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40화 (240/335)

24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0)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공매도 시스템과 달리 보증금을 따로 지불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식을 빌려주면서도 언제까지 주식을 반납하라는 기한을 정해 두도록 법으로 명시화하지 않았다.

법으로 명시하지 않으니 강제성이 없었고, 이는 곧 시장이 공매도 세력의 계산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명확한 변제 기한이 없으니, 손해가 나면 쥐고 있다가 다시 주식이 오른 후에 팔면 됐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공매도 계약이 전화, 메신저, 이메일 등으로 이뤄지고 거래 정보를 엑셀로 정리했다가 수기로 입력하는 시스템도 문젯거리였다. 이는 언제든 실수로 무차입 공매도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했고, 증권사가 확인 및 대응이 늦는 주원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2010년은 공매도 거래 내역 보관 및 당국에 보고하는 게 의무가 아니어서 불법을 저지르고 언제든 기록을 조작할 위험성까지 존재했다. 분식회계를 저지르기 쉬운 조건이란 이야기였다. 규제가 약한 것은 범죄를 저지르라고 부채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사실을 떠올리면 참 웃기는 시스템이었다.

대한민국의 공매도 시스템이 선진국과 비교해 매우 취약하고 논쟁거리가 많다는 건 주식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제였지만, 1회차 때는 쉽사리 변화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건 못해도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는 건 잘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고객의 동의도 없이 주식을 빌려주는 현재의 시스템, 이게 정말 올바른가?]

공매도가 이슈화되며 시스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여기서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 남자, 강현태 또한 끼어들었다.

“대한민국이 공매도 시스템을 전산화할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증권사들은 대체 왜 전산화를 도입하지 않는 겁니까! 이게 곳간을 노리는 도둑들에게 훔쳐 가라고 문을 활짝 열어 주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본래도 유명했던 강현태지만 부율경저축은행 분식회계를 낱낱이 밝히며 그야말로 전국민적인 명성을 얻었다. 강현태는 자신이 공언했던 것처럼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5개월 정도 언론 노출을 꺼렸던 그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오성과 미래가 던진 공매도 주식에는 연기금에서 빌린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나돕니다. 증권사들의 추궁도 문제지만 저는 이 부분부터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국민연금이 미래와 오성에게 주식을 빌려줬다면, 이는 국민의 돈을 제 마음대로 남용한 겁니다!”

강현태는 여당과 정부가 가장 염려했던 것을 여지없이 찔렀다.

* * *

본래도 잡음이 많았을 사건이 강현태 때문에 빅이슈로 자리매김하게 되자, 청와대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김명호 대통령은 또 한 번 광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개잡놈은 안 끼는 데가 없어!”

자신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강현태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김명호는 분노하는 것 외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김명호가 강현태를 압박하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강현태를 감시하고자 국정원 요원들을 파견했다가 정호준이 미리 준비시켜 놓은 경호원들에 의해 발각됐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강현태는 자신을 사찰한 증거를 복사한 뒤, 복사본을 청와대로 보내며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쪽지를 남겼다.

평범한 국민을 상대로 국정원 요원을 붙여도 민간인 사찰이라며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사찰 대상이 국회의원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보 쪽에서 군부 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정치 탄압이라며 프레임을 씌우고 공격할 게 눈에 훤했다.

김명호에게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강현태가 이 사실을 언론에 폭로하지 않았다는 거다.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정치 논리상 그 때문에 김명호도 강현태에게 압박을 가하지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전가의 보도는 꺼내기 전이 더 위협적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강현태의 입을 닫을 수단이 없는 것도 억울한 판국에 국민연금 이사장인 박남출이 정말 미래와 오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어 문제가 커졌다.

-국민의 자산으로 사욕을 챙기는 이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에 앉힌 정부는 책임져라!!

뇌물 받아먹은 정황이 포착되자, 야당인 진보 계열의 주도하에 비난은 정부에까지 닿았다.

여론의 비난은 키요타에 대한 소식을 전하지 않은 언론사와 자신들의 자산을 동의 없이 제 맘대로 빌려준 증권사를 비난하는 걸 넘어 정부에까지 이르렀다.

⌎과연 국민연금 이사장에게 저 큰 자산을 빌려줄 권한이 있나? 그런 독단을 자행했다는 것보단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더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나랑 박남출은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다고!!”

정말 받아먹었다면 뜨끔하기라도 하지, 정치적 논리에 입각해 결백한데도 돈을 받아먹은 주체가 되어 가는 상황에 김명호 대통령은 방방 날뛰었다

김명호 대통령이 억울해 죽는 동안 그의 라이벌이었던 박정혜 의원은 바쁘게 움직였다.

[박정혜 여당 대표, 대한민국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도입 및 수정 착수!]

[국민자산지킴이 강현태와 미팅을 잡은 박정혜!]

[박정혜 의원, “강현태 인권변호사의 식견을 빌리고 파!”]

주식 시장에 대해, 경제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는 듯한 강현태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한 영리한 행보였다.

그렇게 2020년 이후에야 슬슬 바뀌기 시작했던 시스템이 10년도 더 일찍 변화할 조짐을 보였다.

* * *

정호준은 이번 공매도에 한해서는 강현태와 별다른 접점을 갖지 않았었다. 보수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북한과 멀어지고 일본과 가까워지는’, 진보는 ‘북한과 친하고 일본과 먼’ 행보를 강현태를 통해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거, 내가 나서서 판을 안 깔아 줘도 이젠 스스로 까네. 성장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경각심을 가져야 하나?’

정치인으로서 관록이 붙긴 했는지 알아서 잘하는 강현태 의원을 보며 자신의 입김보다 본인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우선시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 같아 위기감이 생겼다.

‘너무 사서 걱정하진 말자. 만약 내 손을 벗어나면, 정치 자금을 안 대주면 그만이잖아?’

정치는 수많은 아이러니가 내포된 분야다. 정치인에게 뇌물을 받아먹지 말라 말하며 도덕적 청렴을 요구함과 반대로 정치를 위해선 큰돈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아이러니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기업과 반목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강현태를 밀어줄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별다른 경제적 이득을 욕망하지 않는 정호준이 유일했다.

한참 동안 고민을 이어 가던 정호준은 한국 상황에서 벗어나 현재 상황을 검토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자금을 채워 주겠다곤 했지만, 그래도 대출은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 둬야겠지?’

테일러 팀장에게 대출을 받아 줄 의향이 있으니까 돈 생각하지 말고 지르라고 했지만, 사실 정호준은 대출까지 받을 생각은 없었다.

JHJ Capital과 JHJ Capital이 운용하는 법인 계좌에 충분한 자금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란 게 본래 새끼 치는 거라더니, 그 말 틀린 거 하나 없네.’

2008년 12월 말부터 정호준은 주식을 사들였었다. JHJ Capital의 포트폴리오 안에는 엔플, 구골, 아마조네, 스타박스, 넷플렉스처럼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 주식도 있었지만, 세미크로소프트 같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식들도 한트럭 자리를 잡고 있었다.

JHJ Capital이 주식 시장에 투자한 원금이 원체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국이란 시장이 대단한 건지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1년 넘게 쌓인 배당금은 한국의 작은 증권사가 굴리는 자산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덩치로 변해 있었다.

‘거의 분기별로 한 번씩 배당을 한 꼴이네.’

주주를 우선으로 회사가 운영되는 미국 기업의 풍토는 기업으로 하여금 1년에 최소 3회 이상 배당금을 지급하게 만들었다.

‘이게 배당주에 투자하는 맛인가?’

보고서만 읽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코카콜X: 5억 6천만 주 보유

4회 배당(배당일: 3월 11일, 6월 11일, 9월 11일, 11월 27일)

주당 0.41달러 배당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9억 1,840만 달러

나이크: 7,822만 9,547주 보유

4회 배당(3월 5일, 6월 4일, 9월 3일, 12월 3일)

주당 0.25달러 배당(12월 3일 0.27)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7,979만 달러

킴벌리-클레아: 6,752만 주 보유

4회 배당(배당일: 3월 4일, 6월 3일 9월 2일, 12월 2일)

주당 0.6달러 배당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1억 6,204만 달러

펩X: 2억 656만 주 보유

4회 배당(배당일: 3월 4일, 6월 3일, 9월 2일, 12월 2일)

주당 0.45달러 배당(3월 4일 0.425)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3억 6,664만 달러

칼컴: 2억 2,460만 주 보유

4회 배당(배당일: 2월 25일, 5월 27일, 8월 26일, 11월 23일)

주당 0.17달러 배당(2월 25일 0.16)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1억 5,048만 달러

세미크로소프트: 7억 4,578만 9,187주 보유

4회 배당(배당일: 2월 17일, 5월 19일, 8월 18일, 11월 17일)

주당 0.13달러 배당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3억 8,781만 달러

미라클: 4억 442만 4,947주 보유

3회 배당(4월 6일, 7월 13일, 10월 9일)

주당 0.05배당

2009년 JHJ Capital 배당 총액: 6,066만 달러

미라클의 경우 배당은 총 4회를 실시했으나 정호준이 주식을 매입한 시기에 걸려서 주주로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배당금을 3회만 배당을 받았다.

‘배당금으로만 21억 2,582만 달러라.’

배당 소득 15%를 제해도 약 18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BA와 골드만 배당 수익까지 포함하면 25억 달러네.’

JHJ Capital은 2008년 버펫의 투자에 동참해 BA와 골드만식스에 각각 75억 달러를 투자하고 6%의 수익을 약속받았었다. BA와 골드만식스 배당을 포함하면 JHJ Capital은 2009년 한해 배당 수익으로만 2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900억 달러에 쏟아부어 사들인 부동산(빌딩)에서도 매달 월세가 들어온다.

배당금 수익, 공매도 수익과 부동산 수익, SSL Capital이 영화 투자를 이어 오며 벌어들인 투자 수익을 모두 합하면 정호준이 가용할 수 있는 돈은 50억 달러를 상회했다.

물론 SSL Capital의 돈을 사용하려면 JHJ가 설립할 법인과 다른 또 다른 법인이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야 뭐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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