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47화 (247/335)

24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7)

일본을 제외하고 10세기 이후부터 줄곧 중앙의 힘이 강력했던 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중앙(왕, 의회, 정부)보다는 지방(영주, 귀족)의 힘이 강력했다. 프랑스는 대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독일은 제국을 통일시킨 카이저가 등장하고 나서야 중앙의 힘이 강해졌다.

이렇게 동양과 서양이 이런 차이를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는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동양은 쌀을 주식으로 삼는 쌀 문화권이고, 서양은 밀을 주식으로 삼는 밀 문화권이라는 식습관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었다.

밀은 다른 작물과 비교해 지력을 많이 잡아먹어 땅의 지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휴경을 해야만 한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지력을 잡아먹는다는 점 외에는 장점이 많은 작물이다. 쌀과 함께 인구 부양력이 높은 작물로 꼽히며 추운 기후에도 잘 자라고(조금은 추운 게 좋음) 겨울을 나므로 병충해의 피해가 적다는 장점을 가졌다.

농사를 짓는 데 여러모로 손이 조금 덜 가는 작물이라는 거다. 그렇다 보니 다 같이 힘을 모으기보다는 본인의 땅에 본인이 씨를 뿌리고 농사 전반적인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서양은 전체주의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고, 정부가 농사에 끼어들 이유가 없으니 정부의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시아권은 이야기가 달랐다. 쌀은 밀처럼 인구 부양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작물이지만 밀과 달리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물을 필요로 했다. 그렇다 보니 ‘누구의 논에 물을 먼저 대는지’, ‘누구의 논에 물이 더 들어갔다’와 같은 이유로 분쟁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농사꾼들이 다투지 않도록 중간에서 중재할 대상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이는 정부(중앙)의 몫이 되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전통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강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쌀(벼) 농사는 밀 농사와 비교해 손이 많이 갔다. 논에 물을 길어 오는 것도 일이었고, 밀과 달리 벌레가 활동하는 따듯한 시기에 농사를 짓기에 벌레가 많이 꼬였다.

“올해는 장씨 논이 먼저였지?”

“할 일이 태산잉께 언능 하자구.”

손이 갈 일투성이다 보니 농사를 짓는 데 있어 개인이 홀로 모든 일을 하기보단 서로서로 돕는 경향이 강했고,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개인주의보다는 전체주의가 발달하게 되었다.

* *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밀은 따듯한 기후보다는 조금은 추운 기후에서 자라는 작물이다. 그런데 인구의 증가에서 비롯되는 탄소 배출의 증가와 인구 증가, 기술 발전 그리고 개발에서 비롯되는 환경 오염과 오존층 파괴 등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로 지구의 온도는 매년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올라가는 이 현상은 인류는 ‘지구 온난화’라 불렀는데, 이 지구 온난화 현상은 이상기후를 동반했다.

시기에 맞지 않는 기후, 본래의 환경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이상기후는 당연히 농사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조금 추운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밀의 특성에 맞게 러시아는 주로 밀 농사를 짓는 국가였는데, 2010년 7월 온난화가 야기시킨 이상기후로 인해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며 러시아에 가뭄이 찾아왔다.

밀이 쌀과 비교해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이 말이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물 없이 자라는 작물은 세상에 몇 존재하지 않잖은가?

가뭄으로 인해 통계에 ‘세계 밀 생산량 4위’, ‘세계 밀 수출량 1위’를 기록 중인 러시아가 밀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이는 2010년 곡물파동이라 불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트리거(Trigger)가 되었다.

* * *

러시아의 가뭄이 곡물파동의 트리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군가 원인이 러시아냐고 묻는다면 정호준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답할 거다.

2010년 발생한 곡물파동은 이런저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태였다.

‘이번에도 국제 투기자본이 한몫했을까?’

2010년 이전에도 사실 곡물파동은 발생했었다. 2010년 이전에 발생한 곡물파동 중 가장 최근에 벌어진 곡물파동은 2007~2008년에 일어났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 부동산에 투자했던 전 세계 자본가들은 역량을 총동원해 손해를 최소화하며 빠져나갔다. 물론 개중에는 너무 발을 깊게 담가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도 허다 했지만.

그거야 포트폴리오를 분산시키지 않은 그들의 책임이잖은가?

-이제 어디다 투자해야 하지?

최소한의 피해로 자본을 빼냈든 피해를 크게 봤든 피해의 규모를 떠나 돈을 빼낸 자본들은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했다. 부자들은 현금을 결코 현금으로 쥐고 있지 않는다. 국제 자본들의 다음 투자처는 그렇게 실물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실물의 범위는 금, 은, 동과 같은 광석 외에도 밀, 쌀, 대두와 같은 작물 또한 실물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다. 투기자본이 사재기를 시작해 수요의 폭증에 맞춰 값이 올라가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에 달러의 가치가 흔들리는 바람에 곡물가는 급격하게 뛰었다.

곡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그 외에도 존재했다. 신흥국의 육류 소비가 증가로 인한 사료용 곡물 수요는 폭발적 증가해 ‘아르헨티나’나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같은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의 수요 공급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밀, 옥수수, 대두에 수출세를 부과하고 아예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또 평소라면 곡물 수출국 대열에 속했을 호주가 2010년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가뭄이 들어 곡물을 수입하기에 이르렀으니 가격이 유례없이 치솟을 만한 환경이었다.

2007년 4월에서 2008년 3월까지 S&P GSCI 농산물, 소맥, 옥수수, 대두, 쌀 등의 선물지수가 최소 60% 많게는 200%가 올랐다. 실물가 또한 최소 40% 이상 올랐고 말이다.

‘CDS(신용부도스와프) 외에도 이런 데 좀 더 투자했으면 좋았을걸. 내가 너무 몰랐네.’

알면 알수록 본인의 좁았던 시야를 반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호준이 이러한 정보를 얻게 된 건 곡물에 투자하겠다는 지시를 테일러 팀장에게 밝힌 후 회의를 개최했을 때 얻게 되었다.

“평균적으로 곡물파동은 보통 10년에 한 번 일어납니다. 2007~2008년에 이미 곡물파동이 일어났는데, 지금 곡물에 투자하는 건 여러모로 리스크가 존재하는 일입니다.”

JHJ Capital에서 투자의 방향이나 매입과 매도 시기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정호준의 몫이다. 하지만 정호준이 활동하는 나라는 위에서 까라면 아무런 의견도 내뱉지 않고 따르는 동북아시아 국가가 아닌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풍토가 강한 미국이었다.

JHJ Capital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활동하는 만큼 직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의견을 냈다. 그 덕에 정호준은 남모르게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리스크는 제대로 숙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제 결정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실물을 매입해 주세요.”

“대표님!”

“리스크는 제대로 인지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이야기해야 합니까?”

직원들은 온갖 지식들을 나열하며 리스크 있는 선택임을 주시했지만 올해 러시아가 농사를 망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뚝심 있는 투자를 이어 갔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회사를 위해 한 번 더 반대를 외쳤던 이들은 이내 사죄를 청했고, 리스크를 알렸으면 됐다는 듯 실물 매입팀은 정호준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10년도 어느덧 6월에 이르렀다. 1월, 2월 할 것 없이 배당금을 지급하는 회사들은 분기별로 추가로 배당금을 지급했고, 건물에 세를 든 회사들은 매달 월세를 지급했다. 그에 더해 ‘아바X’의 1차 정산금 10억 달러가 5월에 입금되었다.

단순 계산만 놓고 보면 50억 달러 정도 됐던 JHJ Capital의 자산이 80억 달러를 돌파한 셈이다. 하지만 무제한 매입을 지시받은 실물자산 매입팀이 본격적으로 돈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실물자산 매입팀은 러시아, EU, 중국, 인도, 우크라이나, 캐나다, 호주, 카자흐스탄, 터키 등 세계 10대 밀 수출국과 10대 수출국에는 못 들지만 밀을 수출하는 국가들을 돌며 2009년 6월에 수확한 물량을 사들였다.

‘아바X 1차 정산금이 들어와서 좀 여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이었네.’

중점적으로 사들인 건 밀이지만 밀 외에도 대체재에 속하는 옥수수와 쌀, 대두, 팜유 등을 꾸준하게 사들였다. 실물을 인도받기 시작하며 계약금을 제한 남은 잔금을 입금할 순간이 되자 JHJ Capital의 자금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져 갔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잔금 지급 영수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출을 떠올린 정호준은 대출받기 위해 움직였다. 정확히는 사장인 조나단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조나단 사장님, 유니버셜 뱅크에 대출 신청하세요!”

정호준이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대출 요청을 넣은 곳은 다름 아닌 유니버셜 뱅크였다.

‘대출을 받아서 이자를 줄 거라면 내 소유의 은행에 이자를 주는 게 낫지.’

돈을 대출해 주고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게 은행의 수익 구조다. 어차피 이자를 내야 한다면 돈이 돌고 돌 수 있게 자신이 지분을 가진 은행에서 빌리는 게 나았다.

“배임이나 횡령 같은 괜한 꼬투리 잡히지 않게 다른 기업에 대출을 해 줄 때와 같은 금리로 대출을 받으세요. 금리를 많이 줄 생각은 없으니 부동산 담보 대출로 받아야 합니다.”

담보 없이 대출을 받는 것보다 담보를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게 금리를 싸게 받는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법한 상식이다.

“대출 상환 기간은 언제까지로 설정할까요?”

“으으음, 오랫동안 이자를 지불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단기로 하시죠. 2011년 2월에 상환하는 걸로.”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조나단.”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는 조나단을 붙잡았다.

“아! 그리고 나가면서 비서팀에 선물 매입팀 지미 딕슨 팀장 좀 올려보내라고 말 좀 전해 주세요.”

조나단이 비서팀에 이야기를 잘 전달했는지, 5분도 안 되어 선물 매입팀 팀장 지미 딕슨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예, 불렀습니다. 선물 매입팀 지금 하는 일 없죠?”

“예, 굴리라고 주신 자금을 굴리는 거 외에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공매도 사태 이후 제대로 된 건수가 없어 자극이 부족했던 지미 딕슨은 흥미진진하단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정호준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미국과 영국, 홍콩 등 선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모든 회사에서 S&P GSCI 농산물, 소맥, 옥수수, 대두, 쌀, 설탕 선물을 사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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