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1)
정호준이 건넨 서류가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여러 증거들을 아무렇지 않게 확보한 정호준의 정보력에 원로들은 팔에 소름이 돋은 것을 깨달았다.
무거운 침묵이 그들이 앉아 있는 JHJ Capital 회의실을 집어삼켰다.
정보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서 진실 유무는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만, 정호준이 건네준 문서에 적혀 있는 증거들은 쉽사리 반박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앞뒤 맥락이 확실했다.
보시위안을 엮으라는 충고를 입에 올렸던 정호준은 계속해서 설득을 이어 갔다.
“돈을 받고 국가를 팔아넘긴 매국노로 만드시죠. 개인의 영달 때문에, 정치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검은돈을 받은, 그런 못난 남자로 위장하면 쉽게 처리되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박살 내는 거였지만, 정호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죄 많은 놈이고, 어차피 망할 놈이다.’
보시위안은 오른팔 격인 심복의 배신으로 본인의 리스크와 마누라가 벌인 리스크가 터지며 훗날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삼 연임을 위해 중국의 정치를 거꾸로 돌리는 사진원과 주석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겨루었던 경쟁 상대치고는 참으로 어이없는 몰락이었다.
이러나 저러너 그를 기다리는 건 파국뿐이다. 다가올 파국을 정호준이 몇 년 앞당긴다고 큰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보시위안이 억울해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고 말이다.
“창홍타흑(唱紅打黑)을 외치며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던 이가 부패하기 그지없었다라. 재미있지 않습니까? 중국인들이 아니라도 누구나 분노할 겁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 상황을 넘어 나라를 팔아먹은 거다. 애국주의가 유독 심한 중국에선 특히 치명적이었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했던 것조차 무기로 활용하라는 정호준의 충고에 사무실에는 한층 더 무거운 침묵이 들어찼다.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놀랍거늘, 대체 이 심계는 뭐란 말인가?’
‘내 것도 가지고 있으면 어쩌지.’
사진원과 함께 온 원로들은 8대 원로처럼 거대한 인맥과 명예를 가진 이들이 아니다. 그저 혁명 원로로서 적당한 친분만 남은,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 대우를 받으며 자식이나 손주들의 성공을 바라는 게 전부인 이들이었다.
보시위안의 치부를 찾아낸 정호준의 정보력이면 자신들의 치부라고 못 찾을 리 없었다. 먼지 묻은 게 많은 그들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다.
찾아낸 치부를 활용해 강력한 권력을 지닌 보시위안을 단숨에 실각시킬 모략을 언급하는 정호준의 이야기에 두려움은 공포로 승화했다.
‘설마 조금 전에 내가 화낸 것 때문에 앙심을 품지는 않았겠지?’
주석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를 나락으로 빠트리는 데 뒷방 늙은이가 된 자신들을 몰락시키는 건 더 쉬울 거라는 판단이 섰기에 원로들은 더더욱 공포감에 젖었다.
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원로들과 달리, 사진원은 정호준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평온한 표정을 한 채 조용히 정호준을 바라봤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쉽게 제칠 수 있는 기회다. 사진원은 당장이라도 이 거래를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 냈다.
결정을 자신이 내려서는 안 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끼어들어선 안 돼.’
정치 9단인 사진원은 이 사안에 그 어떤 입김도 불어 넣어서도 입장을 표명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답은 나와 있다.’
시위, 집회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공산당이지만, 이번만큼은 인민의 강력한 반발에 어차피 중국 공산당에게 남겨진 출구는 정호준이 제시한 구명보트밖에 없었다.
“아쉽군요. 이런 인재가 중화의 품이 아닌 미국의 품에 안기다니. 지금이라도 우리 대국으로 올 생각은 없습니까?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한 서구 사회보단 같은 아시아권인 우리 중국이 정 대표에게 더 친근하고 익숙하지 않겠습니까?”
사진원은 이미 경쟁자 자리를 박탈할 미래만 남은 보시위안을 이 자리에서 언급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제 막 20대 중반에 들어선 정호준이라는 청년을 탐냈다.
‘하, 어이가 없네. 중국이 무슨 자격으로 인종차별을 논하는 거지?’
중국이 미국의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이 이상한 상황이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사진원이라는 인간이 감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15억 인구의 정점 자리를 갖게 될 남자는 다르다는 건가?’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정호준이 중국으로 귀의할 일은 없었지만, 절제력을 갖고 자신의 나라를 위해 정호준을 끌어안으려는 모습이 조금 놀라웠다.
사진원의 스카웃 제의를 들은 의원들은 정호준이 답을 주기도 전에 공포를 수습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주석! 그게 무슨 말인가?!”
“중화와 당에 큰 손해를 끼친 이를 끌어안겠다니, 제정신인가?”
“돌아가신 자네 아버님께서도 기를 쓰고 말리셨을 일이네.”
사진원의 부친이자 8대 원로 중 한 사람인 사중천과 친분이 있던 원로는 사진원의 부친까지 언급하며 역성을 내질렀다.
“우리 중화에 큰 손실을 끼칠 능력이 있다는 건, 반대로 우리 중화에 크나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필욕감심(必欲甘心)이라 했습니다. 중화번영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과실을 용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중화가 그런 도량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정호준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넷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상황에, 정호준은 서둘러 대화에 끼어들었다.
“인종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긴 하지만, 부주석님께서 걱정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와서 쟁취한 배경은 불합리한 인종차별을 막아 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자유와 평화, 기회가 숨 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 겁니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며 재벌과 공산당 간의 기 싸움이 벌어지고 공산당이 승리한 1회차 때의 역사를 생각하면, 중국에 가 봐야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것이다. 대국(大國), 대인(大人)이라 추켜세우는 그들의 겉치레와 달리, 중국인들의 속과 마음 씀씀이는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하니까.
“그렇습니까? 그거참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연락 주시죠. 중화의 넓은 품은 언제든 정 대표님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후민타오에 이어 주석이 될 사진원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부주석인 사진원이 찾아왔음에도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
다만 사진원과 공산당 원로들, 중국 6개 은행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다음에 찾아왔을 때도 협의가 안 되면 시장에 직접 푸는 수가 있음을 주지시켰다.
* * *
2008년 7월 30일, 미국 의회는 주택 및 경제 회복법(Housing and Economic Recovery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재무부가 ‘Fannie Maes’와 ‘Freddie Macs’이 보유한 대출에 대해 최대 250억 달러를 보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는 연준의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휘청이기 시작한 두 정부 후원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입법이었다.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하는 연방정부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방 주택 금융청(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인 ‘Fannie’와 ‘Freddie’를 위한 새로운 규제 기관을 만들었다.
대략적으로나마 내용을 훑으면 규제 기관인 FHA(연방주택청)는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출 보증을 서 주었고, 주택 세금 감면에 150억 달러, 주택 보조금으로 39억 달러를 허용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한 연준과 미국 정부의 발버둥이었다.
정호준과 만남을 가졌던 사진원 부주석과 공산당 원로들은 정호준과의 협의를 마치지 않은 채 중국으로 돌아갔다. 사진원 부주석은 주석인 후민타오에게 정호준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공산당 원로들은 자신의 선이 닿는 이들에게 정호준에 대해 알렸다.
이후 공산당 전당대회가 개최되었다. 전당대회에서 보시위안의 거취가 결정 났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오. 보시위안에겐 미안하지만 당이 살아야 하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중국 공산당은 정호준이 펼쳐 준 구명보트에 몸을 실으며 보시위안을 희생시키는 걸 정당화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움직입시다. 이번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올림픽으로 시선을 가리고, 그사이에 정호준의 CDS 채권을 정리하며 리만을 파산시킬 생각이었던 중국 공산당의 계획은 리만의 파산을 뒤로 미루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 *
2008년 2월 바닥을 찍은 뒤로 다시금 회복세를 보이던 주식 시장은 5월에 거대한 쇼크를 입었다.
엔플이나 구골과 같은 유명 IT 기업은 물론이고,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기업까지 모두 큰 폭으로 값이 하락했다.
폭락이 아닌 적정선의 하락을 유지하는 기업은 CDMA를 기반으로 한 첫 이동통신 기지국을 디자인한 ‘퀄탑’이나 네트워킹 하드웨어, 보안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시소토 시스템즈’처럼 몇 되지 않았다.
“대표님, 위즈니악 유니버셜 히치 부대표님으로터 전언입니다. 유니톡의 사용자 수가 1,000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애플폰 누적 판매 숫자보다도 많은 가입자입니다!!”
위즈니악은 애플폰 판매 대수가 얼마나 되는지까지 작성해서 정호준에게 보냈다. 그에 정호준은 자율권대로 회사를 운영하라는 문자를 남겼다. 2007년 잡스가 애플폰을 발표한 뒤로 엔플을 139만 대에 달하는 애플폰을 판매했고, 2008년에는 1,163만 대를 팔아치웠다.
아직 2008년이 다 가지 않은 만큼, 지금껏 2007년에 판매된 대수까지 모두 합쳐도 아직 1천만 개를 넘길 일은 없었다. 유니톡 사용자가 1천만을 상회한 건 애플폰을 구매해서 유니톡을 사용해 보니 정말 편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생물로 간편하고 실용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미국인들은 컴퓨터로도 연동이 되는 것을 확인하곤 회사 내부에서도 유니톡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건, 요구하신 엔플 주주 명단입니다.”
조나단은 정호준이 요구한 대주주 명단을 건네주었고, 정호준은 그 자리에서 바로 서류를 훑어봤다.
“조나단!”
“예, 오너.”
“‘엔플’사와 레리얼 앨리스의 ‘미라클’을 제외한 엔플 주주들에게 접촉해서 지분 인수 의사를 타결해 주세요. 단 경매와 마찬가지로 급할 필요 없습니다. 폭락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레리얼 앨리스는 잡스의 자식으로부터 삼촌 소리를 듣는 이로 2,000년대 이후로 포보스 랭킹 20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는 갑부 중의 갑부였다. 잡스가 엔플에서 쫓겨나고 엔플이 흔들렸을 때 엔플을 사서라도 잡스를 엔플로 복귀시켜 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잡스에게 믿음이 있었고 깊은 친분을 나눈 사이였다.
레리얼 앨리스는 이사회로부터 잡스를 대주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앨리스는 돈이 아쉬운 이가 아니잖아? 괜히 힘쓸 필요는 없어.’
안 되는 일에 힘을 쓸 필요 없기에 정호준은 앨리스는 처음부터 명단에서 제외했다.
V-튜브, 페이스노트, 유니톡까지. JHJ Capital이 지분을 가진, IPO(기업 공개)를 하지 않은 IT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은 불황 속에서도 매일 순항을 이어 갔다.
서브 프라임 디폴트로 매일같이 기업들이 파산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참 복 받은 일이었다.
다만 IT 관련 기업들이 규모를 키워 감에 따라 서둘러 준비를 해야겠다고 여긴 분야가 존재했다.
[JHJ Capital 해킹 대회 개최!]
바로 사이버테러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해킹에 대한 방비였다.
정호준은 언론사들을 불러다 해킹 대회를 홍보했다. 국적과 연령을 불문하고, 신분 제시만 확실하다면 중학생도 고용하겠다는 뜻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