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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28화 (228/335)

22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28)

미국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한 정호준은 큰 변수 없이 계획대로 흘러간 정치 상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딴생각은 못 하겠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 5년. 대통령이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임기 첫해는 슈퍼 야당이었던 진보당에게 견제당하느라 제대로 기 한번 못 펴 봤고, 다음 해에는 정호준 때문에 본인이 밀어붙였던 사업이 캔슬되었다. 그에 더해 제2금융권에서 촉발된 위기로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에서 본인이 연루된(?) 비리와 여당의 실태가 까발려지기까지 했다.

‘그 청문회조차 여당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던 청문회임을 고려하면, 어쩌면 레임덕이 빨리 올지도 모르겠네.’

레임덕, 대통령의 말에 실린 힘이 약해지는 순간을 부르는 표현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대통령의 임기 말인 5년 차나 4년 차의 중반부쯤 시작된다. 나름의 정보통과 CIA의 도움을 받아 한국 정치 상황을 따로 전해 들은 게 있는 정호준은 김명호 대통령의 레임덕이 일찍 올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당이 강현태 소환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고집부려 강행했던 청문회가 여당과 행정부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로 끝났으니,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내에서 김명호 대통령의 경쟁자가 존재하니 더 그렇겠지.’

당내에서 김명호를 대체할 빅네임이 없다면 영향력이 감소하는 일은 없을 거다. 아직 레임덕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일렀고. 하지만 김명호에게는 대선 후보로 뽑히기 전부터 당내에서 경쟁하던 박정혜란 경쟁자가 존재했다. 정호준이 4대강 정비 사업에 어두운 일면을 까발렸을 때 당내에서 동조했다는 이유로 경쟁자인 박정혜의 측근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정치란 본디 주고받는 것. 의자매처럼 여긴 측근이 공격당해 건수를 노리고 있던 박정혜가 지금의 사태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밖에서는 야당의 공격을, 당 내부에서는 박정혜와 그녀를 따르는 이들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바쁠 테니 조금은 신경을 꺼도 되리라.

* * *

2009년 8월 15일. 한국에게는 뜻깊은 날인 광복절에 프리미어리그의 개막전 일정이 잡혔다. 성공적인 프리시즌을 마치고 개막전 준비에 들어갈 무렵, 클럽 관계자들 사이에선 비상이 걸렸다.

비상이 걸린 이유는 단 하나.

“단장님! 구단주님께서 존 레논 공항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단장님과 감독님께 잠깐 시간을 내주시길 요구하셨습니다.”

구단주인 정호준이 언질도 없이 갑작스레 구단을 방문하겠다고 알려 왔기 때문이다. 불시 방문이라도 성과를 냈다면야 당당하지 못할 게 없지만, 안타깝게도 작년 리버풀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임기 첫해에 미니 트레블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던 0708시즌과 달리 0809시즌은 무관으로 끝났다.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엄청난 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트로피를 빼앗겼고, FA컵과 리그컵도 준결승까지 올라갔다가 막판에 미끄러졌다.

챔피언스리그는 결승전까지 올라갔다가 우승을 코앞에 두고 바르셀로나라는 거함에게 연장전 혈투 끝에 2:1로 패배했다. 골키퍼부터 시작해 수비를 전설급으로 두르고, 바르셀로나의 중앙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미드필더진, 공격진에도 빨강 토레스와 베일, 리베리 등 월드클래스들로만 자리를 채웠지만 전설이라 불린 0809시즌 바르셀로나는 강했다.

리버풀에게 있어 0809시즌은 마지막 뒷심이 부족해 결과를 내지 못한 해로 기억되게 되었다.

‘축구 팬들로부터 역대급이라고 인정받는 게 0809시즌 바르셀로나니, 이해해야지.’

1회차 때 축구를 즐겨 봤던 정호준은 0809시즌 바르셀로나가 얼마나 막강했는지 알고 있고 토너먼트라는 게 운도 필요했기에 질책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에이든 무어의 속은 타들어 갔다.

정호준을 만난 순간부터 줄곧 그런 감정이 엿보였다.

“단장님, 감독님. 항상 잘할 수 없다는 것쯤은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렇게 죄지은 사람마냥 굴지 않아도 됩니다.”

에이든 무어는 정호준의 입에서 책 잡을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로 이번에는 분발해 달라는 말이 나온 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휴, 일단 내 목을 건진 모양이네.’

“다만, 올해는 하나 이상 우승컵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올해는 달랐으면 한다는 말에는 카를로 안첼로티가 반응했다.

“구단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작년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올해는 반드시 성과를 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 주문하자면 FA컵이나 리그컵은 유스들을 키우는 정도로 사용했으면 합니다. 저는 올해 리버풀이 리그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둘 중 하나를 거머쥐었으면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올해가 마지막인 안첼로티 또한 재계약을 위해 혹은 재계약이 불발되어 다른 구단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 가기 위해선 성과가 필요했다. 그래서 안첼로티 또한 간절했다.

‘되도록이면 이곳에서 좀 더 감독직을 이어 가고 싶군.’

안첼로티가 판단하기에 리버풀은 감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빅클럽이라는 명성은 선수단이 자긍심을 갖고 똘똘 뭉치게 만들었고, 제라드라는 확실한 리더의 존재는 선수단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유스풀 또한 잉글랜드에서 최고로 손꼽혔다. 게다가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스포츠 과학자들의 서포트 또한 겪어 보니 무시할 수 없었다.

첼시FC의 구단주처럼 선수 영입과 관련해 정호준의 입김이 강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정호준은 러시아 구단주와 달리 팀에 반드시 필요한, 재능 넘치는 선수만 데려왔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리고 성공한 사업가답게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목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브라질의 신성 네이무르를 영입하려고 애를 써 봤는데, 씨알도 안 먹히더군요. 성과를 요구하면서 팀을 좀 더 강하게 보강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네이무르는 7회 연속 발롱도르 수상자의 후계자 소리를 듣게 될 남자로, 현재 브라질 축구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스토리도 있고 실력도 있는, 앞으로 성공할 게 뻔한 남자를 영입하기 위해 미리 움직였지만, 1회차 때 그랬던 것처럼 브라질 리그의 흥행을 위해 남아 달라는 부탁을 뿌리치지 않았다.

‘브라질 선수들은 참 특이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돈(성공)을 갈구하고 자유분방하기까지 한데, 특이하게 애국심도 있단 말이지.’

놓치기는 아까운 선수라 계속 접촉은 하고 있지만 앞으로 최소 1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아닌 바르셀로나를 선택하더라도 이적료를 최대한 높여서 승자의 저주를 만들어 줘야지.’

정호준이 네이무르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잡생각을 이어 갈 때 안첼로티가 적절하게 끊어 냈다.

“데리고 있는 선수들을 지켜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승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면 선수를 빼앗기는 게 일반적이다. 전력 누수 없이 팀을 지켜 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 *

구단을 사 놓고 중요한 때가 아니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호준은 영국 미디어들이 노리는 먹잇감 중 하나였고, 2008년 정호준이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은 뒤에는 관심도가 증폭되었다.

어디서 전해 들은 건지 정호준이 리버풀을 나서려 할 때쯤 기자들이 몰려와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호원이나 리버풀 관계자들이 길을 터보려 했지만 기레기의 본고장답게 기자들은 끈질겼다.

무작정 들이대는 기자들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칼보다 무서운 펜을 들고 있는 이들을 쥐어팰 수는 없었다. 결국 정호준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

“리버풀이란 빅클럽 구단주 중 한 사람으로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왕자의 맨체스터 시티 인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단주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008년 9월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만주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축구에 진심인 중동의 왕자가 구단을 인수하고 운영하는 것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가 갖고 싶은 것을 사들인 건데, 문제 될 게 있습니까?”

1회차 때 만주르 왕자가 구단을 운영한 방식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가 축구와 자신의 것이 된 팀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애정을 먹고 큰 맨체스터 시티도 빅클럽으로 자리매김했고 말이다.

하지만 당장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대다수였고,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인수 전에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곤 했던 중상위권 클럽 첼시와 달리 오래가지 못할 거란 말이 많았다.

“첼시에 이어 맨체스터 시티까지. 팬들 사이에서는 천박한 오일머니가 프리미어리그를 더럽히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첼시 때문에 폭등했던 선수들의 몸값이 만주르의 구단 인수 후 다시 폭등하고 있습니다.”

“첼시가 구단을 인수했을 때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대부분의 선수 영입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프리미어리그를 놓고 보면 다른 팀들이 키워 놓은 선수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리버풀이 데려왔죠. 거기에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라는 팀이 더해졌을 분입니다.”

결국 논쟁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었다. 자기 밥그릇을 빼앗길까 겁이 난 빅클럽과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는 중상위권 팀의 스탭과 팬들의 외침일 뿐이었다. 정호준은 잠깐 말을 끊고는 기자들의 시선을 마주 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경쟁이 붙으면 값이 오른다. 간단한 시장의 논리입니다. 구단주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골치 아프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팀의 선수와 감독, 스탭들을 믿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나 첼시만큼은 아니지만 주급 체계도 높일 예정이고요.”

정호준은 짧은 시간 내에 빅클럽의 명성을 되찾은 리버풀의 네임벨류를 믿었기에 오버페이까지는 고려사항에 넣지 않았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리그의 경쟁력이 오르게 될 겁니다. 우승을 노릴 여력이 없는 스몰마켓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편이 훨씬 구단 경영에 유리하기도 할 거고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경쟁이 붙어 선수들의 몸값은 더욱 올라갈 테니까요.”

월드클래스라 불리는 S급 선수가 아닌 A급 선수들의 몸값조차 천정부지로 오른다. 정호준은 선수 하나 잘 키우면 막대한 수익을 안겨 주는 세상을 넌지시 이야기했다.

[리버풀 구단주 호준 정, 만주르 왕자의 맨체스터 인수는 리그 경쟁력을 성장시키리라 공언!]

[JHJ Capital 호준 정, 빅클럽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건 과거부터 줄곧 벌어졌던 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만주르의 구단 인수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변호해 준 정호준의 발언들은 프리미어리그 팬들 사이에 거대한 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호준에게도 계획에 없는 만남을 선사했다.

“누구라고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왕자, 셰이크 만주르 빈 자이드 빈 술탄이 재단을 통해 대표님과 식사 자리를 갖길 원한다고 요청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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