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33)
차량이 전 세계에 보급된 후로 매년 세계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차가 없으면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될 정도로 차량 소지자가 많은 미국의 경우 매년 수백만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그중에서 3만 명 이상의 운전자들이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2009년 8월 28일, 캘리포니아의 어느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박고 낙하한 차량의 종류는 키요타의 넥스트로, 미국의 ‘빅3’가 죽을 쑤는 바람에 2007년, 2008년 미국 시장에서 급격하게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기어코 1위를 차지한 일본 대표 자동차 기업 키요타가 고급 브랜드로 미는 차종이었다.
8월 28일,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도 사실은 많고 많은 교통사고 중 하나로 끝날 수도 있었다. 키요타 모터스 또한 그러길 원했고, 그럴 역량 또한 지니고 있었다. 일본이란 나라는 가장 많은 미국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었고, 매년 로비로 뿌리는 잽머니는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인해 키요타 모터스가 원한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넥스트를 운전하다 사고가 난 마크 스테일러와 스테일러 일가족은 대리점을 찾아가 자신의 차량을 맡겨 두고 넥스트를 시승하다 사고가 난 손님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자차를 운전하다 사고가 난 게 아닌 중간에 뭐가 하나 더 엮인 상황은 그만큼 일을 풀어나가기 복잡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남자라면 그런 심리 하나쯤은 있잖은가. 직장 동료가 차 산 걸 알아 줬으면 하는 그런. 스테일러의 경우 직장 동료들에게 가족들과 차를 보러 갈 거라고 미리 광고를 해 둔 터라 무마하는 게 더욱 쉽지 않았다.
둘째로 평소였다면 키요타 모터스는 운전 미숙이나 자살 시도 등으로 몰아가며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전심전력을 쏟아부었겠지만, 시승자인 마크 스테일러의 직업이 그러한 수작을 원천 봉쇄했다.
시승자인 마크 스테일러는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무리 키요타가 일본 특유의 철판을 얼굴에 깐다 해도, 차를 끌고 고속도로에서 단속을 다니는 사람한테 차량 운전이 미숙하다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건 무리수였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리지.’
키요타 또한 그러한 사실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키요타 모터스의 과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남아 있었다.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당황한다. 하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마크 스테일러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해냈다.
혼자 넥스트에 타고 있었다면 갑작스럽게 급발진하는 차량을 통제하는 것에 신경을 전부 쏟았겠지만 스테일러는 가족과 동승 중이었고, 자연스레 아내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스테일러의 지시를 받은 스테일러 부인은 당황하긴 했으나 남편의 지시대로 911에 전화를 걸고 자신들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한국의 119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911은 추후를 위해 신고 전화를 녹음해 둔다.
가드레일을 박고 낙하하기 전까지 모든 상황이 911 신고 전화에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다. 위기 상황에 실시간으로 녹음한 911 신고 전화는 키요타가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최고의 증거가 되어 버렸다.
* * *
아무것도 아닌, 그냥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에 불과했던 사고는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화젯거리고 떠오르게 되었다. 911 신고 전화 내용을 경찰이 입수하게 되면서 키요타 차량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경찰 검찰할 것 없이 온갖 조직에 정보원을 심어 두었던 언론사들은 경찰에서 사인(死因)을 제대로 밝히기도 전에 이 사실을 기사로 내보냈다.
[운전자의 운전미숙이 아닌 키요타 모터스의 결함이었다?]
[아무리 들어도 자동차 급발진인 것 같은 통화, 키요타 모터스는 현재 묵묵부답!!]
[소비자들 키요타 모터스 차를 타다 난 교통사고를 돌아볼 것을 촉구!!]
오랜만에 부담 없이 뜯어 먹을 수 있는 화제가 될 만한 먹잇감을 찾은 언론들은 사정없이 키요타 모터스를 공격했다. 그리고 경찰에게는 신고 전화 녹음을 공개하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게다가 언론은 이번 사고뿐 아니라 그동안 미국 국토 내에서 일어났던 사고들에도 시선을 돌렸다.
불행은 연쇄적으로 불어 닥친다는 속담이 있다. 정호준은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생각했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경우가 많지.’
세상 돌아가는 게, 보통 평소에는 쉬쉬했더라도 큰 사고가 한 번 벌어지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지곤 했다. 키요타 모터스가 돈을 퍼부어 만든 영향력을 휘둘려 운전 미숙, 자살, 단순 사고 등으로 위장하고 입막음했던 사건 사고들이 하나둘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9월 한 달 동안 키요타 모터스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관심받고 까이기를 반복했다.
“칙쇼!! 일단 차주들에게 주의를 당부해!!”
[키요타 모터스, 넥스트. 콘리, 코툴라 등 7개 차종 차주에게 경고!]
계속된 관심과 비난에 결국 키요타 자동차는 9월 29일 가속페달이 바닥 매트에 걸려 폭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7개 차종(380만 대) 운전자들에게 매트 제거를 당부했다.
사실상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었다.
* * *
정치인은 물론이고 기업에 이르기까지. 힘과 권력, 명예를 갖고 있는 이들은 웬만해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빼박 증거가 나온 뒤에야 잘못을 인정하거나 증거가 나왔음에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였다.
깨끗하게 사과하고 보상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잘못을 인정한다는 게 단순하게 사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잘못을 인정한다는 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인의 경우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정치 인생이 끝장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기업의 경우 돈으로 추산되기 힘든 이미지 손실을 시작으로 최소 수천억 원, 많게는 조 단위의 손해를 입게 된다.
뒤따르는 책임이 무겁기 그지없기에 기업이건 정치인이건 자신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2009년 9월 29일에 키요타 모터스의 발표는 사실상 본인들의 제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었으나 그에 뒤따르는 후속 조치는 아무것도 발표되지 않았다.
‘우리는 주의사항 알려 줬으니 이제 니들이 조심해’와 같은 키요타 모터스의 반응에 당연히 소비자들은 뿔이 났다.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내 눈과 귀가 잘못된 건가? 대책이나 보상안은 없는 거야?
⌎저걸 지금 발표라고 한 건가? 저럴 거면 발표를 왜 했대?
⌎ 지금껏 소비자를 그냥 호구로 봐 온 거네.
⌎키요타 경영진은 무슨 생각으로 저딴 발표를 한 거지? 생각이 없나?
소비자의 잘못이 아닌 제품이 불량한 것임에도 그 어떤 추가 조치도 없는 키요타 모터스의 안일한 반응에 당연히 미국 소비자들은 폭발했다. 9월 한 달 동안 처맞은 비난보다 더한 비난들이 10월 내내 쏟아졌다.
[키요타 모터스 문제 해결을 위해 리콜 발표.]
키요타 모터스는 욕을 한 사발 처먹은 뒤에야 가속페달이 바닥 매트에 걸려 잠겨 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20만 대의 패달을 무상으로 교환해 주겠다는 자구책을 11월 25일에 발표했다.
* * *
일본 속담에 ‘臭い物に蓋をする(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어라)’라는 표현이 있다. 나쁜 일이나 추문(醜聞)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감추는 일본의 폐쇄성을 증명해 주는 속담이다. 웬만해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없고 숨기기 바쁜 일본 재계나 정치인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나름 큰 결단을 내린 셈이었다.
‘숨기지 못하겠다고 판단을 내렸으니 한 선택이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키요타 자동차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2월 4일 키요타의 기술력을 총망라한 차라 광고한 신형 하이브리드 차 ‘프로메테우스’의 브레이크가 순간적으로 잘 듣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진정이 접수되었다.
키요타 자동차는 ‘차 자체엔 문제가 없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 운전자들의 감각 문제’라고 강변하며 리콜을 미뤘다. 그런 거 있잖은가?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다 보니 괜히 꺼림칙해서 과민 반응을 하는. 키요타 자동차는 소비자들의 신고를 그렇게 치부했다.
키요타가 어떤 변명을 내뱉건 간에 신고를 받은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은 조사에 착수했다. 일본이 뿌린 잽머니(Jap-Money)를 생각하면 좀 봐줄 만도 했으나, 언론과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점점 커지자, 이 사태를 재미있게 보고 있던 정호준의 협력자는 다시금 미국을 찾아왔다.
“호준, 자네는 이 사태를 모두 예견한 건가?”
심복을 정호준에게 붙여 주며 정호준의 지시를 받들게 하면서 따로 보고를 받아 온 만주르는 다시금 정호준에게 재단에 돈을 기부하며 또 한 번 정호준과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언제 터져도 터질 문제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저 이번 달에 슬쩍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에 자료를 하나 건네줬을 뿐입니다. 아마 결론은 해가 바뀌었을 때쯤 날 테죠.”
정호준의 흑막 같은 발언에 만주르는 침을 삼켰다.
“공매도를 진행한다고 했잖은가?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입니다. 아직 일본과 키요타 모터스에게는 여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그리고 어차피 주식을 돌려주기로 약속한 날짜까지는 기일이 꽤 많이 남았잖습니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대답한 정호준은 만주르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나저나, 다음부터는 재단에 요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제 비서실로 연락을 주시죠.”
사실 이번에도 돈을 안 받을까 하다가 주겠다는 걸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어서 만주르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돈을 주지 않고 그냥 요청만 해도 만나 주겠다는 말에 만주르는 반색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질문했다.
“나를 친우로 생각해 주는 건가?”
기름국 왕자의 질문에 정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저는 친구의 기준이 꽤 높아서요. 친우는 너무 나갔고, 동업자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왕자님.”
정호준의 단호한 관계 정리에 만주르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호준. 우리의 관계 설정이 조금 거꾸로 된 걸, 자네는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만주르 본인이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자산만 수십조고, 개인을 넘어 가문의 자산은 거의 1천 조에 육박한다. 웬만하면 자신에게 떨어질 콩고물을 주워 먹기 위해 간절해야 맞았다.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덤덤한, 오히려 자신이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 상황이 참으로 어색했지만, 기분이 나쁘냐 하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제게 친구란 카테고리는 가진 재산이나 지위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서요.”
만주르의 투정에도 정호준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