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9화 (179/335)

17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9)

주식 시장이 붕괴하는 것을 보며 부랴부랴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한 번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지갑을 닫는 소비심리를 떠올리면 한 번 붕괴하기 시작한 경제를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란 존재하지 않았다.

2008년 10월 6일 월요일. 다우 지수는 800포인트 하락했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다우 지수가 10,0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중앙은행(연준)은 주식 시장의 붕괴가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민간 은행에 밤새 대출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개입했다.

문제는 흔들리는 게 주식 시장과 은행뿐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모기지 파생 상품 투자를 위한 금융부서를 설립했던 미국 자동차 업계 빅3 ‘그라함 모터스’, ‘SM모터스’, ‘벨라스키스’도 은행처럼 크게 흔들리긴 마찬가지였다.

연준은 다른 곳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기업을 위해 직접 단기 대출을 발행하기로 합의했고, 그 규모가 무려 1조 7천억 달러에 달했다. 금리를 추가로 0.5% 인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화선에 불붙은 위기는 잠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증가하는 실업률. 정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미국 노동부는 지난달 경제가 무려 159,000개의 일자리를 잃었다고 보고했고, 언론사들은 이를 실어다 날랐다. 민주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언론사들은 주식 시장 붕괴까지 함께 다루며 자극적인 제목을 가져다 붙였다. 대통령을 비난하고 풍자할 자유가 있는 미국답게 민주당 색채가 강한 언론들은 이 불황이 모두 공화당과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뉴먼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EU, 미국에 은행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청!]

[연준, 연이은 환매를 감당할 수 있도록 MMIFA(Money Market Investor Funding Association)에 5,400억 달러 대출!]

경제 뉴스를 스크랩해 둔 것과 일련의 보고 사안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정호준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버펫이 참 대단하긴 대단해.”

버펫이 한 달만 늦게 움직였어도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되어 버펫이 받아 낸 조건보다 훨씬 부족한 조건으로 투자를 진행해야 했을 거다. 과감하게 10조가 넘는 돈을 투입한 것도 대단하지만 들어간 타이밍도 참 대단했다.

물론 위기가 아직 진행 중인 만큼 당장에는 손실을 보고 있지만 정호준은 손실은 당연한 거라 여겼다. 위기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은행들이 그런 호구 같은 제안을 받아들였을 리 없잖은가? 매일 누적되는 손해가 작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펫이 받아 낸 조건을 수용해야 할 정도도 아니었다.

주요 사안 중에는 버펫 외에도 정호준과 관계가 있는 이의 것도 있었다.

[AOG 143억 달러 대출받다!]

모기지론이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을 때, 다른 보험사들에 모기지를 기초 자산으로 한 파생 상품에 대해 보증을 선 보험들이 반절은 넘겼다고 들었다. 과거처럼 연준이 끌어안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AOG에 피해가 없을 리는 없었다.

망할 정도는 아닌 적당한 피해를 입은 것을 오히려 포트폴리오로 삼아,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으로부터 지원을 이끌어 낸 모양이다.

‘아마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외쳤겠지.’

[메릴리치 상업 대출 프로그램(Commercial Loan Program)으로부터 120억 달러 수혈!]

[DT그룹 112억 달러 수혈!]

찰스 로슬러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은행들은 상업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대출받는 데 성공했다. 우선주를 매입하는 형식의 대출이지만 어쨌든 자금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대출받은 돈을 활용해 파산한 은행이나 보험사를 인수하거나 탐났던 부분을 도려내서 가져오리라.

[JHJ 유니버셜 뱅크 100억 달러 대출!]

본래라면 망했던 리만과 AOG를 감당하느라 쏟아부었을 돈의 반절 이상을 받아 온 느낌이다.

‘역시 중국한테 리만을 매각한 게 크게 작용한 모양이지?’

본래 짊어져야 했을 부채를 짊어지지 않고 오히려 1조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중국으로부터 회수한 건 미국이 한숨을 돌리는 데 크게 작용했으리라. 대형 은행조차 버렸던 과거와 달리, 정호준에게 넘겨준 은행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고 파산해야 했을 몇 개의 은행들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선물을 준비했다더니, 나도 모르게 돈을 받아 줬네. 위기를 체험하고 나니 내가 얼마나 대단한 호의를 베풀어 준 건지 체감한 건가?”

위기 상황을 하루하루 헤쳐 나가다 보니, 찰스든 주니어든 정호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하늘 끝에 다다른 느낌이다. 굳이 챙겨 주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챙겨 주는 걸 보면.

“깜짝 선물 느낌으로 안 가르쳐 준 모양인데, 이런 선물을 준비했으면 말이라도 해 주시지.”

본인과 상의도 없이 대출을 받아 준 것에 대해 정호준은 고마우면 고마웠지,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번에 먹은 게 워낙 커서 눈치가 보여 대출을 받지 않은 거지, 이자가 부담스러워 대출을 신청한 건 아니다.

‘이제 곧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에 가까운 시대가 다가오잖아?’

금리가 낮을 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대출 이자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러면 인수할 은행을 하나 더 알아봐야 하나?”

정호준은 파산 과정을 밟을 은행을 하나, 많으면 두 곳 정도 더 인수해도 괜찮겠다는 계산이 섰다. 이번 대출로 파산한 은행을 인수하고 나면 윌스&피고 다음인 ‘U.S.A Bank’의 자리를 넘보거나 바로 다음의 자리에 서게 되리라.

정호준이 나름의 계산까지 머릿속에서 마치고 집무실을 나왔을 땐 시침이 ‘2’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마셨을 무렵 아리아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너무 늦게까지 일에 몰두하는 건 건강에 좋지 않아요.”

“비상시국이잖아요. 이번 사태가 끝나고 나면 좀 편해지겠죠. 그나저나 왜 안 자고 나왔어요?”

“방금 자다 깼어요.”

“혹시 나 때문에 깬 거 아니죠?”

“글쎄요? 호준의 온기가 안 느껴져서 깼을지도 모르죠?”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아리아의 말에 정호준은 피식 웃었다. 아직 아이들을 출산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리아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듯 보였다. 수천, 수억을 들이며 어려서부터 자기 관리를 잘해 온 덕분이었다.

“호준은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아요?”

누가 상류층 자제 아니랄까 봐, 아리아는 출산 후 회복하는 동안 운동이나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경제 뉴스와 사회뉴스만 봤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도 유모가 셋이나 붙어 도와주다 보니 소식을 전해 듣는 데 온종일을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제가 줄곧 이야기해 왔잖아요? 아마 내년 초나 되어야 진정이 좀 될 거라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요.”

“불황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질 거란 말이네요.”

정호준의 확언에 아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밝은 면을 보며 자라서인지, 아리아는 1회차 때처럼 환경이나 자선사업 등에 큰 관심을 쏟은 착한 사람이었다. 가식이라는 말도 나돌기는 했으나 함께 살을 맞대며 살고 있는 정호준은 그녀의 행보나 마음이 가식이 아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아리아의 표정 변화를 빠르게 인지한 정호준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에 제가 큰돈 번 거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죠. 정말 큰돈을 만지게 됐잖아요?”

“정말까지 붙을 필요 있나요?”

“사실이잖아요? 유가 선물에 베팅해서 번 돈까지 모두 합치면 포보스 부자 순위 탑 3에 꼽히지 않을까요?”

펙트로만 공격해 오는 아리아의 말에 정호준은 입을 다물었다.

“알았어요. 그만할 테니까 표정 풀어요. 큰돈을 번 건 왜요. 호준은 되도록 그런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잖아요.”

정호준이 기분 상했다는 표정을 짓자 아리아는 온화하게 웃으며 정호준을 달랬다.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성을 느껴서요. 큰돈 번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을 텐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도 실천해서 그 시선을 좀 떨어트려 내야죠.”

남들이 돈을 잃을 때 돈을 번 건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만 튀어나온 모난 돌이 정을 맞기 쉬운 법이다. 상류층의 견제와 질투는 어쩔 수 없다지만 평범한 대중들에게까지 미움을 받아선 곤란했다.

“그 말은?”

“예, 재단을 설립해서 자선사업을 진행할 생각이에요. 아리아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법인명을 지을 생각이고요. 그런데 아리아도 알다시피 내가 재단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어요. 그쪽에 관심도 없었고요. 그러니까 아리아가 나 좀 도와주지 않을래요?”

“도와달라면, 나보고 재단 이사장을 맡으라는 건가요? 난 아직 이렇다 할 경력도 쌓지 못했는데요?”

정호준은 한 발 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는 아리아를 안으며 말했다.

“재단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보다는 잘 운영하지 않을까요? 재단을 운영한 적 없는 초보이긴 하지만, 재단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횡령과 부정부패가 없게 해야 한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최소로 잡아도 20억 달러는 투입할 생각인데, 아리아가 내 돈을 착복할 염려는 없으니 그거면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로슬러 재단 쪽의 도움을 받아도 상관없으니까 역량을 발휘해 봐요.”

* * *

은행 추가 인수를 진행하려면 회사에 나갈 필요가 있었기에 정호준은 아리아의 출산 이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사무실에 출근했고, 곧장 임원들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다들 오랜만이죠?”

“대표님. 대출은 언제부터 준비하고 계셨던 겁니까?”

조나단을 포함한 JHJ Capital의 임원진들은 정호준이 출산 후 한 달이 훌쩍 지났음에도 사무실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게 다 대출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인 거라고 착각했다.

“뭐, 이야기가 잘 풀려서 그렇게 됐네요. 돈이 생겼으니 써야겠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착각을 해 주는데, 굳이 착각을 수정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정호준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플랜을 이야기했다.

“텍사스의 엘리엇 뱅크(ELLIOTT Bank)와 캘리포니아의 PTF 뱅크(Pomona Top Federal Bank) 동시 인수 진행합니다.”

“대표님께서 정해 두신 우선순위를 말씀해 주시죠.”

“둘 다 인수에 성공하면 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저는 엘리엇 쪽에 무게감을 싣고 싶네요.”

점유율이 아닌 확장성 측면을 고려하면 유니버셜 뱅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하기 전 ‘인데믹’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은행이 캘리포니아를 기반했던 만큼 PTF보다는 엘리엇 뱅크가 중요했다.

“다만, 될 수 있으면 둘 다 가져오고 싶습니다. 대출받은 100억 달러 말고도 필요하다면 JHJ Capital에서 추가로 100억 달러를 투입할 생각입니다.”

정호준이 CDS 채권을 무기 삼아 워싱턴 레시프로를 가져오긴 했지만 워싱턴 레시프로는 본래 JB 로건 쪽에서 욕심냈던 물건이다. 처가인 로슬러 가문이 정호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고, 때로는 비를 피할 가림막도 되어 주기도 했으나, 로건에서 욕심낸 것을 가져온 만큼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이라도 더 견고하고 크게 성채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유니버셜 뱅크의 이사들과 협의해서 인수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트리오플 정보기관과 JHJ Capital 내 세무사, 회계사들을 총동원해 뒤를 털어 횡령이나 뇌물을 받은 이들을 모두 잘라냈다. 상대적으로 성과가 부족한 이사들도 잘라냈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사진의 자리가 반 가까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 인수전에서 공을 세운 이는 승진을 시켜 주겠다고 은행 내부에 공고도 확실히 해 주십시오. 여러분 중에서도 공을 세우는 분이 계시면 유니버셜 뱅크 이사로 보내 주겠습니다.”

정호준은 직장인에게 가장 큰 동기가 되어 주는 임원들에게 승진을 상품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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