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87)
정호준은 언론은 물론이고 대중들까지 모두가 주식 시장에서 엔플 주식이 동난 이 사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을 주목했다.
‘나름 마케팅이 될 것 같은데?’
언론의 주된 목표가 대중의 눈과 귀가 되어 궁금해하는 소식을 알아서 먼저 전달해 주는 것이지 않던가? 정호준은 주식 물동량이 부족한 현재 상황을 특집으로 내보내면 구독자가 조금은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엔플 주식이 폭등하고 있는 이유!]
‘시카고 트리븐’, ‘볼티모어 트리븐 썬’, ‘캘리포니아 타임즈’가 발간하는 신문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진 원인을 밝히는 기사가 첨부되어 있었다. 정호준은 주식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 JHJ Capital과 엔플의 주식 매수 때문임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거짓말로 속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정호준은 스타트를 트리븐 컴퍼니에 속해 있는 신문사가 끊더라도 결국에는 다른 언론사들도 같은 내용을 다루게 될 거라고 추측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의 관심은 돈이 된다. 돈 되는 일을 기업이 마다할 리 없었다.
‘어차피 알려지게 될 거고, 질투와 질시로 욕은 먹게 될 거야. 그게 가진 자의 비애니까. 하지만 굳이 안 먹어도 될 욕까지 사서 먹을 필요는 없잖아?’
괜히 거짓을 이야기했다가 들통이 나서 논란거리로 떠오르거나 괘씸죄가 추가되느니, 처음부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JHJ Capital까지 팔아 가며 특집 기사를 내는 이유 또한 간단했다.
‘전부 잃는 것보다 적자를 감당하는 편이 낫다고 했지, 적자 자체가 달갑다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알려지게 될 정보라면 어떻게든 다른 이득을 가져와야지.’
트리븐 컴퍼니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언론사에서 다루게 될 내용이다.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이라면 본인이 주도해 수익과 점유율을 회복하는 게 낫다고 계산을 마쳤다.
정호준의 지시하에 트리븐 컴퍼니에 속해 있는 세 신문사는 이 상황을 특집으로 다루며 시리즈물을 기획했다. 처음에는 사태를 주목하고, 두 번째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설명하고, 세 번째는 정호준과 비밀리에 행한 인터뷰를 실으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Q: 신문에 보도된 엔플 주식 매입이 사실입니까?
A: 예, 사실입니다. 디폴트로 인해 은행이 흔들린 뒤 주식 시장도 흔들리자 대주주들에게 접근해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JHJ Capital의 주식 보유량을 확인한 엔플은 JHJ가 경영권을 노린다고 판단하곤 사내 보유금을 사용해 주식 매수를 시작했습니다. 엔플 주식이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네요.
Q: 대주주들에게 주식을 매입하셨다고 했는데, 대주주들은 JHJ Capital에 주식을 왜 넘긴 건가요? 혹시 압력을 가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데요?
A: JHJ Capital에 주식을 넘긴 대주주들의 이유는 굳이 다지자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뉠 것 같네요. 첫 번째 집단은 회사의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는 JHJ Capital처럼 모기지론과 관련된 파생상품에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준비한 몇몇 기업을 제외하면,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펀드들 또한 자금경색에 빠질 수밖에 없었죠.
Q: 자금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주식을 팔았다는 이야기군요. 그렇다면, 다른 집단에 묶여 있는 대주주들은 왜 주식을 JHJ Capital에 매각한 건가요?
A: 아마 제게 주식을 매각한 대주주들은 엔플의 주가가 하락을 이어 가더라도 기다리면 결국엔 주가를 회복할 거라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는 그 기다리는 시간조차 소중한 자원입니다.
Q: 음, 경제용어로 치면 기회비용을 따졌다는 말인가요?
A: 예 맞습니다. 우리가 종종 하는 말이 있죠, 위기의 반대말은 기회라고. 2008년은 중견 은행이 흔들리는 건 당연했고 대형 은행들도 파산했습니다. 파산을 면하더라도 파산의 위기를 겪었죠. 그야말로 대혼돈기였습니다. 디폴트가 가져온 파장은 금융업계뿐 아니라 제조업이나 보험사, 신용평가사 등 온갖 업계에서 종사 중인 기업들의 파산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 현금을 쥐고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입니다.
Q: 엔플 주식을 손에 쥔 채로 주가가 회복하기만을 기다리기엔 눈앞에 널린 기회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는 말이군요.
A: 예, 제게 주식을 넘긴 대주주들은 그런 계산을 속으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엔플의 주가가 하락했다가 회복하는 시간 동안 소모하는 기회비용은 대표님께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아닌가요?
A: 엔플 주식이 지닌 가치에 대해 저와 대주주들의 생각이 다른 거죠. 주가가 회복할 동안 치를 기회비용보다 엔플의 대주주가 됐다는 것이 제게는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Q: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요? 다른 대주주들처럼 기회를 붙잡아 이득을 보신 뒤에 돈을 투자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A: 돈이 많다는 건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 주지만, 세상에는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저는 ‘엔플 주식을 대량 보유하는 일’을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프리미엄을 얹어 줘도 팔지 않겠다 답변할 대주주가 다수 존재할 거라고. 그런 주식을 프리미엄을 얹지 않고 오히려 주가가 내려갈 것을 계산해 본래 당시 주가보다도 싸게 매입했죠. JHJ는 그거면 충분히 이득을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Q: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대표님께서 그렇게 엔플을 고평가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애플폰이라 불리는 ‘스마트폰’ 발명과 그 운영체계 때문이죠.
Q: 조금만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A: 개인적인 사견입니다만 애플폰의 발명은 애플폰 출현 이전 시대와 이후로 나뉘게 될 만큼 크나큰 발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운영체계 소스를 오픈해 개발자들이 몰리게 만든 엔플의 전략 또한 고평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성공을 위해 앱마켓으로 몰려들 거고, 개발자들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엔플은 성공한 이들로부터 나오는 수수료로 배를 불리겠죠. 쉽사리 진입할 수 없는 캐시카우를 만들어 낸 겁니다.
스마트폰 판매액과 앱마켓 수수료. 이 두 가지만으로도 엔플은 3,000조짜리 기업이 되었다. 300억 달러 이상의 거금을 소모하긴 했지만 엔플 같은 초거대 기업의 지분을 42%까지 끌어올렸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거래였다.
‘중간중간 주식 분할을 통해 지분율이 낮아지겠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정호준이 주식 분할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주식 분할을 하게 될 거다. 대중들이 분할을 원하고 있고, 대주주들이나 엔플의 CEO인 잡스와 이사진들이 정호준이 보유한 지분이 부담되어 지분율을 낮추고자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세 신문사가 합동으로 출간한 특집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커다란 이슈로 승화했다. 주로 언급되는 내용은 ‘엔플 주식 분할’이었다.
‘우리도 돈 좀 벌어 보자.’
엔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호준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엔플은 돈을 벌 수 있는 종목이라 알려지게 되었다. 기관이나 펀드들은 사람을 풀어 넷상에서 대중들을 선동했고, 스티븐 잡스는 기회라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엔플 CEO 스티븐 잡스, 주주총회 요청. 주주총회 안건은 주식 분할?!]
쥐가 고양이를 생각해 주는 건지 캘리포니아 타임즈를 통해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호준에게 좋지 않은 소식임은 분명했다.
[JHJ Capital 주주총회를 2월로 연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야 했기에 주주총회 날짜를 2월로 미루는 정도가 정호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었다.
* * *
정호준은 릭 오리하로부터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개최될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다.
“오리하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리아도 함께 갈래요?”
“물론이죠. 그런 기념비적인 자리를 혼자 가려 했어요?”
“그럼 19일에 DC로 갈 거니까, 준비해 둬요. 그리고 기태 녀석도 부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기태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아리아의 허락을 받은 정호준은 절친인 박기태에게 큰 경험을 시켜 주고자 박기태를 초대했다.
“나보고 그런 자리에 참석하라고?!”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조카들 보러 왔다가 잠깐 견문을 넓혔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내가 뭐라고 그런 자리에 가?”
“내 친구면 자격 충분하지 뭘 그래? 그리고 삼촌이 조카들 얼굴도 안 보러 오냐?”
미국으로 막 이민 왔을 때의 정호준처럼 소시민적인 사고를 가진 박기태는 격렬하게 거부했지만, 아이들을 무기 삼아 넘어오라는 말에 박기태도 결국 넘어오기로 약속했다.
경호팀의 픽업을 받아 정호준의 저택에 박기태가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있던 터라 박기태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보는 정도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이름이 줄리우, 헤리나라고 했지? 애들이 엄마를 닮아 예쁘네. 너 안 닮아서 다행이다.”
정호준의 저택에 도착한 박기태는 아이들을 무기 삼아 자신을 끌고 온 정호준을 향해 덕담(?)을 뱉었다.
“미국에서 살아갈 건데, 내 피부색을 물려받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
“아니, 장난을 다큐로 받으면 내가 뭐가 되냐?”
“뭐가 되긴, 쓰레기가 되는 거지.”
쓸데없는 장난이 오간 덕분에 박기태의 기색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나저나 아이 있는 집은 육아하느라 힘들다는데, 넌 좀 어떠냐?”
“처가 쪽에서 구해 준 유모들이 셋이나 붙어 있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아.”
줄리우건 헤리나건 새벽에 자다가 깨면 무조건 울음을 터트렸고 하나가 아닌 둘이었기에 한쪽이 울음을 터트리면 다른 한쪽도 잠에서 깨서 울음을 터트렸지만, 괜히 비싼 돈 주고 고용한 유모가 아니라는 듯 유모들은 금방 아이를 달래 주었다.
정호준이 경험하는 육아 생활은 회귀 전 직장 생활을 하며 보고 들은 육아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만 유모들이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케어하는 바람에 엄마 다음 순위가 유모들이라 섭섭하긴 하더라. 얼굴은 자주 비추는데도 날 가장 낯설어해.”
모유 수유를 하면 몸매가 망가진다는 말이 있음에도 아리아는 아이들에게 모유가 나오는 동안은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엄마한테는 웃는 얼굴도 자주 보여 주며 애정을 드러냈지만 정호준은 순번 밖이었다.
“다 장단점이 있는 거구나.”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 뭐. 아이들이 좀 크고 나면 같이 놀아 줘서 점수를 따려고.”
“그게 네 마음대로 되겠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뭐라도 해야지.”
박기태는 정호준의 저택에서 머물며 아이들과도 인사를 하게 됐다. 삼촌이라 말하곤 웃으며 아이들을 안아 봤다. 물론 박기태가 웃는다고 아이들이 친근함을 느끼진 않았다. 아이를 돌봐 본 경험이 없는 정호준보다도 준비가 덜 된 20대 청년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응애~!
박기태가 아이들을 안았을 때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박기태가 낯설었던 것.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리아나 유모들에게 아이들을 넘기는 게 박기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사소한 일들을 겪으며 박기태는 1월 18일까지 정호준의 집에 머물렀고, 정호준, 아리아와 함께 DC로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