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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61화 (261/335)

26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1)

정호준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하고 방으로 돌아온 요시다 겐이치로는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일선에 나가 일하는 나이가 된 만큼 갑작스러운 가족 모임, 반드시 참석하라는 겐이치로의 요구에 속으로 당황이나 짜증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으나 요시다 겐이치로의 자식들은 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일본은 집안의 권력인 가장인 부친에게 쏠려 있는 가부장(家父長) 사회 풍토가 강했으니 말이다.

“히마리, 타카시. 회사에 사표 내고 오도록.”

그러나 그들을 불러 모은 겐이치로의 입에서 나온 용건은 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

고분고분하게 자랐지만 부모가 회사를 관두랬다고 그냥 관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직장 잡고 일을 시작했으면 어엿한 성인이잖나? 때문에 타카시는 겐이치로의 요구에 불응하며 감정을 드러내려 했다. 다만 겐이치로가 한발 빨랐다.

“JHJ Capital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너희만 원한다면 JHJ Capital에서 너희가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밟을 수 있게 지원해 준다고 하더구나.”

겐이치로의 입에서 MBA 과정을 마치면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최소 5년은 임기를 보장해 준다는 정호준의 제안까지 흘러나오자 반발하려던 타카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단기간에 최고 반열에 오른 JHJ Capital이다. 제트컴 사태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당시 일본을 공격했다는 악명을 갖고 있어 일본 내에서 인식이 안 좋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그건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갈 일본인의 관점에서의 이야기였다.

JHJ Capital에 몸담을 기회가 생긴다면야 누가 마다하겠는가? 아무리 전체주의가 발전한 일본이라지만 개인의 성공만큼 우선시되지는 않았다.

“히마리. 미국은 우리 일본보다 여자에게 더 기회를 많이 주는 곳이다. 나는 히마리 네가 타카시와 함께 MBA 과정을 밟았으면 한다.”

2000년대, 아니 2010년대에 들어선 후에도 일본은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차가 큰 나라에 속했다. 남자와 여자의 연봉에 차이가 존재하는 건 물론이고, 채용 비율이나 승진 비율에서도 남녀 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대신에 여성은 남성과 비교해 취직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기는 했다. 남자였다면 초일류 대학을 나와야만 입사가 가능한 회사가 여성은 일류 대학만 나와도 입사가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걸 이점으로 보기 좀 그런 게, 일본 회사들은 대개 여성들을 결혼하거나 애를 가지면 사라질 존재로 봤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항상 하는 주장인 여자는 애를 낳으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가고, 사회 복귀가 어렵다는 전형적인 예시를 보여 주는 나라였다.

근데 또 아이러니한 게 일본 여성들은 그걸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기조를 풍긴다는 거다.

그러나 부모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개 개인이 사회적 풍토를 이겨 낼 수는 없기에 요시다 겐이치로는 지금까지는 순응하고 조용히 지켜봤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로 가족 전체가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 만큼 그 나이대의 일본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적당히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할 사람을 찾고 있던 딸 히마리가 좀 더 자신의 인생을 살길 원했다.

“히마리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타카시와 마찬가지로 MBA 과정을 밟는 것을 지원해 주고 5년의 임기를 보장해 준다고 했다. 비서로 일하는 거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니, 아비는 네가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요시다 겐이치로는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뱉고는 조용히 히마리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래도 된다면 해 보고 싶어요.”

10분 정도 조용히 혼자 고민을 하던 요시다 히마리는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딸의 대답에 겐이치로는 입가에 웃음기를 띄며 아내를 바라봤다.

“스미레, 아이들과 장모님을 모시고 미국으로 넘어가 있어.”

“우리 엄마도요?”

“처남이랑 처조카들도 전부 미국으로 보낼 거야.”

요시다 스미레는 눈동자에 걱정이란 감정이 서렸으나 평소 남편이 하는 일에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고 따라왔던 그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항상 잘 처신해 왔으니까 말해 줄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설명해 주었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그럼 먼저 건너갈게요.”

“그래. 재산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스미레 너는 아이들과 함께 최대한 빨리 건너가.”

그렇게 요시다 겐이치로는 대지진이 올 확률이 높다고 언급한 조국 일본에서 가족들을 빼내었다. 처남인 이노우에 하타로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여러모로 겐이치로에게 빚진 게 많은 이노우에 하타로는 결국 요시다 겐이치로의 말에 따랐다.

* * *

괜히 사서 걱정한 탓에 비싼 값을 치르게 됐지만, 정호준은 중심일보에 광고를 넣은 것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기본 어플리케이션으로 설치해 둔 덕분에 점유율 확보가 순조롭긴 하지만, 그래도 홍보는 해야 하니까.’

어차피 은행 점유율을 올리고 유니 톡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홍보는 필요했다. 광고로 사용자의 증가 폭이 2~3%만 늘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었다.

‘그래도 돈값은 하네.’

중심일보는 정호준으로부터 ‘유니버셜 뱅크’와 ‘유니 톡’을 홍보하는 수백억 원대의 광고를 받은 것을 보답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 주었다.

정호준은 일리노이주로 파견 나온 박기태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왔다. 커다란 캐리어를 4개나 카트에 싣고 다가오는 박기태를 보며 반가움의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 미국 중부를 담당하게 됐다고?”

경력도 없는 신입을 주재 미국 기자로 보는 게 말이 안 됐기에 중심일보는 회사 시스템을 손봐 박기태가 소속된 팀 전체를 미국에 보내 버렸다.

“정확히는 중북부. 우리 팀 전체가 넘어왔거든. 팀장님은 캘리포니아로 가셨고.”

박기태는 나름 간부급으로 분류되는 직급을 가진 이들 빼고는 전부 랜덤으로 돌렸고,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거 운 아닌데.’

물가가 오를 대로 오른 2020년대에도 언론사의 매출은 조 단위를 넘어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조는커녕 5천억을 돌파한 기록조차 없었다. 3년에 걸쳐 지급되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광고비로 수백억을 지급하는 건 큰손이었다.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쓴맛을 덜 본 듯한 친우의 말에 정호준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영어는 열심히 공부했고?”

“원어민이 활동하는 곳에서 공부했어. 완벽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 될 거야. 조카들이랑 대화도 못 하는 삼촌이 되기 싫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이렇게 특파원으로 나오기까지 하네.”

아이들과 놀아 주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박기태를 보며 정호준은 피식 웃었다.

“잘됐네. 그럼 우리 집 손님방에서 머무르면서 간간이 애들이랑 놀아 주고 그래.”

“어쩌다 하룻밤 신세 지는 것도 아니고 너희 집에서 머무르라고? 됐어. 신혼집에 내가 왜 얹혀사냐? 집 구할 때까지 며칠만 신세 지는 거로 하자.”

“너 아니어도 우리 집에서 활동하는 사람 많으니까 그냥 내 말대로 하지?”

저택 관리를 맡은 집사를 시작으로 경호팀, 가정교사, 촬영팀, 등 정호준의 저택에서 생활하는 이만 이미 열을 아득히 넘긴다. 거기에 박기태 하나 추가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네가 합류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와. 퇴근하고 나서 너랑 같이하고 싶은 것도 있단 말이야.”

“매일 얼굴 맞대는 거 제수씨가 껄끄럽게 여기지 않겠어?”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겠다고 꼬시는 건데, 당연히 허락을 맡아 놨지.”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물건을 사는 문제에서나 쓰이는 말이다. 거주와 관련해서는 의중을 먼저 묻는 게 맞았고, 아리아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계속된 정호준의 설득에 박기태는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어서 와요, 기태. 특파원으로 파견 나와 있는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 거라죠?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있어요.”

“오랜만이에요 제수씨. 이거 더 예뻐지신 거 같아요?”

“열심히 관리하니까요. 더 예뻐졌다니 돈 쓴 값을 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보통 외모를 칭찬하면 아니라고 겸손을 떤다. 그런데, 아리아는 겸손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았다. 박기태는 아리아의 직설적이고 털털한 태도가 어색하면서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아리아와 박기태가 서로 덕담을 나누며 인사를 마쳤을 무렵 정호준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근데 너 자꾸 아리아를 제수씨라고 부른다? 형수님이라고 부르라고 예전부터 몇 번이나 말한 거 같은데?”

공항에서야 박기태를 꼬시느라 오류를 바로잡아 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박기태의 입에서 저택에 머문다는 답이 나왔다. 아쉬울 게 없어진 이상 오류를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형수님은 무슨 형수님.”

“생일도 내가 빠르고 사회생활도 내가 먼저 했다. 그리고 결혼 생활도 내가 먼저 했는데, 이쯤 되면 내가 형님 아니냐?”

“X소리 집어치워!”

벌써 수십 번은 본 광경이기에 아리아는 ‘또 시작했네’라는 표정을 지으며 식사 준비는 다 됐는지 확인하러 떠났고, 촬영팀 식구들은 정호준과 박기태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부러움을 나타냈다.

‘나는 얼마든지 형님으로 부를 자신 있는데, 100분의 1만이라도 성공할 녀석이 없을까?’

* * *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 보며 아이들과도 인사를 마친 박기태를 이끌고 정호준은 자신이 준비해 둔 컴퓨터룸으로 향했다.

정호준은 레전드 리그를 실행해 박기태에게 플레이를 주문했다.

“이게 네가 투자한 회사에서 만든 게임이라고?”

“응, 올해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어. 너 나랑 팀 맺고 같이 나가지 않을래? 퇴근하고 밤에 연습해서 나가자.”

“대회라며? 초보자인 내가 무슨 대회야.”

“부끄럽지만 게임이 아직 그렇게 유명세를 탄 건 아니라서 아는 사람만 알아. 스페이스크래프트처럼 프로리그가 있는 것도 아니고.”

1회차의 삶에서 처음 개최됐을 때 걸린 우승 상금보다 무려 10배를 더 걸고 홍보를 열심히 때린 탓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팀들이 대회에 나오겠다고 지원을 하긴 했다. 개중에는 훗날 프로라는 타이틀을 걸 팀들 또한 다수 존재했다.

‘그래 봐야 아직 이해도 면에서는 프로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

“사회생활 시작하긴 했지만, 우리 아직 어리다. 이 정도 일탈은 즐겨도 되지 않겠어?”

본인이 우승 상금을 후원하고 후원한 상금을 본인이 타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재미였다.

‘만약 정말 우리가 우승하거나 상금을 받을 수준까지 올라가면 내 몫은 기부하지, 뭐.’

또 하나의 추억을. 그리고 혹시나 박기태가 개인 방송으로 전환했을 때 하나의 커리어가 될 수 있도록 정호준은 박기태를 열심히 꼬셨다.

그렇게 정호준이 꼬임에 넘어간 박기태는 아침에는 일하면서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저녁마다 정호준에게 개념을 설명받고 연습을 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일본 7.3 강진 발생!

정호준과 박기태가 나름대로 충실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3월 9일 일본 센다이 근해 오후나토에서 남동쪽으로 120km 떨어진 지역에서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훗날 산리쿠 지진이라 불리며 동일본 대지진의 전조였다고 밝혀질 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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