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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88화 (188/335)

18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88)

아이들을 DC까지 함께 데려가긴 껄끄러웠지만, 반대로 유모들과 아이들만 집에 둔 채로 떠나기도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기에 이 부분을 장인은 주니어와 상담했다.

“아이들만 이곳에 두고 DC에 가는 게 걱정되는 거면, 자네와 아리아가 DC에 다녀오는 동안 내가 아이들을 돌보도록 하지.”

정호준이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몇 년 안 됐지만 가족이 된 후로 인지하고 있었던 주니어는 흔쾌히 자신이 정호준의 저택에 머무르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간 김에, 오랜만에 아리아와 데이트도 좀 하고 그러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정호준을 보며 주니어는 아이들을 걱정돼 일찍 올 필요 없다는 걸 돌려 말해 주었다. 주니어가 정호준을 배려한 데는 주니어의 욕심 또한 존재한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첫 손주여서 그런지, 아니면 첫 손주로 손녀와 손자를 모두 보게 돼서 그런지, 아이들의 앞에 설 때면 체통은 전부 팔아먹은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1월 18일 저녁 정호준과 아리아, 박기태는 경호팀과 함께 DC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도중 장난기가 돋은 정호준은 박기태에게 장난을 쳤다.

“기태야. 전용기에선 신발 벗고 타야 해. 혹시 모를까 싶어서, 이따가 쪽팔리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는 거야.”

“야, 정호준. 너 날 바보로 보는 거야?! 내가 비행기 한두 번 타 보는 것도 아니고 신발 벗고 타는 거란 거짓말에 속을 것 같아?”

다만 박기태가 유머와 센스가 있고 눈치가 빠른 편이라 속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헛소리하지 말라는 박기태를 보며 정호준은 거짓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지금껏 탔던 비행기는 항공회사에서 운항하는 비행기고, 이건 전용기잖아. 구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사용 빈도수도 낮아. 신발 자국이 수두룩하면 비행기 관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불편하겠어?”

본래도 논리정연하게 잘 파고들었던 정호준의 언변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고 본래보다 더 크게 활약했다. ‘X소리도 성공한 사람이 뱉으면 명언이 된다’라는 말마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논리는 아닌 논리를 계속 내뱉는 정호준의 말에 박기태는 ‘이게 맞나’라는 찜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아, 호준이 녀석이 한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확인 작업을 거치긴 했지만 말이다.

“미국 4대 리그 구단에서 운영하는 전용기는 자주 타느라 신발을 신고 타긴 하는데, 호준의 전용기처럼 개인이 타는 전용기는 신발을 벗는 경우가 많죠. 원목을 가져다 깔기도 하지만 카페트 같은 것도 인테리어 삼아 바닥에 깔거든요. 그런 전용기는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겠죠?”

그러나 가재는 게 편이었다. 자신하고 있을 때도 잘 보여 주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아리아는 속으로 작게 질투심을 품으면서도, 이럴 때가 아니면 정호준의 어린 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협조해 주었다.

“정말 신발을 벗고 탄다고요?”

“그럼요. 우리 전용기를 인테리어하는 데만 한국 돈으로 ‘억’ 단위가 깨졌는걸요? 기태도 부자들이 돈이 많아도 그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죠? 돈 들여서 인테리어했는데, 아껴 써야죠.”

아리아가 거짓말을 하는지 읽어 보겠다고 아리아를 빤히 쳐다봤지만, 박기태는 아리아에게서 수상한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박기태는 분명 눈치가 빠른 편에 속하는 이임은 분명했다. 유머 있고 눈치 빠르고 순발력도 있으니 1회차 때 개인 방송인으로 성공한 거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표정 관리와 같은 것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아 온 아리아의 표정을 읽기에는 경험과 능력이 부족했다.

“와, 진짜 나빴다. 내가 그렇게 친절하게 구구절절 설명해 줬는데, 어떻게 아리아한테 확인까지 하냐?!”

그리고 그런 박기태를 정호준은 사정없이 공격했다.

박기태가 미안함 감정을 넘어 성질이 날 정도로.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당도한 일행은 경호원과 미리 공항에 당도해 비행기를 점검하던 정비팀을 보며 인사를 나눈 뒤 비행기에 탑승했다.

정호준과 아리아가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박기태가 먼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고, 계단을 타고 올라온 박기태는 문 너머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를 보며 또 한 번 정호준과의 거리감을 느꼈다.

“와. 저택에서도 좀 느꼈었는데, 진짜 딴 세상 같네.”

정호준이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아리아가 계획한 인테리어는 상대적으로 화려함 느낌이 적었지만, 그마저도 박기태에겐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아니 화려한 것 이상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아, 신발 벗고 들어가라 했었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다는 의심을 계속 품었지만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신발을 벗고 말았다.

신발을 벗고 비행기에 들어서는 박기태를 보며 정호준에게 고용된 스튜어디스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음을 지었다.

정호준과 아리아는 미리 준비해 둔 실내화로 갈아신고 기내로 들어섰다.

“뭐야 맨발로 있어야 된다며!!”

자신을 완전히 속인 건 아니지만 말을 다 해 주지 않은 것에 박기태는 화를 냈고, 정호준은 그런 박기태를 달래며 그의 것으로 준비해 둔 실내화를 던져 주었다.

* * *

기업을 경영하는 집단이 발행한 주식의 수를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유상 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과 ‘주식 분할’이다.

주식 분할은 시가 총액의 변화 없이 기존 주식을 세분화하는 거라, 다른 말로 액면 분할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주식 분할은 주로 주식의 가치가 높은 기업들이 시행했다.

액면가와 거래가 너무 높아지면 주식 거래의 빈도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즉 주식 거래량이 정체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액면가와 거래가가 너무 높으면 혹여나 있을지 모를 신주 발행에도 지장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유상 증자는 기업이 자금을 필요로 할 때 자사 주식을 신규로 발행해, 발행한 주식을 기존 주주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파는 행위다. ‘사채 발행’과 함께 기업이 자금을 끌어모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유상 증자는 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을 때와 달리 기업이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했지만, 반대로 주식을 보유한 기존 주주들에게는 좋을 게 없는 방법이었다,

유상 증자를 시행하면 증자를 단행한 기업의 주가는 대개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새로운 신주가 발행되는 만큼 기존 주주들이 가진 지분율에 변동이 생기게 된다. 이 말을 다르게 바꿔 말하면, 유상 증자는 주주에게 하등 좋을 게 없는 방법이란 이야기다.

그래서 정호준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주식 분할을 이야기했을까? 사실 의미 없는 일인데.’

주식 분할을 통해 발행 주식 수를 늘려도 기업 가치는 이전과 동일하다는 건 둘째치고, 분할된 주식을 일정 부분 시장에 내보내도록 강제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분율을 낮추고 싶었다면 ‘분할’이 아닌 ‘유상 증자’를 단행하는 게 맞았다.

정호준의 머릿속에 품은 의문은 DC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풀리게 되었다.

* * *

역사가 있는 기업들은 주로 공화당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신흥 재벌에 속하는 IT 기업들은 주로 민주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다. 세미크로소프트와 함께 IT업계의 선두 주자이자 거물로 분류되는 엔플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민주당과 좀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엔플의 CEO 스티븐 잡스는 평소 친분을 쌓아 둔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오리하 행정부가 정호준과의 컨설팅 끝에 빅3 중 가망이 없다고 평가된 ‘SM모터스’, ‘벨라스키스’의 구제금융을 포기할 것 같다는 소식과 정호준이 오리하 당선인과 빅3 중 한 곳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혹시 오리하 당선인이나, 당선인이 안 된다면 차기 행정부 관계자와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게 기회라는 생각한 잡스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민주당 쪽 인맥을 활용해 미팅을 가졌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바쁜 오리하가 직접 미팅장에 나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게감이 떨어지는 인사가 미팅에 나온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힐링턴 전 상원의원님.”

자리에 나온 인물은 뉴욕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다 자리에서 물러나 경선에 나섰던 클라라 힐링턴이었다. 오리하가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힐링턴은 팽하는 게 불가능한 반드시 함께 가야 할 거물이었고, 그런 거물이 나왔다는 건 엔플이 친분을 쌓은 의원들이 힘을 써 줬다는 것을 뜻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거물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런저런 예의를 차린 뒤에나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엔플 주식이 시장에 풀리지 않는 것 때문에 이슈화되고 있는 것 아시죠?”

“예, 언론이나 페이스 노트에서 핫한 주제라죠?”

부자건 서민이건 돈을 벌고 싶어하는 욕망은 같다. 은행을 인수하며 주목을 받은 탓에 정호준의 행보가 하나둘 밝혀졌고 JHJ Capital에 돈을 투자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은 개인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사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정호준은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 탓에 정호준이 성공할 거라 공언한 엔플로 시선이 쏠렸다.

“오리하 행정부가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에 구제금융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낸 것을 확인했습니다. 디트로이트 지역의 반발이야 직장을 잃는 당사자들이 모인 지역인 만큼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반감이 전국적으로 퍼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엔플의 주식 분할이 그 방법이란 이야기인가요?”

“정부의 권고하에 시작된 주식 분할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대중들은 시장에 쏟아지는 주식을 매수하느라 바빠 디트로이트의 일에 주목하는 정도가 덜하게 되겠죠. 그때 빠르게 일을 처리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는 빅3라 불리며 100년 넘게 미국 제조업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한 기업들이다. 구제금융을 통해 지원을 해도 형평성 문제로 말이 나올 거고, 파산하도록 그냥 내버려 둬도 실업률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정호준의 컨설팅에 오리하 차기 행정부는 쓸데없는 돈을 쏟아붓지 않고 파산 후 새롭게 퍼즐을 맞추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종국에는 그 선택이 미국에게 득이 되는 선택일지라도 피해를 입는 이들이 존재하는 선택에는 언제나 반감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반감은 표심으로 드러나 민주당의 입지를 줄이게 될 거다. 그런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게 대중들의 이목을 붙잡아 주겠다는 잡스의 제안은 민주당의 입장에서 가뭄의 단비처럼 더 바랄 게 없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차기 행정부 측 인사를 만나고자 했다는 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겠군요.”

“예, 정호준 대표가 오리하 당선인에게 제조업 쪽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합리적인 지원’의 전제조건 때문에 제안이 그냥 공수표로 전락했다는 걸 전해 들었습니다. 주식 분할을 하더라도 JHJ가 주식을 시장으로 내놓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정호준이 던졌던 공수표를 빌미로 주식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는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JHJ가 주식을 시장에 풀도록 하려면 오리하 행정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식 분할이라는 행위 자체는 주주들에게 손해로 작용하지 않는다. 스티븐 잡스의 편에 있는 주주들은 물론이고, 조건에 따라 어디든 붙을 수 있는 중도 성향을 가진 주주들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회복을 넘어 폭등해 버린 주가를 낮춰 투자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함으로써 최대한 다양한 집단군이 주식을 보유하게 만든다.’

스티븐 잡스는 디자인이나 창의력 면에서 천재로 불렸지만 사실 CEO(경영자)로서의 역량 또한 대단했다. 불필요하다 생각해서 정치를 되도록 멀리했을 뿐이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이였고 민주당과의 비밀 회동에서 그러한 역량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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