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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38화 (238/335)

23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38)

2010년 1월 21일 키요타 모터스의 리콜 발표가 있던 날, 아침 장이 개막할 때까지만 해도 88.68달러였던 키요타 모터스의 주가는 키요타 모터스가 리콜을 진행한다고 발표하자마자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키요타 모터스에서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팀을 통해 주식을 사들였음에도 하락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85달러 뚫렸습니다!”

키요타 모터스 리스크 관리팀의 주식 매입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밖에 되지 않았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계속에서 뚫리는 방어선에 키요타 모터스 리스크 관리팀 직원들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하아, 장 마감했습니다.”

그나마 발표한 시기가 장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85달러가 깨지는 선에서 21일 장이 마무리됐고, 덕분에 한숨 돌리긴 했지만 이내 내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리스크 관리팀 직원 모두가 마음속에 품은 희망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힘은 없었지만 말이다.

* * *

1월 22일. 장이 시작됨과 동시에 키요타 모터스의 주가는 파란불을 띠었다.

“84달러 깨졌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량은 22일 장이 개막하자마자 꾸준하게 시장에 풀렸다.

83.83, 83.65, 83.43…….

“83달러도 깨졌습니다.”

“팀장님! 위에서 움직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런 조치도 없는 겁니까?”

반등할 기미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파란불에 리스크 관리팀 직원이 질문을 던졌다.

“재무대신과 내각관방장관 같은 유력 인사들 만났다고 했어.”

“근데, 왜 푸쉬가 없는 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궁금하면 타요시 네가 직접 가서 물어보든지!”

절박함이 담긴 질문에 마사요시 팀장 또한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암울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마사요시 팀장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관료주의 사회다. 윗선에서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곧장 행동으로 옮겨질 만큼 일본 사회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니,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성향을 따지기 전에, 그 어떤 나라여도 견적을 뽑아 볼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했다.

“82달러 깨졌습니다!!”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손익 계산과 리스크 등을 따지는 와중에도 주가는 빠르게 낙하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81.34, 80.67, 80.21.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공매도 세력의 맹공에 버티지 못한 키요타 모터스는 80.21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주가를 관리하는 리스크 관리팀의 입장에서는 80달러가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증시가 열리지 않는 주말의 시작 토요일이었기에 한숨 돌리며 정비할 시간이 생긴 셈이지만, 자리에 있는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증권사에 심어 둔 정보통을 통해 매도 물량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은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 * *

주말 동안 키요타 모터스 경영진들은 다시 한번 정치인들을 만나 선물을 건네며 도움을 청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번에도 선물을 주며 도움을 갈구하는 사장단의 행보에 일본 정부 관계자 및 유력 정치인들은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요일 키요타 모터스에 추가로 악재가 터졌다.

[신형 하이브리드 차량 프로메테우스 브레이크 사고 반복 발생!]

[키요타 모터스는 사실 3년 전에 이 문제를 인지했었다?!]

[미국 소비자를 우롱한 키요타 모터스의 행보!!]

불행은 연쇄적으로 찾아온다고 했던가? 키요타 모터스에게 부정적인 기사들이 주말 동안 연이어 올라왔다.

‘익명으로 날아온 보도인 게 걸리지만. 자료의 신뢰도는 최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호준은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사에 익명으로 자료를 보냈기에, 이는 의도된 불행이었다.

‘우리가 기사를 내보내지 않아도 어차피 다른 쪽에서 내보낸다. 어차피 나갈 기사라면 우리가 내보내는 게 나아.’

증거가 명확한 상황, 아무리 봐도 그들 말고 다른 언론사도 자료를 받았을 것 같은 판국에 언론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내가 먼저 내보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때문에 키요타를 향한 비판은 주말 내내 이어졌다.

[키요타 모터스 리콜 차종에 프로메테우스 추가.]

8개 차종 230만 대를 리콜하겠다는 키요타의 처음 발표와 달리, 주말이 지나자 300만대까지 증가했다. 그리고 25일 월요일 아침 해가 뜬 뒤에도 리콜을 요청하는 숫자는 늘어만 갔다.

* * *

공매도팀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월요일, 정호준에게 한 통의 연락이 당도했다.

-키요타 공매도. 정 대표 자네가 주도하고 있는 건가?

키요타 리콜 사태는 미국에서도 엄청난 이슈로 자리매김해서일까? 백악관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저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긴 합니다. 시장 내에서 자금의 출처가 아랍계 쪽인 것 같다던데, 왜 저를 콕 짚으시는지 모르겠군요.”

추궁의 뉘앙스를 내포한 질문에 정호준은 모른 척 가식을 떨었다.

-아랍에미리트의 만주르 왕자와 두 차례 만남을 가진 걸 알고 있네. 짧은 시일 내에 두 번이나 만날 이유가 있나?

만주르는 미국 정보기관이 주시할 정도의 거물이다. 미국 밖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미국 땅 안에서 이뤄진 만남을 미국 정보기관이 놓칠 리 만무했다.

“친분이 있으면 만날 수도 있죠.”

-친분이라. 돈을 내고 만나는 관계를 세상 그 누가 친분으로 보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다음부터는 그냥 방문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잡아떼는 정호준의 반응에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이 껄끄러웠던 정호준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공매도를 계획하고 시행하는 건 아니지만, 공매도로 키요타 모터스가 흔들리는 게 미국에 있어 나쁠 게 있습니까?”

정호준은 끝까지 본인이 공매도의 주체라는 것을 감추며 화제를 바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대통령님이나 정부의 입장에서도 키요타가 큰 피해를 보고 몇 년 헤매는 게 유리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1회차 때 미국 자동차 기업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는 정부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으며 간신히 명맥을 이어 가다가 파산했다. 빅3로 묶이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회사의 규모가 작은 벨라스키스는 자산을 정리 후 이탈리아 기업에게 매각됐지만, 덩치가 큰 SM모터스는 그냥 놔둘 수가 없어 정부의 관리하에 맡겨졌다.

파산 후 정부 관리하에 들어간 SM모터스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악성 세포들을 제거하고 새롭게 재단장해서 나스닥에 다시금 상장했다.

정호준의 조언을 받은 오리하는 쓸데없이 자금 수혈하는 대신 파산을 그냥 두고 본 뒤 1회차 때 그랬던 것처럼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를 망치는 악성 세포들을 잘라내고 아예 하나로 합병시켰다.

오리하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이들과 잡뱅크로 꽁으로 돈을 타 먹던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보장해 달라고, 잡뱅크에서 타 먹던 돈을 계속 타 먹게 해 달라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오리하는 이들의 투정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를 파산시키고 법인의 문을 닫은 의미가 없었으니 말이다.

‘잘한 거지.’

표심에 흔들리지 않는 오리하의 행보에 정호준은 박수를 칠 정도로 잘한 선택이었다.

당장은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지만 정상화가 되고 나면 찬사가 이어질 행보였다.

“키요타 모터스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아올 기회이지 않습니까?”

1회차 때의 일이지만 실제로 파산 후 재단장을 끝낸 SM모터스는 당시 차를 다시 출고하면서 키요타에게 빼앗겼던 점유율을 일부 빼앗아 왔었다. 일본이나 음모론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래서 키요타 리콜 사태가 처음부터 미국에 의해 조작(계획)된 게 아니냐고 말하곤 했었다.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를 합병한 뒤 잘 팔리지 않는 모델의 생산 라인은 과감히 정리하고 인기 있는 차종의 생산 라인만 남긴 ‘SM 벨라스키스’다. 과거보다 더 많은 점유율을 빼앗으면 빼앗았지, 회사에 손해로 작용하진 않으리라.

미국에게도 이편이 좋지 않냐는 말에 그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던 오리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적당히 했으면 좋겠네. 경제적 이익만 놓고 보면 정 대표 자네의 말대로 미국에 이익이면 이익이지 손해날 건 없지만, 정치적으로나 국가적 차원으로 넘어가면 일본은 미국의 최우선 동반자네.

정호준은 자신이 계획한 게 아니라고 끝까지 잡아뗐지만, 정호준 소행이라고 답을 정해 둔 듯 마지막까지 정호준에게 적당한 선에서 자제하길 권고했다.

* * *

오리하에게 자제를 권고받았지만, 정호준은 공매도를 멈추지 않았다. 경고 한마디에 멈출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시작 자체를 안 했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 권고는 사실상 정호준과 오리하가 친분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부탁이지 강제성은 전무했다.

[일본 정부, 기업의 불행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공매도 세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

[키요타 모터스, 잠깐의 위기일 뿐이다?!]

줄곧 하락세를 보였던 22일 금요일과 달리 GPIF와 일본 공공기관들이 움직인 25일에는 빨간불과 파란불로 형형색색 한 구도를 보였다. 개미들이 최대한 공매도 세력에 동조하지 않게 하려고 정부까지 발 벗고 나섰다.

“GPIF가 나선 모양입니다.”

“전 일본 정부가 너무 고맙네요. 우리의 주식을 비싸게 사 주겠다지 않습니까?”

악재는 정호준이 조작한 게 아닌 팩트다. 그리고 이 말은 즉슨 키요타의 주가 하락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거란 소리다. 그런데 정부가 주가 하락 폭을 줄이고자 자금을 투입해 주니 주식을 던지는 정호준은 이 사실이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공매도를 총괄하는 정호준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공매도 팀에 소속된 트레이더들 또한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공매도 수익이 크면 클수록 그들이 받게 될 보너스 또한 클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GPIF와 정부 기관, 키요타 모터스가 주식을 받아 준 덕분에 하락 폭은 목요일이나 금요일만큼 크진 않았다. 하지만 80달러가 깨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키요타 모터스는 25일 기준 종가 79.2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키요타 모터스 리콜 500만 대 돌파!]

230만 대였던 리콜 물량이 300만 대가 되고 이윽고 400만, 500만을 돌파하자 주식은 당연히 이를 반영했다. 게다가 계속되는 악재 탓에 결국 일본 정부는 키요타 모터스 주식 매집을 멈췄고, 이는 키요타 모스터의 주가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다.

정호준이 주도한 공매도 세력이 물량을 모두 소진한 2월 5일. 키요타 모터스의 주가는 60.17달러까지 떨어졌다.

72달러까지 하락했다가 슬슬 회복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1회차 때와 비교하면 12달러 이상 하락한 상태였고,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1회차 때와 달리 키요타의 하락세는 아직 끊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금 쉬면서 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주식 매집을 시작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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