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19화 (219/335)

21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19)

가치투자라는 투자 기법을 알리고 가치투자의 선두주자로 꼽히게 된 남자. ‘세계 최고’를 꼽을 때 항상 후보군에 오르는 에릭 버펫은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진 후 줍줍을 시전한다. BA, 골드만삭스이라는 훗날 미국의 빅4로 분류되는 금융기업과 SM이라는 빅3 거대 기업에 돈을 투자했다.

버펫이 3그룹에 투자한 돈은 모두 합쳐 150억 달러. 당시 1,400원 환율로 계산하면 21조 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웬만한 기관보다 더 거대한 명성과 힘을 가진 버펫은 위기에 돈을 투자한다는 이유로, 줍줍 외에도 5년 내로 지금과 같은 금액에 주식을 사들일 권리까지 받아 냈다. 위기가 끝났을 당시 버크셔의 수익률은 30%를 넘겼다고 한다. 주식을 추가 구매할 권리까지 수익 계산에 포함하면 수익률은 60%, 아니 그 이상이 될 거다.

계속 쥐고 있으면 더 오를 테니 말이다.

‘양적완하’라는 이름하에 달러를 추가로 푸는 오리하 정부의 정책은 위기에서 살아남은 미국 기업들은 살찌웠다. 시장에 돈이 풀리면 돈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향하기 마련, 미국은 한국과 달리 부동산 이상으로 주식 투자 비중이 높은 국가였기에 기업들이 혜택을 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다.

미국은 주주에게 챙겨 주는 것이 강해서 구골 같이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 주식을 제외하곤 주식을 쥐고 있으면 배당금이 나왔다. BA나 골드만과 같은 은행들은 그러한 경향은 특히 강했다.

에릭 버펫은 주가가 올라서 한 번, 배당금 지급으로 또 한 번 이득을 보는 셈이다.

가치투자도 잘하고, 줍줍도 잘하는 에릭 버렛이 2007년. BA나 골드만에 투자하기 전인 5월부터 돈을 꾸준하게 투입한 종목이 존재한다.

바로 철도였다.

2007년 5월을 시작으로 2007년 8월 28일, 8월 31일, 9월 5일. 에릭 버펫의 철도주 매입 기사가 계속해서 일면을 차지했다.

‘차라리 IT에 투자하지.’

철도주처럼 고리타분한 것 말고 IT에 투자하는 게 어떻겠냐는 월가 전문 기자들의 질문에 버펫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소신 투자를 이어 갔다. 문제는 2008년 3분기 말, 더 정확히는 9월 15일에 벌어지는 리만의 파산 후까지 미국 경기는 줄곧 하향 그래프를 그렸다는 거다.

이러한 흐름에 저항할 만한 특별함이 없던 철도주는 당연히 미국 경기가 폭락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폭락했다. 모기지론 디폴트로 불황이라는 말이 돌기 전까지 유가가 뛰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에 맞춰서 변하는 게 투자자의 덕목인데, 소신을 지키다 무리했네.’

‘IT의 가치도 못 알아보는 고리타분한 영감.’

‘버펫도 이제 한물 갔네.’

잘나갈 때는 받아먹을 게 없을까 해서 시키지 않아도 막 띄워 주지만, 잘나가던 사람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 손가락질하며 깎아내리는 게 바로 인간이란 동물이다. 버펫이 투자했던 철도주가 나락을 향해 나아가자 월가나 투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버펫을 깎아내렸다.

주변에서 날아드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1회차 때 에릭 버펫은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며 승부수를 던졌다.

[에릭 버펫, BNSF 인수.]

2009년 11월 4일. 미국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철도회사 BNSF를 인수했다. 2007년에 버펫이 사들인 주식을 제외한 77%의 지분을 종가에 30%의 프리미엄을 얹어 사들였고, BNSF가 가진 부채를 끌어안으며 인수 비용을 부담했다. 모두 합쳐 440억 달러를 들여 BNSF를 인수한 버펫은 BNSF를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시켰다.

BNSF를 자회사로 만든 것.

BNSF는 에릭 버펫이 인수한 뒤에도 잘 굴러갔고, 버펫은 2020년까지 받은 배당금의 평균값은 한화로 약 5조 원에 달했다. 매년 받은 배당금만으로도 인수금을 다 채우고도 남았고, 미국 경기가 궤도에 오른 뒤 회사의 가치는 10년 전과 비교해 막대해졌다.

에릭 버펫이 BNSF 주식을 전부 사들인 후 상장을 폐지해서 주식의 가치를 공식적인 가치를 확인하는 게 불가능해졌지만, 어림짐작은 가능했다. BNSF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큰 미국 최고 철도회사 유니언 퍼시픽의 주가보다 10% 정도 낮게 값을 매겨도 버펫이 쥐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2009년 11월을 기준으로 약 6배가 올랐다.

배당금으로 인수할 당시 쏟아부었던 돈을 전부 환수한 것도 모자라 회사 가치가 6배 올랐다. 5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고 가정하면, 배당금을 제해도 3,000억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이 투자를 성공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투자를 성공이라 이야기해야 할까?

에릭 버펫이 자존심에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고 깎아내린 이들은 전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게다가 미국의 철도회사를 보유했다는 건 돈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철도회사를 소유하게 됐다는 건 에릭 버펫이 에너지와 식량의 유통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됐다는 말과 동의어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에릭버펫은 BNSF를 활용하기 위해 에너지 기업들에도 투자를 진행했다.

그러한 사실을 미래를 통해 보고 왔던 정호준은 에릭 버펫이 걸었던 길을 따라, 아니 버펫보다 더 큰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 * *

조나단을 포함한 선물 매입팀을 불러 풋 포지션을 잡고 유가 선물을 매입하란 지시를 내린 정호준은 이어 주식 매입팀도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BNSF와 NS의 주식을 매입해 주세요.”

에릭 버펫이 철도주에 투자했다고 욕을 먹는 것을 지켜봤기에 매입팀 팀장 지미 딕슨이 조심스럽게 만류하는 기색이 섞인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 철도주에 투자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 버펫도 철도주 투자로 감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지미 딕슨은 정호준이 에릭 버펫처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질문을 던진 이가 신입이었다면 그냥 별다른 대꾸 없이 넘어갔겠지만 지미 딕슨은 2006년부터 함께 일해 온 이였고, 질문 속에 섞긴 마음을 인지했기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었다.

“글쎄요, 팀장님과 저는 생각이 좀 다르네요. 저는 투자 시기가 조금 빠르긴 했지만, 종목 선택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미국이 망하지 않고 반등할 거란 에릭 버펫의 판단을 틀리지 않았다. 그저 틀린 게 있다면 에릭 버펫은 월가가 싸지른 똥의 크기와 지독함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정도랄까? 철도주에 투자를 시작한 시점이 2007년이 아닌 2008년 중순만 됐어도 지금처럼 바가지로 욕먹진 않았으리라.

“BNSF와 NS의 주식을 전부 사들여서 상장 폐지시키는 게 이번 투자의 목적입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주식 모두 사들인 후, 회사와 직접 협상에 들어갈 겁니다.”

1회차 때 에릭 버펫이 100% 지분을 쥐고 자회사로 만들었던 미국의 No. 2 철도회사 BNSF는 No. 1인 유니언 퍼시픽과 마찬가지로 미국 서부와 중부, 남부에서 철도 운영을 업으로 삼는 회사였다.

동부와 연결되는 레일은 존재해도 직접 동부로의 운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NS 인수였다. BNSF와 유니언 퍼시픽이 서부, 남부, 중부의 물류를 꽉 쥐고 있다면, NS는 CSX와 함께 동부 철도 운영을 꽉 쥐고 있었다.

‘NS의 규모는 분명 CSX보다 작지만, 규모가 작은 만큼 사건사고도 적지.’

NS는 No. 2의 자리를 넘보는 CSX보다 규모도 작은 미국에서 네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도회사다. 열차 탈선 사고와 같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CSX와 달리 NS는 사고가 적은 편에 속했다.

“미국 전역을 달릴 수 있는 철도회사라. 얼핏 듣는 거로도 확실히 비전은 있습니다. 대표님이시라면 분명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실 테고요.”

두 회사를 인수하려는 것에서 정호준이 원하는 그림을 인식한 지미 딕슨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정부가 인수합병을 그냥 두고 볼까요? 철도는 국가 기반 산업이라 봐도 무방하잖습니까?”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반독점법을 염려하는 질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저도 그게 우려스럽긴 합니다. 서부와 동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업 대신 처지는 철도사들을 매입했으니 조금은 할 말이 있지 않을까요?”

CSX를 매입하든 NS를 매입하든 BNSF와 어차피 인수합병을 진행하면 잡음은 생겨날 테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잡음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었다. 최고가 아닌 No. 2 주식들을 매입하는 건 그래서였다.

“명확하게 따져 봐야 알겠지만 50%를 넘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은 넘기지 않더라도 인수합병을 통해 시너지가 나면 분명 50%를 초과하게 될 겁니다.”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이 분명 인수합병에 큰 힘이 되어 줄 겁니다. 개인적으로 약을 쳐 둔 것도 있고요.”

“약이라면?”

“백악관의 주인과 현 정부가 제게 빚진 게 좀 있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세상만사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정호준은 릭 오리하가 대선에 나가기 전부터 오리하를 밀어주고 빅3를 어떻게 처리할지 조언해 준 대가는 받아 냈지만, 아직 반리덴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고 중동 사태를 조언해 준 것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했다.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표정을 확인한 정호준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돈을 가져다 바친 로비는 아니니까 들으면 안 될 걸 들었다는 표정은 짓지 않아도 됩니다.”

정호준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다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실 IT 쪽을 보면 이미 반독점법이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잖습니까? 백악관에서 부르면 빚을 갚아 달라고 내세움과 동시에 IT 업계를 예로 제시하며 눈감아 달라고 빌어 볼 생각입니다.”

독과점도 아니고 거의 독점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 중임에도 미국 정부는 IT 기업들을 제재하지 않았다. 공화당 출신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을 때 반독점법을 만지작거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IT 기업들이 워낙 공룡화가 된 탓에 위협 정도에서 끝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표님이 지시하신 대로 주식 매입 시작하겠습니다. 아,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기술적 매입을 진행할까요?”

“NS에는 기술적 매입으로, BNSF는 기술적 매입 없이 그냥 시장에 나온 주식을 모두 쓸어 담아 주세요.”

정호준은 BNSF에 한해서는 기술적 매입 대신 무한정 매입을 지시했다. 기술적 매입을 포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BNSF는 에릭 버펫이 인수합병을 계획 중인 물건으로 이미 전체 지분의 22%를 버펫이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버펫이 회사를 사들일 현금이 준비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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