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2)
정호준의 경고성 발언에 잠깐 멈칫하며 침음성을 흘렸던 찰스 주니어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런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에 정호준이 질문을 던졌다.
“염두에 두셨던 겁니까?”
“당연하지. 사업하는 사람치고 리스크를 계산에 넣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어린애들이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최소 억 단위 돈이 오가는 사업이니, 세상에 짊어져야 할 리스크를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사업을 시작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전 채굴권이 가져다주는 이득이 얼마나 큰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내전이 일어날 리스크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네. 아니 정확히는 아니길 바랐다고 해야 할까?”
유정을 찾는 데 돈이 많이 소모될 뿐, 파이프라인을 꽂아서 한번 시추에 성공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기름을 뽑아내기 위한 기반 기설을 건설하는 것 외엔 유전을 운영하는 데 큰돈이 소모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 때문에 시추가 중단됐던 곳에 파이프만 꽂고 끌어당기면 그만인 이라크 채굴권을 이라크에서 내전이 일어날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거다.
“자네가 내전이 일어날 거라고 말했으니, 내전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보는 게 맞겠군.”
찰스 주니어는 정호준의 성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답게 정호준의 말을 신뢰했다. 정호준이 팥을 메주로 쑨다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다.
“알아서 잘하고 계시는데, 제가 괜히 끼어든 것 같네요. 오지랖을 부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신경 써 줘서 고맙네.”
주니어는 정호준이 가족이라고 이렇게 한 번씩 신경을 써 주는 호의가 고맙게 느껴졌다.
“서둘러 채굴권을 다른 곳으로 매각해야겠구먼.”
주니어는 로슬러 가문이 주식을 보유 중인 오일 회사 중 이라크 유전 채굴권을 가진 회사들에 채굴권을 매각을 지시하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밀어붙이는 아버지 앞에서 반대하지 않길 잘했지.’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주니어는 동양인인 정호준을 사위로 삼는 것에 조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백인으로 살아온, 아니 아비된 입장으로서 아리아가 백인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혼 시 재산 분할과 관련해 혼전계약서까지 작성하게 만드니 부정적인 마음은 더 강해졌다. 그저 정말 모든 게 끝날 위기에 놓여 있었기에 불도저처럼 정략을 밀어붙이는 부친을 차마 막을 수 없었던 것뿐.
아버지인 찰스 로슬러의 야망 때문에 제 딸을 희생시키는 것 같아 죄책감과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품었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능력은 말한 것도 없고 딸에게도 잘하는 게 눈에 보인다. 게다가 동양권에서 자란 이들은 어른을 어려워하고 불편해한다는데, 자신이 자주 찾아와 손자들을 보는 팔불출을 부려도 이해해 주는 그야말로 100점짜리 사위였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내년에도 시카고에 머무를 생각인가?”
“주지사와 약속한 게 있어서, 가급적이면 몇 년 동안은 시카고에 계속 머무르려 합니다.”
시카고 트리븐을 헐값에 인수하기 위해 연고지를 놓고 주지사를 압박했던 터라 당장은 움직이기 껄끄러웠다. 물론,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된 만큼 정호준이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주지사 수준에서는 딱히 그에게 별다른 위해를 가할 수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본인의 말에 실리는 무게감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카고에서 거주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정호준의 사정을 알게 된 뒤에도 주니어는 설득을 이어 갔다.
“회사는 그대로 두더라도, 거주지는 옮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올해야 아직 아이들이 걸음마도 못 뗀 상태라 괜찮았지만, 슬슬 활동적으로 변해 갈 거네. 추우면 아이들이 다칠 위험이 크네.”
여름보다는 추운 겨울에 부상 위험이 크다는 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시카고의 겨울은 한국보다 더 춥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추웠다. 중간에 가을이 낀 한국과 달리 시카고는 10월만 돼도 정말로 추웠다.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는 별명이 붙은 도시답게 바람이 많이 불어서 특히 더 추웠다.
“겨울 동안 플로리다에 머무는 게 흠은 아니잖나? 주지사가 정치권에 나불거릴 게 걸리는 거면, 내가 따로 이야기해 두겠네.”
할리우드 탑스타나 스포츠 스타, 미국의 부호들이 플로리다에 집을 사 두고 겨울을 플로리다에서 보내는 것쯤은 미국 상류층에서 당연시되는 일이었다. 손자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주니어의 팔불출 가득한 이야기 때문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실소했다.
크게 웃음을 빵 터트리지 않은 것만 해도 정호준은 정말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팔불출 가득한 태도에 정호준이 참다못해 웃음을 터트렸음에도 주니어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플로리다에 집을 몇 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자네의 명의로 돌려주겠네. 내년부터는 거기서 살게.”
부잣집에 시집간 여성이 아이를 낳았을 때 산고를 겪은 며느리에게 위로금을 주거나 집을 해 주는 경우는 어쩌다 한 번씩 듣거나 봐 왔지만, 사위한테 뭔가를 해 주는 경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던 터라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이내 반박을 입에 담았다.
“무슨 명의까지 이전해 주신다고 합니까! 저도 플로리다에 집과 건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그쪽을 비워서 들어가면 됩니다.”
“할애비가 돼서 손주들이 살 집은 준비해 줄 수 있는 거잖나!”
“그럼 하다못해 집의 명의를 제 이름이 아닌 아리아의 이름으로 돌려주시죠. 아이들을 낳느라고 고생한 건 제가 아니라 아리아입니다.”
정호준의 말에 주니어는 입가에 따듯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리아를 챙기는 건 자네가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네. 나는 아리아보단 고맙고 자랑스러운 내 사위를 챙겨 주고 싶네.”
얼핏 들으면 조금 느끼할 법도 했으나, 3년 이상 가족으로 묶여 시간을 보내온 만큼 느끼함보다는 따듯함을 느꼈다.
“하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네요.”
그렇게 정호준은 플로리다 부촌 중 하나인 ‘발하버(Bal Harbour)’에 현재 시가로 천억 원이 넘는 대저택을 선물 받게 되었다.
* * *
한국에서도 이슈화된 키요타 공매도 사건은 국민연금 이사장인 박남출이 자리에서 쫓겨나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해 증권사 대표들을 몰아세우는 요식행위와 공매도 시스템 전산화에 착수하라는 권고가 나간 뒤에야 조금씩 수습되는 분위기를 띠었다.
다음 대선 주자로 떠오르며 김명호가 여당에 합류하기 전부터 여당의 실세였던 박정혜 의원 또한 자신을 따르는 친박계 의원들을 모아 공매도와 관련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며 관심을 끌었다.
[박정혜 의원이 발의한 공매도 관련 개정안, 국회 통과!]
국민연금 관계자를 공격하며 박정혜 못지 않게 국민들의 관심을 끈 강현태 인권변호사는 오랜만에 걸려오는 연락에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강현태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의원이라뇨. 이젠 한낱 변호사일 뿐인데요.”
-제게는 의원님이십니다.
“그래요. 호칭이야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어쩐 일로 연락해 주셨습니까? 저는 요즘 정 대표님이 연락을 주시면 겁부터 납니다. 또 무슨 큰일이 터질까 봐요.”
강현태는 그를 띄워 주는 정호준의 분칠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물었다.
-하하하! 엄살 부리시긴. 굳이 제가 권하지 않아도 이제는 알아서 먼저 나서시던데요? 멋졌습니다. 연구도 많이 하신 것 같던데요? 의원님의 조언을 받겠다며 자주 방문했던 박정혜 의원이 이번에 상정한 법안을 보니까 꽤 탄탄해졌더군요.
자신과 상의도 하지 않고 터트린 일이었지만 정호준은 이를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칭찬했다. 한국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본인이 직접 강현태를 키우고 있기는 하나 꼭두각시로 여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설령 남들이 보기에 꼭두각시가 맞을지라도 강현태만큼은 정호준이 그를 꼭두각시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아선 안 됐다.
‘!!’
실제로 정호준이 국민연금을 공격한 것을 언급하자마자 표정이 굳어졌으나 칭찬이 잇따르며 이내 굳어진 표정이 펴졌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습니다. 이게 다 정 대표님을 보고 배운 거죠. 비행기는 이쯤 태우셨으면 충분하니까, 이제 그만 용건을 이야기해 주시죠.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인 겁니까?! 이번에도 주가 조작인가요?”
-예, 말씀하신 대로 주가 조작 사건입니다. 지금 의원님께 주목됐던 이목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데, 한 번 더 터트려 주시죠.
대다수의 국민은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쁜 관계로 정치에 꾸준히 관심을 쏟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책임자들이 물러나고 문제가 됐던 시스템을 수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내 관심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카카 엔터테이먼트입니다. 만화영화, 극영화, 홍보영화의 기획, 제작 수출업 및 배급을 주업무로 삼다가 돈육 유통업, 바이오에탄올, 바이오디젤 생산 및 판매까지 사업을 확장했죠.
“으으음, 어디서 들어 본 것도 같습니다.”
-2008년 12월에 카메룬에서 산출된 다이아몬드 및 광물을 가공, 독점 판매하는 수출권을을 양수한 기업입니다. 2009년 3월에 장덕호 회장이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 한국 다이아몬드 업계에서 명망 있는 기업인 닥스를 인수·합병해 덩치를 불렸죠.
“카메룬에서 원석을 채광 및 유통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말이네요.”
판사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듯 확실히 이해가 빨랐고, 반론 또한 빨랐다.
“원석을 채광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게 주가 조작을 의심할 일은 아닙니다. 정 대표의 레이더망에 포착됐으니 다른 문제가 있겠지만요.”
정호준은 자신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뱉은 강현태의 믿음에 설명을 이어 나갔다.
-카카 엔터테인먼트 이사직을 역임 중인 지질학 교수가 카카 엔터테인먼트가 사들인 광산 후보지 중 하나에서 4억 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가 발견됐다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바람몰이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나름 정상적으로 운영했던 회사를 두 곳이나 인수했다면 장덕호 뒤에 상당한 세력이 붙어 있겠네요.”
지금껏 잘해 와 놓고 엄살을 부리는 강현태의 추측성 발언에 정호준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해충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네요. 아직 여론의 이목이 완전히 식은 건 아니니 이 사건을 장작 삼아 이목을 끌어오시죠. 2~4년 내로 날 거라 말한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명성을 쌓을 때입니다.
“일단 대표님의 말만 듣고 바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 저도 제 나름대로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