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5)
김명호 대통령이 준비한 만찬은 상당히 맛있었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는 한식이 제일이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입맛에 딱 맞는 정갈함을 갖췄다.
자기 가게를 차린다고 가정하면 미슐X 2스타를 족히 받을 만한 실력을 지닌 셰프를 비싼 월급을 주며 고용하고 있지만, 한식에 한해선 정호준이 원하는 맛이 나오질 않았다.
‘식자재, 양념, 손맛이 모두 어우러져서 그런가?’
김명호 대통령은 언제든 뒤통수를 칠 능력과 실력(권력)을 갖춘 인사라 이렇게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식사 하나만큼은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입맛에 딱 맞는 식사를 한 탓에 경계심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다행히 사전에 이야기됐던 것 이상의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고,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상의해 둔 질문이 날아왔고 정호준은 그에 맞춰 준비해 둔 답을 이야기했다.
“저를 포함한 JHJ Capital 투자팀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로부터 야기된 경제침체가 슬슬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OECD 회원국 중에는 회복세를 보이는 국가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죠. 한국 또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는 국가잖습니까?”
김명호 대통령이 빠르게 대응한 덕에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피해가 적었고, 한국이 OECD 회원국 사이에서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는 이유라며 은근슬쩍 김명호를 띄워 주었다.
“경기가 회복되면 자연스레 전자제품, 자동차, 스마트폰 등의 수요가 증가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언급한 제품들은 모두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물품들입니다. JHJ Capital 한국 법인이 나서서 하이스트 반도체를 인수한 건 JHJ Cpaital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들긴 결과입니다.”
기자들 앞에서 당연한 경제 논리를 읊은 정호준은 한국인들이 좋아할 법한 립서비스도 해 주었다.
“오성그룹의 김건희 회장님께서 10년도 전부터 언급했던 것처럼 반도체는 21세기 산업의 쌀입니다. 우리 JHJ Capital은 수요 증가를 대비해 공장 증설을 계획 중이며, 김명호 대통령님과 대화를 나누며 최소 5조는 투입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다시 한번 립서비스를 해 주었고, 미리 기획해 둔 논조대로 기사가 업로드되었다.
[최소 5조 원의 투자를 약속한 정호준 회사.]
[한국에도 지갑을 연 JHJ Capital.]
김명호가 미리 준비해 둔 기자들에 의해 사전에 준비된 기사들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고, 김명호 대통령은 지지율의 압박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 * *
스포츠의 상업화에 성공한 미국이나 축구가 종교나 마찬가지로 삶의 전반에 깊숙이 파고든 유럽과 달리 대한민국 축구는 재벌들의 돈에 의해 운영되는 안타까운 형국을 띤다.
‘대한민국 FC가 성적을 못 낸다고 욕할 게 없다니까.’
자국 리그가 활성화되지 않는데, 대체 어떻게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내겠는가? 홈 어드벤티지를 받았다 할지라도 2002년에 4강, 2010년 원정 16강이라는 성적을 낸 게 기적이었다.
조금만 더 자세하게 파고들면 한국 K리그의 현주소는 정말 처참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유니폼 스폰서를 따로 구해 막대한 스폰서 비용을 타내고 강등당하는 꼴찌 팀조차 중개권료로 1,5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받는 프리미어리그와 달리 대한민국의 K리그 팀들은 중계권료와 스폰서 수익을 개별적으로 얻어 내지 못한다.
K리그 팀들은 각 경기장에서 리그 타이틀 스폰서나 오피셜 스폰서, 광고판이나 전광판으로부터 나온 광고비를 총합해 리그 운영비를 제한 뒤 리그 광고료를 배분받는다. 리그 광고료를 배분하는 주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대충 뗄 거 다 떼고 나면 K리그 구단은 기껏해야 3~4억 규모의 광고료를 받았다.
그나마 K리그에서 우승하면 우승 상금으로 10억 원을 더 받고, 준우승을 기록하면 2억 원의 상금을 추가로 받지만 그래 봐야 언 밭에 오줌을 누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저조한 티켓 판매율 때문에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이 흑자 경영을 기록하려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는 진출해야만 했다.
‘돈이 돼야 구단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라붙지.’
정호준은 ‘유니버셜 톡’과 ‘유니버셜 뱅크’, ‘JHJ Capital’의 이름으로 각각 51억씩 출자해 K리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단 정호준이 지원하는 자금은 연맹에 지급되는 것이 아닌 구단의 계좌로 직접 지급되는 형식을 띠도록 했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JHJ Capital의 통 큰 결단!]
1등 팀에는 35억이, 2등 팀은 30억이, 3등은 25억, 4등은 20억, 5등은 15억, 6등은 10억, 7등은 7억 5천만, 8등 5억, 9등은 3억, 10등 2억 5천만이 지급되도록 손을 썼다.
K리그에서 4등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모기업의 후원없이도 흑자 경영이 가능할 정도의 지원이었다.
‘내 취미에 150억 정도는 태워도 괜찮겠지?’
매년 153억씩 태워 봐야 10년이 지나도 1,530억이다. 1,530억은 정호준이 분기마다 받을 배당금만도 못한 돈이었다. 박기태와 치맥을 즐기며 시청하곤 했던 대한민국 FC가 좀 더 나은 전력을 갖출 수 있게 이 정도 사치쯤은 부려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K리그에 상금을 지원하는 것을 끝으로 한국에서의 볼일을 모두 끝마쳤다.
* * *
회귀 후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둬 왔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의도하는 대로만 굴러가진 않았다. 한국에서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정호준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에 본사 직원들에게 요구한 일거리 중 70%만 성공했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찾아가 봤지만, 추가로 투자를 받을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2012년 상장을 계획 중인 ‘서비스투데이’는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며 일정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호준이 다른 이들과 지분을 나누길 원치 않는 것처럼 서비스투데이의 창업자나 대주주들은 JHJ Capital의 뒷북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JHJ Capital 2팀은 세상에 안 될 일은 없다는 대한민국 군인 정신처럼 몇 번이고 더 찔러 봤지만 서비스투데이 경영진 측은 JHJ Capital의 지분 투자를 끝까지 거절했다.
2팀에서 담당하기로 업무를 분담했던 서비스투데이 지분 확보 건은 그렇게 실패로 끝이 났다.
“지시를 수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해당 업무의 책임자였던 팀장들은 정호준을 보며 고개를 숙였고, 정호준은 그들을 위로했다.
“서비스투데이 경영진 측의 말대로 제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습니다. 타이밍을 못 맞춘 제 잘못이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혹시 모르니까’란 생각으로 맡겼을 뿐 처음부터 해낼 거라 믿고 맡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호준은 상장한 세일즈파워 주식을 제외하면 지분을 확보가 가능한 회사는 없을 거라 예측했다.
“워킹데이 지분을 확보하고 세일즈파워 주식을 사들인 걸로 만족합니다.”
정호준은 어떻게든 성과를 낸 조나단이 참 대단하다 여겼다.
JHJ Capital은 6억 달러를 투자해 워킹데이 지분 14%를 얻어 냈고, 세일즈파워 주식을 기술적 매입해 정호준이 원했던 지분 15%(3,750만 주)를 확보했다.
‘평균 매입가 39.57달러라.’
세일즈파워 지분 15%를 확보하는 데 약 14억 8,388만 달러라는 거금을 사용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번에 사들이고 확보한 지분들은 앞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종목들이었다.
오히려 이렇게라도 기억이 나서 지분을 사들인 걸 다행으로 여겼다.
“로랜스 닉슨이 대표님을 자선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제 선에서 끊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나단이 사용한 수단의 뒤처리를 정호준이 하게 생겼지만 말이다.
“아뇨, 아뇨. 그까짓 파티 참석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요. 발품 좀 팔면 그만인 일입니다.”
귀찮음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지만 정호준의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분 확보를 도와주는 대가로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로 지분 대가면 수지맞은 장사였다. 게다가 자선행사에서 또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5억 달러 주고 지분을 워킹데이 지분을 14%나 확보했으면 정말 큰 성과를 거둔 겁니다. 휴가 가고 싶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요. 전용기도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CEO답게 성과를 보여 준 조나단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치하했다.
* * *
유니버셜 히치는 정호준의 주도하에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경제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모두에 데이터센터 짓는 공사의 시공에 들어갔다. 그것도 각국의 건설사에 설계를 맡긴 채로 말이다.
JHJ Capital의 돈지랄에 서유럽과 호주, 캐나다, 미국, 일본, 한국의 건설 업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으나, 개중에는 정호준이 돈지랄을 한다며 손가락질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정호준은 깔끔하게 그들의 반응을 무시했지만 말이다.
따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돈을 쏟아붓는 게 아닌 이상 500억 달러는 써도 써도 모자랄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화이트 해커들을 추가로 고용하고, 프로젝트를 밀어줘도 유니버셜 히치의 자금은 마르질 않았다.
최소 10개가 넘는 데이터센터가 세계 각국에서 기둥을 올리며 건축을 시작했다. 이렇게 완공된 데이터센터는 ‘유니톡’, ‘뷔튜브’, ‘페이스노트’ 등이 함께 사용하게 될 거다.
유니톡이나 뷔튜브, 페이스노트가 사용할 데이터량이 결코 적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선진국 모두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건 추가할 계획이 없다면 낭비로 봐도 무방할 행보였다. 유니버셜 히치의 주도하에 세워지는 자데이터센터의 규모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말이다.
“스토리지와 컴퓨팅의 분리, 즉각적인 확장 가능 컴퓨팅, 데이터 공유 등을 서비스하는 클라우드 업체를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정호준은 미라클에서 데이터 설계자로 근무 중인 티에리 다제빌과 해리 크루아네스라는 거물들을 만나 창업을 제안했다.
티에리 다제빌과 해리 크루아네스는 굳이 정호준이 나서서 꼬시지 않아도 ‘프로즌 플레이크’라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데이터 클라우드 회사를 창업하는 이들이었다. 티에리 다제빌과 해리 크루아네스가 창업한 ‘프로즌 플레이크’는 가장 늦게 시작해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클라우드 업계 탑 10의 말석을 차지하는 그룹이다.
“유니버셜 히치는 전 세계에 데이터센터를 설립 중입니다. 훗날에는 데이터센터를 빌려주는 사업도 진행할 겁니다. 자료를 확보하는 데 이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애초에 상황 자체를 주도함으로써 클라우드 업체 중 하나를 유니버셜 히치의 품 안에 넣을 생각이었다.
‘세미크로나 엔플, 아마조네, 구골 등을 경쟁자로 둬서 10위에 안착하는 것에 힘에 부쳤지. 만약 페이스노트와 유니톡이 처음부터 밀어준다면? 저들의 파이를 빼앗을 수도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경쟁자 중 하나인 엔플은 거의 정호준의 회사라 봐도 무방한 곳이다. 클라우드 업계에서도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