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11)
김명호 정부가 4대강 정비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업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는 종종 꺼냈지만, 유지비와 관련해서는 말이 나온 게 없었다. 매년 최소로 잡아도 4,000억 원, 물가 상승이나 인건비 증가 등의 이유로 고정비용은 증가하기만 할 거란 정호준의 냉정한 컨설팅에 한국 국민들은 분노하며 거리로 나왔다.
“4대강 정비 사업을 취소해라!”
“취소해라!! 취소해라!! 취소해라!!”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든 국민의 수는 진보당이 광우병을 가지고 선동해 촛불을 밝혔을 때보다 더 많았다.
“4대강 정비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라!!”
“축소하라!! 축소하라!! 축소하라!!”
매년 사용될 고정비용이 본인들의 지갑에서 나가는 것임을 강조한 정호준의 수작은 잘 들어맞았다. FTA로 미국 소고기가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놓고 진보 측이 선동한 광우병 사태 때처럼 언론사는 매일 한 번 이상 촛불시위에 대해 다뤘다.
“비용 측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김명호 정부가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쳐 내며 계획한 ‘4대강 정비 사업’은 정호준이 벌인 생방송 때문에 사업을 밀어붙일 동력을 잃게 되었다.
다만 격렬하게 불붙은 시위임에도 시위에서 하야나 탄핵이란 단어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큰 실태를 저지른 게 아닌 미수로 끝난 데다, 아직 국민 정서가 대통령을 쫓아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노민현 대통령 때 이미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시위와 탄핵이란 말을 꺼냈다가 역풍을 맞는 것은 한순간이다.
시위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고, 열흘째 되던 날 정부에서 백기를 들었다.
- 정부는 정호준 대표가 방송에 나와 이야기한 사안들을 전문가 및 여당 의원들과 의견을 나눴고, 정 대표의 말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1회차 때도 진보당 측에서 4대강 보수 사업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유를 나열하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지만, 당시에는 이슈 거리로 부상하질 못했다. 국민의 눈에 진보 측 인사들의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였고, 정치 성향을 드러낸 적 없는 전문가들이 반대를 표할 떄도 인터넷상에서 중도층 인사에게 진보 측으로 색깔을 입혀 놨기 때문이다.
‘포보스 잡지 선정 세계 부자 1위’에서 비롯되는 말의 무게감은 김명호 정부가 핍박했던 국내의 인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반대 의사를 밝힌 국내의 전문가들처럼 색깔을 입히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백기를 들었음에도 공사 자체를 취소한다는 발표는 없었다.
- 정부는 정호준 대표의 조언을 받아들여 4대강 정비 사업을 낙동강 정비 사업으로 축소 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호준의 컨설팅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했다가 말아먹으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보수당이 뒤집어써야 한다. 김명호가 당선됐을 때부터 다음 대선주자로 꼽혔던 박정혜나 박정혜를 따르는 이들로선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들고 일어났다.
경선에서 승리해 보수당의 대선 후보로 선거에 나와 대통령의 권좌에 앉은 김명호지만, 정치 경력이 긴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여당이 된 보수당 내에는 박정혜를 따르는 의원들이 다수 존재했다.
자신을 도와주며 운명을 함께해야 할 협력자들까지 나서서 반대하는 상황에서 다 쳐 내고 강행할 수는 없었다.
‘두고 보자.’
재·보궐선거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밀어 넣으며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 * *
꽝!
대변인이 나와 사업을 수정하겠다는 사실상 백기를 든 기자회견을 TV를 통해 시청한 김명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제 아비의 후광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걸 내세워 감히 나를 공격해?”
자신과 선을 긋는 박정혜의 행보에 박순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김명호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돌려주기 위해 움직였다.
“임재준 총장에게 전 대통령 그만 공격하고, 영원교 털라 해!!”
김명호는 선빵을 맞은 걸 아무런 보복 없이 용서하고 넘어갈 만큼 자비로운 인사가 아니다. 보복을 위한 행보를 밟았다.
김명호 정부가 노민현 대통령을 공격한 건 광우병 사태에 대한 보복이자 4대강 정비 사업을 꾸준하게 반대하는 진보당 측의 결집력을 없애기 위한 수였다. 정호준의 방해로 4대강 사업을 강행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전 대통령을 공격한다는 정치적인 부담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기껏 들어 봐야 종교 탄압 정도겠지.’
반면 영원교 수사는 정치 보복이란 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아주 편안한 보복이었다. 박정혜나 박순자가 본인들의 밀월관계를 밝힐 일이 없으니 말이다.
‘사이비가 무슨 종교 탄압.’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그게 사이비에게도 자유롭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의 국민정서상 사이비를 처벌하는 것에 그 어떤 반감도 갖지 않는다.
반발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연루된 이들에 한했다.
“김명호 대통령님, 일반인에게 보복을 가하다니! 그게 권좌에 앉은 이가 할 짓입니까!!”
지음인 박순자가 공격받자 박정혜는 김명호에게 연락해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박정혜의 말 한마디에 그만둘 공격이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으리라.
“먼저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야. 그러게, 날 공격하지 말았어야지!!”
“공격이라니, 저는 그저 대통령께서 무리수를 던지는 것 같아 거리를 뒀을 뿐입니다.”
“전적으로 내 편을 들어줬어야 할 사람이 나와 거리를 벌린 것, 그게 나를 향한 공격입니다.”
김명호의 단호한 선언에 박정혜는 억지라고 피력해 봤으나 돌아오는 건 똑같은 반복이었다. 말꼬리를 붙잡는 논쟁이 수 분간 이어졌으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후회할 겁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크게 기대고 있는 박순자를 공격한 것을 반드시 보복하겠다며 박정혜는 이를 갈았다.
‘그럴 능력은 있고?’
김명호는 그런 박정혜의 적의가 우스웠으나 그러한 속마음을 밖으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먼저 시작한 게 내가 아니란 걸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야말로 경고합니다. 또다시 나를 공격하면, 그땐 영원교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 * *
자신과 거리를 두며 선을 그은 박정혜에 대한 보복은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자신의 일을 망친 근본적인 원흉, 정호준은 딱히 보복할 거리가 없었다.
정호준은 미국 국적을 지니고 있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한 법적으로 옭아맬 그 어떤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고, 정호준의 자산은 미국에 적을 두고 있어 정호준의 일에 태클을 가하기도 어려웠다.
“뭐라도 좀 찾아보란 말이야! 세무조사라도 시작하라고!”
“그것도 악수입니다. 우리가 한국법인에 세무조사를 나가 봐야 당장에는 흠집 잡을 만한 게 없을 겁니다.”
정호준이 한국법인을 세우긴 했으나 당장 한국에서 얻어가는 게 없는 만큼 정호준을 방해할 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정 대표가 정부가 본인에게 보복을 가했다 여기면 미국 연방국세청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 대표가 IRS를 움직이면 미국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방법이 없다’, ‘안 된다’와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무능함에 김명호는 분노를 표출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내 일을 방해한 정호준을 그냥 그대로 두라고?!”
국회의원이 됐음에도 자신을 아랫사람으로 여기고 내려다보던 재벌들이 서울시장이 된 뒤에는 어느 정도 대등한 대우를 해 주었고, 대통령의 권좌의 앉은 뒤에는 대등함을 넘어 고개를 숙이며 올려다봤다.
짜릿했다. 항상 자신이 올려다봤고 크게만 느껴지던 이들이 자신을 올려다본다는 게.
5년짜리 짧은 권력에 불과하다는 데서 아쉬움은 느껴도 권좌에 앉은 뒤로 오늘처럼 무력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반격조차 할 수 없다는 말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 * *
김명호 정부가 4대강 정비 사업을 수정하는 것을 확인한 정호준은 추가 일정을 위해 한국에 좀 더 머물렀다.
5월 29일. 하이넥스는 자금 조달을 위해 주식을 7천만 주를 신주발행했다. 하이넥스는 기관을 통해 신주발행을 진행했다. 담당한 기관은 신주 공모 신청을 받았고, 정호준은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를 통해 공모에 참여했다.
공모가 14,980원.
4월, 5월. 이 두 달 동안 정호준이 주식을 사들인 탓에 주가가 많이 올랐다. 그렇다 보니 신주발행 공모가 또한 1회차 때보다 올랐다.
하이넥스 실주발행 공모에 개인, 기관, 외국인의 돈이 모두 모였다.
‘400만 주라. 예상보다 적게 배당받았네. 혹시 김명호 대통령이 손을 쓴 건가?’
잠깐 속으로 음모가 있었던 거 아닌가 고민하던 정호준은 고개를 저으며 한국법인에 출장 나온 트레이더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장에 풀린 주식들을 추가로 매입하죠.”
“예, 매입 시작하겠습니다.”
정호준은 공모가 14,980원에 500만 주를 배당받았고, 5월 29일 신주발행 후 일주일 동안 주식을 매입했다.
공모로 배당된 주식을 포함해 1천만 주를 사들인 뒤에야 정호준의 매입은 끝이 났다. 400만 주를 599억 2천만 원에 800만 주를 1,311억 2천만 원을 주고 사들였다.
정호준이 보유한 하이넥스 주식은 10,352,578주로 신주발행 전과 마찬가지로 17.5% 지분율을 유지했다.
* * *
하이넥스 주식 매입을 끝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정호준은 다시 한번 절친인 박기태를 만났다. 이번에는 여자들 빼고 단둘이 바깥의 술집에서 만났다.
물론 단둘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당연히 경호팀은 대동한 상태였다.
“저번처럼 너희 집에서 다 함께 봐도 되는데.”
“나랑 친분이 있다는 게 알려져서 은주 누나한테 좋을 게 없어.”
거물급 부호인 데다가 미국을 뒷배로 둔 정호준 본인에게 김명호 대통령은 별다른 해를 끼칠 수 없다. 그러나 복수의 대상이 정호준 본인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연예인의 앞길을 막고 성공한 감독의 앞길을 막을 정도의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정호준의 염려에 박기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 난리를 쳐 놨으니. 대체 왜 그런 거야?”
“미국인으로 살고 있고 점차 미국에 애국심을 갖는 중이지만, 한국도 잘 됐으면 하니까. 대한민국이 성장을 거듭해서 200조가 넘는 국가 예산을 보유하게 됐다지만 20조가 적은 돈은 아니니까.”
“4대강 정비 사업이 실패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구나?”
“환경은 환경대로 망치고, 돈은 돈대로 쓴 사업이야. 그래서 막은 거고. 경상도나 전라도 쪽은 조금 말이 다를 수도 있는데, 한강은 특히 공사를 할 필요가 없거든.”
이번에 방송까지 나가 토크쇼를 벌인 이유에 대해 박기태와 이야기를 나눈 정호준은 박기태를 향해서도 염려를 드러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건데, 김명호 대통령이 속이 좀 많이 좁은 편이야. 그래서 어쩌면 네 취직에도 훼방을 놓을지도 몰라. 그때 내가 했던 제안 유효하니까 만약 취직 안 되면 미국으로 건너와.”
사실 박기태를 무조건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었고 그럴 계획이었으나, 박기태가 김은주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계획을 수정했다. 연인 관계에 있어 원거리 연애는 독이었으니까.
“일단 여기서 노력해 보고. 좋은 친구 둬서 든든하긴 한데, 너한테 기대기만 하는 건 자존심 상하거든.”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고 싶다는 박기태의 발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기태를 응원했고, 그렇게 한국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