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86화 (186/335)

18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86)

잡스가 아닌 다른 CEO였다면 과연 자기 회사의 지분을 40%나 쥐고 있는 회사의 사무실로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왔을까?

‘천재라서 그런지, 사교성 없고 독선적이야.’

모든 건 자신의 손을 거쳐야 할 만큼 일을 사서 하는 타입이면서 자신이 만든 일거리로 인해 일을 더 하게 되는 이들에게 미안함이나 감사함을 품지 않는, 사회성이 부족한 피곤한 유형이다.

“대주주들은 경제침체 동안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내게 주식을 넘기고 나간 겁니다. 나는 미국 경제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보게 될 손해를 감수할 만큼 엔플 주식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대체 엔플을 왜 그렇게까지 고평가하는 거지?”

쫓겨났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하면, 본인이 CEO로 활동 중인 자기 회사에 대한 비판까지 나왔다.

“내가 엔플을 고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잡스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는 한 명의 천재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고, 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잡스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잠깐 물을 마셔 목을 축인 정호준은 자신의 할 말을 이어 갔다.

“실제로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애플폰과 애플폰의 운영체계를 통해 엔플은 파산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를 개선하며 다시금 IT업계의 강자로 발돋움했죠.”

망한 다음에 그 토대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어려운 게 망조가 든 회사를 살려 내는 거다. 애플폰과 그 운영체계를 통해 시대를 바꾸고 세상을 선도하는 기업이 된 것도, 스마트폰 출시 이전에 MP3, PMP 등을 제작하며 파산할 운명을 뒤바꾼 것도 모두 존경받아 마땅할 업적이었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얼굴에 진심을 가득 담아 이야기했다.

“난 잡스 당신을 존경하고 신뢰합니다. 당신이 걱정하는 것 같은 실수를 범할 생각은 없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배를 가르지 않을 때만 가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차분함과 존경이 가득했던 정호준의 얼굴에 서서히 냉혹함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란 사람의 능력을 인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당신이란 사람을 존경했기에, 지금까지는 당신이 무례를 저질러도 참았습니다만. 이젠 아닙니다. 당신이 핏대를 세운 채 소리를 지른 나는 어린 꼬마가 아닌 엔플의 주식 40%를 보유한 대주주이자 미국에서 여섯 손가락 안에 꼽힐 은행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시를 당한다는 건,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무시를 당하는 거니까요.”

다른 기업인이 저지른 실수를 웃으면서 넘어가기엔 이제 정호준도 가진 것과 이룬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진 것과 이룬 것이 많아 JHJ Capital과 정호준을 주목하는 시선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강도보다 더 악랄한 월가(미국 금융업계)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얕보여선 곤란했다. 약하다고 느껴지면 하이에나처럼 몰려와 물어뜯는 게 월가이지 않은가?

잡스의 무례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자르는 일은 없겠지만, 당신이 오늘처럼 아니 지금까지처럼 막무가내라면 체면을 지키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를지도 모릅니다.”

경고성 발언을 내뱉은 정호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잡스는 정호준이 진심이란 걸 깨달았다.

잡스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똥인지 된장인지 상황 구분 못 하고 자존심만 챙기는 인사는 아니었다. 엔플로 복귀한 후 세미크로소프트의 윌리엄 게이츠를 찾아가 엔플과 세미크로소프트의 악연을 청산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갑자기 찾아와서 목소리를 높인 점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사과받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강경하게 대처했다고 마음이 상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JHJ는 당신의 경영철학에 반대하며 배당을 요구할 생각도, 당신을 CEO 자리에서 끌어내릴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엔플이 지금보다 2배, 아니 3배 이상 성장할 기업이라 생각해서 주식을 사들였을 뿐입니다.”

사죄를 입에 담은 잡스의 자존심을 챙겨 주기 위해 다시 한번 달래기에 들어가며 잡스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1월도 어느새 반절이 지나고 중순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퀸 부주지사는 정호준을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저희 회사를 방문해 주신 이유가 좋은 이유였으면 합니다.”

만나자마자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든 정호준의 말에 퀸 부주지사는 일단 기쁜 소식부터 입 밖으로 꺼냈다.

“부채를 반절 탕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협의를 마쳤습니다.”

정호준의 사무실 이전 협박은 확실히 먹혔다.

‘사무실 이전을 그냥 두고 봐선 안 된다.’

맨해튼에 위치한 월가와 캘리포니아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JHJ Capital의 본사가 시카고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견급 규모를 지닌 펀드들은 시카고에 사무실을 냈다. JHJ Capital 때문에 돈이 시카고로 몰리고 고용이 창출됐다는 말이다.

정호준은 직접 시카고 트리븐을 살릴 비전이 있다고 이야기했으니, 그 말은 분명 진실일 것이다. 그렇기에 JHJ가 시카고 트리븐을 가져가는 게 맞다는 것까지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가요? 좋은 소식이네요.”

“다만 인수가를 조금만 높여 주셨으면 합니다.”

기쁜 소식에 정호준은 화색을 드러냈으나, 정호준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족이 붙었다.

“인수가를 높여 달라라. 일단 들어 보죠. 우리 JHJ Capital이 얼마를 제시하길 원하는 겁니까?”

“부채를 반이나 감당하는데, 인수가를 15억 달러만 높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카고 트리븐의 부채는 160억 달러를 상회한다. 다만 시카고 트리븐이 보유한 자산(주식, 부동산, 시카고 컵스)의 가치를 합산하면 이 또한 120억 달러 정도 되었다.

세계 최고이자 패권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란 나라의 3대 신문사로 분류되는 거대 신문사가 겨우 40억 달러에 파산하는 셈이다. 불경기에 접어드는 바람에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 어렵고, 부동산의 경우 자산 정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아니었다면 파산 보호 신청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다.

부채 반절 탕감과 시카고 트리븐의 자산을 고려하면, 정호준이 제시한 45억 달러는 5억 달러만 주고 사겠다는 말과 같았다.

“15억 달러라. 내가 아니면 결국 죽게 될 기업을 60억 달러나 주고 살 필요가 있을까요?”

“대표님! 오리하 당선자님과 연이 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민주당의 체면을 조금만 살려 주십시오. 오리하 행정부가 이제 막 출범하는데 민주당이 주류를 이룬 지역에서 손해만 보면,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당선인께서도 섭섭하게 여기실 겁니다.”

대통령이 된 오리하와의 인연을 무기로 정호준에게 인수가를 높여 주길 부탁한 퀸 부주지사는 말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한 방 먹었네.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오리하 행정부를 방패막이로 내세우며 협박한 퀸 부주지사의 발언에 잠깐 얼굴을 찌푸렸던 정호준은 이내 표정 관리를 했다.

“일 이야기를 하면서 친분을 내세우나요? 이거 기분이 좀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저희의 사정을 조금만 배려해 주십시오.”

릭 오리하를 거래에 끌고 오는 발언에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지는 못했다. 릭 오리하는 앞으로 8년 동안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을 남자였으니까.

“하아~ 좋습니다. 절충하죠. 55억 달러에 인수하겠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양보입니다.”

정호준은 더 토를 달면 아예 협상을 엎어 버리겠다는 기색을 보였다.

“대표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퀸 부주지사는 정호준의 최후통첩이 거짓이 아님을 빠르게 캐치하곤 정호준의 제안을 받았다. 이후 실무자들을 불러 인수 절차를 밟았다.

[JHJ Capital 시카고 트리븐 컴퍼니 인수!]

JHJ Capital이 자산을 그대로 둔 채 부채를 반 탕감하는 조건으로 55억 달러를 주고 시카고 트리븐을 인수한 사실은 신문을 통해 퍼져 나갔다.

* * *

[JHJ Capital 시카고 트리븐 인수. 주인이 바뀐 시카고 컵스의 행방은?]

빅마켓이 불리는 시카고 컵스 팬들은 JHJ Capital의 인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JHJ Capital의 대표인 정호준이 야구를 좋아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아 잘 몰랐지만, 손에 꼽힐 자산을 가진 거부가 구단주로 오는 게 구단으로써는 나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호준은 이미 영국의 축구구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시계태엽을 조금 거꾸로 감아 디폴트가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 중이었던 07/08시즌. 정호준은 감독 자리에 안첼로티 감독을 선임하고 나이 든 풀백들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게스 베일과 브라질의 티에고 실바, 독일의 제튼 보아텡을 영입했다.

챔스를 우승시킨 감독을 내보내고 준우승에 그친 감독을 데려온 정호준의 선택에 리버풀 팬들은 전반적으로 의문을 품었고 베네테즈의 팬들은 아예 들고일어나기까지 했지만, 안첼로티는 정호준이 왜 본인을 데려왔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었다.

[리버풀, 07/08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30년 만에 달성했을, 그것도 팬데믹 사태 때문에 조기에 시즌이 종료되어 조금은 빛이 바랬던 우승 대신 떳떳하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안첼로티가 가져다준 우승컵은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에서 그치지 않았다.

[리버풀, 07/08시즌 리그컵 우승!]

[리버풀, 07/08시즌 FA컵 우승!]

챔피언스리그는 조기에 탈락했지만 약팀에게 미끄러지지 않고 강팀을 잘 잡아 내며 조기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한 리버풀은 리그컵과 FA컵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리버풀 미니 트레블 달성!]

축구팬들은 미니 트레블을 트레블로 인정해 주지 않는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축구팬들의 시각이고, 당사자인 리버풀 팬들에게는 트레블과 마찬가지로 감격에 겨운 기록이었다.

AC밀란의 감독직을 받아들이며 정호준에게 악담을 내뱉었던 베네테즈는 리버풀을 16강에 진출시키지 못했던 안첼로티와 달리 AC밀란을 이끌고 챔스 16강에 들었지만 원 역사처럼 아스날에게 패배했다.

다른 컵 대회에서도 우승을 기록하지 못해 축구팬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던 ‘안첼로티vs베네테즈’는 안첼로티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성공적인 구단 운영 커리어 덕분에 정호준은 시카고 컵스 인수를 큰 반발 없이 끝낼 수 있었다.

* * *

2009년 1월. 오리하의 취임식 이전부터 폭락을 이어 갔던 주식 시장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월에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기업들은 주로 뛰어난 성과를 내고 미래 가치가 출중함에도 경제 위기 때문에 침체된 시장의 사정 탓에 주가가 하락했던 회사들이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회사는 바로 엔플이었다.

엔플의 주가가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잡스의 무례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라는 정호준의 선언에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고 돌아간 잡스가 회사의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JHJ Capital의 계속된 매수 탓에 회복세로 접어들었던 엔플이다. 엔플이 돈을 풀어 자사주를 사들이자 엔플의 주가는 가파르게 고공으로 치솟았다. 그에 더해 냄새를 맡은 기관과 펀드, 미국의 개미 Apes(유인원)들이 주식 매수 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돈 주고 사 간다는데 왜 물량이 없냐고!!”

오리하 행정부의 취임식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무렵에는 매수 예약은 차고 넘치는데 시장으로 나오는 주식은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지금껏 암울한 소식만 전달해야 했던 언론은 주식 물량이 부족한 이 희귀한 현상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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