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37)
국가라는 틀이 제대로 박힌 동아시아 국가의 전신치고 중앙의 힘이 약한 국가는 없었다. 강한 힘과 권한을 가진 영주들이 존재하는 일본이 어떻게 중앙의 힘이 강력했냐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으나, 다이묘라 불린 일본의 영주들이 100년 넘게 피를 흘렸던 일본에선 센고쿠 시대(전국 시대)라고 불리는 시절 덕에 그게 가능해졌다.
본래 승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하지 않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시대의 승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잠깐 숙였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야심을 드러냈고, 이후 전투에서 승리해 일본 열도 전역을 통제하는 막부(중앙)를 세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는 쇠퇴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힘과 권한을 휘둘렀다.
에도 막부의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 천황 시대가 도래한 뒤에도 일본이란 나라에서 중앙의 힘은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군부에 의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린 정부가 무슨 강력한 힘을 가졌냐고 물을 수도 있다.
국가의 중심을 무엇으로 놓고 보냐에 따라 중앙의 의미는 달라진다.
일본 제국 시절 일본 정부의 역할은 군부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조정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거였다. 이를 고려하면 이 당시 일본의 중앙은 군부로 보는 게 맞았다.
메이지 천황 즉위 후 일본 제국의 패망할 때까지 100년 남짓한 세월 중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해군과 육군 출신 인사가 번갈아 가며 총리대신직에 임명됐다는 게 그 의견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였다.
패망 후 미국에 의해 일본 열도에 새롭게 수립된 정부조차 전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쟁에서 패배해 식민지를 모두 뱉어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중국은 일본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강요할 형편이 못 됐고,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이 일본을 공산주의가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 상륙하지 않도록 하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만들 대전략을 수립했기에 일본 제국 시절과 비교해 일본은 오히려 더 성장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일본은 자신들의 식민 지배했던 나라들에 개별적으로 보상하는 선에서 끝났고, 미국은 배상금을 받기는커녕 미국은 오히려 일본에게 선물을 잔뜩 안겨 주며 일본의 국력을 성장시켰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플라자 합의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일본이 내리막길을 걷기 전까지, 아니 내리막을 걸으면서도 일본은 동남아, 동북아 등에 자금을 투자하며 돈놀이를 이어 갔다.
이 덕에 2010년대, 2020년대에도 일본은 매년 막대한 해외 투자 수익을 배당받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린 일본의 암흑기가 잃어버린 20년으로. 그리고 이윽고 잃어버린 30년이란 소리를 듣게 됐지만,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게 어디까지나 힘든 건 ‘서민’뿐이라는 거다. 한국 기업의 성장, 그리고 중국 기업의 성장으로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들이 문을 닫기는 했으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은 기업과 일본 정부는 잃어버린 30년이란 세월 동안에도 돈을 벌었다.
1회차 때의 이야기지만 일본 정부의 재력과 국제 사회 영향력, 국가 통제력 덕분에 키요타는 망하거나 사세가 팍 기울지 않고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거다.
* * *
최소 30억 달러, 많으면 70억 달러 이상도 손실이 날 수 있는 악재는 공매도 세력이 써먹기 좋은 재료다. 8개 차종에 대해 전격 리콜을 선언한 키요타 모터스의 주가가 15불 정도 박살 난 선에서 사태를 진화시킬 수 있었던 건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모두 ‘일본공적연금펀드(GPIF)’와 ‘일본 기관’들이 정부의 지시로 주식을 던지지 않고 계속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연금관리공단(NPS)과 기관들이 투자와 자국 기업 보호를 목적으로 대기업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듯, 일본공적연금펀드(GPIF)를 포함한 일본 정부에서 운영하는 투자사들은 일본 기업에도 돈을 일부 투자했다.
GPIF와 정부가 운영하는 투자회사들은 주식을 매각해 손실을 최소화하기보단 주식을 쥐고 있음으로써, 키요타가 망하거나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도왔다. GPIF나 공적 기관들이 손해를 입는 건 세금을 낭비한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개인, 그리고 국민의 세금보다는 재벌의, 더 정확히는 대기업이 무너지지 않는 것을 우선시했으니까.
‘키요타가 흔들리는 건 일본 경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다.’
일본 정부가 판단하기에 세계 1위를 한 번이라도 달성해 본 기업이 망하거나 폭삭 주저앉게 두는 건 미래적인 관점으로 보면 더 손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산업도 아니고 수많은 고용을 창출해 주는 자동차 산업이어서 더 그랬다.
두 번째 이유는 정부에서 국내 금융 기관의 윗선들에게 키요타 주식을 매각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출범 이래로 기업가와 정치인의 위치가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부와 정치인의 힘이 기업보다 강력한 나라다. 이익 추구와 약간의 손해도 감수하지 않고자 정부가 정해 둔 가이드라인을 어긴다면, 이후 벌어질 일은 불 보듯 뻔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정부의 압박은 쉽사리 감당하기 버거운 영역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일본 금융회사들은 개미들의 매도세에 손을 보태지 않았고, 이는 키요타에게 있어 불행 중 다행인 일이 되었다.
키요타 모터스의 위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던 마지막 이유는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본 동남아의 공공 투자 기관들이 탈출 행렬에 손을 보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 영국, 독일 등과 함께 세계에서 손꼽히는 금융시장인 만큼, 동남아의 금융기관들의 포트폴리오에 일본 주식시장은 당연히 투자해야 할 곳으로 선택됐다.
일본에 돈을 투자한 동남아 투자공사와 기관 중에는 분명 키요타에 돈을 투자한 곳이 존재했고, 이중 정부의 입김에 의해 움직이는 기관들이나 일본 자금에 아쉬운 것이 많은 이들은 차마 주식을 대놓고 던지지 못했다.
일본 자본, 이른바 잽머니는 동남아 전역에 뿌려진 상태였고, 매도세에 따라붙어 주식을 팔았다가 기분이 상한 일본이 이를 이유로 돈을 회수하면, 그땐 적당한 손실이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공포에 젖어 키요타 주식을 던진 건 일본의 개인투자자들과 미국, 서유럽권의 금융회사(기관 포함), 그리고 일본의 보복이 두렵지 않은 몇몇 큰손들뿐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정호준은 만주르를 내세워 중동과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동남아에서 키요타 주식을 일부 빌려왔고, 경쟁자인 미래 자동차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오성을 끌어들였다.
물론 만주르를 위해 지금까지 진행했던 투자처럼 유령회사를 다수 만들어 자금을 분산시키긴 했다. 하지만 일본이 자금의 출처를 알게 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일본이 알게 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지금 시대는 땅에서 기름 나는 것만큼 강력한 게 없는 21세기잖아?’
아무리 산업을 발전시켜서 팔아 봐야 기름을 파는 것만 못한 게 현재 세상이다. 산유국들이 자원의 함정에 빠지는 게 괜히 있는 일이 아니다.
만주르 왕자라는 카드는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을, 일본의 자금이 크게 아쉽지 않은 몇 안 되는 이였다.
물론 정호준은 그가 주도하는 공매도 때문에 키요타 모터스가 망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재벌들이 그랬던 것처럼 키요타 모터스 또한 막대한 사내보유금을 쌓아 둔 데다가,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처럼 잘나갈 때 감행했던 해외 투자로부터 매년 꾸준한 수익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키요타 모터스가 헤매는 시간이 조금은 더 길어지겠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정호준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키요타가 리콜을 발표하자마자 정호준이 주도하는 공매도 세력은 어금니를 드러냈다. 키요타 모터스와 주식시장을 모니터링하는 정부 기관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풀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거리낌 없이 시장에 주식을 던졌다.
‘공매도 세력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 봤자 이미 늦었지.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다.’
말이란 건 한 번 뱉으면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공매도 세력을 눈치채고 이제 와 취소해 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기업이 언론에다 대고 발표한 것을 번복하는 것 또한 신뢰를 깨트리는 악재였으니까.
‘소비자를 우롱했다면서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한 비난을 받게 되겠지.’
세상에 제일 화나는 것 중 하나가 줬다 뺏는 거다.
키요타 모터스 리스크 관리팀은 정호준이 어금니를 드러낸 뒤에야 그 정황을 포착하게 되었다. 그들이 제대로 반응을 하기도 전에 1파, 2파, 3파가 연이어 들이닥친다.
“팀장님! 매도세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입니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시장에 풀리는 주식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가는 빠르게 하락하기 마련이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윗선의 지시를 받고 자사 주식을 일정 부분 매입하고 있던 키요타의 리스크 관리팀 직원들은 곡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키요타 모터스는 브랜드 가치를 지키고자 리콜을 시행했다. 멀리 보면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하지만 자사의 차에 문제가 생긴 것과 이를 보상하기 위해 리콜을 진행한 것 모두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는 악재였다.
악재가 겹쳤다. 주가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자사 주식 매입은 주가 관리, 주주에 대한 부의 환원,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 임직원 보상, 지주사 전환 활용 등 다양한 장점을 존재하는데, 지금의 주식 매입은 주가 관리와 주주를 달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주가 하락이 계속되어 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악재가 겹쳤음에도 키요타를 믿고 주식을 쥐고 있을 주주들이 흔들리게 된다.
“위에서 적정선의 주가는 유지해야 한다고 지침이 내려왔잖아! 일단은 받아!!”
부하 직원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외친 리스크 관리팀 팀장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이 상황을 보고해야지. 어떻게 대응할지 새로운 지침을 받아 올 테니까, 말했던 것처럼 일단 주식 매입하고 있어.”
리스크 관리팀 팀장 마사요시는 핸드폰을 꺼내 든 채 밖으로 나갔다.
* * *
위기 상황을 얼마나 잘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는지는 기업의 역량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그 역량은 임직원의 능력에 달렸다.
리스크 관리팀의 보고를 받은 키요타 모터스 경영진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키요타 모터스의 경영진은 물론이고 오너 일가까지 발 벗고 나섰다.
“후쿠요미 내각관방장관님! 키요타를 도와주십시오!”
“나오토 대신님! 키요타가 해외 자본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주식시장에 대한 도전입니다!!”
“아베상! 키요타는 일본의 자존심입니다. 이대로 일본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보실 겁니까!”
일본 최대 여당인 자민당의 실세와 정부의 실세들을 만나 공매도 사태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다.
“키요타 주식을 매입해 주십시오!”
주식을 매각하지 않고 쥐고 있는 것을 넘어, 자금을 풀어 키요타의 주식을 매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한민국 재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국민연금을 보험금으로 생각하듯, 키요타 경영진은 일본공적연금펀드(GPIF)와 일본의 공공기관들의 자금을 활용해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막아 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