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9)
정호준의 사무실로 불려가서 지시를 받은 테일러는 정호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곡물 선물 담당 팀은 테일러의 주도하에 보유 중인 설탕 재고를 털기 위해 움직였다.
미국과 유럽, 중국, 오세아니아 국가들에 매각할 재고를 골고루 나누었다. 어느 한쪽이 왕창 가져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8월이 시작되자마자 가지고 있는 설탕 선물을 털 거란 계획을 공유받고 7월까지 매일같이 선물 가격을 확인하며 동향 파악을 철저히 했던 테일러팀의 팀원 하나가 맡은 일을 처리하면서 조심스레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대표님이 너무 급하게 선물을 정리하는 건 아닐까요? 조금 더 지켜봐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2010년 12월 설탕 선물지수는 35포인트를 뚫으며 피크를 달성했다. 그러나 35의 고지를 점령한 게 거짓말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하락세를 보여 줬다. 설탕 선물지수는 2011년이 시작되기 무섭게 폭락을 이어갔다. 중간중간 반등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락세를 띠었고, 하락세는 2011년 5월 25포인트 선이 깨지며 24단위에 들어선 뒤에야 멈췄다.
5월 말부터 반등을 시작한 설탕 선물지수는 6월과 7월. 두 달간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슬슬 조정을 시작하는 것 같지만, 지금 시점을 넘기면 더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23포인트까지 지수가 하락했을 때 매각을 했더라도 JHJ Capital이 2010년 선물계약을 체결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한 수익을 낸 셈이다. 2개월 동안 반등을 이어 간 지금 선물을 털면 천문학적인 수익으로 변모했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게 그렇잖은가? 만족이란 게 존재할 리 없었다. 게다가 사람이란 동물은 벌었다고 생각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주머니에 들어온 돈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얼마나 욕심을 참아 내느냐, 얼마나 가격 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트레이더들이라고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테일러팀 트레이더들의 머릿속에는 35포인트까지 상승했던 설탕 선물지수와 당시 선물을 정리하면 벌었을 수익이 아른거렸기에 나온 아쉬움이었다. 35포인트에 매각한 뒤 벌어들일 수익의 대부분은 회사의 주인이나 자금의 주인인 정호준의 주머니로 가겠지만.
트레이더들에게도 부스러기는 떨어진다. 지금 정리하는 것과 34~35포인트를 돌파한 후 매각해 보너스를 받는 것. 어느 쪽이 더 많은 보너스를 받게 될지는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다.
“결정을 내리는 건 대표님이다. 대표님께서 팔라고 하셨으면 파는 거야.”
테일러가 보스인 정호준의 지시가 최우선이라며 욕심이 생긴 부하들을 달래고 있을 무렵, 그의 핸드폰으로 짧은 문자가 당도했다.
-지금부터 설탕 선물 매각을 시작해 주십시오. 선물 가격에 큰 변동이 일지 않도록 천천히 고가에 매각해 주세요.
* * *
자신을 불러다 사전에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7월 말부터 매각을 시작하란 지시가 내려왔음에도 테일러는 별말 없이 정호준의 지시를 따랐다.
홍콩선물시장, 런던선물시장, 싱가포르 거래소, 시드니, 시카고 등 세계 전역에서 미국과 영국의 선물지수를 토대로 체결한 선물계약을 차근차근 매도했다.
30.89, 30.88, 30.84, 30.79…… 28.88, 28.79… 24.19.
정호준이 선물을 털지 않았아도 설탕 선물지수는 8월 이후로 다시금 하락세로 접어들었을 거다. 설탕 선물 계약을 잔뜩 체결한 JHJ의 유령회사가 설탕 선물을 매각하기 시작하자 지수의 하락세에 불이 붙었다.
24.19.
테일러가 책임자로 선정된 JHJ Capital 곡물 선물 담당 팀은 8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설탕 선물 계약 정리를 모두 마쳤다.
“설탕 선물 모두 정리했습니다.”
정호준이 테일러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때 설탕 선물지수는 ‘23.29’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설탕 선물지수 평균 매도 시점은 27.89.
16.27달러에 계약을 체결한 것을 계산하면 11.62포인트나 이익을 보게 되었다.
-186억 7,200만 달러.
50개가 넘는 유령회사들로 나뉜 상태지만, 어쨌든 전부 합산하면 원금을 포함해 203.72억 달러를 보유하게 되었다.
186억 7,200만 달러는 세금을 제하지 않은 금액이니, 선물 수익에 붙을 세금을 차감하면 액수가 줄긴 할 거다. 그러나 세금을 계산한다 하더라도 JHJ Capital이 140억 달러 이상 벌었을 거란 현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선물 계약 정리를 마친 테일러 팀의 사무실에 무거운 정적이 생겨났다.
“돈을 이렇게 쉽게 벌어도 되는 건가?”
머릿속으로 예측을 하는 것과 실제로 계좌에 찍힌 잔고를 확인하는 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차이가 컸다. 천문학적인 숫자에 신입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적막한 공간에선 울림이 꽤 컸다.
그러나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울림에 별다른 반박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심정적으로는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
정호준이 2008년에 신용부도스와프로 크게 해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테일러만이 서둘러 정신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남았잖아. 멘탈 잡고 프로답게 끝까지 마무리 잘하자.”
테일러는 일종의 현자 타임이 온 직원들을 다독이며 JHJ Capital의 유령회사가 사들였던 40억 달러치 설탕 현물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2010년 설탕을 사들였을 때와 비교해 설탕의 가치가 약 20% 이상 상승한 상태지만 소매, 도매, 유통의 문제로 10% 조금 넘는 수익을 내는 선에서 재고 정리를 마쳤다.
JHJ Capital의 계좌에 45억 달러가 추가됐고, JHJ Capital은 유니버셜 뱅크에서 대출받아 모두 소진했던 300억 달러의 3분의 2를 소유하게 되었다.
* * *
2011년 9월 초. 세금 정산이 아직인지라 계좌에 248억 7,200만 달러가 입금됐다는 보고를 받은 정호준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출을 갚을까? 아니면 그냥 이자를 낼까?’
정호준은 현재 유니버셜 뱅크에서 300억 달러를 대출받은 상태다. 주식 보유만 놓고 보면 유니버셜 뱅크 자체가 정호준의 금고나 다름없었으나, 대한민국 재벌들처럼 자기 곳간에서 돈을 빼듯 아무렇지 않게 빼먹을 수는 없었다.
횡령 같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된 격식에 맞춰 돈을 빌렸다.
초저금리 시대가 개막하고 주식담보 대출이라는 형태로 돈을 대출받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긴 했으나, 1년에 9억 달러(한화 1조 800억 원)라는 이자를 지불해야 했다.
“갑작스레 대출 연장이 안 되는 상황은 절대 벌어지지 않겠지만.”
유니버셜 뱅크 지분의 70%를 JHJ Capital 보유한 상태고, 가족인 처조부 찰스 로슬러의 곳간 DT그룹은 유니버셜 뱅크 지분 10%를 보유한 대주주다. 연준이 쥐고 있는 20%의 지분도 자세히 살펴보면 30% 이상이 로슬러 가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이 말은 즉, 유니버셜 뱅크가 망하지 않는 이상 대출 연장에는 문제 생길 게 전무하단 의미였다.
아니, 설혹 망하더라도 돈을 갚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정호준에게 있었다.
게다가 사실 정호준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이자의 일부는 ‘배당’이란 이름으로 다시 정호준의 주머니로 돌아올 돈이다.
그저 빚 자체를 꺼리는 소시민적인 사고방식이 아직 남아 있어서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었고, 결론은 금방 나왔다.
‘이자를 더 내더라도 돈을 더 빌리면 더 빌렸지, 대출을 갚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지금부터 약 7~8년. 양적 완화라는 정책에 힘입어 잠재력 있는 기업들의 가치가 크게 상승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 * *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시피 정말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면 현금을 그대로 들고 있는 행위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소시민적인 사고방식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호준은 돈이 생긴 것을 확인하자마자 새로운 투자를 위해 움직였다.
정호준은 조나단을 사무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번에 설탕 선물 정리하며 확보한 자금을 투자할 곳을 결정해서 불렀습니다.”
정호준의 말에 조나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조나단을 보며 정호준은 투자할 기업 명단이 적힌 서류 봉투를 건네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뭐로 할래요?”
“따듯한 라떼로 부탁드립니다.”
정호준은 사무실 한쪽 구석에 배치한 커피머신을 향해 이동했고, 조나단은 정호준이 건넨 서류 봉투를 열어 대충이나마 정호준이 투자를 결정한 기업의 면면을 확인했다.
“여기 따듯한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억만장자라는 카테고리로도 묶기 어려운 정호준이 타준 커피다. 나름 호사라면 호사다. 팀장급들도 어쩌다 한 번 겨우 얻어 마시는 정호준 메이드 커피를 받아 든 조나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적시곤 입을 열었다.
“명단 확인 마쳤습니다. 이번 테마는 식품기업입니까?”
“예, IT와 OTT, 신사업인 커피와 전통강자(나이크와 콜라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마쳤잖아요? 그러니 남은 건 식품기업이죠.”
“맥도x드나 야미 브랜드(KFCB의 모회사)에 투자하는 건 저도 공감합니다. 전통의 강자고 매출이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니까요.”
맥도x드는 코x콜라에 투자 중인 월가의 전설 에릭 버펫이 선택한 패스트푸드 사업체였고, 야미 브랜드는 그 맥도x드와 옛날 옛적부터 경쟁을 이어 간 경쟁자다. 여기까지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할리뇨 멕시칸 그릴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할리뇨 멕시칸 그릴은 멕시코 음식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회사다. 또띠아나 타코와 같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텍스멕스(부리또. 엔칠라다 등), 전통 멕시코 음식 등을 판매했다.
설명만 들으면 큰 문제 없는 기업처럼 보이지만 할리뇨 멕시칸 그릴은 위생적인 문제가 종종 발생하는 기업이었다.
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도 종종 음식 사업을 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식중독 사태가 벌어지곤 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위생 리스크가 절정에 달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3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한 할리뇨 매장에서 식사한 약 20명의 고객이 A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4월에는 오하이오주 켄트의 할리뇨 매장에서 400명 이상의 고객들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통증을 호소했었다. 2009년 2월에는 미네소타주 애플밸리의 할리뇨 매장에서 캠필로박터 제주니균이 감염된 음식을 제공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 번은 지점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꾸준하게 계속되는 건 할리뇨 멕시칸 그릴이란 프랜차이즈의 공급망이나 시스템 문제였다.
조나단이 무엇을 충고하려는지 파악한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위생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래서 할리뇨가 망했습니까?”
정호준이 지분을 매입하려고 계획 중인 야미 브랜드는 할리뇨 멕시칸 그릴의 경쟁회사를 자회사로 운영 중이지만, 몇 번이고 위생 위기가 닥쳤음에도 완전한 대체재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그건.”
미국 멕시칸 푸드 업계에서 할리뇨 멕시칸 그릴의 영향력이 너무 막강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나단은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고, 조나단이 입을 열지 않자 정호준이 명확하게 조나단이 말하지 않은 답을 이야기했다.
“가격이든 맛이든. 할리뇨를 대체할 만한 기업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투자하는 겁니다.”
앞으로 주가는 꾸준히 상승할 거고 위생 리스크가 터져서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결국에는 회복하게 될 거다. 배당은 꾸준하게 나올 테니, 아쉬울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