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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91화 (191/335)

19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91)

2월 초 어느 날 백악관에서 행해진 미팅에서 오리하는 정호준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본인의 앞에서 보복을 시사했음에도 오리하는 차마 정호준을 말리지 못했다.

오리하가 정호준을 말리지 못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정호준의 말마따나 민주당이나 캘리포니아 출신 의원들은 엔플과 더 깊은 교류를 나누고 있었지만, 대통령인 오리하 본인은 정호준과의 인연이 더 깊었기 때문이다.

처음 자신이 요구한 비율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리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려는 정호준과 달리 엔플은 오리하와 큰 접점이 없었다.

게다가 정호준이 한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대중의 시선을 돌릴 주제를 가져다준 것이 고마웠지만 어쨌든 잡스는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그를 이용하려고 했고 정호준에게 먼저 이빨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복수를 하지 말라고 막으면. 그땐 JHJ Capital과 날을 세우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인답게 릭 오리하는 자신이 넘어선 안 될 선이 무엇인지 잘 캐치하고 있었다.

‘정호준이 내 적으로 돌아선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조금씩 대범해지고 냉정해지는 등 꾸준히 성장한 정호준이지만, 38년 이상의 세월을 한국에서 보내며 만들어진 기본적인 성향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진 못했다.

그래서 대통령이란 자리를 높게 평가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했지만. 반대로 정호준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 릭 오리하는 정호준을 높게 평가했다.

20세기 초, 아니 19세기 중반쯤부터 안보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경제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전쟁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선진국들에게는 특히 경제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게 되었다.

외교를 포함해 다른 모든 것을 잘했다 할지라도, 경제를 망쳤다면 그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으로 분류될 정도로 경제는 중요했다.

경제 흐름에 빠삭하고 마치 미래라도 보고 온 것처럼 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정호준이 자신의 반대편에 선다?

잠깐 정호준이 적으로 돌아선 것을 상상한 오리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잠깐 상상했을 뿐인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매뉴얼!”

생각의 정리를 마친 릭 오리하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불렀다.

“예, 대통령님.”

“정호준이 전달한 제안, 엔플에 전하세요. 백악관은 정호준 대표의 조건을 받아들였다고도 전하고요.”

* * *

취임식을 마치고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이들과의 교류를 이어 가며 백악관과의 협상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시카고로 복귀한 정호준은 잠깐 숨을 돌린 후 다시 전용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정호준이 캘리포니아로 향한 이유야 간단했다. CEO인 잡스가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린 주식 분할에 표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주주총회가 개최되는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잡스를 만나게 된 정호준은 지금까지 잡스를 대할 때와 달리 입가의 미소를 완전히 지웠다.

“선물 잘 받았습니다.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선물인데, 억지로 안겨 주시더군요.”

“내가 안겨 줬던 선물을 곧이곧대로 받지도 않았으면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군.”

잡스는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 정호준의 말을 그대로 맞받아쳤다. 잡스도 자신이 했음을 굳이 숨기진 않았다. JHJ Capital로 하여금 주식을 내놓게 만든 게 엔플이란 걸 정호준이 알고 있다고, 이미 백악관 비서실장인 필립 이매뉴얼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잡스 당신에게 건네주었던 위임장을 오늘부로 회수하겠습니다. 그리고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도 분명하게 해 드리죠.”

“답례라? 이미 답례는 받은 것 같은데?”

대통령을 꼬드겨 엔플과 본인의 가장 큰 우호 세력인 미라클의 지분율을 함께 낮췄다. 계획한 것의 반도 이룩하지 못한 사실에 얼마나 분노했던가?

“그까짓 게 답례라뇨? 그건 그냥 인사일 뿐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지금껏 당신이 제게 무례를 저질러도 참고 웃었던 게 그럴 힘이 없어서가 아님을 직접 증명해 드릴 테니까요.”

일말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뻔뻔하게 뻗대는 잡스의 행태에 정호준 또한 확실하게 응수를 했다. 대화가 자존심을 건 말싸움으로 넘어가려 할 무렵, 호감 가는 인상의 남자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하, 분위기가 좀 과열되는 것 같은데, 회의장 입구에서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호감 인상의 중년 남성의 정체는 IT 기업 미라클의 창업자이자 정호준이 죽기 전까지 15년 넘게 포보스가 선정 부호 순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던 남자, 로랜스 닉슨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로랜스 닉슨 씨.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닉슨 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직전까지 스티븐 잡스에게 날을 세웠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호준은 작게나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닉슨에게 악수를 청했다.

꾸욱!

“만나서 반갑네, 호준 정. 나도 자네의 소식은 자주 접했어. 최근 4~5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라지?”

“제가 핫해 봐야 닉슨 씨처럼 핫하겠습니까?”

막대한 부를 소유한 로랜스 닉슨은 실리콘밸리의 악동이라 불릴 정도로 별난 기행을 자주 부리는 남자였다.

일본 문화를 좋아해 플로리다에 위치한 올랜도란 도시에 한화로 1천억 이상의 돈을 들여 일본식 대저택을 지었고, 하와이 주변에 위치한 작은 섬의 부동산을 98% 이상 매입해 친환경적인 도시를 세웠다. 로랜스 닉슨이 세운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3,000명 정도로 섬에는 호텔, 공항, 주택단지, 농장, 테니스 선수 육성 관련 시설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돈이 있으면 모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남자랄까?’

로랜스 닉슨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고 사는,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였다.

“일단 사죄부터 드리겠습니다. 잡스 씨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반격하느라 닉슨 씨께 피해를 입힌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욕망에 충실해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사람과 날을 세워 봐야 좋을 게 없기에, 정호준은 닉슨을 휘말리게 한 것을 사과했다.

“뭘 사과까지 하고 그럽니까? 일의 경위는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정 대표가 사과할 일이 아닌걸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답게 로랜스 닉슨은 쿨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가 내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잡스에게 가할 보복을 중단하는 걸로 갚아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회의장 앞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닉슨도 이미 들었기에, 닉슨은 잡스를 보호하고자 했다.

“안타깝지만 그건 무리입니다. 제 복수는 당위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저는 닉슨 씨가 잡스에게 호감을 갖고 도와주는 것처럼, 잡스가 기업을 운영하는 데 그 어떤 방해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가를 받긴 했지만 어쨌건 위임장까지 써서 제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위임해 주기까지 했죠. 호의를 악의로 돌려준 잡스에게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후 세상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입장을 한번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잡스와 친분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닉슨 씨가 저라면 잡스를 그냥 놔두겠습니까?”

정호준의 말에 닉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자네가 보복을 가한다면, 나는 잡스의 편에 설 수밖에 없네.”

직접 만나 확인한 정호준은 소문처럼 매너가 좋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첫인상도 나쁘지 않은 데다 먼저 나서서 사과까지 하니, 닉슨은 정호준이라는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닉슨은 잡스의 편이었다. 잠깐 만나 호감을 가진 것과 십수 년 이상 교류하며 쌓은 유대. 어느 쪽이 무거운지는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물음표가 찍힐 법한 이야기가 정호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글쎄요. 물리적으로 보복하겠다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닉슨 씨도 제 편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고, 정호준의 말을 끝으로 닉슨은 주주총회가 개최되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는 닉슨을 따라 정호준도 회의장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주주총회는 시작되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주주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엔플 쪽에서 준비한 사회자의 리드 하에 주주총회가 시작되었고, 안건은 빠르게 개시되었다.

“주식분할에 동의하시는 분은 찬성에, 반대하시는 분은 반대에 표를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2005년 2 대 1로 주식이 분할된 뒤, 스마트폰 출시 후 찍었던 고점 81달러를 돌파해 현재는 84.58달러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주식 분할 자체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분할은 해도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겠지.’

주식 분할을 시행한다고 기업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예외에 속하는 상황이었다. 주식을 사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다. 분할 후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리란 것쯤은, 대주주쯤 되는 이들은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주식 분할을 시행하면 자신의 자산이 늘어나는데, 주주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굳이 반대한다 해도 어차피 대주주인 JHJ와 미라클, 엔플 때문에 가결됐을 거다.

“7 대 1 비율로 시행되는 주식 분할 안건에 대해 89.12%에 달하는 주주분들이 찬성표를 던져 주신 관계로 주식 분할 안건이 통과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회귀 전 2014년에나 이뤄졌던 엔플의 주식 분할의 역사는 2005년 주식 분할을 실시한 지 채 5년도 되지 않아 다시 실시되었다. 2014년 이뤄졌던 주식 분할과 같은 비율이었다.

주식 분할을 진행한 뒤 JHJ Capital은 오리하와 약속한 대로 4%에 달하는 엔플 주식 163,194,410주를 시장으로 내놨다.

물론 시장으로 주식을 내놓으면서도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해 주식을 사들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고 말이다.

* * *

정호준의 1회차 삶에서 엔플은 세계에서 가장 주식을 많이 분할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7년 6월 16일에 2 대 1로 처음 주식 분할을 시행한 뒤로, 2000년 6월 21일에 2 대 1로 한 번 분할하였고, 2005년 2월 28일에 2 대 1로 또 한 번 분할되었다. 그 후로도 2014년 6월 9일에 7 대 1, 2020년 8월 31일에 4 대 1로 무려 다섯 번이나 주식을 분할했다.

1986년 이전에 주식을 1,000주 사 두고 2020년까지 묵혀 둔 주주가 있다면, 그 주주는 1,000주가 224,000주가 되는 마법을 경험했으리라.

2022년 기준 엔플 자사를 제외하고 엔플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대주주 ‘뱅가르’로 ‘뱅가르’는 버펫과 함께 투자 4대 성인이라 불리는 투자자의 회사였다. ‘뱅가르’의 지분율은 8%에 조금 못 미쳤고, ‘뱅가르’를 자회사로 두는 기업들이 보유한 주식까지 포함하면 보유량이 13%를 웃돌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정호준의 42.28%에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2022년 4월 기준 엔플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 상위 20개 집단의 지분율을 모두 합쳐야 정호준이 보유한 지분과 엇비슷한 지분을 갖게 되니, 잡스가 정호준의 지분율을 낮추기 위해 애쓴 것도 납득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자신과 회사 운영진들에게 호의적이지만 언제든 중도파를 회유해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는 대주주. 회사를 경영하는 CEO의 입장에서는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잡스의 경우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주주 및 이사진들 때문에 쫓겨난 경험까지 갖고 있으니 행동 자체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잡스의 무례를 참아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

무례를 저지를 때는 넘어갔지만, 이번엔 분명한 피해를 준 만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미국판 개미 Apes와 기관, JHJ Capital, 엔플, 그리고 다른 대주주들까지 시장에 쏟아지는 엔플 주식을 주워 담았고, 매수와 맞물려 주가는 빠르게 상승했다.

주식 분할이 된 후로 3주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3월 초, JHJ Capital의 소유한 시카고 트리븐 컴퍼니를 자회사로 둔 모든 신문사와 잡지사가 발간물 가장 앞면에 엔플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주제가 적혀 있었다.

[엔플 CEO 스티븐 잡스, 건강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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