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99화 (199/335)

19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99)

시카고 트리븐, 캘리포니아 타임즈, 볼티모어 트리븐 썬이 같은 날 발간한 특집 기사는 미국 상류층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번 특집 기사에 모든 계층의 관심이 쏠린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 이전에 포보스가 발표한 부자 순위부터 시작해야 했다.

아직 25살도 채 안 된 젊은 청년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했다는 보고에, 전 세계 대중들이 놀랐다. 반면 금융권에서 일하거나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이들은 정호준이 가진 자산 규모 때문에 놀랐다.

포보스지에 이름을 올리는 부호들은 대개 기업을 창업해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과실을 수확한 뒤 성공적으로 기업을 경영해 주식의 가치를 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보를 다른 말을 풀어 말하면.

포보스가 서열을 매겨 놓은 부자들이 보유 중이라고 추정하는 자산 태반은 현금이 아닌 주식이란 말이다.

주식이 부동산과 비교해 현금화가 어려운 자산은 아니지만,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 못한 건 부정할 수 없는 펙트였다. 현금이 필요해져서 현금 마련을 위해 시장에 주식을 풀면 갑작스럽게 풀린 물량 탓에 주가가 내려가 보유 자산 자체가 줄어들게 될 염려도 존재했다.

‘2천억 달러를 현금으로 쥐고 있다고?!’

이런저런 리스크를 갖고 있는 다른 부호들과 달리 정호준은 현금,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로만 천억 달러 이상을 보유 중이니 정치권이나 기업을 경영 중인 상류층이 정호준을 주시하고 특집 기사에 관심을 갖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정호준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무렵 발간된 인터뷰지는 높은 인기를 끌었다.

Q: 먼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인데요, 2009년 3월 11일 포보스가 발표한 세계 부자 순위에 따르면 대표님께서 1등을 하셨습니다. 혹시 확인하셨습니까?

A: 네, 확인했습니다. 포보스에서 과분한 순위를 매겨 주셨더군요.

Q: 실례가 안 된다면 포보스가 발표한 추정치가 맞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A: 하하,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다만 처음 발표가 났을 때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정호준은 질문에 대한 확답을 피하면서도 은근슬쩍 뉘앙스를 풍기는 정도로 답을 마쳤다. 이는 의혹을 남기며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좋다는 기자들의 충고를 따른 답변이었다.

Q: 시카고 트리븐을 포함 3개 신문사 기자들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12월부터 주식시장에 쏟아진 자금의 출처가 JHJ Capital이란 결론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혹시 진실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A: 예, 사실입니다. 저희 JHJ Capital은 2008년 12월부터 1,200억 달러를 시장에 풀었습니다.

Q: 1,200억 달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저희로선 말로 표현하기도, 글로 받아적기도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혹시 두렵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드셨습니까? 지금 경기가 말이 아니잖습니까? 이런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 아프고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미국에 불황이 지속되면 큰 손해를 보실지도 모릅니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 소비자의 닫힌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기업의 경영 상태가 자연스레 악화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A: 이번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로 많은 분들이 직장을 잃고 집을 잃었습니다. 디폴트의 여파로 올해와 내년의 실질 실업률은 디폴트가 터지기 전과 비교해 보면 분명 높아지겠죠. 하지만 저는 이 위대한 나라가 금방 다시 회복할 거라고 믿습니다. 당장은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투자하기 전에 이미 다 각오했습니다. 다만, 저는 확신합니다. 멀리 보면 결국 제가 또 돈을 벌게 될 거란 걸 말이죠. JHJ Capital의 주식 투자로 주식시장의 회복을 돕는다면 당장은 그거로도 충분합니다.

지금이 최저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량주들을 쓸어 담았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양적 완화 정책 때문에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주가가 폭등할 것을 알고 있기에 시작한 장기 투자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자기 PR이 중요한 미국이잖아. 뭐든 내게 유리한 쪽으로 보이게 만들어야지.’

정호준은 돈 벌기 위해 투자한 자신의 투자를 ‘미국을 위해서’라는 대의로 치장했다.

애국주의, 다른 말로 국뽕이라 불리는 사고방식은 어느 나라든 존재했고,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든 잘 먹히는 소재였다. 미국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라지만 패권국의 국민답게 자국에 대한 애정 또한 강했다.

특집 기사를 읽은 대중들은 위기 시국에 나라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것처럼 치장한 정호준의 행보를 칭찬하기 바빴다.

Q: 어떤 종목을 매수하셨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A: IT의 미래라 불리는 구골, 엔플, 세미크로소프트, 아마조네와 칼컴, Net Flex, 킴벌리-클레아, 코카콜X, 펩X, 스타박스, 나이크, 그리고 저희 JHJ Capital이 경영 중인 유니버셜 뱅크와 같은 업종에서 종사 중인 BA와 골드만식스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정호준은 버펫을 통해 투자한 은행 주식들을 언급하며 은근슬쩍 유니버셜 뱅크를 홍보하기도 했다.

Q: 특집 기사를 통해 국민들께 알려 드리고 싶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말씀 해 주시죠.

A: 큰돈을 벌고 명성을 쌓으면 항상 파리가 꼬이기 마련입니다. JHJ Capital이나 유니버셜 뱅크, SSL Capital을 사칭해 국민들에게 사기를 칠 이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걱정돼, 특집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겁니다. JHJ Capital 포함 JHJ 산하 자회사들은 펀드를 개설하거나 투자자를 모집할 계획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종목에 투자하라고 추천하는 투자 자문 서비스를 실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JHJ Capital의 이름을 사칭하며 투자하라는 이들이 있다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게 모은 소중한 재산을 사기당해 날리는 일이 없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한국의 공익광고를 보면 알면서도 당하는 게 보이스피싱, 스마트피싱이라고 했다. 똑똑한 사람도 돈을 벌고 싶은 욕망에,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공포에 잡아먹혀 돈을 잃어버린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전에 언론 등에 나와 미리 고지함으로써 JHJ Capital을 팔아 사기를 치려는 이들을 사전에 차단하며 JHJ Capital이란 이름이 가진 신뢰를 지키고자 했다.

정호준의 인터뷰를 다룬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 * *

CDS를 매각할 때가 다가왔을 무렵부터 정호준은 JHJ Capital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총 다섯 개의 팀으로 나누었다. JHJ Capital 직원들을 밴쿠버 부동산팀, 은행 인수합병팀, 부동산 경매팀, 주식 매입팀, 그리고 현물자산 매입팀으로 나뉘었다.

다섯 개로 나뉜 팀 중 밴쿠버 부동산팀 다음으로 업무를 시작한 게 바로 현물자산 매입팀이다. 그런데, 현물자산 매입팀은 다른 팀과 달리 진척 속도가 매우 느렸다.

정호준이 시세에 큰 변동을 주지 않게 매입하란 지시도 이유 중 하나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금, 은, 구리, 철 등은 산업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원들이라 소비는 꾸준하게 이어지는데,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다. 새로운 광산이 다수 발견되지 않는 이상 생산량이 기적적으로 대폭 늘어날 일은 없었고, 설사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어도 당장의 생산량에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JHJ Capital 현물자산 매입팀은 정호준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초기에는 골드바 같이 시중에서 판매되는 금괴 등을 매입했지만 이후에는 괴(塊)를 생산하거나 광석에서 금속을 뽑아내는 업체들을 찾아가 직접 계약을 맺었다.

“테일러 팀장님, 저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답니다.”

하지만 현물자산 매입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이미 거래하기로 계약이 된 곳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JHJ Capital로 물량을 돌리는 건 업체 스스로 신용을 깎아 먹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신용을 잃으면 거래가 어려워지는 게 무역이었다. 자국우선주의가 심해지는 팬데믹 사태라면 모를까, 당장은 돈만큼 중요한 게 바로 신용이 우선이었다.

그렇다 보니 JHJ Capital의 순위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려도 받아 내긴 해야지. 계약 체결해!!”

현물자산 매입팀은 서유럽, 캐나다, 멕시코, 아프리카, 남미, 일본, 한국, 중국, 인도 등에 적을 둔 기업들을 방문해서 뒤로 밀리더라도 일단 거래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정호준은 그러한 상황과 현물자산 매입팀의 노고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현물자산 매입팀에 들러 테일러 팀장과 팀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보너스를 주는 명목은 다르겠지만 다른 팀들에 지급한 보너스 현물자산 매입팀에게도 그대로 지급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다른 팀을 시기하거나 업무 사기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동물이다. 다른 이들은 성과금을 받았는데, 우리는 받지 못했다? 이는 근무 사기를 떨어트리기 충분한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현물자산 매입팀을 방문해 보너스를 입에 담았다.

다만 업무를 마친 다른 팀들처럼 휴가를 보내 주겠다는 조건은 달지 못했다.

“다른 팀들처럼 휴가를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휴가 다녀온 팀들을 현물자산 매입팀으로 붙여 주겠다는 말밖에 못 하겠네요.”

업무를 분담해 줄 수는 있어도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JHJ Capital 직원들은 정호준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정호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 움직였다.

* * *

시카고 트리븐 등 삼사가 발간한 특집 기사는 세계 각국에서 작게나마 이슈가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유독 정호준에 대해 많이 다뤘다.

[JHJ Capital 12월부터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1,200억 달러(168조 원) 투입!]

한국 정부에서 마련한 거래 제한 장치 사이드카가 발동한 날이 발동하지 않은 날보다 많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한국에 있어 정호준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자금은 실로 부럽기 그지없는 치트키였다.

‘미국 주식시장에 쏟아부은 돈의 10분의 1만 한국 시장에 쏟아져도.’, 혹은 ‘이제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지만 그래도 한국 출신인데, 한국에 투자 좀 하면 안 되나?’와 같은 생각이 담긴 기사와 생각들이 인터넷 곳곳을 돌아다녔다.

미국 증시가 회복세로 접어들고 한국 또한 위기에서 한발 벗어난 4월 초.

[JHJ Capital 오너 정호준, 한국 방문?!]

“정부는 JHJ Capital 정호준 대표를 국빈급으로 맞이하며, 한국 투자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신문사와 방송을 송출하는 언론사들은 모두 정호준의 한국 방문을 다루는 기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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