이윽고 레전드리그 이야기가 나왔다.

“레전드 리그 챔피언십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게임에 꽤 큰 애정을 가지시더군요.”

정호준의 레전드컵 우승은 실리콘밸리에서는 꽤 화제가 된 사안이다.

“제가 게임을 좋아해서요. 주최자가 우승한 꼴이라 조금 모양이 빠지지만, 그래도 우승을 거머쥐어서 기쁘긴 하더군요.”

온갖 치사한 짓이 동반되긴 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정호준이 자신이 개발에 참여하고 돈을 투자한 게임에 애정을 갖고 열심히 플레이에 거머쥔 우승으로 비쳤다.

실리콘밸리는 정호준이 우승한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선후 관계야 어쨌든 막연하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서 돈을 쏟아부으며 남의 것을 빼앗는 냉정한 사업가가 아닌 정말 자신이 투자한 것에 애정과 관심을 쏟아붓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정호준은 박기태와 추억을 쌓고, 혹시나 박기태가 방송인으로 직업을 전환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한 행동이지만 의외의 스노우볼이 구른 셈. 정호준은 착각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알아서 그에게 좋은 방향으로 착각해 주는데, 나서서 굳이 잡을 이유는 없잖은가?

“호프먼,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하나?”

“정 대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네. 소개하겠습니다, 저랑 친분이 좀 있는 엘튼 머스크입니다.”

“그렇게 소개하지 않아도 돼. 난 정 대표님과 몇 번 마주친 사이거든. 이번이 네 번째로 뵙는 거죠? 정 대표님의 투자 성공 이야기 잘 듣고 있습니다.”

훗날 공화당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세간에 보일 머스크지만 2010년대에는 IT 사업에 여러 발을 걸치고 있어서 그런지 민주당의 자선행사에 자주 얼굴을 보였다. 전기차 회사인 테슬러 투자를 위해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도 오리하 때문에 민주당의 행사에 몇 번 참석했을 때 종종 인사를 나눴다.

“저도 머스크 씨의 행보는 종종 전해 듣고 있습니다.”

2010년 6월 29일 주당 17달러라는 가격에 IPO를 실시해 테슬러는 2011년 8월 30일 현재 25.03달러로 장을 마쳤다. 테슬러의 주식 발행 수가 6억 3,487만 주가 넘는 것을 고려하면 상장 후 8달러나 상승한 건 나름 성장을 했다는 방증이다.

“과거 테슬러에 관심을 주셨는데, IPO 때 주식 매수를 안 하셨던데요?”

엘튼 머스크는 공장까지 찾아와서 투자를 하겠다고 했으면서 주식을 매수하지 않은 정호준의 행보에 의문을 품어 이유를 물었다.

“요즘 우리 JHJ Capital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요. 조심하고 있습니다.”

IPO 전에 적당한 자금을 투자해 지분을 받아 두는 거야 묵힐 만한 가치가 있지만 IPO를 실시한 지금은 그때보다 수배는 많은 돈을 투자해야만 한다. 미래를 보면야 투자할 가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 투자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말을 직설적으로 하진 않았다.

“머스크 씨도 우리 JHJ가 지분을 확보하는 걸 원치 않아 했잖습니까?”

머스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투자해도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막았다.

창업왕이라 불릴 정도로 실리콘밸리에 발이 넓은 레논 호프먼은 꽤 괜찮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발이 넓은데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정호준과 돌아다니며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이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가 소개해 준 사람들은 몇몇은 비서팀이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맺으라고 강조한 이들이었고, 개중 제일 거물은 샘 앨리슨이었다.

“이 친구는 샘 앨리슨이라고 ‘Your Loot’라는 회사의 창업자입니다. 이번에 벤처캐피탈 회사인 ‘Z Combinator’의 CEO에 스카우트됐다더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샘 앨리슨입니다.”

샘 앨리슨. 정호준이 사망한 후의 역사로, 세상을 놀라게 할 ‘Chating GPT’란 AI를 개발하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Z Combinator’를 2010년대 최고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및 액셀러레이터로 성장시킬 거물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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