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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27화 (227/335)

22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27)

부율경저축은행 분식회계를 꿰뚫어 본 강현태는 어느 정당에도 몸을 담지 않은 무소속 출신이다. 하지만 강현태가 끝까지 무소속을 유지할 거라 생각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여러 정당이 존재하나 양당 체제로 굳어지며 사람이 아닌 당을 보고 뽑는 경향이 짙은 대한민국 정치를 고려하면 결국에는 선택을 하게 될 거고, 그 말은 즉 무소속이라는 말은 여당인 보수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중도층의 표심을 잡아야만 비등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진보당과 달리, 보수당은 그들이 아무리 못해도 보수당을 지지해 줄 콘크리트 지지층이 전체 표심의 25%나 된다.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영입전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여당 대표와 여당의 중진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보수당은 되도록 강현태와 척을 지는 상황을 꺼렸다.

그 외에도 이유는 또 있었다.

‘국민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노민현 대통령 탄핵 사건 때 한 번 크게 덴 보수 측 중진들은 강현태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도 경계했다.

청문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이 사실상의 선전포고임을 떠올리면, 청문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내려 척을 지기보단 어떻게든 손을 잡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보수당은 강현태에게 청문회 참석 명령을 내렸다.

양보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는 김명호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대통령과 여당은 행정과 입법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담당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사실상 동반자로 봐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로,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이 아니면 여당은 대통령과 함께 간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 이유로 여당은 김명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역풍을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제대로 깎아 내야 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합시다.”

국회에서 보여 주는 저렴한 수준과 달리 국회의원 대다수의 학력과 커리어는 엘리트라 불려도 무방했는데, 작심하고 준비했다.

* * *

정호준의 예견대로 청문회 참석을 권고받은 강현태는 정호준이 제공해 준 정보를 토대로 준비를 해 나갔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강현태 외에도 지금의 상황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도 불려 왔고, 강현태의 차례가 되었다.

보수당 출신 의원들은 강현태를 보며 공격을 시작했다.

“부율경저축은행 파산으로 야기된 뱅크런이 저축은행 11곳을 파산으로 이끌었습니다. 강현태 의원님께서는 이를 인지하고 계십니까?”

강현태와 마찬가지로 부산의 지역구를 맡고 있는 박명석 의원의 추궁에 강현태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뱅크런이 파산에 손을 보탠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뱅크런을 파산의 원인으로 규명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의원님의 말씀대로 뱅크런이 제2금융권에 위기를 야기시켰다면, 저축은행은 모두 파산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축은행들이 파산한 건 그들이 리스크 있는 경영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강현태는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 위기를 기회로 몸집을 불린 저축은행들을 하나둘 나열했다.

“뱅크런은!”

말싸움에서 가장 할 말 없게 만드는 상황은 펙트를 나열하는 순간이다. 나열되는 펙트에 흐름을 내어준 박명석은 강현태의 말을 끊고 반격에 나섰다.

“뱅크런은 은행에 예치된 돈을 한꺼번에 회수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죠. 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출금이 은행의 재무 상태와 경영에 지장을 주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빗발치는 출금 요구에 맞춰 예금을 돌려주기 위해 은행은 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에게 상환 촉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붙긴 하나 뱅크런 사태가 제2금융권에서 끝나지 않고 제1금융권까지 번졌다면,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 공황 발생이라는 국가 차원의 문제로 번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박명석은 강현태가 그랬던 것처럼 은행의 대출 상환 촉구로 파산한 기업 몇 곳을 나열하며 본인이 제기한 위기설의 신뢰성을 높였다.

강현태는 여당이 자신을 옭아매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긴 싫었는데, 결국 진흙탕 싸움이 되겠군.’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뒤부터는 관계 개선이 어렵기에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강현태는 결국 칼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경제에 빠삭하고 국가 경제를 염려하시면서, 왜 뱅크런 사태에 동참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영예저축은행이 영업 정지 후 파산을 선언하기 며칠 전, 박명석 의원님의 부인과 일가친척께서 밤늦게 은행을 방문했다는 걸 전해 들었습니다.”

강현태가 그랬던 것처럼 박명석 또한 자신과 가족의 돈을 영예저축은행에 맡겼었다.

“떳떳했다면 밤늦게 갈 일도 없었겠죠. 국민들은 영업 정지 때문에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국민의 대표라는 분께서는 권력을 이용해서 예금을 받아 낸다라. 의원님께서 정말 국가 경제를 생각하시는 건지, 저는 의문이 생기네요.”

반박이 불가능한 추궁에 박명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어허, 강 의원!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확인되지 않은 추측만으로 국민의 대표를 그렇게 몰아갑니까!!”

“확인되지 않은 추측이 아닌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저를 지지해 주시는 국민(?)께서 의원님의 가족분들이 영예저축은행으로 들어가는 것을 찍은 사진을 보내 주셨거든요. 영업을 중단한 은행에 국회의원의 일가족이 드나들 이유가 예금 인출 외에 뭐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박명석 본인이 움직였다면 의심은 받더라도 사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파악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강현태의 논리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박명석을 구원하기 위해 나섰던 보수당의 의원은 박명석과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었다.

“질의 시간 끝났습니다. 다음 분 질문해 주세요.”

곤란한 상황을 국회의장이 정리하며 청문회가 계속되었다. 별이 보일 정도로 세게 맞은 걸 눈앞에서 확인해서인지, 적나라하던 여당의 공세는 조금 순화적으로 바뀌었다.

별 소득 없는 질문이 이어지다 보수당에서 친김계로 유명한 장팔봉 의원이 다시금 공세를 시작했다.

“강현태 의원님의 용기 있는 행보는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정부에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며 협치를 진행했다면, 좀 더 적은 피해로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확한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강현태 의원님의 공명심이 호미로 막을 수 있던 상황을 가래로도 못 막게 만든 건 아닐까요?”

공명심을 탐내 사건을 키운 것으로 몰아가려던 장팔봉 의원의 수작에, 강현태는 싸늘한 미소를 입가에 띄며 반격을 시작했다.

“정부에 협력을 구하지 않은 건 제 공명심 때문이 아닌 김명호 대통령님께서 대선 후보 시절 부율경저축은행의 강연호 회장이 대선캠프에 정치자금을 보낸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강현태가 터트린 폭탄에 의사당에 앉아 있던 보수 측 의원들의 표정에 경악이란 감정이 서렸다.

“대통령께서 정치자금을 받으셨다니!”

“강 의원께서는 지금 뱉은 말의 무게를 아십니까? 대통령님께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증명할 수 있어요?!”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친김계가 빠르게 반박에 나섰다.

“제 말을 곡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대선 후보 시절 캠프 쪽으로 자금이 흘러간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 대통령님께서 직접 받으셨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당시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김진수 감사위원에게 자금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이었지만, 대통령 언급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피해야 할 선이란 걸 모르지 않았기에 강현태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폭탄이 연달아 떨어진 청문회장에서 야당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흥미롭게 강현태와 보수당의 싸움을 지켜봤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남의 집에 불나는 것과 패싸움이라던가?

‘팝콘이라도 있으면 더 좋았을걸.’

야당 의원들은 입과 손이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논란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했다.

* * *

2009년 8월 5일 수요일에 개최된 청문회는 국회방송을 통해서만 송출되었다. 국회방송은 케이블 채널이고 평소 시청률이 쥐뿔도 안 나오는 채널이었기에 관련자가 아니고서야 생방송으로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은 몇 안 되었다.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김명호는 박명석을 포함한 몇몇 의원들이 권력을 이용해 예금을 인출한 사실이 드러나자 밥상을 차려 줘도 떠먹질 못한다며 혀를 찼다.

강현태가 강연호로부터 김진수가 정치자금을 받아 온 정황을 이야기했을 때는 경악했다.

‘강현태 저 자식은 대체 어떻게 안 거지? 강현태가 알고 있다는 건 정호준도 알고 있다는 건데. 이 새끼들은 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사사건건 방해질이야!!’

강연호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고, 감사를 진행한 김진수 또한 캥기는 게 있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흔적을 지웠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검이 진행된 것도 검찰의 수사가 끝난 것도 아님에도, 상황을 뻔히 꿰고 있는 상황에 김명호는 공포를 느꼈다.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입막음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 * *

생방송으로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은 몇 안 되지만, 그 현장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기자들은 적어두었던 기사를 본사로 입고했다.

청문회가 끝난 지 30분도 채 안 돼서 인터넷에는 기사가 쏟아졌다. 다만 언론사들만큼이나 여당과 청와대의 반응도 빨랐다.

[박명석, ‘정치에 신경을 쏟느라 바빠 돈과 관련한 문제는 부인께 밀어 뒀다?!’ 만약 사실이라면 송구스러운 일!]

나열한 은행이 문 닫기 전에 가족을 시켜 은행이 문 닫기 전에 돈을 뺀 의원들은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청와대 대변인,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라 일축.]

[김명호 대통령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챙긴 김진수를 용서할 수 없다.’ 밝혀]

김명호 대통령 김진수의 독단으로 밀어붙였다. 눈에 뻔히 보이는 꼬리 자르기였지만 어쨌든 그랬다. 보수 콘크리트 결집층과 슈퍼 여당 등의 힘을 활용해 논란의 방향을 바꿨다.

사태가 조금씩 진정(?)됐지만 강현태를 공격하려고 불렀다가 치부만 들추게 된 보수당에서는 다시 한번 김명호 책임론이 들끓었다.

[진보당 중진 ‘강현태 의원을 청문회에 부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일축!]

그리고 야당인 진보 쪽 인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이 닿는 언론들을 이용해 맹공을 퍼부었다.

제2금융권 연쇄 파산으로 7월부터 조용할 날이 없는 대한민국에 강현태는 소란을 한 숟갈 더 추가했다. 청문회의 여파로 시끌벅적할 때 강현태는 기자들을 불러 모아 폭탄을 떨궜다.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고 야인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 것에 무한한 책임을 느낍니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강현태는 사퇴 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취약계층을 도울 것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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