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69화 (169/335)

16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69)

JHJ 유니버셜 뱅크의 창립 소식은 평소였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사일 뿐이었겠으나 매일 자금 경색, 파산과 같은 위기 상황을 담은 내용만 보이는 뉴스에 중독되어 있어서인지 새로운 대형 은행(?)의 창업은 미국인들에게 굉장히 희망찬 뉴스로 여겨졌다.

새로운 대형 은행이 발족할 정도면 ‘이제 슬슬 경기가 나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와 같은 그런 희망찬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달까?

‘물론 아직 나락은 한참 남았지만.’

가장 거대한 폭탄이었을 리만 브라더스가 중국계 은행으로 넘어갔지만, 찰스 로슬러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세계 최대 보험회사 AOG가 쌌던 똥은 다른 보험 회사들에게 이전되었고, 메릴리치나 DT은행이 사들였던 파생 상품들도 월가의 다른 은행과 보험사들이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파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6월이 가고 7월이 도래했다. JHJ 유니버셜 뱅크의 창업이 공포를 모두 걷어 줬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한번 뼛속 깊이 박힌 공포는 새로운 은행 창립 소식 정도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덕분에 월스트리트 포함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공포는 여전히 존재했고, 이는 위기가 지속되게 만들었다.

[Fannie Maes, Freddie Macs에 찾아온 위기.]

이어지는 공포는 이윽고 정부에 대한 신뢰 자체를 추락시켰다. 연준의 지시로 모기지론이나 모기지론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 상품들을 많이 끌어안은 만큼 정부 후원 기업 ‘Fannie Maes’와 ‘Freddie Macs’ 주가가 폭락했다.

정부 후원 기업들의 추락은 민간 기업이 스스로 자본을 조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잖은가? 위기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자기 사업도 아니고, 그냥 돈을 투자하기 위해 지갑을 열 자본가는 세상에 없었다.

위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한 정호준은 자신의 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모기지론 파생 상품들은 연준에서 감당해 주기로 합의가 끝났지만, 또 어떤 위기를 숨기고 있을지 모릅니다. 샅샅이 뒤져요.”

“예 알겠습니다!!”

JHJ Capital에 소속된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들을 모두 불러 모은 정호준은 실무자들에게 ‘와코르비아’, ‘인데믹’, ‘워싱턴 레시프로’, ‘퍼스트 보스턴’을 해부하도록 지시했다.

‘구조조정은 안 된다고 했지만, 저쪽에서 과실을 범한 경우는 예외로 인정해 주겠다고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찰스 로슬러가 나서 주고 그의 이름을 등에 업은 덕분에 정호준은 연준 관계자와의 협상에서 꿀릴 것 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연준 쪽 의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 연준의 요구를 몇 가지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기업이 망하면 실업자가 생긴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파산했을 때 생기는 실업자의 수도 급증한다. 그리고 그렇게 실업자 수가 늘어나 실업률이 증가하면 할수록 정부에 가해지는 부담과 원망은 커지게 된다.

원망할 게 없는 이들의 마지막 종착지는 사회를 원망하며 사회를 책임지는 정부였으니까.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정부를 욕하다 보면 귀가 얇은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동의하며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자연스레 다음 대선이나 총선에서 여당은 국민들의 표를 잃게 된다.

정말 망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빚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지 않은 한 정부가 나서서 빚을 어느 정도 짊어져 주는 건 이러한 메커니즘의 폐해였다. 이런 걸 보면 대마불사(大馬不死)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었다.

제조업 기업보다 고용하는 노동자 수는 적지만 은행이라고 이러한 법칙에서 벗어날 리 없다.

연준이 파생 상품으로 비롯된 막대한 빚을 짊어져 준 만큼 정호준도 성의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로 연준의 요구를 수용했다.

“단, 부실을 숨기거나 과실을 발견한 경우는 예외로 두겠습니다.”

정호준은 최소한의 선은 정해 두었고, 지금 그 최소한의 선을 활용해 한 번 더 조직을 정리하고자 했다.

* * *

2008년 당시 미국 모기지론의 총액은 약 12조 달러, 한화로 1경 5천조. 말로도 문자로도 쉽사리 적기 어려운 아득한 액수다, ‘Fannie Maes’와 ‘Freddie Macs’는 이 중 절반가량을 연준의 요구로 보증을 섰다.

모기지론 총액의 절반, 말이 절반이지 7,500조에 달하는 돈을 보증을 선 거다. 7,500조란 금액은 대한민국이 국가 예산을 십 년 이상 저축해야 겨우 그 근처 언저리에 이를 그런 돈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천조국이라 불리고 ‘Fannie Maes’와 ‘Freddie Macs’가 정부 후원 기업이라지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도 감당하기도 힘들 판국에 일개 기업이 그런 무지막지한 빚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탈이 나는 건 당연했다.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가 일어난 것도 ‘적당히’를 모르는 탐욕 때문이었는데,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적당히’를 모르고 무리하다 결국 무너지게 생겼다.

2006년에 임명된 미국 재무부 장관 헨리 로튼은 거금을 어깨 위에 짊어지다 휘청거리기 시작한 두 정부 후원 기업을 구원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계획했다.

하지만 구제금융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최소한의 동의라는 게 필요했고, 재무부 장관인 헨리 로튼은 토크쇼란 토크쇼에는 모두 참석해 두 기업을 구원해야 하는 정당성을 설파하고 다녔다.

정호준은 그 광경을 아리아와 함께 제집에서 TV로 보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토크쇼를 함께 보는 이는 임신한 아리아 외에도 또 있었다. 바로 그의 장인인 찰스 주니어였다. 아리아의 출산이 2개월 전후로 다가오자 주니어는 시카고에 사 둔 저택으로 이사와 정호준의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으라고도 이야기해 봤는데, 그건 또 정호준과 아리아가 불편해서 안 된단다. 부부간의 시간은 중요하다나? 맞는 말이긴 한데, 이렇게 매일 같이 출퇴근하는 건 같이 사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구제금융을 시행할 겁니다. 건실한 기업을 망쳐 놨는데, 당연히 책임져야죠.”

“손주 손녀는 문제없고?”

아리아의 배에 잉태된 쌍둥이들이 일란성인지 이란성인지 확인할 때 아이들의 성별도 이미 같이 확인했다.

“점심 먹고 다녀왔었는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다행이군. 그나저나 스와프는 모두 정리했나?”

“아직 일본과 중국 것이 남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양쪽과 몇 차례 미팅을 가졌었습니다.”

정호준의 대답에 주니어는 잠깐 생각하더니 정호준을 보며 질문했다.

“어떻게, 질질 끄는 것 같으면 내가 좀 도와주겠네.”

“괜찮습니다. 일본 쪽 협상은 거의 마무리됐으니까요. 중국 쪽이 조금 완강하긴 한데, 그것도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습니다. 구명보트를 던져 주면 아마 물 겁니다.”

“구명보트?”

“예. 구명보트를 던져 줬는데도 실패하면, 그때 가서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로슬러가의 도움을 받으면 더 빨리 해결됐을 일을 이렇게 질질 끌고 있는 정호준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찰스 로슬러와 찰스 주니어에게 높을 점수를 받는 요인이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어린애처럼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는 건 좀 껄끄럽지 않던가?

히든카드는 품속에 있을 때 더 가치가 있다는 걸 40년을 넘게 산 정호준은 잘 알고 있었다.

* * *

러시아 국영은행인 스비르 은행과의 협상이 마무리된 후부터 중국과 일본 은행들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리만 브라더스라는 유폭된 원전 수십 개를 비싼 돈 주고 끌어안은 거나 마찬가지인 중국은 그러한 비율로는 절대 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합의가 길어졌다.

미국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결코 미국 기업의 돈을 떼어먹을 수 없었다. 금융기업끼리 경쟁하다가 일본 기업이 돈을 따먹게 되는 거야 자연스러운 시장의 법칙이라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없었지만, 줘야 할 돈을 주지 않는 건 다른 문제였다.

돈을 ‘따먹는’ 것과 ‘떼어먹는’ 건 문자 몇 개 차이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의미 차이가 존재하지 않던가?

스비르 은행이나 BA나 골드만과 같이 미국 은행을 포함한 서구권 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비율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으나, 일본만 특별하게 여길 수 없다는 논리에 결국 정산 비율 자체는 그냥 넘어가게 되었다.

협상이 길어진 게 된 건 돈을 지불하는 방식에서 ‘미츠바시’와 ‘미츠이나’가 JHJ Capital에게 협조를 구해 왔기 때문이다. 미츠바시와 미츠이나는 스와프 청산금을 전부 달러로 지급하지 않고 엔화를 섞어서 지급하겠다는 제안은 입에 올렸다.

“스비르 은행에게 해 준 배려를 우리 일본의 은행들에게도 해 주실 수 있는 거잖습니까? 설마 일본이 러시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엔화는 미국에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GDP를 기록 중인 일본의 통화입니다. 달러만큼은 아니더라도 엔화는 국제 통화로 쓰이고 있습니다. 결코 호준상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달러로 받는 것보다 자원으로 받는 게 더 큰 이득이 될 것을 알고 있는 정호준으로서는 더 큰 이득을 위해 자원으로 받겠다는 방법을 택한 거지만, 남들이 보기에 정호준의 행보는 러시아 은행에 일종의 배려를 보여 준 것처럼 느껴졌다.

미츠바시와 미츠이나는 정호준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기업 차원에서도 정부 차원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을 모두 동원해 연방정부와 연준에 로비를 벌였다.

“스비르 은행에게 배려를 해 주셨던 것처럼 미츠바시와 미츠이나에도 조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적대국인 러시아와 달리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입니다.”

2010년대에 미국에 로비로 돈을 가장 많이 뿌리는 나라가 중국이라면 2010년 이전에 미국 정부에 돈을 가장 많이 뿌리는 나라는 일본이었다. 연준이나 연방정부로부터 일본에게 배려를 해 줬으면 한다는 뜻이 넌지시(?) 전달되었다.

‘내가 큰 실수를 했네. 러시아 은행과 협상하기 전에 일본 은행과 협상을 먼저 마쳤어야 했어.’

실물자산의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르게 될 것임을 염려해 스비르 은행과 먼저 협상을 했었는데, 이는 일본이란 나라의 영향력을 너무 무시한 어리석은 행보였다.

이제 막 새롭게 거대 은행을 창립한 정호준으로서는 연방정부와 연준의 권고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JHJ Capital은 엔화를 섞어서 지불하는 것을 용인했다.

6월 말부터 1개월 가까이 엔화 비율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이어 가야 했고, 결국 협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스와프 청산금의 35%를 엔화로 받겠습니다. 여기가 우리 JHJ Capital이 귀사들에 배려해 드릴 수 있는 마지노선입니다.”

정호준이 미츠바시와 미츠이나로부터 사들인 CDS 스와프는 각각 21억 달러. 정호준이 두 은행에 받아야 할 357억 달러 중 35%(1조 5,618억 엔)를 엔화로 받는 걸로 협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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