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76)
한국에서 감기에 걸려 병원을 방문하면 약값을 포함해도 1만 원 내, 많이 나와도 1만 5천 원을 넘지 않는다. 약값은 물론이고 병원비까지 사회보험 중 하나인 의료보험으로 국가가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과 함께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기로 손에 꼽히는 일본 또한 대체로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정호준이 1회차의 삶에서 평생을 살았던 한국이나 이웃 나라인 일본과 달리 두 번째 생의 터전이 된 미국이란 나라는 의료민영화가 실시된 나라였다. 의료민영화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이뤄지는 의료 서비스 전반에 시장경제의 논리를 적용시켰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와 같은 도덕과 윤리는 의료민영화가 된 미국에서 통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단순 감기로 의료 서비스를 받는 데도 최소 15만 원 이상의 비용을 사용해야 했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동네 병원을 다녀오면 10만 원 정도 써야 한다 그랬었지?’
단순 감기조차 그렇거늘,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의료 비용과 관련한 심각성은 심대했다.
의료민영화로 가뜩이나 수술비가 비싼 나란데 그 비용을 높이는 요소는 더 있었다.
미국에서 환자가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비싸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검사 때문이었다.
국가에서 보험으로 국민을 책임져 주지 않는 만큼, 미국에서는 검사 하나하나에 상상할 수도 없는 비용을 요구했다. 문제는 심각한 수술이 아님에도 미국의 의사들은 검사란 검사는 모두 진행한 뒤에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가벼운 수술을 받는 데도 한화로 최소 수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의 돈을 사용해야만 했다.
물론 의사들이 환자에게 쓸데없는 검사까지 모두 받게 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다른 문제가 발목 잡지 않을까 겁이 나서지.’
미국은 소송의 나라다. 대기업이나 최소 수천억 단위의 돈을 굴리는 월가의 투자회사들조차 집단 소송에 휘말려 패소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기업조차 간간히 패배하거늘 일개 개인의 승률은 말해 뭣할까?
아무리 의사가 고연봉을 받는 직종이라지만 패소 비율은 기업과 비교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수술 실패 후 휘말리게 될 의료 소송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자빠질까 두려운 미국의 의사들은 혹시라도 수술에 악영향을 끼칠 요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진행한 뒤에 들어갔다.
어차피 검사 비용은 의사가 부담하는 게 아닌 환자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미국에 보험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참 그래.’
미국에도 개인의 부담을 줄여 주는 민간보험회사들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의료비가 비싼 만큼 매달 보험회사에 납부해야 할 금액도 일본이나 한국과 비교해 훨씬 컸다. 게다가 같은 회사에서 나온 보험 상품임에도 지역마다 치러야 할 값이 다르다는 것 또한 선뜻 보험에 가입하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은 50개의 주와 1개의 특별구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미국에 속한 50개의 주는 주 하나하나가 한반도보다도 더 컸고, 주마다 독자적인 헌법을 가지고 있었다. 독자적인 헌법 때문에 주(State)마다 가능하고 불가능한 게 다르다 보니 같은 회사에서 배출한 보험 상품이더라도 비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보험에 가입해도 남보다 손해를 보는 구조를 쉽사리 납득할 리 없다. 인간은 본인이 남보다 손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는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사기꾼도 많지.’
작디작은 한국에서조차 사기꾼이 판을 치는데, 미국이라고 다를까? 사실 보험비나 의료비와 관련한 사기는 미국이 훨씬 심각했다. 한국은 국가에서 의료기관에 돈을 지급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험이 어떻게 적용돼서 병원비가 환산되는 정확히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누가 베팅하라면 나는 드물디 드물다는 쪽에 베팅하겠어.”
반면 한국은 결제를 해 주는 곳이 국가이다 보니 진료에 관한 기록을 국가에 넘겨야 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동네 병원이 환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게 불가능했다.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 때문에 약값에서도 정부에서 심각하게 관여하기 어려웠고 말이다.
어느 나라라고 다르겠냐만은 미국인들에게는 특히나 의료가 짐이었다.
이런 미국의 환경이나 건강에 대한 미국인들의 노심초사,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담보로 성장한 기업이 바로 ‘아폴론’이라는 기업이었다.
* * *
‘아폴론’은 메리 홈즈라는 여성이 2004년 스탠퍼드를 중퇴하고 만든 메디컬 스타트업이다.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메리 홈즈가 창업한 아폴론은 극소량의 혈액으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의학 키트 ‘아폴론 키트’를 발명했다며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아마 2014년이었지?’
아폴론의 창업자 메리 홈즈는 정말 자신의 포장을 잘해냈다.
윌리엄 게이츠, 스티븐 잡스, 마이클 저커버그처럼 미국에서 전설로 취급받는 이들이 스탠퍼드 중퇴라는 것과 자신의 스탠퍼드 중퇴를 엮어 냈고,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븐 잡스를 밴치마킹하며 잡스에 대한 환상을 되살렸다.
여자 스티븐 잡스라는 분에 넘치는 이미지를 유도하며 제품에 대한 스토리텔링까지 완벽하게 구상해 냈다.
게다가 메리 홈즈는 자신의 출신과 성별조차 무기로 삼았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IT회사의 CEO들은 기본적으로 아시아계나 유대계 남성인데, 메리 홈즈는 이를 지적하며 자신이 ‘비유대계’라는 것과 여성도 성공할 수 있는 증거라며 투자자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당시 미국에서 한창 페미니즘이 성장하고 있었기에 홈즈의 인기는 정말 하루하루가 달랐다.
IPO를 실시하기 전에 진실이 밝혀져 대중들은 피해를 보지 않고 큰손들만 돈을 잃는 걸로 상황이 종료됐지만, 어쨌든 이 사건 때문에 언론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미국이 체면을 구겼었다.
‘그런 일 없도록 일찍 잡아넣으려 했는데 이용 좀 해야겠네. 이를 갈면서 나를 주시하고 있을 테지?’
정호준은 2015년 폭로가 시작되어 몰락으로 접어들 아폴론을 이용해 JD플라워를 엿먹이고자 계획을 짰다.
* * *
정호준의 예상대로 JD플라워는 이를 갈고 있었다. 한화 2천억 원 이상 손실을 입히고 집단소송까지 진행 중인데 정호준이나 JHJ에 좋은 감정을 품고 있을 리 만무했다.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특히 억울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들은 상식적으로 행동했다는 데 있었다.
당사자인 정호준은 자신의 유니버셜 히치 지분을 노리는 것에 기분이 나빠 공격을 가했지만, 사실 필요한 게 있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지분 교환이 이뤄지는 건 종종 있어 온 일이다.
자신들이 입은 손해를 곱절로 갚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속을 스쳐 갔지만, JD플라워 측에서는 이성을 최대한 발휘해 어떻게든 찍어눌렀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면 죽는다.’
강자는 제멋대로 하고 살아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약자는 언제나 강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JHJ Capital은 이미 미국을 주름잡는 거대 금융 재벌 중 하나로 적의를 드러내서 전면전을 펼치면 남는 건 죽음뿐이었다.
그렇게 JD플라워 공동 대표들이 분노를 삭히고 있을 때쯤 언론에 정호준의 행보가 노출되었다.
[JHJ Capital 정호준 대표의 깜짝 방문.]
정호준은 아폴론을 포함해 몇몇 스타트업 회사를 방문했고 언론은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정호준의 행보를 다뤘다.
* * *
자신의 행보를 일부로 노출시킨 정호준은 은행 인수와 관련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지시하신 대로 라소니 은행의 지주회사 라소니 홀딩스의 지분을 모두 사들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라소니 홀딩스는 산세이 은행처럼 다양한 곳에 지분이 퍼져 있지도 않고, JD플라워가 본보기를 톡톡히 해 줬습니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달리는데, 그중에서도 금융업계 쪽은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남다르다. JD플라워가 JHJ Capital에게 뻗대다가 크게 손해를 봤다는 사실은 미국을 넘어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의 금융인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좋게 말할 때 협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JD플라워가 제대로 된 사례를 만들어 줬기에 라소니 홀딩스의 지분을 쥐고 있는 기업들은 순순히 JHJ Capital에 협조했다.
의외인 것은 지주회사인 라소니 홀딩스의 오너 가문이 회사를 빼앗기는 데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일본 정부에서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쓴 건가?’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매는 들고 볼 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라소니 홀딩스가 발행한 주식을 모두 합쳐 2,361,256,681주. 소액주주들 외에는 몇몇 일본계 거대 펀드와 일본 정부 기관, 라소니 홀딩스 오너 가문이 골고루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평균 매입가 537엔으로 총 1조 2,679억 9,483만 엔을 사용했습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2조 6,799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나마 라소니 홀딩스 오너가와 일본의 정부 기관들은 JHJ에게 가장 높은 값을 받고 주식을 넘겼다.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JHJ Capital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끌어낸 건 아니다. 일본에서 버블이 붕괴할 때 라소니 홀딩스는 정부에 막대한 부채를 지고 살아남았다.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라소니 홀딩스는 정부에 진 부채를 다 갚지 못했다.
라소니 홀딩스를 인수할 때 정호준은 일본 정부에 부채를 조금이나마 탕감해 줄 수 있는지를 협상 사안에 넣었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부채 탕감 비율 조정을 이끌어내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나단이 정호준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찔러 보기만 한 거니까요.”
자국 기업이 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 기업이 인수하는 거다. 그것도 경영난이 발생한 기업이 아닌 부채가 있지만 정상적으로 영업을 이어 가며 해마다 부채를 갚아 가는 기업이다. 해 주면 좋고 안 해 주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냥 한번 언급을 해 본 게 전부였다.
만약 조나단과 인수팀이 부채 탕감을 이끌어냈으면 기뻐하며 보너스를 줬겠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문제 삼을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3대 메가뱅크로 꼽히는 은행들 뒤를 쫓는 게 라소니 은행이니, 산세이 은행과 유니버셜 뱅크를 인수합병시키면 사람들의 인식을 4대 메가뱅크로 바꿀 수 있으려나?’
정호준은 속으로 홀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다음 절차를 밟기 위한 지시를 내렸다.
“산세이 은행과 마찬가지로 라소니 홀딩스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상장폐지를 마치는 대로 합병 절차를 밟죠.”
미국, 한국, 일본의 금융을 연결하고, 같은 전자 결제 시스템 카테고리 안에 묶으며 인터넷 뱅킹에서 앞서 나가고, 이후 카드사를 인수해서 오프라인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이는 정호준이 그리는 큰 그림 중 하나였고, 이제 막 퍼즐의 일부분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