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8화 (178/335)

17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8)

아리아는 주니어가 구해 준 유모들과 함께 아이를 돌보며 몸을 회복했다. 첫 손주 손녀가 각별하긴 했는지, 장인인 주니어는 뺀질나게 정호준의 집에 드나들었다.

“안녕? 나는 카엘라 이모예요!!”

그리고 그 대열에 처조부인 찰스와 처제인 카엘라까지 합류했다. 찰스 로슬러는 아이들을 좀 돌봐주다 서재로 들어와 정호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의 패밀리 네임을 로슬러로 짓겠다고?”

“예, 장인의 허락은 이미 받았습니다. 처조부께서 허락만 해 주시면 그렇게 출생신고를 하려 합니다. 제 아이들이 미국에서 살아가는 데 그편이 더 유리하고 행복할 테니까요.”

“나도 허락하겠네. 자네가 참 속이 깊구먼.”

제 증손과 증손녀에게 로슬러라는 자신의 성을 물려주겠다는데 허락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손녀인 아리아가 자신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것도 아니잖은가?

그리고 뛰어난 사업적 능력을 가진 정호준이 후계자가 될 아이들의 패밀리 네임에 로슬러를 붙인 건, 요식행위일 뿐이더라도 어쨌건 로슬러의 밑에 자신의 회사를 놔두겠다고 말한 거나 다름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가늠이 안 되는 정호준이 말이다.

그런 이유로 찰스든 주니어든 정호준을 더 살갑게 대하며 편하게 여겼고, 그 때문에 정호준의 집은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 집이 아니라 로슬러들의 집이 된 것 같네.’

미국은 한국이나 다른 동북아 국가들처럼 처가 쪽 어른을 어렵게 대하는 문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장인과 처조부가 어렵지 않겠나. 게다가 그 처조부와 장인이 로슬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정호준은 그 불편함을 티 내지 않았다. 그게 내 자식들을 무사히 낳아 준 아리아에 대한 예의였다.

처조부인 찰스 로슬러로부터 승낙을 받아 낸 정호준은 ‘줄리우 정 로슬러’, ‘헤리나 정 로슬러’란 이름으로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 * *

아이들의 인생을 생각해서 패밀리 네임을 로슬러로 지은 정호준은 자신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효과들을 얻게 되었다.

“정대표가 아이들의 패밀리 네임을 로슬러로 지었다고 합니다.”

정호준이 아이들의 Birth certificate Form(출생신고)을 신청한 사실은 CIA, FBI 등 정보기관을 통해서 뉴먼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기 위해 선거 운동에 열심인 양당의 주자들에게도 보고되었다.

“그거 참 다행인 일이군요.”

선거 운동을 이어 가며 모기지 디폴트 사태 이후 경제가 정호준이 말한 그대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본 오리하는 정보기관들의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패밀리 네임을 ‘로슬러’로 지었다는 건, 다른 나라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두렵게 여겨질 정도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난 정호준이 미국 시민으로 끝까지 살아갈 거란 걸 방증하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정이라는 성을 미들 네임으로 남겨 둔 게, 한국에 대한 미련 같긴 하지만.’

보통 미들 네임까지 꺼내 드는 경우는 드문 미국의 문화를 생각하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거라 믿었다.

그렇지 않아도 로슬러를 등에 업고 중견급 은행과 10대 은행 말석에 위치한 은행들을 집어삼킨 JHJ Capital을 보며 이민자인 정호준이 너무 큰 거 아니냐는 소리가 월가와 정치권에서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남의 성공을 질투하는 자들 때문에 호준을 활용 못 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판국에 자식들과 함께 미국인으로서 살아갈 거란 뜻을 밝힌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은 염려들을 다시금 물밑으로 잠기게 하리라.

* * *

전용기가 있다지만 아이들과 아리아를 놔두고 시카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정호준은 시카고에 위치한 사무실에만 나갈 뿐 뉴욕이나 LA 등에 위치한 사무실과는 메일과 전화 통화로 보고를 대신했다.

정호준과 미팅을 하고 싶다는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그런데 정호준에게 미팅을 요청한 이들 중에는 그 유명한 에릭 버펫도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에릭 버펫은 본인과의 만남(식사)을 경매에까지 부칠 정도로 유명한 인사였지만, 그게 자식과 이제 막 출산을 마친 정호준이 시카고를 벗어나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물론 그 사정을 에릭 버펫이 이유도 없었지만 말이다.

“대표님, 에릭 버펫 님이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국적을 떠나 전 세계 금융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인 만큼 조나단은 버펫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워했다.

“저번에 말했잖아요, 거기까지 가기 싫다고.”

“버펫 님이 찾아오겠답니다.”

“그래요? 대체 버펫이 왜 날 보고 싶어 할까?”

정호준의 혼잣말에 조나단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버펫이 자금경색에 빠진 BA와 골드만식스에 자금을 투자할 거란 소문이 있습니다. 대표님과 함께했으면 해서 아닐까요?”

“맛있는 거라 생각되면 혼자 먹으면 되지, 굳이 우리랑 같이 먹겠다고요?”

혼자 먹어도 아까운 걸 굳이 남과 같이 먹을 이유는 없다. 인간의 욕심을 관통하는 정호준의 혼잣말에 조나단은 다시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유야 더 있겠죠. 혼자 먹으면 체할 것 같다고 판단했거나, 우리와 함께 움직이면 협상에 더 유리할 것 같다거나.”

조나단의 분석을 들은 정호준은 새삼 시간이 지났다는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조나단을 바라봤다. 정직함 하나만 믿고 스카웃해 대리인 역을 맡겼던 조나단이 참 많이도 발전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보네. 하긴, 나도 많이 바뀌었지.’

혼자 속으로 생각을 마친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물이 먼저 찾아와 주겠다는데 그것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죠. 자리 한번 마련해 보시죠.”

정호준은 에릭 버펫과 만나 보겠다고 결정했고, 정호준이 결정한 지 채 나흘도 지나기 전에 에릭 버펫이 시카고로 찾아왔다.

9월 중순으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버펫은 멕도날드에서 정호준 것까지 햄버거 세트를 사서 JHJ Capital을 방문했다.

“JHJ Capital의 회장 정호준입니다.”

자상한 외견이었지만 눈빛은 뭔가 한고집 할 것 같이 매서웠다. 버펫과 악수를 나눈 뒤, 정호준은 입을 열어 자신을 소개했다.

“이렇게 찾아오게끔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부인이 출산한 지 얼마 안 돼서요. 제가 부인의 회복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인과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을 두고 밖으로 나가기가 좀 껄끄러웠습니다.”

“이해하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네. 자네 부인이 쌍둥이를 출산한 일은 미국 상류층에 퍼진지 오래네.”

버펫은 입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정호준의 행동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매서운 눈길로 정호준을 바라봤다.

“그런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를 함께했으면 한다고 미리 전달했는데, 식전은 맞겠지?”

“예. 맞습니다.”

버펫은 정호준에게 자신이 사 온 햄버거 세트를 건넸다. 당연히 음료는 콜라였다. 버펫과 정호준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일찍부터 자네를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네.”

“버펫 같은 거물이 저를 만나보고 싶었다니 영광입니다.”

“구골이 성공할 거라고 믿은 안목을 바탕으로 한 장기 투자와 리스크가 큰 짧은 단타나 선물 등을 완벽하게 해내는 능력자가 대체 어떤 투자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네.”

“과대평가십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전부 운이라고 치부하기엔 자네가 해낸 일들이 너무 대단하지.”

운으로 잡아떼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 한 정호준의 방어를 칼 같이 쳐 낸 버펫 때문에 결국 식사하는 동안 사담을 나누게 되었다. 대화는 식사를 끝낸 뒤에도 30분은 족히 이어졌고, 그 뒤에야 버펫이 찾아온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수익률은 대충 30% 정도 예상하고 있네. 주식을 계속 쥐고 있으면 그 이상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버펫이 건넨 제안은 조나단이 예측했던 것처럼 은행 투자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BA와 골드만식스, 그리고 SM(Strong Motors)에 돈을 투자할 계획이며 JHJ Capital과 함께 투자를 진행했으면 한다는 버펫의 제안에 정호준은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30%면 적은 건 아닌데.’

정호준이 밥 먹듯이 수 배, 수십 배의 투자 수익을 올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귀자로서 미리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두 은행과 SM에서 워런트를 내주겠습니까?”

워런트라 불리는 주식워런트증권(ELW: Equity Linked Warrant)은 유가증권 종목 또는 주가 지수와 연계하여 미리 매매 시점과 행사 가격을 정한 후 정해진 방법에 따라 해당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증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일정 수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증권이다.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우선주를 구매하면서 추후 우선주를 사들인 만큼의 보통주를 사들일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요구하겠다는 말에 정호준은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게, 은행들이 그렇게 퍼줄 군상들이 아니잖은가?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세 곳 모두 상황이 많이 안 좋네. 상황이 나쁜 곳에 투자하는데, 그 정도 어드벤테지는 따내야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치 투자의 달인인 에릭 버펫의 장담이다. 본인이 가진 영향력까지 가치로 매길 양반이니 아마 실현될 가능성이 크리라 판단한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가능만 하다면야 저희는 더 바랄 게 없죠. 150억 달러 투자하겠습니다. 단, 저희는 SM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BA와 골드만에만 신경 써 주시면 됩니다.”

결정을 내린 정호준은 버펫이 가져온 계약서에 거침없이 서명을 했다.

“버펫 씨와의 식사가 수십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죠?”

자신과 점심을 함께할 수 있는 권리를 팔고 받은 돈을 사회 약자들에게 기부하는 자선행사를 진행 중인 버펫이다. 훗날에는 2~3백만 달러를 호가하지만, 2008년인 현재는 아직 가격이 백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너무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좋은 일에 사용되는 돈인 만큼 정호준은 150만 달러를 모금하며 자선행사의 값을 올렸다. 한 번 150만 달러를 받게 되면 이후에는 최소한 100만 달러 이상의 값을 갖게 될 거란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정호준과 만남을 가진 뒤로 바쁘게 움직였는지, 9월 23일 버펫의 행보와 관련한 기사가 뉴스 채널을 가득 메꿨다.

[에릭 버펫과 호준 정, ‘BA’와 ‘골드만식스’, ‘SM’에 투자하다!]

‘Bank America’와 ‘골드만식스’의 우선주 125억 달러를 사들였으며 5년 내 113달러라는 행사 가격에 125억 달러에 달하는 보통주를 사들일 권리를 얻었다.

BA와 골드만에게 6%의 배당 수익을 보장하는 우선주 12만 5천 주를 뜯어 내기까지 했으니, 버펫의 수완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버펫은 SM 모터스에게 은행들보다 더 많은 것을 뜯어 냈다. 보통주를 사들일 권리는 당연히 받아 냈고, 연간 10%의 배당금을 받고 3년 후에는 3년 후 가격에 10% 프리미엄을 얹어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까지 받아 냈다.

버펫이 알아서 재주를 넘어주니 정호준으로서는 앉아서 돈을 번 셈이었다.

* * *

투자은행과 모노라인의 신용 등급 연쇄 하향으로 신용 위기가 수면 위로 재부상했다.

주택 금융 서비스 위원회(Housing Financial Service Committee)의 의장이자 하원의원인 조지 프랭크(George Frank)는 다른 의원들과 협력하여 납세자에게 더 적은 비용과 더 많은 보호를 제공하는 계획을 세워 최종 구제금융 법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대선을 코앞에 둬 민심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던 미국 하원은 최종 구제금융 법안을 부결시켰다. 연준과 정부가 지원해 줄 거라 믿고 뻗대던 월가의 금융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9월 말 에릭 버펫이 미국 주식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이 무색하게 하원의 구제금융 부결되자마자 주식 시장은 일제히 폭락했다. 9월 29일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770포인트 하락했고, MSCI Inc(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World Index)는 하루 만에 6%나 하락했다.

석유는 배럴당 95달러로 떨어졌고, 본래였다면 온스당 900달러까지 상승했을 금값은 JHJ Capital의 실물자산 매입과 맞물려서 950달러까지 상승했다.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이 본래보다 반 개월 이상 앞당겨졌고 리만의 파산을 책임져야 할 주체가 달라졌지만, 하원의 부결이나 주식 시장 폭락과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9월 말 주식 시장이 붕괴하자 은행들은 정치권에 로비하며 주식 시장 붕괴를 구제금융의 명분으로 언급했다.

[미 의회 7천억 달러 규모의 은행 구제금융 법안 통과!]

10월 3일 미국 의회는 은행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켜 재무부가 곤경에 처한 은행의 주식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얼어붙은 금융 시스템에 자본을 투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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