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75)
주식분할(株式分割/Stock Split).
유상증자(有償增資/Paid-In Capital Increase).
두 방법 모두 기업의 총발행 주식 수를 늘리는 수단이다. 발행 주식 수를 늘린다는 결과물은 같으나 주식분할과 유상증자는 방식과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다.
다만 총발행 주식 수를 늘린다는 결과물과 마찬가지로 공통점이 또 하나 존재했는데. 바로 주식분할을 진행하든 유상증자를 감행하든 기업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주식분할을 진행해도 유상증자를 감행해도 증자와 분할은 한 시점의 시가 총액은 이전과 비교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주식분할 후 시가 총액이 오르는 경우가 태반인 오늘날의 주식시장을 떠올리면 시가 총액이 그대로라는 게 조금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주식분할 이후 시가 총액이 오르는 건, 어디까지나 분할로 주당 매수가가 하락해 접근성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10 대 1 비율로 주식이 분할되었다는 말은 만약 그 종목의 주가가 100만 원이라면 10만 원의 가치를 가진 주식 10개로 나뉘었다는 거다. 1주를 매입하는 데 드는 돈이 10만 원이 되었다는 거고, 이는 비싸서 주식을 매수할 엄두도 못 내던 주식들이 분할로 가격이 하락한 것을 확인한 개인 투자자들은 ‘나도 사 볼까?’라는 생각을 품고 주식을 매수하게 이끈다.
새로운 투자가 발생한 셈이고, 수요가 발생하니 주가의 가치가 오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그저 고가의 주식이 비율에 따라 나뉜 것에 그치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주식분할과 달리 유상증자는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수단이다. 이야기했다시피 주식분할도 유상증자도 주식 발행 수는 늘어도 주가 총액은 똑같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예시를 들면 총발행 주식이 1,000만 주인 시가 총액 1조 원에 달하는 A라는 기업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 A라는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자금이 부족해 주주총회를 거쳐 유상증자로 100만 주의 신주를 발행했다.
100만 주의 신주 발행으로 A라는 기업의 총발행 주식은 1,100만 주가 됐는데, 이야기했다시피 유상증자를 진행해도 시가 총액은 1조 원으로 똑같다. 이는 곧 10만 원이었던 주가가 9만 원으로 하락했다는 말과 같았다.
유상증자는 주주가 손해를 부담하도록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 * *
보통 신주 발행부 유상증자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이 모자란데 은행권에 대출을 받기 싫거나 더는 대출을 받을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주주들이 회사의 손해와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번 산세이 은행 유상증자 사태는 명백히 JD플라워에 손해를 강요하는 행위였다.
위에서 유상증자에 관해 설명했듯이 유상증자는 자본을 대가로 신주를 발행하지만 시가 총액이 늘어나진 않으니, 자연스레 주식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204,101,350주였던 총발행 주식은 1차 주주총회를 마친 뒤 254,101,350주로 증가했다.
JHJ Capital이 개설한 유령법인은 신주를 받는 대가로 산세이 은행에 400억 엔을 쏟아부어 논란의 소지를 최소화했다.
‘정당한 가치를 매겨도 어차피 그 돈은 나한테 돌아오는 거니까.’
이런 말을 하면 재수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현재 JHJ Capital은 돈이 넘쳐났다. 십수조를 쏟아부어도 무리가 없을 역량을 지녔는데, 겨우 수천억은 우스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5천만 주 신주 발행이라는 안건이 통과된 지 얼마나 됐다고, 1달이 지났을 무렵 또다시 5천만 주 신주 발행이 유령회사를 통해 안건으로 올라왔다. 첫 번째 주총에서도 통과됐던 안건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 2차 주총에서 통과가 안 될 이유는 없었다.
산세이 은행의 총발행 주식은 이윽고 300,101,350주가 되었다.
-JD플라워가 보유 중인 산세이 은행 지분을 JHJ에 매각하겠습니다. 그러니 재발 멈춰 주십시오.
정호준의 미친 짓에 분노한 JD플라워 경영진 측은 JHJ Capital에 항의도 해 보고 잘못을 시인하면서 사죄하고 주식을 팔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대로 손해를 계속 감수할 수는 없어 이제라도 주식을 시장에 내놨지만 JD플라워와 전쟁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JD플라워가 시장에 푼 주식을 사들이는 이는 없었다.
JHJ Capital이나 유니버셜 뱅크조차도 주식을 사들이지 않았다.
정호준은 자신이 각본을 짠 고스톱을 조용히 지켜봤다.
* * *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자신의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손해를 입은 주주들이 모여서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CDS를 계약했던 마이클 스팬서도 소송에 휘말렸잖아?’
정호준의 1회차의 역사에서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을 깨닫고 신용부도 스와프를 구매했던 마이클 스팬서는 그가 옳다고 밝혀지기 전까지 내 돈 돌려달라며 손해배상 소송에 빈번하게 연루됐었다.
정호준의 2회차의 삶에서는 끝까지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 정호준에게 돈을 타내 돌려줬다는 이유로도 소송을 당했다.
‘참 대단한 나라야.’
미국은 돈에 대해서는 가차 없고 뻔뻔하기가 그지없는 이들이 수두룩한 나라였다.
그리고 주주에 친화적인 성향이 강해서인지 한국과 달리 손해배상 소송에서 약자들이 이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물론 미국도 돈 있는 쪽이 더 많이 승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이조차도 양반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나 하니, 산세이 은행 유상증자 건으로 손해가 막심한 JD플라워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이야기가 들여왔기 때문이다.
‘기대하라고 아직 안 끝났으니까.’
* * *
정호준의 장인인 찰스 주니어 로슬러는 아리아가 아이들을 출산한 뒤로 1주에 한 번 이상 정호준의 저택을 방문했는데, 이런 주니어의 루틴은 가정교사나 촬영팀 호준의 절친인 박기태가 저택에서 머무르게 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부탁할 게 있으면 이야기하기 편했다. 약속을 따로 잡을 필요도 없이 그냥 아이들을 봐주는 팔불출 할아버지와 서재로 이동하면 그만이니까.
다만 대화를 나누는 게 편하다는 거지,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내는 게 편하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과 있을 때와 달리 정호준과 서재로 이동했을 때는 팔불출의 모습이 사라진 로슬러가의 관계자다운 모습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정호준은 서재에 구비된 커피머신을 활용해 자신과 주니어의 커피를 내렸다. 10분 정도 소요해서 커피를 만든 정호준은 장인인 주니어에게 먼저 건넸다.
정호준에게 커피가 담긴 잔을 받은 주니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향을 음미한 뒤 입을 열었다.
“JD플라워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다. JHJ Capital의 유상증자 강행으로 JD플라워가 손해를 입은 건 이미 월가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소식이었다.
“예, 모르긴 몰라도 최소 1억 달러 이상은 손해를 봤을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좋게 가니까 제 주머니에 있는 것도 탐내기 시작해서요. 이쯤에서 제가 유순하고 만만한 이가 아니란 걸 한번 보여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본보기로 보여 줬습니다.”
자신이 마실 커피를 다 내린 정호준은 주니어가 앉은 소파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물었다.
“혹시 로슬러에 부담이 될까요?”
“그럴 리가. 잘했네. 우리 로슬러 패밀리를 얕봤다면 대가를 치러야지. 이 정도에서 끝낸 게 아쉽구먼.”
잘했다고 사위의 편을 들며 역정을 내는 주니어를 보며 정호준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는데.”
음험한 말투로 아직 한 발 남았다고 말하는 정호준을 보며 주니어는 자기가 괜한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다, 화제를 바꾸기 위해 본론을 물었다.
“그래, 나를 서재로 부른 건 그걸 보고하기 위해서인가?”
“아뇨. 따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일단 이 문제를 먼저 이야기한 건, 연준이 이 사실을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장인께서 조금만 힘을 써 주셨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정호준이 미치지 않는 이상 연준과 로슬러를 JD플라워처럼 대할 리 없지만, 지분율이 낮은 입장에서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어도 사전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따로 이야기해 두도록 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웃으면서 인사를 전한 정호준은 주니어를 서재로 부른 진짜 이유를 입에 올렸다.
“이번에 저희가 산세이 은행 인수한 거 아시죠?”
“그럼, 그걸 모를까?”
“리소니 은행까지 인수해서, 유니버셜 뱅크와 합병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호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자네의 고국이었던 한국에 전부 은행을 두게 됐군.”
찰스 주니어 로슬러는 미국, 일본, 한국을 망라하는 은행을 만들겠다는 정호준의 야심 가득한 계획에 감탄하다 문뜩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유니버셜 뱅크 지분율을 유지하고 싶으면 추가로 대가를 지불하란 이야기구먼.”
“예, 맞습니다. 연준에는 유니버셜 뱅크 관계자를 따로 보내 이야기할 생각이지만 장인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요.”
손주 손녀 앞에서는 쉽게 갖다 붙이기 힘든 팔불출력을 지녔지만 누가 로슬러 아니랄까 봐 척하면 척 알아들었다.
로슬러 가문과 로건 가문, 그리고 정부의 도움을 받아 유니버셜 뱅크를 창립했을 때 정호준은 연준에 20%, 찰스들에게 10%의 지분을 넘겨줬었다.
유상증자로 시가 총액이 증가하진 않았지만, 산세이 은행은 이미 상장 철폐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은행의 자금 규모가 은행의 가치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값이 오르면 오르지 내려가진 않으리라.
인수합병을 통해 지분율을 조정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말이잖은가?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돈 계산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이대로 지분율을 조정하면 좋을 텐데, 쉽지 않겠지?’
사실 정호준이 가장 바라는 결과는 로슬러와 연준의 지분을 줄이는 거다. 하지만 유니버셜 뱅크의 장래가 어둡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연준과 로슬러에서 지분이 주는 것을 원할 리 없었다.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를 추가로 부담해야 할지는 차차 상의하도록 하지. 연준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하고.”
아니나 다를까 주니어의 입에서도 바라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한마디가 나왔다.
어쨌든 주니어도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으니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DT그룹이나 연준에서 추가로 자금을 출자하면 유니버셜 뱅크의 자금력이 증가할 테니 말이다.
* * *
복수를 천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따라다니면서 JD의 행보를 방해하기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다.
저들이 투자하는 게 정말 성공할 것인지도 의문이잖은가?
‘감정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복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건 정호준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JD에 손해를 끼친 정호준이 JD에게 먹일 마지막 한 방은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예술과 의술의 신으로 불리는 신의 이름을 딴 기업 ‘아폴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