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39)
“오늘부로 키요타 주식 매입을 시작합니다. 천천히 주식을 사들이도록 하죠.”
조금 쉬고 나서 시장이 돌아가는 형국을 자세히 살핀 뒤 주식 매집을 시작하자는 말과 달리 정호준은 공매도팀이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주식 매집을 지시했다.
정호준의 급격한 태세 전환에 휴가를 다녀온 트레이더 중 몇몇이 동시에 정호준에게 물었다.
“대표님. 조금 더 기다렸다가 진입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리콜 사태가 터지고 2010년 1분기에 도달했던 주가의 최저점이 72달러에 불과했던 1회차 때와 달리, 키요타의 주가는 60달러까지 추락했다. 아직 반등의 기미도 없었고 말이다. 트레이더들이 판단하기에는 진입하는 게 아직 일러 보였다.
“아뇨,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트레이너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정호준의 의지는 확고했다. 단호하게 지금이 적기라는 말을 뱉는 정호준의 발언에 트레이더들은 의문이 서린 시선으로 정호준을 바라봤다.
지금 들어가야 할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내포된 시선에 정호준은 헛기침하며 이목을 주목시킨 뒤 말했다.
“3월에 키요타의 주가가 오를 호재가 있습니다.”
“호재요?”
“3월은 키요타가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달입니다.”
정호준의 대답에 몇몇 트레이더들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주먹을 쥐어 손바닥을 내렸다. 몇몇은 ‘왜 그 사실을 까먹고 있었을까?’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1회차 때의 이야기를 조금 풀자면, 키요타 모터스는 2010년 1월 리콜 발표 이후 주가가 하락해 72달러라는 저점을 찍고는 3월에 있을 배당 때문에 다시금 80달러 선을 회복했었다.
“공매로 큰 타격을 입은 키요타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배당금 지급을 진행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죠.”
1회차 때와 달리 주가가 더 폭락했고, 정호준이 주도한 공매도 세력에게 대응하느라 본래보다 더 많은 자금을 끌어다 썼다. 과거와 똑같은 비율로 배당을 할지를 넘어, 배당금 지급을 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긴 했다.
“키요타가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배당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정호준의 조심스러운 추측을 들은 공매도팀 담당자 지미 딕슨은 정호준의 의견에 살을 덧붙였다. 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100%는 없으니까요. 너무 욕심부릴 필요는 없잖습니까?”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자산을 단기간에 이룩해 놓곤 욕심내지 말자고 말하는 정호준의 화법이 우스웠지만, 어쨌든 정호준이 말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이번을 예외 상황으로 만들고 배당금 지급을 미루는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우리는 이미 큰 수익을 냈습니다. 3월이 오기 전에 최대한 물량을 채워 둘 필요가 있습니다.”
2월은 아직 배당금 지급에 대한 기대치가 주가에 반영되지 않은 시기이니 기대치가 주가에 반영되기 전에 주식을 매입할 필요가 있었다.
* * *
납득할 만한 이유까지 설명을 들은 공매도팀은 정호준이 지시한 대로 공매도에 사용한 주식을 채우기 위해 주식 매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움직인 주식을 제외하고 공매도 팀이 직접 운용한 주식만 1억 주에 달했기에 주식을 매입하는 데도 한세월이 걸렸다.
“오늘자로 주식 매집을 모두 마쳤습니다.”
“평균 매수가는요?”
“평균 매수가 66.43달러입니다.”
지미 딕슨 팀장의 보고에 정호준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돌렸다. 주식을 사들이는 데 66억 4,3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평매가가 79.23달러였죠?”
“예.”
공매도 세력이 키요타 주식을 매각해서 번 돈은 79억 2,300만 달러. 매도와 매수의 차액은 12억 8천만 달러 정도 됐다.
‘세금 떼고 만주르에게 줄 돈 빼면 대충 8,000억 원 정도 번 건가?’
주식 공매도로 10억 달러 단위 차액을 남긴 건 월가 금융 역사에 몇 없는 일이었기에 직원들은 재미있었다며 즐거워했지만, 정호준은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달 동안 큰 그림 그린 것치곤 수익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선물 없이 주식 공매도만 진행했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지금껏 큰 그림을 그린 투자들은 모두 막대한 수익을 거뒀기에 그런 듯싶었다.
정호준은 지미 딕슨 팀장을 불러 법카를 건네주었다. 수익을 냈으면 그에 맞는 축하 자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잖은가?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회식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표님도 참석하시겠습니까?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면 부를 수 있는 여자의 급도 올라갈 텐데 말이죠.”
가정이 없고 플레이보이 성향이 강한 지미 딕슨 팀장은 장난기 80%에 진심이 20% 담긴 질문을 던졌다. 정호준이 참석하면 할리우드를 꿈꿔 모델에 도전하다 꿈을 접고 접대부 일을 하는 이들에서 현직 모델 혹은 할리우드 배우급으로 수질이 올라갈 거다. 현직 할리우드 배우조차 SSL Capital의 푸쉬를 받기 위해 달려드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정호준이 참석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하는 농담이었다.
“수백억 달러짜리 이혼 소송이 보고 싶은가 보죠?”
“뭐,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과 남의 집 불구경이라잖은가? 수백억 달러가 걸린 역사에 남을 이혼 소송은 가십거리로 쓰기 알맞았다.
“그 이혼 소송을 벌이게 되면, 가장 먼저 팀장님의 자리가 없어질 겁니다.”
“그렇습니까?”
미국인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뽐내는 지미 딕슨을 보며 정호준은 한숨을 내쉬곤 나가라고 손짓했다.
* * *
지미 딕슨 팀장을 내보낸 정호준은 실물 쪽 투자를 담당하는 팀의 팀장 테일러를 불렀다. 정호준의 호출이 있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테일러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아, 예. 따로 오더할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커피와 티 중 뭐로 하시겠습니까?”
“차로 하겠습니다. 커피는 이미 2잔이나 마셔서요.”
정호준은 비서를 불러 차를 두 잔 요청했고, 테일러가 5분도 안 돼 집무실 문을 두드렸던 것처럼 차도 금방 나왔다.
정호준과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주식 매입팀이 이번에 공매도로 재미 좀 봤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봤자 JHJ에 10억 달러도 안 떨어져서 재미를 봤다고 하긴 좀 뭐한데요.”
“어디 가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욕먹습니다. 어쩌면 총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정호준은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지는 테일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충고 명심하도록 하죠.”
금괴, 은괴, 구리 광석, 철괴와 같은 2007년부터 사들인 실물자산의 관리는 잘 되고 있냐는 업무상의 이야기부터 학교 들어간 자녀는 잘 지내는지에 대한 사담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본론을 꺼내 들었다.
“창고가 더 필요합니다. 수배 좀 해 주세요.”
“원자재들을 더 사들이실 생각이십니까?”
“아닙니다. 원자재들은 값이 너무 올랐잖아요. 물론 더 오를 거라 예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원자재는 투자하기 좋은 투자처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염두에 두시는 겁니까?”
“곡물을 사들일 생각입니다.”
정호준의 생각을 전해 들은 테일러는 정호준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물었다.
“정확히 어떤 품종에 투자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밀, 옥수수, 콩, 설탕. 이렇게 네 종목을 사들일 계획입니다. 곡물 수입회사 법인들을 개설해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과 접촉해 주십시오.”
이상기후로 인해 2010년부터 곡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다. 정호준은 이에 따른 선물 투자로 당연히 계획 중에 있지만 정호준이 보유한 자산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선물시장에 베팅하는 거로는 모자랐다.
“시일이 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물량을 따낼 필요가 있습니다. 물량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웃돈을 써도 됩니다.”
“웃돈이라, 가이드라인은요?”
뇌물을 찔러 넣고 웃돈까지 얹어 줘도 된다는 말에 테일러는 한도를 물었다.
“현재 가의 30%까지는 추가로 불러도 됩니다. 자금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필요한 만큼 건네주겠습니다.”
“대체 대표님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겁니까?!”
원자재는 분명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먹는 것, 식량만큼 민감한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월가 투자자치고 따듯한 심장을 가진 테일러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추가 비용이 30%가 발생해도 상관없으니 사들이라고 지시한다는 건, 최소한 그보다는 더 오를 걸 예측한다는 말이다.
“그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도록 하죠, 그건.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일 때입니다.”
대답을 미루는 정호준의 말에 테일러 팀장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에서 나가고자 하는 문 쪽으로 향하는 테일러에게 추가 지시 사안이 전해졌다.
“웃돈을 쓰는 건 상관없지만, 그래도 되도록 최근에 출하된 것 위주로 매입했으면 합니다.”
곡물은 본디 유통기한이란 게 존재했다. 정호준이 2010년에 와서 매입을 지시한 건 원자재보다 상승 폭이 적어 원자재 쪽에 집중한 이유도 있지만 유통기한이란 요소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 * *
정호준이 다음 투자를 위해 움직이고 키요타의 폭락으로 일본에서 난리가 났을 무렵 한국에서도 여론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번 공매도 사태로 오성 증권과 미래 증권이 최소 수천억 원을 벌어들인 사실이 여의도에서 찌라시로 풀렸고, 그 사실이 인터넷까지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개새끼들, 내 돈 어떡할 거냐?!
⌎씨발, 내 주식을 내 동의도 없이 빌려주는 게 말이 되는 거냐?
⌎공매도에 필요한 주식을 빌리는 작업이 수기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수기로 진행한다는 건 언제든 조작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똑똑히 증명된 셈이다. 이래도 전자동을 반대할 건가?
⌎국회의원들은 뭐 하냐? 저거 배임 횡령 아냐?!
오성과 미래가 키요타 주식을 공매도해서 수천억 원의 수익을 기록한 건, 해외 자본에게 항상 당하기만 했던 한국 증시의 역사를 생각하면 통쾌한 일이다. 하지만 돈을 번 오성 증권과 미래 증권조차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고 고객의 손실을 당연시 여겼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돈을 번 미래 증권과 오성 증권은 본인들이 주식을 빌린 자사 고객들에게 온갖 혜택을 부여하고 손해를 조금이나마 충당해 주는 것으로 고객들을 달랬지만.
진짜 문제는 주식을 빌려준 증권사들이었다.
허락도 없이 자기 주식을 빌려줘 큰 손실을 야기시킨 것도 모자라 회사도 큰 손해를 입게 되었다.
고객의 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일이었다.
여론은 폭발하기 직전이었고 그 불똥이 국민연금이나 공적 기관에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