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88화 (288/335)

28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8)

스웨덴은 북유럽에 위치한 국가로, 미국의 인접국인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지리상 인간이 살아가기엔 좋지 못한 기후를 지닌 국가다. 하지만 1년 365일 매일이 지옥이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스웨덴에도 사람이 살기 좋은 시기가 존재한다.

6월에서 9월. 조금 더 욕심을 내면 5월 말부터 10월 초, 여름이 오고 가는 시기 유일하게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 도래한다.

레전드 리그 월드 챔피언십이 개최되는 6월 중순은 그야말로 관광을 즐기기도 딱 좋은 시기였다.

리오 게임즈는 그들이 주도하에 나눈 예선을 통과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해 스웨덴으로 초대된 사람들에게 한 가지 서약서를 받아 냈다.

-안전 서약서.

서약서의 주된 내용은 그들이 머무는 호텔이나 대회가 개최될 ‘DreamHack’를 제외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리오 게임즈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면피용 계약서였다.

스웨덴의 치안은 유럽에서도 나쁜 것으론 손에 꼽혔기에,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책임소재를 따지기 시작하면 복잡해질 수 있다. 설마 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일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련한 계약서였다.

서약서에 서명을 받은 의도는 혹시 모를 책임소재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하나 더 있었다.

‘이 계약서 때문에 조금이나마 압박감을 느껴도 좋고.’

자신이 초대받은 곳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며 일종의 프래셔를 주기 위해서였다. 안전에 둔감하거나 여행을 다닌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는 소용없는 수작이지만, 해외여행 경험이 없거나 적은 이들과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위축되기 충분한 수작이었다.

처음 방문한 곳, 해외에 나온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두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사람은 위축되면 자신이 가진 기량 전부를 쏟아부을 수 없게 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실력으로 승부가 나겠지만, 치사할 정도로 실력 외의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한 채 대회가 개최되었다.

* * *

레전드 리그라는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기에 레전드 리그 월드 챔피언십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대회에 걸린 상금이 커지고 이벤트 개최 전 열리는 기념 공연에 초청되는 면면들이 업그레이드됐었다.

그랬던 1회차 때와 달리 대회가 처음 개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축하 공연을 맡은 면면들은 실로 화려했다.

여성 가수 중 독보적인 입지의 레이나 스위프트나 2010년 빌보드 총결산에서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린 래퍼 드레이크나 레이나 스위프트 못지않게 2010년대 핫했던 레이디 지젤 등이 오픈 공연을 맡아 주었다.

그런데 DreamHack에 모습을 드러낸 유명인은 축하 공연을 맡은 가수들 외에도 존재했다. 할리우드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배우들은 물론이고, 탑급으로 분류되는 이들도 찾아와 자리를 빛내 주었다. 덕분에 정호준은 경기를 준비하다 말고 잠깐 인사를 나눠야 했다.

“톰, 미국에서 스웨덴까지 거리가 상당할 텐데,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습니다.”

“정 대표님께서 심혈을 기울인 이벤트인데 당연히 참석해야죠. 저도 레전드 리그 좀 해 봤습니다. 게임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잘 만든 게임이 같았습니다. 재밌더군요.”

“재밌게 플레이했다니 다행이네요.”

입에 발린 소리든 진심이든 스웨덴까지 날아와 자리를 빛내 준다는 것 자체가 JHJ Capital이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알려 주는 거였고, 성공률이 높은 편이 아닌 영화 투자와 관련해서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줄곧 신화를 써 내려가는 SSL Capital이 할리우드에서 가진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선수로도 참석한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의 건승을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즐기다 가시길!”

16강이든 결승이든 먼저 2승 하는 쪽이 승리하는 3판 2선승제로 토너먼트가 개최되었고, 선수들은 리오 게임즈가 미리 준비해 둔 두 곳에서 16강 경기를 치렀다. 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호준의 팀 KnAA는 중간쯤 경기하도록 일정을 잡아 두었다.

* * *

정호준이 사전에 준비해 두었던 수작들이 통했던 건지 첫날 16강에서 2: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8강과 4강이 동시에 진행되는 둘째 날에도 패배 없이 전승 스트레이트로 결승에 진출했다.

첫날 16강에서 KnAA가 완승한 것이 정호준의 사전 준비가 큰 몫을 했다면, 둘째 날 진행한 8강과 4강에서 전승행진을 이어 간 데는 정호준의 또 다른 준비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무슨 준비를 했냐고?

“다들 분석 자료 읽어 봤지? 우승까지 단 한 걸음 남았어. 끝까지 힘내자.”

축구도 야구는 몸을 쓰는 스포츠지만 나름의 분석과 통계가 끼어 있었다. 정호준은 시카고 컵스와 리버풀 FC의 통계팀과 분석팀 직원을 각각 한 명씩 데려와 4명으로 구성된 분석팀을 꾸렸고, 이들은 상대팀 선수가 논타겟 스킬을 어느 방향으로 피하는 경향이 짙은지를 분석 자료로 만들어 배포하고 팀원들에게 사전에 숙지하도록 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했다.

표본이 적긴 하나 이렇게라도 자료를 구해다가 공부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 믿었고,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결승에 진출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대주주인 걸로 모자라 자신이 투자한 게임의 대회에서 우승자가 되고 싶은 정호준의 KnAA.”

“FPS를 섭렵한 걸로 모자라 AOS까지 정벌하러 왔다. 에나틱!”

1회차 때보다 더 많은 지원자가 참가한 탓에 대전 상대가 조금 바뀌긴 했으나 에나틱은 1회차 때처럼 결승전까지 올라왔다.

* * *

레전드 리그를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알겠지만 팀에게 추가 이동 속도를 부여하는 패시브 스킬과 적을 띄우고 데미지를 주는 회오리 바람과 공격력을 증가시키는 실드, 타겟팅 슬로우 스킬과 적을 밀치고 팀원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궁극기를 가진 ‘잔느’라는 영웅은 플레이어의 손을 타는 어려운 챔프다.

정호준은 조작 난이도가 높은 잔느라는 영웅과 상대방을 끌어오는 정통 서포터인 깡통로봇 두 영웅을 플레이하며 원거리 딜러인 박기태의 영웅을 키우고 보호해 주거나, 직접 전투의 시작인 이니시를 걸었다.

결승전은 전승으로 끝났던 지금까지의 경기와 달리 원사이드 게임으로 흘러가지 않고 긴장감 넘치는 승부가 펼쳐졌다. 뛰어난 경기력을 보이며 서로 1승씩 나눠 가졌다.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영웅 금지픽에서 변수가 나왔다.

“서포터에 벤 카드를 활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 같은데요?!”

“정호준 선수의 플레이가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에나틱은 정호준이 즐겨 사용하는 잔느와 깡통로봇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금지했고, 덕분에 정호준은 대회 최초로 앨리스터라는 챔프를 픽했다. 에나틱 탑 라이너는 그라디스라는 영웅을 선택했다.

“초반에 박살 내고 바꿔 줄 테니까 최대한 죽지 말고 버티세요.”

정호준은 시즌 1 시절에 없던 탑과 바텀 라인의 스왑 전략을 꺼내 들며 승부수를 던졌다. 아직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보는 전략에 완전히 리듬을 잃게 되었다.

고통받을 것을 알고 있던 KnAA의 탑라이너는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영웅을 선택했고, 초반 함부로 수풀에 들어오는 상대를 반죽음으로 만들어 집에 보낸 뒤 빠르게 스노우볼을 굴렸다.

“진입과 함께 짓밟기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사용하는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스킬이 빗나가 쓸데없이 스킬을 허공에 날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리스크 있는 콤보인데, 한 번의 실수가 없어요. 정호준 선수가 이 게임을 얼마나 깊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플레이입니다.”

레전드 리그 플레이어들에게 ‘쿵쾅!!’이란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질 스킬은 핑이 시원치 않은 시즌 1때는 특히나 사용하기 어려운 콤보였다. 그러나 대회용으로 2011년 당시 준비할 수 있는 최고 사양 컴퓨터들을 준비하고, 본래보다는 더 좋은 네트워크를 사용했기에 자택에서 게임을 즐길 때와는 비교불허한 쾌적한 핑이 이어졌다. 덕분에 앨리스터를 즐겨 했던 정호준은 어렵지 않게 콤보를 넣었다.

“잘 큰 악마 사냥꾼 베나를 물려고 진입하는 상대를 밀어내는 플레이도 멋집니다.”

초반에 점한 우위를 놓치지 않고 더 크게 굴려나가며 에나틱을 밀어붙인 KnAA는 결국 적의 본진 건물을 모두 부수며 승리를 따냈다.

“우승은 KnAA에게로 돌아갑니다!!”

* * *

자신이 상금을 건 대회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하는 기괴한 역사를 만들어 낸 정호준었지만, 정호준에게 비난이 쏠리진 않았다.

[JHJ Capital,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포르투갈, 덴마크, 그리스,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 터키, 네덜란드, 벨기에의 재단에 각각 10만 달러 기부, 스웨덴 아동보호 재단에 20만 달러 기부.]

우승팀에게 지급하는 상금인 1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돈인 200만 달러를 유럽 각국의 아동보호재단에 기부해 상금을 줄 생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호준의 발 빠른 대처에 사람들은 ‘젊은 부호가 별난 취미를 가졌네’란 생각을 갖는 정도로 끝났다.

나이에 맞지 않게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일찍이 자식을 가진 가장이 돼서 그렇지 정호준은 아직 게임 같은 오락을 즐길 나이이긴 했으니까 말이다.

마약이나 섹스 스캔들로 신문의 일면에 나는 것도 아니니 그저 별난 취미 정도로 여겼다.

기분 좋게 우승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정호준은 다시금 본업 활동을 이어 가기 위해 움직였다. 2010년 곡물 선물을 진행했던 팀의 팀장 테일러를 회장실로 불렀다.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보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우리 JHJ Capital이 설탕 선물에 투자한 총액이 얼마나 되죠?”

JHJ Capital은 2010년 곡물파동을 예측한 정호준의 지시하에 유니버셜 뱅크로부터 300억 달러를 대출받아 선물과 현물 모두를 매입했다. 선물 매입 총액은 120억 달러 정도. 그중에는 당연히 설탕도 포함되어 있었다.

“런던 선물시장에 매입한 것까지 합치면 16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현물을 사들이는 데도 40억 달러 정도 사용했습니다.”

평균 매입가 16.27에 매입했다는 세부 설명을 추가로 읊는 테일러 팀장의 보고를 들은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테일러는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설탕만 정리하려 하시는 겁니까?”

곡물에 투자한 돈을 전부 회수할 거였으면 전체를 물었으리라. 테일러 팀장은 눈치껏 정호준의 생각을 읽었다.

설탕만 정리하는 이유를 질문하는 듯한 물음에 정호준은 입을 열었다.

“예, 예상하신 대로 설탕만 정리하려 합니다. 설탕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와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가 느는 게 보였거든요.”

정보팀을 동원해 수집한 자료를 확인한 뒤 분석을 마친 정호준은 자신이 정리한 분석을 들이밀었다. 돈이 되면 모든 하는 게 사람이다. 한국만 봐도 작년에 돈이 된 작물을 많이 심는 경향을 보이는데,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를 리 없었다.

기후 변화로 곡물가가 모두 상승한 가운데, 설탕 또한 2010년과 비교해 가격이 30% 이상 상승한 상태였고, 설탕 생산 증산을 위해 자본이 움직이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제 매도하면 되겠습니까?”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받은 테일러 팀장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매도할 타이밍을 물었다.

“저는 8월이 적당한 타이밍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더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까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따를 뿐입니다.”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란 정호준의 말에도 테일러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근거까지 다 제시해 준 마당에 21세기 최고 투자자로 꼽히는 정호준이 결정한 시점에 태클을 걸 만큼 테일러는 배짱이 넘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준비해 주세요. 선물 매도가 끝나면 현물도 차차 정리 부탁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