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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81화 (281/335)

28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1)

정호준이 겪은 1회차 삶에서 연진그룹은 1조 2천억에 연진 진웨이 지분 31%를 넘겼다. 연진그룹의 진웨이 매각은 언론에서도 다룰 정도로 이슈 거리였다.

그런데 지분 31%를 1조 2천억 원에 매각했다는 것 외에 인수금 지급방식과 관련해서는 따로 이야기가 나온 게 없었다.

‘일시불로 1조 2천억 원을 계좌로 쏴 줬을 것 같진 않은데.’

똑같은 금액에 인수가 되더라도 일시불로 인수금을 지급하는 것과 1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에 걸쳐 분할해서 받는 건 받는 입장에서도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회사의 예산도 지갑이 빵빵하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개인과 별로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잖은가. 4천억으로 해결 못 하는 문제가 1조 원을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바뀔지 누가 알겠나?

‘1조 2천억 원이면 산세이 은행을 인수할 때처럼 프리미엄도 챙겨 준 건데, 설마 거절하겠어?’

현재 진웨이의 주가는 33,800~35,000원 사이를 오가고 있다. 31%의 지분은 9천억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9천억짜리를 1조 2천억이나 주겠다고 매입하는 행위 자체가 알아서 프리미엄을 매겨 준 거였다.

진웨이 회장이 자수성가한 샐러리맨의 신화가 아니었으면 결코 보내지 않았을 호의였다.

정호준의 속마음과 달리 연진그룹의 강정석 회장은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았다. 그 이유 진웨이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한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다.

“위기를 넘긴 뒤에는 반드시 되찾아 온다.”

30년을 넘게 키워 온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연진이 가지고 있는 자회사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매각하는 선택을 내렸지만, 캐시카우이자 연진그룹을 떠받들었던 기둥 중 하나인 연진 진웨이에 미련이 없을 리 없다.

아니 미련이란 수식어로 설명하는 게 부족할 정도로 진웨이를 향한 강정석 회장의 애정은 강했다. 진웨이를 매각하면서도 강정석 회장 본인은 잠깐 다른 기업에 진웨이를 맡겨 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를 증명하는 게 연진그룹의 진웨이 재인수였다.

그런데 연진그룹이 진웨이를 JHJ Capital에 회사를 넘기면 되찾아 오는 건 불가능해진다.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JHJ Capital에게 회사를 넘기면 다시 되찾아올 거란 보장이 없다.’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인수라고 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정호준은 핸드폰 화면 너머로 보이는 강정석의 얼굴을 통해 그가 JHJ Capital에 회사를 매각하는 걸 꺼린다는 것을 인지했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서둘러 설득에 나섰다.

“회장님. 이대로 가다간 연진그룹 전체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계시잖습니까? 때로는 원치 않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씀 드리고 죄송스럽지만 저는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합니다.”

정호준은 연진그룹의 상황이 좋지 않은 점을 후벼 팠다.

“옛말에 망가진 국가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무너트리고 창업하는 게 쉽다고 했습니다. 기업을 국가에 대입할 수는 없지만, 회장님께서는 새로이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셔야 하는 겁니다. 그 어려운 일을 시도하면서 망설임이나 미련을 가져서 되겠습니까?”

정호준은 계속된 설득을 들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강정석 회장은 결국 선택을 내렸다.

“JHJ Capital에게 연진 진웨이 지분 31% 매각하겠습니다.”

“힘든 결정이었다는 거 잘 압니다. 진웨이를 좀 더 큰 회사로 키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강정석 회장은 정호준에게 연진 진웨이 주식 23,908,686주를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정호준은 반색하며 결정을 지지했다.

“그런데….”

어려운 결정을 한 강정석 회장을 향해 덕담을 이어 가던 정호준이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강정석은 정호준이 무리한 부탁을 할 것을 대비해 확답을 피했다.

“매각 발표를 1개월 뒤로 미뤄 주실 수 있습니까? 저희 JHJ Capital이 시장에서 진웨이 주식을 사들일 수 있게 시간을 조금만 주셨으면 합니다. 계약서만 먼저 작성하고 발표는 나중에 했으면 합니다. ”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소문이 돌면 주식의 가치는 오를 수밖에 없다. 회사를 인수하는 대상이 JHJ Capital이면 더 말할 게 있을까?

시장에 돌아다니는 주식을 주우며 대주주들과 접촉해 주식을 가져올 시간이 필요했다. 정호준은 발표를 미룸으로써 그 시간을 벌고자 했다.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는 부탁임에도 강정석 회장은 정호준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정호준은 강정석 회장이 건네준 대주주 명단을 활용해 지분을 사들였다.

국민연금을 뺀 대주주들의 지분 26.8%(20,669,445주)를 7,441억 원에 사들였고. 주식시장에 돌아다니는 주식을 사들여 3.3% 정도를 추가로 확보했다.

*****

은성그룹 고분호 회장이 정호준에게 지분보유와 추가 매입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정호준은 고분호 회장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인 최광현 이사장과 산업은행 윤석훈 총재와 만남을 주선하고 옆에서 바람잡이를 해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당시에는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하이스트 반도체 지분 12.38%와, 산업은행이 보유 중인 하이스트 반도체 지분 7.89%를 매입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부탁한 거였지만, 일이 수월하게 풀리면서 추가로 받아내야 할 게 생겼다.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진웨이 지분 10.23%와 산업은행 지분 6.21%를 가져와야지.’

국민연금은 연진 진웨이 주식 7,889,866주. 지분 10.23%를 보유 중이었고, 산업은행은 진웨이 지분 6.21%(4,789,450주)를 보유 중이었다.

정치권 인사에게 자리를 내줄 생각도 없고, 되도록 한국 정치권과 멀리 떨어지고 싶었던 정호준은 정치권이나 정부의 입김이 강한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이 자신이 인수할 회사의 대주주로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수익을 챙기는 게 국민연금이나 산업은행에게는 좋은 방향이지만, 내 이득이 우선이니까.’

이미 한국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해 줬고, 지금도 해 주고 있다. 정호준에게 본인이 손해를 입어 가면서까지 돌아 줄 의리는 없었다.

아주 미약한 죄책감 같은 게 고개를 들려 하는 걸 죽이고 있을 무렵 기다리던 연락이 당도했다.

-정 대표님께서 요청하신 국민연금공단 최광현 이사장과 산업은행 윤석훈 총재와의 약속을 잡았습니다.

정호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는지 5월 24일. 성북동의 고급 술집에서 약속이 잡혔다. 6월 초는 돼야 만남이 성사될 거로 생각했던 정호준의 예상과 달리 훨씬 이른 타이밍에 만나게 되었다.

‘인상만 보면 차분한 성격 같은데, 사실 성격이 급하신 건가?’

* * *

국민연금공단도 산업은행도 정부 관련 기관이다. 정부의 입김이나 대통령의 입김에 따라 여러모로 흔들리기 쉬운 집단들이었고,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정호준은 5월 24일로 정해진 약속에 나가기 전에 수작을 부렸다.

-JHJ Capital의 대표님께서 어쩐 일로 나한테 연락을 다 주셨습니까?

정호준의 연락을 받은 상대는 공격적인 성향을 감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오랜만이지만 나는 오랜만 같지 않네. 정 대표가 준비한 것들이 워낙 많았어야 말이지.

정호준의 연락을 받은 상대는 정호준 때문에 계획했던 것을 진행하지 못한 김명호 대통령이었다.

“저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정부의 계획과 반하는 일이었다.

가슴 속에 쌓아 둔 게 많았는지 김명호 대통령은 시종일관 공격적인 말투를 사용했다.

“제가 한 행동 때문에 지지율이 낮아지셨다면, 이번에는 저를 이용해서 지지율을 높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들어 보지.

정호준 때문에 똥볼을 연이어 차는 바람에 3년 차부터 레임덕이 왔다. 그런 이유로 김명호는 정호준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대통령님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하이스트 반도체와 진웨이를 인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진웨이는 제가 인수한다고 경영방침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하이스트 반도체에는 다릅니다. 자본을 투자해서 공장을 추가 건설하고 직원도 추가로 뽑을 예정입니다.”

-정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정 대표의 투자를 이끌어 낸 것처럼 보여라 이 말이군.

정호준에 의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김명호는 똑똑하고 계산 빠른 유능한 이였다. ‘공장 건설’과 공장 건설 이후 생겨날 파급 효과들을 활용해 지지율을 올리라는 정호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내가 지불할 대가는?

“국민연금공단과 산업은행이 보유 중인 하이스트 반도체, 진웨이 지분입니다.”

-헐값에 달라는 거면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이네만?

“헐값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나마 주식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입김을 불어 넣어주시면 충분합니다.”

정호준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던 김명호는 아직 계산이 제대로 안 서는지 결정을 뒤로 미루었다.

-다시 연락하지.

* * *

정호준이 한국에서 인수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박기태는 미국에서 밤마다 피나는 연습을 이어 갔다. 옆에서 감시하며 채찍질하는 정호준이 없음에도 정호준이 있을 때보다 더 집중하며 연습했다.

‘이런 게 추억이잖냐?’라고 말하던 정호준의 말에 100% 동감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반 대항전으로 스페이스 크래프트 팀플을 즐겼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호준이 녀석이 멀어지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는데, 나도 노력해야지.’

수준이 달라진 데서 생기는 괴리감 때문에 정호준을 대하는 게 어려웠던 박기태는 정호준이 먼저 나서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게 고마웠다. 박기태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곤 정호준이 하라고 했던 것을 해내는 것밖에 없었다.

1회차의 경험을 통해 게임 이해도가 높은 정호준에게 속성과외를 받으며 연습한 박기태의 실력은 빠르게 늘어갔다.

“와, 기태 씨 정말 많이 늘었네.”

“말도 안 돼. 승률이 너무 좋잖아?!”

“한국인에게는 게임 잘하는 유전자라도 있는 거야? 이젠 키태가 에이스 같은데?”

정호준이 저택에 마련한 PC룸에서 함께 대회를 준비하던 다른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레전드 게임이 워낙 잘 만든 AOS게임인지라 실력이 늘어나자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이 정도면 호준이 녀석한테 놀았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지?”

“키태의 실력이 너무 늘었어. 우리 보고 뭐 했냐면서 한 소리 들을 것 같은데?”

“설마요?”

“친구인 키태는 잘 모르겠지만, 정은 업무 쪽에서는 상당히 철저한 사람이야.”

영양사 제임스 밀러의 말에 촬영팀 소속의 올리버 윌슨과 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밀러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혹시 호준이가 뭐라 하면 우리 열심히 했다고 실드 쳐 줄게요.”

“키태, 약속한 거다?!”

“나도 지금 키태의 발언 가슴속에 새겼어. 진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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