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65화 (265/335)

26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5)

일본 증시는 문을 닫았지만 일본의 악재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졌다.

저녁 7시 20분에 비상냉각장치의 2A, 3A 밸브 램프가 복구되었다. 그러나 밸브 램프를 복구했어도 정전 때문에 램프는 가동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멜트다운 사태가 야기되었다.

3월 11일 저녁 7시 29분에 시작된 멜트다운 때문에 노심이 녹아내렸고, 냉각수와 접촉해 수소와 방사능이 발생시켰다.

8시쯤 배터리가 도착해 2호기, 3호기 등에 전력을 공급했지만. 1호기는 전력을 공급하여 해결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복구팀을 보내 주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저녁 8시 30분, 야마다 소장은 도쿄전력 본사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배터리 운송 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도착은 지연되었다.

밤 11시 50분 전원이 연결되고 1호기 운전원을 통해 원전 상태를 확인했을 때의 격납용기 압력은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판명 났다. 원전 직원들은 원전 설비의 재가동을 위해 전기를 필요로 했지만 그들이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예비 배터리는 전무했다.

“승용차나 버스에 부착된 배터리라도 뜯어서 갖다 놔!!”

궁하면 통한다고 야마다 소장은 기지를 발휘해 눈에 보이는 승용차나 협력업체의 버스에 달려 있던 배터리를 떼서 시스템의 일부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그래 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 꼴에 불과했다.

그나마 시스템을 일부를 겨우 회복시킬 수 있었고, 시스템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잔혹했다.

노심의 수위가 내려가고 압력이 높아져 냉각수 투입으로 끝날 문제가 아님이 파악되었다.

‘이대로면 폭발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시켜 보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야마다 소장이 8시 30분에 요청했던 전원복구반과 외부업체는 3월 12일 새벽 2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조금은 나아지려나?’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작게나마 기대감을 품었지만. 신은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쿠르르응!!

“여…… 여진입니다!!”

“쓰나미 경보가 추가로 발동했습니다!”

복구에 착수하려는 찰나에 발생한 여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 경보에 복구 작업을 뒤로하고 더 높은 곳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그 누구보다 잘 파악 중인 야마다 소장은 부하 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나오면서 한탄을 내뱉었다.

‘신께서 일본을 버리신 건가?’

제발 제발 위에서 잘 판단하기를 기원했다.

* * *

21세기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연결된 세상이다. 큰 사고가 발생하면 그 정보가 지구 반대편에 퍼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 말을 다르게 이야기면 세계 각국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피해와 수습 정도를 보고받고 원전에 관해 신경 써야 했기에 총리 관저는 밤이 늦었음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해당국에 파견 내보낸 외교관들이나 주재일본 대사관들을 통해 각국의 걱정과 염려를 전해 들은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는 간토전력 사장단에게 연락을 넣었다.

“해수 투입을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하지만 총리님! 해수를 투입하게 되면 원전을 못 쓰게 됩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없으면 간토 지방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1회차 때의 이야기지만, 원전을 잃고 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으로 전환된 간토전력은 원전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었다. 팬데믹 사태 이후 개최된 일본의 도쿄 올림픽에서 발생했던 화재가 바로 전력 부족 때문에 일어난 화재였다.

미래의 일이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당사자들은 훗날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몰랐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잃고 싶지 않았던 간토전력은 전력 공급을 인질 삼아 반대했다. 얼핏 들으면 미래를 예견한 것과 같지만 이건 그저 간토전력 사장단의 욕심이었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원전 전문가들은 내게 해수 투입을 요구하더군요. 골든타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던데요?”

-그래도,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방법을 궁리할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시간은 주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준비는 하세요.”

-준비라면?

“해수를 투입하는 데도 준비 시간이 필요하잖습니까?! 지시를 내리면 바로 해수를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란 말입니다!”

어떻게든 원전을 지키려고 뜸 들이는 모습이 답답했던 하토야마 총리가 일갈했다.

“해외에서 우리를 방사능 열도라고 부른답니다!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나는 후쿠시마가 체르노빌 사태처럼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막아 세울 겁니다.”

체면. 남을 대하는 관계에서, 자기의 입장이나 지위로 보아 지켜야 한다고 생각되는 위신. 체모. 면목. 모양새를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이 체면이란 단어는 개인이 아닌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국가의 체면을 신경 썼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은 특히나 세계의 관심과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평생 해외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도, 해외로 나가서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체감조차 불가능한 게 외국인의 관심과 인정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모두 세계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신경 썼다.

개중에서도 일본은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일본이 제2의 경제 대국이라 불렸을 때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인 역사서에 메이지유신이라 명명한 개혁 개방을 진행했을 때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진행하는 작업이 바로 이미지 관리인 게 이를 증명했다.

물론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이미지를 관리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피부색에 대한 차별, 동양인과 흑인에 대한 인식이 바닥이었다. 서구 사회가 일본을 동등한 대상으로 여길 리 없었고, 일본 정부는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차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열강이라 불렸던 국가의 언론에 돈을 뿌려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일본이 심은 환상 중 하나가 바로 ‘사무라이’다.

길을 가다 심심해서 혹은 칼의 날카로움을 시험하기 위해 평범한 백성을 베어버릇하고,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빈번했던 사무라이란 야만적인 존재를, 약자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는 존재로 바꿔 서구권에 알린 게 바로 이미지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이미지 작업은 패망 후 다시 일어서자마자 시작됐고, 21세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일본은 후진국이나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한 나라의 예산보다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자신들에 대한 이미지를 관리해 왔다.

일본 정부가 쏟아부은 돈은 나름대로 그 값을 톡톡히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서양인들은 일본의 역사를 자세하게 공부한 이가 아닌 이상 사무라이를 좋게 봤고, 일본에 막연한 환상을 품었으니 말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게 인식시키기 위해 쏟아부은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그런데, 방사능 열도라는 말을 듣는다? 총리로서, 아니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 * *

동일본대지진 때문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참사와 관련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한다.

야당인 자민당에서 간토전력과 함께 당시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를 공격하는 바람에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이 굼뜬 것처럼 알려졌는데, 훗날 사고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달랐다.

3월 12일. 수소 폭발이 일어나자 당시 후쿠시마 발전소 책임자인 야마다 소장은 버틸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오후 4시쯤 간토전력에 해수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지 몇 차례 논의하느라 시간이 더 지체됐지만 결국 간토전력은 야마다 소장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해수 투입을 총리 관저에 알렸다.

“준비작업에 2시간이 필요합니다.”

해수 투입을 결정한다고 바닷물이 알아서 투입되는 게 아니다. 바닷물을 끌어와 붓는 행위에도 여러모로 준비가 필요하다.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간토전력은 원전을 망가트리는 해수 투입이라는 선택지를 처음부터 선택지에 넣지도 않았고, 해수 투입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12일 저녁,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했다는 보고를 받은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는 당시 연락을 담당하던 이에게 “그 사이에 재임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해 주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이 중지되면 전력 공급에 난항을 겪게 되는 건 펙트였기에 미련이 남아, 혹시나 해서 물은 지시였다.

당시 연락을 담당했던 간토전력의 펠로우 ‘다카야시 이치로’는 후쿠시마 원전에 전화를 걸어 “바닷물을 넣으면 재임계의 우려가 있다고 총리 측에서 우려를 표했으니, 바닷물을 넣지 마라”라고 왜곡했다.

미쳐도 정도껏이다.

사장단도 아니고 일개 기업의 직원이 위급 상황에서 국가 원수의 명령을 멋대로 왜곡한 것.

‘이거 간토전력 사장단이 시킨 거 아니야?’

일개 펠로우가 이런 국가대사(國家大事)에 끼어들어 사기를 친다는 게 말이 안 되었기에 다카야시 이치로라는 펠로우가 벌인 사기행각의 배후에 간토전력 사장단의 입김이 존재할 거라는 음모론이 제기됐지만 일단 증명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야마다 소장이 그 말을 무시하고 바닷물 주입을 계속해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현장이 아닌 간토전력 본사에 적을 둔 이들은 어떻게든 해수 투입을 지연시키거나 막기 위해 움직였다는 거다.

기가 막힐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런 역대급 거짓말은 뱉은 다카야시 이치로는 2019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게다가 소송을 이어 가면서도 승승장구를 이어 가 부사장직에 재직 중이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나라였다.

현재의 일본은 정호준의 개입으로 인해 말도 상식도 통하지 않았던 1회차 때와는 전혀 다른 전개가 이어졌다.

“만약 내가 해수 투입을 지시했는데, 현장에서 준비가 덜 돼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면 당신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알아들어?!”

후쿠시마 원전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전 세계에 브리핑이 완료돼서일까? 어영부영한 모습을 보여 줬던 1회차 때와 달리 단호하고 강하게 대처했다.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어 숨기지만 치부가 드러난다면 체면을 중시해 단호하게 잘라내는 일본 관료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후 2시까지 시간을 주겠습니다. 만약 2시까지 사태가 개선되거나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긴급명령을 사용해서라도 해수 투입을 지시할 겁니다.”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는 확고한 마지노선까지 제시했다. 만약 그의 말대로 12일 오후 2시에 해수를 투입한다면, 이는 여러모로 지연되고 지연되어 13일 오후 1시가 넘어서야 해수가 투입됐던 정호준의 1회의 삶과 비교해 거의 하루는 빠른 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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