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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80화 (280/335)

28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0)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열 살 먹은 어린아이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고객들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자금을 굴리는 금융자본 중에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부류가 존재했는데, 사람들은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들을 헤지펀드(Hedge Fund)라고 구분했다.

헤지펀드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족속들이다. 그렇다 보니 적이 많았고 기본적인 인식도 나빴다. 수익을 내기 위함이라면서 뭐든 하는 녀석들을 달갑게 여길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헤지펀드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국가를 공격하는 것 또한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독종들이었다.

미국에 적을 둔 수많은 금융자본 (헤지펀드)들이 국가를 공격해 야기시킨 경제 위기가 바로 1997년 아시아를 강타했던 아시아 금융위기 사건이다.

‘한국도 당했었지.’

정호준의 과거 모국이었던 대한민국 또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사태의 피해자로 금융 세력의 공격에 크게 데였었다.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털어먹으며 동남아를 휩쓴 금융 세력은 대만으로 북상했고, 대만과 홍콩을 공격했다. 홍콩과 대만은 이전의 다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환율 방어를 해내지 못했다. 다만 체급 자체가 크고 중화권 자금과 화교 자본의 저항도 격렬했던 터라, 공격에 성공했음에도 금융자본들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재미를 보진 못했다.

그래서 이어진 게 바로 한국 외환시장 공격이었다.

‘한국은 문제없다고, 펀더멘탈 자체가 다르다고 호언장담했던 정부의 발언과 다르게 금방 함락되지.’

이 당시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홍콩 자금시장에서 꽤 많은 대출을 받았다. 그것도 장기가 아닌 단기외채로 말이다. 국제자본의 홍콩 철수는 한국이 갚아야 할 단기외채의 대출 연장률을 급감시켰고, 이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했다.

만기가 다가오는 외채들을 갚을 방법이 없던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그게 바로 1997년 한국에서 발생한 IMF 외환위기 사태의 전말이었다.

한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요청받은 IMF(국제통화기금)는 여타 국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달러를 빌려주는 대가로 이런저런 요구를 해 왔다. 기업의 부채율을 개선하고, 외국인 주식 보유 한도를 늘리고, 자국 금융시장을 지키기 위해 외국자본에 불리함을 주던 규제들을 해제하도록 요구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헤지펀드들의 낙원으로 변했다.

어느 날 갑자기 부채를 갚으란다고 갚을 수 있는 기업은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가능했다면 당장 단기외채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서 IMF에 손을 벌리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거다.

빌린 돈은 이미 여기저기 투자된 상태였고, 기업들은 부채율을 줄이기 위해 결국 현금성 높은 것들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업들이 저마다 꿍쳐 두고 있던 알짜배기 땅이나 대한민국에서 가치 있기로 명성 높은 건물 등이 시장에 나왔다.

그것도 본래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헐값으로 말이다.

이조차도 부동산이 제때 팔려서 어떻게든 빚을 갚아 낸 기업은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했다. 빚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현금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어음을 갚지 못해 파산 신청하는 기업이 허다했다.

현금성 자산을 정리하지 못해 제때 부채를 변제하지 못한 기업들은 대게 보유 중인 자산만도 못한 값으로 헤지펀드들에게 삼켜졌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탓에 가장 이슈가 된 론스O 외에도 많은 헤지펀드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국에서 수익을 챙겼는데, 한국에서 발생한 ‘승자의 저주’는 론스O와 관련이 있었다.

* * *

외환은행을 인수 후 되팔며 최소 조 단위 이익을 챙겼고, 훗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한국인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 론스O는 외환은행 말고도 다수의 기업을 인수하고 되팔며 수익을 냈다.

외환은행 다음으로 론스O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다 준 건 사계건설(四季建設)이었다. 사계건설은 1947년 4월 창업 후 1953년 주식회사로 전환되어, 지금까지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기업이었다.

사계건설의 모기업 사계그룹이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 사태 때문에 파산했고, 사계그룹이 파산을 신청하자 정부와 은행은 사계그룹에서 돈 되는 것들을 모조리 팔아 치웠다. 그중 큰 덩어리에 해당하는 사계건설은 1,700억 원이란 값에 론스O의 손에 넘어갔다.

대한민국 기업치고 부동산이 없는 기업은 없다. 사계건설 명의로 된 건물들을 매각해 부채율을 줄이고 수익을 냈으며, 유상감자를 진행하고 배당을 실시해 2,200억 이상을 벌어들였다. 사계건설로부터 빨아먹을 것을 대충 다 빨아먹었다고 판단한 론스O는 사계건설 매각하기 위해 움직였다.

[새로운 주인을 찾는 사계건설!]

업계에서 사계건설에 매긴 적정 인수가는 4,000억 원 안팎이었으나 론스O는 혐성을 부려 사계건설에 막대한 거품이 끼게 만들었다. 2007년 6월 22일. 사계건설은 업계에서 판단했던 가치보다 1,600억 원은 더 높은 가격에 연진그룹에게 인수됐다.

[연진그룹 6,600억 원에 사계건설 인수! 의욕 과잉 아닌가?]

[또 한 번 대박을 낸 론스O]

‘대한민국 기업들은 참 이상해. 건설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면 되지, 꼭 건설을 가졌어야 했나?’

1회차 때도 2회차인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비자금 조성 때문일까?’

창업자가 회사의 주인이 아닌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란 인식이 강한 미국과 달리, 동양은, 아니 대한민국의 재벌가들은 회사와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회삿돈=내 돈’이라고 인식하는데, 문제는 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회삿돈에 손을 대면 횡령으로 잡혀간다는 거였다.

그런 면에서 건설은 비자금을 만들기 가장 쉬운 업계였다.

어쨌든 무리한 인수라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는 것을 느낀 연진그룹에서 기자들을 만나 최근 2년 동안 연속 흑자를 기록한 사실과 부채비율이 100%도 안 된다는 장점을 광고했지만. 과한 투자는 언제나 독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특히 론스O가 회사를 매각한 타이밍이 절묘해도 너무 절묘했다. 론스O가 사계건설을 매각한 2007년 6월 22일은 모기지론 디폴트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기 바로 직전 타이밍이었다.

연진그룹이 사계건설을 인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가 터졌고, 모기지론 디폴트는 미국 금융회사들의 연이은 파산을 야기시켰다. 미국 은행의 파산은 한국 경제에도 당연히 악영향을 미쳤고, 업계 관계자들이 매긴 가치보다 더한 값을 주고 사계 건설을 인수한 연진그룹은 자금 유동성 부족이란 상황을 초래하는 재앙의 씨앗을 삼킨 꼴이었다.

‘알고 노린 건지, 운이 좋은 건지 직접 관계자를 찾아가서 들어 보고 싶을 정도야.’

사계건설 매각과 관련한 담당자가 진짜 모기지론 디폴트를 예상하고 움직인 거면 정호준이 직접 나서서 JHJ Capital에 스카우트할 만큼 훌륭한 인재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2011년 현재 연진그룹이 2007년에 벌인 무리한 인수는 ‘승자의 저주’를 불러일으켰다.

‘2012년 100억짜리 어음을 못 막아서 부도가 났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맞나?’

모르긴 몰라도 슬슬 자금 경색에 빠져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무렵이다. 망해 가는 구도를 바꾸기 위해 큰 희생을 감내할 거고, 그 희생이 바로 연진 진웨이 매각이었다.

“연진 진웨이 정도면 괜찮은 매물이지.”

연진 진웨이는 연진그룹이 대한민국 재계 30위 안으로 진입하게 해 준 두 축 중 한 곳이다. 연진 진웨이는 알짜배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기업이었다. 매물로 내놓은 사계건설을 인수하겠다는 회사가 없고, 대출 만기가 만료돼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결코 매각할 리 없는 그런 기업이었다.

‘기업이 지닌 가치와 달리 표류할 운명을 지녔지만.’

진웨이는 2012년에 다른 외국계 사모펀드로 넘어갔다가 원주인인 연진의 품으로 돌아오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다시금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될 기업이다. 어차피 이곳저곳을 떠돌 거 아예 먼저 선점할 계획을 세웠다.

하이스트, 유니톡 한국지사, JHJ Capital 한국 법인, 진웨이. 이렇게 네 개 집단을 한 데 묶어 커다란 기업 집단을 형성할 생각이다.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재계 순위는 얼마나 될까나? 궁금하긴 하네.’

* * *

JHJ Capital의 진웨이 인수 제안은 비밀리에 연진그룹에 수뇌부에 전달됐다. 갑작스러운 뜬금포 인수 제안이었지만, 연진그룹 회장 강정석은 직접 만나서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는 긍정적인 답을 보내 왔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서 되도록 화상통화로 대체했으면 좋겠습니다.

JHJ Capital이 연진 진웨이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정호준은 미팅 대신 화상통화를 하자고 역제안을 던졌다.

연진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일까? 강정석 회장은 정호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연진그룹 회장 강정석입니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무례할 수 있는 부탁임에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아뇨. 전혀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 마시죠.”

굳이 자세히 파고들지 않아도 정호준이 차원이 다른 부(富)를 소유 중이란 사실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그런지 은성그룹의 고본후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연진그룹의 강정석 회장은 고분고분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시겠지만 그래도 하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우리 JHJ Capital은 한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레이더망에 연진그룹이 포착됐죠. 사계건설의 무리한 인수로 연진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다죠?”

“부끄럽습니다.”

강정석 회장은 ‘너 망해 가고 있잖아?’를 조금 순화한 선에서 내뱉는 정호준의 발언에 기분이 확 나빠지는 것을 느꼈으나 꾹 참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시인하는 강정석 회장의 답변을 들은 정호준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연진 홀딩스가 가진 연진 진웨이 지분 31%를 1조 2천억 원에 인수하려 합니다.”

2012년. 백억 원대 어음을 갚지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연진그룹은 KHB라는 외국계 기업에게 지분 31%를 넘겨 주고 1조 2천억 원을 투자받는다. 지분을 넘긴 뒤에도 회사 경영은 연진그룹에서 이어가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기업의 소유권은 KHB란 외국계 사모펀드에게로 넘어갔다.

“인수금은 분할로 납부하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JHJ Capital은 한국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고, 연진은 자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서로 윈윈이 될 거래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JHJ Capital에서 1조 2천억보다 더 높은 값을 부를 일은 없을 겁니다.”

정호준은 1조 2천억 원에서 인수가를 더 높일 생각은 없다는 뜻을 밝히며 강정석 회장에게로 선택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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