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78)
회사가 승승장구를 이어 가면서 명성이 높아지면 명성에 걸맞은 인재들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IMF 외환 위기 이후 재계 서열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던 오성그룹만 봐도 그렇잖은가? 공채에 합격한 이들은 하나같이 인재라 불리기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었다.
JHJ Capital에 입사 원서를 넣는 이들 또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성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보편적으로 미국이든 일본이든 영국이든. 서구권 사회에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 회사는 허들이 높았으니깐. 그중에서도 미국은 특히 정도가 심했다.
‘뭐, 금융 회사가 모여 있던 거리(월스트리트)가 세계에 금융권을 대표하는 명사로 자리매김할 정도니 더 말할 게 있을까?’
JHJ Capital의 본거지가 월스트리트가 아닌 시카고에 위치해 있긴 했으나, JHJ Capital은 금융권을 꿈꾸는 꿈나무들, 혹은 금융권에 종사 중인 인재들에게 입사를 희망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다.
물론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JHJ Capital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중고 신입만 뽑았지만 말이다.
‘어느 세월에 신입을 데려다 하나하나 가르치겠냐.’
JHJ Capital 직원들의 능력은 날이 가면 갈수록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 입맛대로 스토리텔링을 기획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하이스트 반도체를 인수하려 합니다.”
인수 의사를 밝히고 1회차의 삶을 통해 봐 왔던 한국 대중과 재계의 성향을 일러 주는 것만으로도 대비책을 세우기 충분했다.
정호준에게 지명된 하이스트 반도체 인수팀은 발품을 팔아 시카고 트리븐의 컨펌까지 받았다.
[2008년. 하이스트가 흔들릴 때부터 꾸준하게 주식을 사들이고 지켜본 건 은성이 아닌 JHJ Capital이었다?!]
은성그룹은 80년대 이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근 30년 동안 한국 재계 서열 5위 밖으로 벗어나 본 적 없는 기업이다. 박기태의 특파원 파견을 위해 광고를 넣었던 중심일보 측에서야 받아먹은 게 있어서 JHJ Capital의 편을 들긴 했지만, 언제든 그들에게 광고를 줄 가능성이 있는 은성그룹과 척을 질 순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얌전한 논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중심일보가 미래를 염려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인 반면 언제 없어질지 모를 인터넷 신문사들은 과감했다. 메이저 회사 중 하나로 망할 걱정이 없는 중심일보와 달리 인터넷 신문사들에게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곳이 허다했다. 그들에게는 당장 JHJ Capital이 뿌리는 돈이 너무 달콤했고, 때문에 JHJ Capital이 요청한 자극적인 제목을 망설이지 않고 달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가족이 남보다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외국계 기업보다 못한 은성그룹]
[어려울 때는 외면하고 탐이 나니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은성전자. 정말 외국계보다 나은 걸까?]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치기엔 이미 세계화 시대!]
[유니버셜 뱅크에 인수된 후로도 문제없이 경영을 이어 온 외환은행!]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면 고용이 줄어들 거란 건 억측이다. JHJ Capital 고용승계 약속!]
미국의 언론 업계는 자극적인 것으론 어디 안 꿀리는 악명 높은 곳이다. 이를 증명하듯 컨펌받고 업로르된 인터넷 신문사의 기사들은 하나같이 과감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다만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제목은 자극적이었을지 몰라도 기사 내용 자체는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펙트만 실려 있었다.
5년 동안 흑자를 기록하다 해외 상황과 맞물려 다시금 적자로 변한 2008년. 2009년에는 모른 척 무시하다 2010년 다시 흑자로 전환되고 2011년 2분기까지 흑자를 기록하자 그제서야 인수전에 참전한 은성그룹을 비판했다.
⌎외환은행 인수 때 부패한 임원들을 물갈이시키긴 했어도 대체로 고용승계 했다며?
⌎그래도 이렇게 큰 회사를 외국계에 넘기는 건 쫌 그렇지 않나? x 같아도 우리 새낀데.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은성 그룹은 진짜 몰염치한 거 아닌가?
⌎re: 은성그룹은 IMF 당시 동교동 정부가 진행한 빅딜 때문에 반도체 기업을 빼앗겼음. 과거 주인이 하이스트 반도체를 사가는 게 그림이 좋아 보이지 않냐?
⌎⌎re: 산업 은행이나 하이스트 임원진들이 은성한테 몇 번이나 SOS를 쳤는지 알면 그런 말 못 할 텐데? 너 댓글 알바냐?
JHJ Capital과 은성그룹에서 고용한 댓글 알바들이 넷상에서 분탕질을 이어 가며 여론몰이를 이어갔고, 인수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생각한 정호준은 경호팀을 대동한 채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 * *
김포공항에 내린 정호준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시달렸다. 김포공항에 몰려든 기자 중에는 JHJ Capital에서 미리 심어 둔 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잠깐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때도 미리 선별해 둔 질문에만 답했다.
기자회견에서 다룬 내용은 간단했다. 하이스트 반도체 인수 포기할 생각이 없고, 한국 대중들이 외국계 기업에 가진 우려 섞인 시선을 이해하지만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공표했다.
정호준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준비된 차량에 몸을 싣고 호텔로 향했고, 차 안에서 잠깐 사색에 잠겼다.
‘굳이 이렇게까지 욕심을 낼 필요가 있었나?’
2011년 ‘하이스트 반도체’에서 발행한 주식은 총 592,122,752주. JHJ Capital이 이미 177,636,825(30%)주를 확보한 상황이다. 기관이나 국민연금, 산업은행. 또는 하이스트 경영진을 만나 담판을 지으면 인수 경쟁은 끝이 나는 상황이란 것.
이제 막 지분 5%를 취득한 은성그룹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한 한국에서는 막을 방도가 없는 상황이었다.
“참 이상해. 좋게 좋게 대해 주면 적당하게 대처해야지. 꼭 선을 넘는 곳이 있네.”
대한민국은 정치인과 재벌, 법조인 등이 밀접하게 얽혀 있는 나라다. 이 말은 즉 은성그룹은 정호준이 하이스트 지분을 30%로 확보했다고 공시를 내기 전에도 정호준이 꾸준하게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거란 말이다.
정호준이 하이스트 반도체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인수전에 참가했다는 건, 정호준에게 불쾌함을 선사하기 충분한 일이었다.
‘자꾸 내 밥그릇을 노리는 이들이 늘어나네.’
욕심이 사람의 눈을 멀어 버리게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나 보다.
생각이 정리될 때쯤 호텔에 당도했다.
정호준이 호텔에 도착해 여독을 풀며 산업 은행과 하이스트 반도체 경영진들과의 미팅을 조정할 무렵, 비서로부터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대표님! 은성그룹 고분호 회장이 미팅을 청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고 싶네요. 날짜 한번 잡아 보죠.”
“예! 일정을 재조율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정호준의 1회차 때와 달리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피해는 있어도 수습이 가능한 정도에서 끝난지라 일본은 슬슬 기지개를 켜려는 기미를 보였다.
정호준은 JHJ Capital에서 외환과 닛케이지수 선물을 담당했던 팀원들을 날짜에 맞춰 본인이 출장 갈 한국으로 대기시켜 놨었다.
정호준은 호텔에 도착해 여독을 풀자마자 그들을 불렀다.
“어서 오십시오. 그동안 잘 쉬었나요?”
닛케이 지수 선물이나 환율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던 팀들은 하달됐던 업무를 모두 수행한 뒤 오랜만에 휴가를 즐겼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조금씩 풀어진 기색이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래 쉰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팀장들은 팀을 통솔하는 위치였기에 정호준의 눈치를 봤다. 조심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팀장들을 보며 정호준은 그들을 한국으로 부른 이유를 말했다.
“그렇잖아도 일거리를 드리려고 부른 겁니다.”
일거리를 던져 주겠다고 말하자 너스레를 떠는 직원들이나 대화의 당사자였던 팀장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기색의 변화를 확인한 정호준은 진지한 표정을 보이는 이들을 보며 그들을 이 자리에 부른 용건을 이야기했다.
“TOPIX Core30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에 투자하려 합니다.”
‘TOPIX Core 30’은 도쿄 증권 거래소 시장 제1부 종목 가운데 시가 총액과 유동성이 특히 높은 기업 30개를 묶어 구성한 주가지수를 의미한다. 사실상 일본 시가 총액 베스트 30을 의미하며, 여기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은 모두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었다.
정호준은 미리 뽑아 놓은 목록이 적힌 제안서를 팀장들에게 하나씩 전달해 주었다.
정호준이 건네준 목록에는 ‘TOPIX Core 30’에 속하는 건 물론이고, 10대 기업으로 분류될 만한 기업이 제외된 경우 역시 존재했다. 유망한 기업이 명단에 들어 있지 않는 것에 의문은 품은 이들은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키요타 모터스는 매입 없이 그냥 주시만 하는 겁니까?”
“예, 500엔 선이 깨지기 전까지는 진입할 생각 없습니다.”
정호준이 일으킨 공매도 때문에 키요타 모터스는 1회차 때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상태다. 리콜이란 결단을 내리며 이미지를 조금 회복하긴 했으나 키요타 모터스의 상황이 반전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2012년쯤에 주식을 매입하라고 따로 지시를 내릴 것 같네요. JDDI도 그때 같이 매입할 계획입니다.”
JDDI CORPORATION. 일본 2위의 통신 업체로 20%의 시장율을 기록한 일본 2위의 휴대전화기 사업자다. 이동통신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KS(경선) 텔레콤과 경쟁하는 한국의 TOK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YDK도 2012년에 진입하는 겁니까?”
“예. 제안서에 적어 놨잖아요?”
YDK. 일본 굴지의 전자 기업으로 투자율이 높고 전도성이 낮은 특성을 가진 철심 페라이트를 주력으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페라이트 외에도 과거에는 비디오테이프, 아날로그 오디오 테이프,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 플로피 디스크 등을 제조해 판매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갖은 전자 부품과 전자 소재, 태양광, 리튬 이온 전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해외 매출 비율이 90%를 넘으며, 해외 주주 비율도 40%에 달하는 굴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기업이었다.
“소니토 주식은 아예 따로 언급이 없습니다.”
“소니토는 저물어 가는 해니까요. 소니토에 투자할 바에는 난텐도가 낫죠.”
“난텐도가 낫다고 말씀하신 것치고는 당장 투자 계획 명단에 없습니다만?”
“난텐도와 연관된 내용은 좀 뒤에 있을 겁니다. 게임과 관련한 기업들은 2015년에 한 번 주식을 정리하면서 매입하는 게 좋을 거 같거든요.”
직원들의 질문에 정호준은 하나하나 적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뒷장을 보면 알겠지만 도쿄 부동산에도 돈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시장에 돈이 풀리면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가는 일본 정부가 어떻게든 컨트롤을 해내서 상승을 최소화했지만, 부동산은 정부의 역량만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아베노믹스라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일본 정부가 돈을 풀 걸 알고 있는데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행위다.
“대표님께서 계획서에 적어 두신 대로 투자 진행하겠습니다.”
2011년 5월 말.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JHJ Capital 직원들은 도호쿠 대지진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일본 주식 매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